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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73

272화.

로날드는 보드를 살펴보더니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잘 보이지도 않는군. 대체 이걸 어떻게 찾아낸 건가?”

나 역시 예지가 아니었다면, 이런 게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

“운이 좋았습니다.”

사실 중국제품의 백도어 문제는 이미 몇 차례 불거졌다. 그러나 그때마다 보안상의 허점일 뿐 의도적으로 심은 백도어가 아니라며 빠져나갔다.

그러나 이를 우려해 미국을 포함해 몇몇 정부기관들은 아예 중국산 전자제품을 쓰지 않고, 입찰에서도 배제시켰다.

“이 정도면 꽤나 확실한 증거라고 할 수 있겠군.”

“저희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면, 더욱 그렇겠죠.”

사실 이 칩이 정확하게 어떤 역할을 한 건지는 알 수 없다. 면전에 들이밀어도 모르는 일이라며 부정할 게 뻔하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문제 삼는 쪽이 일개 기업이 아닌 미국정부라면?

그러면 이전처럼 쉽게 빠져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난 설득하듯 말했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기업들의 기술이전을 강요하고, 지적재산권을 마음대로 훔쳐갔습니다. 이대로 계속 놔두면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 한다. 내가 아무리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이 있다고 한들 미국은 미국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따라서 이 일은 우리뿐 아니라 미국에도 이익이 돼야 한다.

냉전이 끝난 이후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미국은 군사, 경제, 문화, 외교 등 모든 면에서 세계를 이끌어 나갔다. 그러한 세계질서에 유일하게 도전장을 내민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거대한 대륙과 15억이라는 인구를 기반으로 미국의 뒤를 바짝 쫓았고, 이제는 G2라 불릴 정도로 성장했다.

미국은 입장에서는 2인자 자리까지는 용인하더라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추월하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로날드는 후보시절부터 미중 간의 무역불균형을 언급하며 중국을 제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는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매년 수천억 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실 무역적자는 기축통화국의 숙명이다.

세계교역은 전부 달러로 이뤄지는 만큼 달러를 쓰기 위해서는 먼저 달러가 있어야 한다. 미국이 전 세계에 자국 화폐를 공짜로 뿌리지는 않을 테니, 달러를 벌기 위해서는 미국에 물건을 수출해야 한다.

그럼 미국은 그 물건들을 사들이며 전 세계에 달러를 공급하는 것이다. 그렇게 미국인들은 무역적자 대신 물가안정과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

그런데 이는 무역적자뿐 아니라, 제조업 붕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전만 하더라도 미국은 세계최대의 공업국가였다. 그런데 이제 그 타이틀은 중국이 가져갔고, 미국 제조업은 큰 어려움에 처했다.

로날드는 후보시절 유세과정에서 그 문제를 계속 지적했고, 그 원인으로 다른 나라(특히 중국)와의 무역불균형을 지목했다.

러스트벨트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의 불만 덕분에 로날드는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중요한 핵심은 무역불균형 해소가 아닌, 미국 제조업의 부흥이다. 만약 어떠한 계기로 미국 제조업이 살아난다면, 굳이 무역불균형을 해소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계기가 생겼다.

지진과 쓰나미가 메가시티를 덮쳤다. 고층빌딩과 집들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쓸려나갔다.

이는 엄청난 유효수요를 만들어냈다. 건설경기가 되살아난 것은 물론, 제조업 공장들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제조업을 살리겠다는 로날드의 약속이 전혀 뜻밖의 형태로 지켜지게 된 것이다.

로날드는 빅원의 뒷수습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제조업이 호황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굳이 중국을 제재할 만한 명분도 약했다.

그러는 사이 중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키웠다.

미국이 언제까지 이 상황을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 번은 부딪쳐서 중국의 기세를 꺾을 생각이라면, 이번 일이 좋은 명분이 되어주겠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로날드는 날 보며 말했다.

“복장은 괜찮아 보이니, 바로 출발해도 되겠군.”

“예?”

어디를 가자는 거야?

그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백악관 기자실로 가세.”

택규는 혀를 내두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행동력 보소.”

