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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74

272. 약혼 Ep – 생존자

“으챠.”

이른 아침. 오늘도 어김없이 공터에 나온 레라 아이나르는 훈련을 앞두고 몸을 풀었다. 보폭을 넓게 잡아 영차, 다리 근육을 풀어주고 손바닥으로 땅을 짚었다.

몸 상태를 세심히 점검해나가는데, 어라? 레라가 어리둥절했다.

어제부터 컨디션이 너무 좋다.

몸에 활력이 넘치고, 유연하기도 더 유연해진 것 같아서 레라는 허리를 더 깊이 눌러보았다. 관자놀이가 무릎에 닿았는데도 여유롭다.

‘내가 잠을 잘 잤나?’

딱히?

레라는 잠을 언제나 잘 잤다. 꿈도 꾸지 않고. 침대와 이불, 베개가 없어도 자겠다 마음먹으면 어디서든 곯아떨어지는 그녀가 잠자리로 인해 컨디션이 좌우될 리 없는 것이었다.

“흐음.”

스트레칭을 마친 레라는 상체를 부웅- 주먹질과 함께 휘둘렀다. 내친김에 공중제비도 뛰어보았는데 두 바퀴가 어렵지 않았다.

‘기분 좋네.’

레라는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뭔 일인진 모르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검을 다잡고는 훈련에 돌입했다.

오전은 기초를 다지는 시간이었다. 수직 베기를 시작으로 검을 5도씩 기울여 마지막에는 수평 베기가 되었는데, 레라는 이를 각각 30회씩 성실히 수행해나갔다.

베기가 끝나면 찌르기를 연습할 차례다.

하단, 중단, 상단 찌르기 동작을 되짚었고, 다음은 레이와 검을 맞대고 쳐올리기, 밀어내기, 힘겨루기를 연습할 차례였다. 허나 지금 공터에는 레라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울쏘냐.

레라는 혼자서 스텝을 밟아보았다. 검술 스텝의 기본이 되는 마름모꼴 스텝과 사다리꼴 버티기 스텝, 안짱다리 걸기의 예비 동작인 T자 스텝, 앞 발꿈치로 땅을 찍어 빙글 회전할 준비를 하는 갈지자(之) 스텝까지.

흐아으아응… 심심해.

레이가 없으니 무료하다.

레이가 있으면 가끔 장난도 치고, 서로 궁리해온 검술을 주고받아서 심심할 틈이 없었다.

레라는 훈련을 조금 일찍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따라 힘이 넘쳐서 씻을 필요는 없었다.

“엄마~ 밥 주세요.”

레라는 어머니와 함께 식사했다. 겨울철이면 매일같이 나오는 라디무 절임을 빵에 얹어 우적우적, 맛있게 먹었다.

“아빠는 내일모레쯤 오시겠죠?”

“아마 그러시겠지. 사냥이 잘 안 됐으면 늦으시겠지만… 왜? 용돈 필요해?”

“엥? 말이 왜 그렇게 돼요?”

“우리 딸이 아빠를 찾을 때는 용돈이 다 떨어졌을 때뿐이잖니.”

“엄마는! 누가 들으면 오해해. 난 그런 적 없어.”

“그럼 용돈이 아직 남았겠구나. 가불해 간 게 두 달도 안 됐으니까.”

“…잘 먹었습니다.”

레라는 호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싱글싱글 밉살스럽게 웃는 엄마를 피해 투덜투덜, ‘상단이 온 김에 레이의 생일선물을 사놓느라 그리됐을 뿐.’이라고 자신을 변호하였는데, 돈이 떨어진 건 사실이었다.

쳇. 야박하기는.

레라는 엄마 몰래 용돈을 받아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부엌에 들어가 점심상을 차렸다. 쟁반에 스프를 포함한 이것저것을 챙겨서 레이네 집으로 갔다. 어머니가 안 계시는 덱스터가(家) 남자들에게 식사를 날라다 주는 건 레라의 일이었다.

“식사하세요.”

레이와 노엘 덱스터는 아침부터 서재에 있었다. 아무래도 바르나울에 가는 것 때문에, 못해도 두 달은 족히 걸리는 여행길이어서 준비할 게 많기 때문인 듯했는데…

“뭔 얘기를 이렇게 오래 해요?”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기류. 레라는 이 두 사람이 자신에게 뭘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레이를 지긋이 쏘아보았다.

“…고마워 레라. 잘 먹을게.”

하지만 돌아온 건 축객령이었다. 그릇은 알아서 부엌에 가져다 놓겠다는 말에 레라는 ‘너 똑바로 말 안 하면 죽어.’라는 뉘앙스로 눈짓하며 서재를 나섰다.

