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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72

270. 약혼관계 – 재시작

자, 다시 생각하자.

민서는 진엔딩 보상을 선택하라는 텍스트를 무시하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다행히 저건 그냥 내버려 둬도 괜찮은 듯하다. 민서는 주신이 내린 퀘스트부터 다시 떠올렸다.

[ 퀘스트 : 수호자(守護者), 1/4 – Barbatos ]

우리더러 네 아신을 잡으라는 거다. 그러면 오리아스(Oriax)와 마르하스(MalHas), 아스타로트(Astroth)가 남아 있었다.

이 세상에 아신이 저 녀석들만 있는 건 아니고, 찾으라면 사실 꽤 많지만 ‘게임 시나리오상’ 레오들이 만났던 녀석들일 가능성이 컸다.

지금은 사라진 바르바토스가 저기에 끼어 있는 게 그 증거다.

그런데 바르바토스는 왜 포함됐는지 모르겠다. 녀석이 오른 왕국을 장악하고 있던 것도 아니고, 신도가 거의 없어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라 차지할 여력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다른 녀석들과 비교할 때 아신으로서의 급(級)이 너무 낮았다.

아신은 그들이 사용하는 신력만으로도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이를 알아보려면 {신력 간파} 능력이 필요하다.

바르바토스의 신력은 뒤집힌 삼각형이었다. 대단히 초라한, 신력이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만 갖춘 형태다.

이건 바르바토스가 얼마나 수준 낮은 촌구석 아신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레브의 말도 안 되는 공양 효율이 아니었다면, 바르바토스는 오른 왕국을 차지하기까지 수백 년이 걸렸을 터였다.

그것도 공양 효율이 좋은 사도를 만나서 일이 순탄하게 풀렸을 때의 일이지 여러 변수와 십자교회의 방해를 고려하면 수천 년도 모자라다. 그냥 불가능하다고 하자.

반면 먼 옛날, 대륙의 한 지역을 제패했던 미노타우르스들이 탄생시킨 신, 오리아스(Oriax)는 일그러진 17각형의 신력을 부렸다.

일그러짐이 심해져 입체(立體)에 가까운 형태를 띠었고, 지난 회차, 요새 토리돔에서 본 말파스는 칼날과도 같이 날카로운 8각형의 신력을 지니고 있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14번째 회차, 레이 덱스터의 증언에 따르면 마르하스의 다른 반쪽인 할파스도 8각형의 신력을 지녔다 하였으니 마르하스도 아마 그러할 것이었다.

과연 고대의 아신들이다.

하지만 아스타로트는 그들보다 훨씬 대단했다. 그가 부리는 신력은

정사면체(正四面體).

높이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정교하기까지 한 신력이었다. 정이십면체(正二十面體)의 형태를 띠는 주신의 신력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지만, 한낱 아신 따위가…

아스타로트 대공은 좀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민서는 지난 약혼관계 회차에서 그가 분노에 차서 외쳤던 말을 떠올렸다.

– 제기랄! 난 굴레에 얽매이지 않았단 말이다! 그런데 세계(世界)를 이딴 식으로 속박하다니!

굴레에 얽매이지 않았다라… 흐음, 잠시 고민한 민서는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결론을 내렸다. 그가 아는 굴레는 카시아와 카트리나, 도프 비자인이 맞이한 ‘굴레 퀘스트’밖에 없었다.

굴레에서 벗어나면 그 인물에겐 {추적술}이 통하지 않는다. 지난 회차와 달라진 모습과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굴레에서 벗어난 듯한 코린 경, 그리고 전과 달리 에이브릴 성에 나타나지 않은 란과 앤 아비커라는 자매에게는 {추적술}이 통했다.

그러면 {추적술}이 걸리고 안 걸리고의 차이는 굴레 퀘스트 완료에 의한 것이라 봐야 할 듯하다. 굴레의 문제가 아니라. 그럼 남은 건 행동이 왜 바뀌느냐인데…

‘굴레 퀘스트는 그 사람이 바라던 걸 이뤄줬을 때 해결됐지.’

민서는 카시아를 떠올렸다.