* * *

백악관 서관에 위치한 기자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 번쯤은 본 적이 있는 장소다. 바로 이곳에서 백악관의 공식발표가 이뤄지고, 뉴스를 통해 전 세계에 방송되기 때문이다.

기자실 옆의 통로로 나가면, 기자들이 모여 있는 좁은 공간이 있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아직 여러 언론사의 기자들이 남아 기삿거리가 될 만한 게 있을지 찾고 잇었다.

한 기자가 커피와 간식거리를 사들고 왔고, 다들 하던 일을 멈춘 채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강진후가 지금 미국에 와 있다는데.”

“무슨 일로 말도 없이 온 거지?”

“중국 쪽 특파원에게 들으니, 마카오에서 중국 상무부장과 저우차 담당자와 만난 것 같다는데.”

“아! 나도 그 얘기 들었네. 그런데 정말로 저우차가 카로스 기술을 베낀 건가?”

“뭐,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었잖아. 중국 쪽에 항의해봐야 콧방귀도 안 뀔 테고.”

“강진후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이미 기술이 유출됐으니, 어쩔 수 없이 저우차와 손을 잡지 않을까?

“그런데 막상 합작을 하면 계속해서 기술이전을 강요받을 텐데.”

다들 얘기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열심히 내용을 정리했다.

‘잘만 쓰면 기사가 될 것 같기도 한데…….’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 소리쳤다.

“30분 후에 대통령이 직접 중대발표를 한다고 합니다!”

“뭐?”

그 말에 기자들은 다들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노트북을 챙겨 기자실로 달려갔다. 비어 있던 의자는 금방 기자들로 인해 꽉 들어찼다.

잠시 후, 로날드가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왔다.

돌이켜보면 그는 이 자리에서 여러 차례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그중 하나를 뽑아보자면, 바로 빅원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로날드가 사임을 발표하려는 순간, 백악관이 거세게 흔들렸고 그는 빅원이 왔다고 선언했다.

그때 이 자리에 있었던 기자들은 지금도 그 일을 잊지 못했다. 아마 21세기 미국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아니었을까?

로날드는 기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중대발표를 하려고 합니다. 발표에 앞서서 중요한 손님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이어서 한 동양인 청년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본 순간 기자들은 깜짝 놀랐다. 다름 아닌 OTK컴퍼니 CEO 강진후였다. 그가 백악관 기자실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기자들은 재빨리 노트북을 두드리며 기사를 올렸다.

로날드가 옆으로 자리를 비켜주었고, 강진후는 마이크 앞에 섰다.

“반갑습니다. 강진후입니다.”

그는 짧은 인사를 한 다음 바로 본론을 꺼냈다.

“이미 밝혔다시피, 저우차는 카로스의 기술을 상당부분 베낀 것으로 의심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 대통령님과 충분히 상의했고, 심각성에 대해서도 공감했습니다.”

한 기자가 질문했다.

“증거는 있습니까?”

그러자 놀랍게도 강진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출경로를 조사하던 과정에서 서버에서 스파이칩을 발견했습니다. 이 서버는 슈퍼나노에서 제조한 것으로, 이를 통해 자료를 빼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기자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자, 잠깐. 그럼 슈퍼나노 쪽에서 의도적으로 백도어를 심었단 말입니까?”

“확실하진 않지만, 생산과정보다는 유통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의심됩니다. 문제는 이 서버를 저희뿐 아니라, 엔플, 구블, AMZ, 페이스노트 등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기업들과 관공서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곳들 역시 스파이칩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미국기업의 중요한 정보와 자료가 무차별적으로 빠져나갔을 수도 있습니다.”

이어서 로날드가 말했다.

“미국은 정국 측의 기술유출, 특허권 침해, 지적재산권 절도와 관련해 즉시 조사를 시작할 겁니다. 만약 중국이 이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자들은 손을 들며 질문했다.

“중국이 응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방금 말씀하신 특단의 조치란 뭡니까?”

로날드는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중국은 무역규정을 위반했고, 우리의 기술들을 훔쳐갔습니다. 이전 대통령들은 어땠을지 몰라도 전 이러한 불공정한 관행에 대해 더 이상 참지 않겠습니다. 제가 말한 특단의 조치란 중국산 제품에 대한 일괄 제재입니다. 필요하다면 기꺼이 중국제품을 수입금지시키고,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겠습니다!”