뭐지?

문에 귀를 대볼까 하는 충동이 일었으나, 그만두었다. 레라는 레이가 어련히 말해주겠거니 믿었다.

밥도 먹었겠다, 배가 부른 레라는 집안일을 조금 거들었다. 쓸고 닦고 요리하는 일은 그녀의 취향이 아니어서 어머니의 잔심부름을 받아 에이브릴 성을 돌아다녔다.

대부분 이웃 아주머니께

“저번에 ‘담프델’ 만들어주신 거 맛있게 잘 먹었어요. 여기, 어머니께서 이것 좀 맛보시래요.”

얻어먹은 답례로 먹을 걸 가져다주고, 또 그 답례로 건네주는 걸 받아오는 일이었다.

아주머니들은 레라에게 “아이고- 고마워라. 잘 먹겠다고 전해드리렴. 그런데 레라야. 이제 성년인데, 결혼식은 언제 올리려고?” 전에도 물었던 것을 악의 없이 도마에 올렸다. 레라는 빙긋 웃으며 “길일이 잡혀야 제가 시집가지요.” 싱겁게 답했다.

이러면 보통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거니, “그래. 날이 잡히면 알려다오.” 말하고 마는데, 간혹 추렴을 붙이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러다 신랑이 도망갈라. 얼른 붙들어놔야지.”

“아주머니도 참. 신랑이 왜 도망을 가겠어요. 그리고 제가 무슨 수로 도망가는 사람을 잡나요.”

“남자들은 뭐에 홀리면 종종 그런단다. 아이를 낳기 전까진 방심하면 안 되는 게 남자야. 명심하렴.”

“알았어요. 명심할게요.”

레이가 날 두고 도망갈 리 없지만, 레라는 적당히 받아주었다. 이런 조언을 해 주는 아주머니의 남편들 대부분이 마수를 잡겠답시고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래. 오래 기다렸다. 이것, 따뜻할 때 얼른 가져가렴.”

물론, 워낙 옛일이라 지금은 다들 재혼하셨다. 레라는 ‘페나란’이 든 뜨끈뜨끈한 접시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데호르만이 저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어, 아빠! 벌써 오셨어요? 사냥이 잘 됐나 봐요?”

데호르만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산에 사냥감이 많더구나. 올겨울은 풍년이겠어.”

“그래요? 헤헤, 그럼… 아빠, 저 용돈 좀 주세요.”

“응? 고생하고 돌아온 애비한테 한다는 말이 고작 그거냐?”

“아빠가 무슨 고생을 해요. 대전사는 사냥 나가서 뒷짐 지고 아무것도 안 하잖아요. 저도 알 건 알아요.”

“어이쿠. 얘 좀 봐라. 대전사 취급이 말똥만도 못하구나. 그럼 용돈도 없는 거로…”

“아-! 잠깐! 아빠! 아부지! 제가 늘 사랑하고 존경하는 거 아시죠? 여기 아버지 드시라고 술안주도 가져왔어요.”

“퍽이나.”

데호르만이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장성한 딸이 이렇게 애교를 부리는 게 워낙 드문 일이라 이유를 물어보았다. 잠시 후, 그녀의 변명을 들은 데호르만이 어처구니없어하며 물었다.

“레이 생일은 한참 멀지 않았나? 여름이잖냐.”

“초! 여름이죠.”

“나 원 참. 여름이나 초여름이나… 이제야 겨울인데. 그리고 저번에 돈 많이 받아 갔잖아. 뭘 샀길래 벌써 다 떨어져?”

“이거요. 이거랑. 이건 제 거예요.”

“가죽끈? 그런 걸 왜 돈 주고 사? 그까짓 것 아빠가 만들어줄 수…”

“아유. 전문 무두장이가 만든 거랑 아빠가 만든 게 같아요? 이게 손에 착착 감긴다구요. 또, 레이한테 줄 선물인데, 아빠 같으면 장인어른이 만들어준 거 불편해서 쓰겠어요?”

“오냐. 대단한 절부가 나셨구나. 딸 키워봤자 소용없다더니. 용돈은 엄마랑 얘기해보마.”

데호르만은 진짜로 맘이 상했다. 휙, 집으로 들어가려 하기에 레라가 서둘러 말했다.

“아이참. 또 왜 그래요. 자, 잠깐. 그, 그리고 또… 레이랑 바르나울에 가기로 했어요. 여비가 필요해요.”

“수도에? 왜?”

“성묘하러요.”

“…그래?”

흠. 데호르만이 잠시 턱을 긁었다. 그는 걸음을 돌려 성큼성큼, 레이네 집으로 들어갔다.