그녀는 바랐던 게 매우 뚜렷했다. 직접 눈앞에서 봤다. 카시아는 사랑하는 남자의 품에 한 번 안겨보기를 원했고, 너른 초원, 레안이 그녀를 포옹하자 굴레에서 풀려났다. 풀려나 버렸다.

그러곤 다음 거지남매 회차에서 눈부시게 밝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창녀의 숨길 수 없는 우울함이 사라지고,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레안의… 아니, 우리의 가슴을 헤집었다.

아름다운 여자다. 카시아는.

민서는 애증이 쌓였던 그녀를 오래도록 회상하다가 본론으로 돌아왔다. 시나리오 보상을 선택하라며 고요히 떠 있는 텍스트를 곁눈질해 눈치를 살폈다.

레브의 아버지, 도프 비자인이 바랐던 건 복수… 였던 듯하다.

허나 확실치는 않았다.

비자인 부족을 몰살한 코린 경을 살해하는 게 그의 바람이라 생각했는데, 코린 경도 굴레에서 풀려난 걸 알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16번째 회차, 바르바토스가 사라지기 전이라 비자인 부족이 ‘몰살당한 상태’였던 소꿉친구 회차에서 엿들었다. 굴레에서 풀려난 도프 비자인은 레슬리 수도사와 술잔을 기울이며 코린 경이라는 성전사가 장독에 숨어있던 자신과 친구들을 숨겨주었다고 했다.

고향 마을 사람들과 부모님을 죽인 원수인 동시에 생명의 은인인 셈이다. 단순히 복수하길 바랐을 것 같지 않은데, 코린 경도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 “신이시여. 저의 죄를 용서하지 마소서. 저는… 후회하지 않나이다!”

바르바토스의 사도였던 레브에게 달려들면서 외친 말이었다. 그 직후 코린 경은 새하얗게 불타오르며 순교(殉敎)했고, 도프 비자인의 굴레 퀘스트가 완료됐다.

그 이후 코린 경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니, 엄밀히 말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브라이언이라는, 그의 영향을 받아 삶이 변화한 이를 통해 행적을 듣게 되었는데, 코린 경은 다른 신을 섬기는 야만인을 축출하겠다는 교회의 방침을 거부하며 성전사직을 내려놓았다. 마치 굴레에서 풀려난 카시아가 창녀 짓을 금방 그만둔 것처럼.

덕분에 대충은 짐작이 간다.

도프 비자인과 코린 경이 무엇을 바랐는지… 민서의 생각은 이제 마지막 굴레 퀘스트 대상자를 향했다.

카트리나.

민서의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녀를 우습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그러기엔 너무 많이 맞았다.), 카트리나를 떠올리면 늘 유쾌했다.

그녀와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다. 카트리나는 레라를 죽이고, 팔을 자르고, 폭언을 퍼붓는 둥 약혼관계 시나리오와 잦은 갈등을 빚었다.

허나 모두 전장에서 적으로 만났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특정 시나리오에 얽매이지 않은 민서는 이를 감안할 수 있었다. 그는 답답한 마음이 조금 씻겨 내려가는 걸 느끼며 카트리나를 떠올렸다.

카트리나는 오해받기 쉬운 성격이었다. 불같은 성질에 뇌를 거치지 않는 언행, 쓸데없는 것에 고집이 있어서 그녀의 진면목을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카트리나는 의외로 마음 씀씀이가 고왔다.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해 사고 친 뒤에 후회하는 타입이라 레안이 근위기사가 됐었던 거지남매 회차 때 그의 신분을 증명해주고, 집까지 빌려줬었다. 레안이 귀족인 척 장난쳤다가 그녀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게 원인이었는데, 목숨 걸고 놀려먹는 재미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여자가 어떻게 굴레에서 풀려났는지 모르겠다.

카트리나가 굴레에서 풀려난 건 지난 거지남매 회차에서였다. 레안이 소드마스터인 걸 알더니 대뜸

– “스승님!”

외치며 무릎을 꿇었다. 태도까지 싹 고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해서 그때는 카트리나가 바라던 게 소드마스터에게서 검술을 사사하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 “저 기사단 안 그만뒀는데요? 제가 왜요? 다 배웠는데.”

입도 싹 닦으며 딴소리했다. 다 배웠으니 이젠 관심 없다는 태도로.