이 발표는 즉시 언론을 통해 전 세계로 전해졌다.

* * *

기자회견이 끝난 후 택규와 함께 차를 타고 호텔로 향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왕이창 부회장이다.

전화를 받자마자 그는 화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는지 옆에서 통역이 바로 말을 전해주었다.

난 태연하게 말했다.

“제가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사과하고 배상하면 좋게 끝날 거라고. 일이 이렇게 되어서 저도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뭐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팽두이숙이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머리를 삶으면 귀는 자연히 익는다. 저우차에게 손을 쓸 수 없다면, 중국에 손을 쓰겠다는 뜻이다.

그는 소리치듯 말했다.

[그래서 지금 중국 전체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건가?]

“그건 제가 아니라 미국에게 물어보셔야죠.”

[중국이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것 같소?]

“그럼 어쩌시게요?”

난 일전에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소국이 대국을 거스르면 화를 입게 되는 법이라면서요? 잘 판단하세요.”

[뭐……?]

난 더 들을 것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아쉬우면 자기가 다시 전화하겠지.

* * *

백악관의 발표에 중국은 발칵 뒤집혔다.

발표가 나가기 무섭게 슈퍼나노의 주가는 50퍼센트 넘게 폭락했고, 시총 8억 달러가 허공으로 증발했다.

중국정부는 즉각 부인하는 성명을 냈다.

“강진후의 발표는 말도 안 되는 모함입니다! 중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특허와 지적재산권을 준수합니다. 백도어나 기술도난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체로 비웃는 분위기였다.

-중국이 지적재산권을 준수한다고?

-ㅋㅋㅋ간만에 빵 터졌다.

-미세먼지만 주는 줄 알았더니, 큰 웃음 한 번 주네.

-ㅎㅎ강진후 ㅈㄴ 빡쳤네. 중국 뒤통수를 후려갈기다니.

-강진후 VS 중국인가? 스케일 지린다.

-누가 이길까요?

-이제까지 강진후 건드려서 잘된 사람은 없지 않았나요?

-강진후 적으로 돌린 사람들 다 적됐음.

-예를 들어 각하라던지?

-그런데 저 스파이칩 진짜일까? 무슨 007 영화도 아니고, 저런 걸로 정보 빼가는 게 말이 되나?

-말이 됨. 저번에 중국산 CCTV랑 스마트폰에서 백도어 발견됐음. 그래서 FBI랑 CIA에서 중국 스마트폰이랑 통신장비 쓰지 말라고 경고함.

-우리나라 CL텔레콤은 웨이화 통신장비 쓴다고 하지 않았나?

-ㅋㅋ웨이화. 인민해방군 장교가 중국정부 지원받아서 만든 회사임. 맘만 먹으면 통신감청하고 정보 빼가는 건 일도 아님.

-아, 젠장. 내 컴퓨터 메인보드 슈퍼나노 건데ㅜㅜ

-응. 님 개인정보 다 털렸음. 하드에 있는 야동목록까지 털림.

-걱정 마세요. 어차피 저번 리테카드 해킹사태로 한국인들 개인정보는 중국으로 다 넘어갔어요. 이미 다 털려서 더 이상 털릴 정보도 없음.

난리가 난 것은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개인정보에 대해 대단히 민감하다. 오죽하면 엔플은 테러범의 엔폰 잠금장치를 풀어달라는 협조요청조차도 거절했을 정도다.

만약 중국기업이 의도적으로 스파이칩을 서버에 삽입했고, 이를 통해 기업과 미국인들의 정보를 빼갔다면 절대 묵과할 수 없는 행위다.

소비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엔플과 구블, AMZ, 페이스노트 등은 즉시 자사 서버와 데이터센터 점검에 나섰다.

사흘도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캐스 선스타인 FBI 국장은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언론 앞에 여러 개의 보드를 증거로 내놓으며 말했다.

“강진후 CEO가 주장한 내용은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엔플과 구블 등의 슈퍼나노 서버에서도 스파이칩이 발견됐습니다.생산과정이 아닌 이후에 삽입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 수사 범위를 확대 중입니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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