“아빠. 돈은 주셔야죠. 아니, 주실 거죠? 그리고 가죽끈 산 건 저한테도 필요한 거였으니까…”

쫑알쫑알, 딸이 뒤에서 뭐라고 하건 데호르만은 황량한 거실을 가로질러 노엘이 있을 서재에 들어갔다. 마침 레이도 있었다.

천장에 머리가 닿을 만치 거대한 데호르만이 들어서자 서재가 비좁아졌다. 레라가 따라 들어온 건 티도 나지 않았다.

책상에 마주 앉은 레이와 노엘 덱스터. 흔들의자가 비어있었지만, 그가 앉았다간 부서질 게 틀림없어서 레이가 자리를 양보하려 했다. 데호르만은 고개를 저었다.

“벌써 왔는가?”

“음. 사냥이 잘 돼서 일찍 내려왔지. 레이, 성묘하러 간다면서?”

“…네.”

“그래. 마음을 다잡았구나. 잘했어. 분명 끔찍한 일이었겠지만, 남자가 훌훌 털어버릴 줄 알아야지. 그간 마음고생 많았다.”

“……네.”

“하하! 어깨 쫙 펴고!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네 어머니는 정말 멋진 분이셨단다. 내 친구니까 당연하지. 그럼 레라랑 잘 다녀오렴. 그 뭐냐… 바르나울에 큰아버지가 계신다면서? 레라, 너는 인사 잘 드리고 와라. 여비는 걱정하지 말고.”

“잠깐. 데호르만, 나랑 잠시 얘기 좀 하세.”

“음? 왜?”

“레라는… 아니다, 너희들은 나가 있거라.”

레라와 레이는 아버지들을 두고 밖으로 나왔다. 이 사람들이 왜 이러지? 못내 궁금해진 레라가 눈을 흘기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여행 계획 때문에 이러는 거야, 뭐야?”

“여행 때문이지 뭣 때문이겠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우리 아빠는 왜?”

“…실은 같이 가자고 말씀드리려 했거든.”

“뭐?? 우리 아빠한테? 왜?”

“그냥 뭐… 겸사겸사.”

“겸사겸사는 뭐가 겸사겸사야. 울 아빠가 어떻게 여행을 가. 우리 아빠가 대전사인 거 몰라?”

“하하… 그렇겠지? 그냥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거야. 사실 우리도 우리만 가는 게 아니라 아버지랑 같이 가는 거거든.”

“그건 당연하지. 너희 어머니께 성묘하러 가는 건데. 하지만 우리 아빠는 동행할 이유가 없잖아.”

“그래. 그렇지.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깐 내가 너무 들떴나 보다.”

“???”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레라는 레이가 말을 은근슬쩍 돌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서재에서는 의아한 질문과 답변이 빠르게 오가는 중이었다.

레이는 서재에 여러 차례 불려 들어갔다. 데호르만은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나왔는데, 그는 가족들을 불러 모아놓곤 놀라운 결정을 내렸다.

자신의 대문짝만한 도끼를 챙기며 “여보. 나 수도엘 좀 다녀오겠소.” 진지한 태도로 말한 것이다.

“당신이/아빠가 왜요?” 레라와 레라의 어머니의 질문에 데호르만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었다.

레이네가 여행가는 김에 자기는 수도에 있는 친구를 보러 따라간다는 것이었는데, 근 이십 년 전에 딱 한 번 가봤던 수도에 친구가 있을 턱이 없었다.

이 남자들이 대체 왜 이러는 거지? ─ 레라의 의문 속에서도 여행 채비는 빠르게 준비되었다. 데호르만은 부족장에게 허락을 받아왔고, 노엘 덱스터는 에이브릴 성의 영주에게서 마차를 빌려왔다. 레이는 어디서 흑마 한 필을 끌고 왔다.

며칠 뒤, 그들은 에이브릴 성을 떠났다. 레라는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 의문의 실마리를 아버지와 다른 대전사 아저씨들의 작별 인사말에서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내가 시련을 통과할 수 있게 빌어주시게들.”

“…술잔은 줄지 않을 걸세. 가혹한 시련이 있기를! 위대한 전사가 되어 돌아오시게.”

레라가 보기에 아주머니들의 조언은 반만 맞았다. 남자들은 이상한 것에 홀린다. 하지만 자식이 있다고 해서 달라지진 않는 듯했다.

그러나 레라는 알지 못했다.

데호르만이 따라가는 이유는 딸을 위해서였다는 걸. 그리고 아버지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리란 것을.

마차가 떠나고, 레라는 이 일행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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