굴레에서 풀려난 순간 카시아가 보인 감격과 비교하면 그건 그녀가 바라던 것이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굴레에서 풀려났다. 바로 그 회차에서.

아이고- 진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굴레라는 게 정확히 뭘 의미하는 건지도 알 수 없어서 민서는 아스타로트에 대한 궁리도 함께 집어치웠다. 우리가 무찔러야 하는 아주 강한 적,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어쨌거나…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오리아스와 마르하스, 아스타로트를 때려잡겠다. 그러면서 레나들이 행복한 결말을 얻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손가락이 없는 민서는 속으로 셈하여 남은 회차와 목숨을 계산했다. 회차는 [ 20/23 ]. 23개 중 20개를 사용해 21, 22, 23, 3개가 남았고, 목숨은 [ 5/6 ]. 한 번 죽으면 벼랑에 몰리고 두 번 죽으면 끝이었다.

민서는 고민 끝에 결론지었다.

‘일단 약혼관계 시나리오를 다시 해야겠다.’

말파스와 할파스를 먼저 잡겠다는 계획이다.

레아가 {신성}이라는 능력을 얻었으니 소꿉친구 회차로 시작하는 것도 좋아 보이지만, 헤르만 포르테 백작을 죽여 파국을 불러온 약혼관계 회차를 한시 빨리 ‘덮어씌워 둘’ 필요가 있었다. 안 그러면 아스타로트가 강림해 우릴 모두 죽여버린다.

소꿉친구 회차로 시작해 거울로 레이 덱스터에게 연락하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

하지만 민서는 이를 기각했다.

‘지금’ 레이 덱스터의 상태가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엔딩 조건이 레나의 꿈을 이뤄주는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된 직후여서 내게 매우 화가 난 상태이고, 거울로 연락했을 때 말을 듣지 않을 공산이 있었다.

그러니 먼저 약혼관계를 시작해서 지난 회차가 어떻게 끝났는지, 우리가 뭘 목표로 해야 하는지를 레이가 깨닫게 해야 한다.

또, 아스타로트나 오리아스와 비교해 8각형의 신력을 가진 마르하스가 가장 약해 보이므로 그 녀석을 먼저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도 있었다.

어쨌든 지난 약혼관계 회차가 아니었으면 소꿉친구랑 거지남매 시나리오는 무난하게 흘러갔을 테니까, 당장은 이렇게 땜빵해두자.

‘수호자 퀘스트. 그렇게 막 못할 건 아닌 듯한데? 예쁜 목걸이의 용도도 알았고, 오리아스는 잡아봤잖아. 소멸시키진 못했지만… 방법은 대강 짐작이 가. 하리에 가이단의 목걸이를 부수면 되겠지.’

정보가 너무 많이 쌓였다. 그동안 개고생한 게 뻘짓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이 민서는 앞으로의 계획을 금방 수립해냈다. 자, 그럼 이제…

[ 시나리오 보상을 선택하세요. ]

민서는 회차 제한을 풀어달라 빌었다. 목숨 제한을 풀어달라고 할까 고민했지만, 소드마스터인 레오들이 쉽게 죽을 리 없고, 강림한 아스타로트의 공격까지 막아낸 목걸이가 있었다. 해서 보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만약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회차를 계속 반복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끝난다. 라고…… 생각한 거다.

하지만 그게 큰 착각이고 지나친 희망이었음을 알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레나 키우기를 클리어하셨습니다. 플레이하고자 하는 시나리오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

[ 소꿉친구 – 진엔딩 ]

[ 약혼관계 – 진엔딩 ]

[ 거지남매 – 클리어 ]

메시지가 떠오르고, 민서는 미련 없이 약혼관계 시나리오를 선택했다. 북부 산맥의 눈보라 치는 영상과 함께 에이브릴 성에 떨어진 그는 레이 덱스터가 되었는데,

[ 업적 : ‘21’번째 레오 – 플레이어가 레오에게 동화되는 속도가 미약하게 빨라집니다. ]

[ 21/24 ]

회차 제한이 하나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또, 그가 믿었던 목걸이마저

“레이! 내 말 듣고 있… 엥? 너 손에 그거 뭐야?”

“……”

산산이 조각나 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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