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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76

274. 약혼 Ep – 가족

달그락- 찻잔이 놓이고, 레이와 노엘 덱스터, 데호르만과 레라 아이나르가 식탁에 둘러앉았다.

문을 열어준 청년이 창백한 안색으로 간단한 다과를 내왔다. 자신을 하인이라 소개한 그는 어딘가 넋이 나간 모양새였다.

노엘이 물었다.

“형님은 집에 안 계신가?”

“…일, 일하러 나가셨습니다. 기다려주시죠. 제가, 모셔오겠습니다.”

청년은 말을 더듬었다.

그는 엘슨을 모셔오겠노라 말해놓고도 자리를 얼른 떠나지 않았다. 엉거주춤, 어색한 자세로 서 있다가 뒤돌아 저택을 나섰는데,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이상한 사람이다. 레라 아이나르가 그새 찻잔을 호록 비워버리곤 들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가 레이가 자란 집인가요?”

“태어난 집이지. 여기서 오래 있지는 않았단다. 레이가 태어나고 곧 분가했거든.”

“아하~ 그럼 집이 하나 더 있다는 말씀이네요.”

레라가 다소 속물처럼 말했다. 시댁의 재산을 파악하려는 며느리같이 굴기에 노엘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래. 하나 더 있지. 하지만 이 저택은 내 것이 아니란다. 내 형님의 것이지. 그러니 여기서 대감마님처럼 살 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

“히힛. 하지만 그분은 결혼하지 않으셨다고 들었는걸요.”

“대신 양자를 들이셨지. 아마 좀 전에 그 청년이 형님이 들인 양자일 건데… 왜 자기를 하인이라고 소개했는지 모르겠구나.”

“유산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요? 헤헤. 농담이에요. 전 아저씨네 재산에 관심이 없어요. 저희가 충분히 벌어 먹고살 수 있는걸요. 여차하면 저희 아빠한테 손을 벌릴 수도 있…”

“꿈 깨라. 난 너희 엄마랑 다 쓰고 갈 거다.”

데호르만이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레라가 펄쩍 뛰었다.

“앗! 아빠! 치사하게 그러기에요? 하나밖에 없는 딸한테 좀 물려주면 어디 덧나요?”

“엉덩이에 뾰루지가 난다. 그리고 시집가면 남이지… 출가외인이라고 들어봤나 몰라.”

“아씨. 치사해. 엄마한테 들었는데, 할아버지가 저한테 물려주라고 한 게 있다고…”

“팔아먹은 지 십 년도 더 됐지 아마? 쭙. 값나가는 것도 아니었어.”

데호르만이 이에 낀 다과 부스러기를 쩝쩝 손톱으로 긁어내며 딸과 말싸움하기 시작했다.

이 부녀(父女)가 티격태격 다투는 건 워낙 일상인지라 노엘과 레이는 가만히 구경할 따름이었다. 덱스터 부자(父子)는 저들처럼 웃고 떠드는 일이 없었다.

아빠는 돼지 뚱땡이. 똥 찍어 먹던 핏덩이를 시집보내려니 마음이 편치 않네. ─ 유치하고 원색적인 비난이 오갈 무렵에 끼익- 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엘이 미처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엘슨이 뛰어 들어왔다.

“노엘! 파하하하하하! 기별도 없이 이게 웬일이냐.”

“형님. 오랜만입… 웁!”

엘슨이 악수를 건내려던 동생을 와락 끌어안았다.

키가 조금 더 크고, 살집이 있다 뿐이지 그는 누가 봐도 노엘의 형임을 알아챌 법한 외견이었다. 노엘은 다소 머뭇거리며 형의 포옹을 마주 안았다.

“조카도 왔구나. 어이구. 늠름하게 컸는걸? 어디 한 번 안아보자꾸나. 그리고 이쪽이…”

엘슨의 눈길이 레라와 데호르만을 향했다. 레라가 꾸벅,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라 아이나르예요. 레라라고 불러주세요, 백부님. 여기는 제 아버지세요.”

“반갑소.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난 데호르만 아이나르요. 노엘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소.”

“엘슨이라고 편하게 불러주시죠. 하하하. 동생이 무척 어여쁜 며느리를 얻었군요. 시집보내는 아버님 마음이 편치 않으시겠습니다. 아차, 소개를 안 드렸군요. 여긴 제 아들, 유안입니다.”

유안? 레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5번째 약혼관계 회차 때, ‘내’가 유안이라는 녀석을 조심하라 경고했다.

그는 지난 내전으로 몰락한 귀족가의 후계자이고 아버지께 원한이 있었다. 엘슨에게 접근한 이유도 뻔했는데,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적대적인 행동을 하진 않으나,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엘슨이 쭈뼛거리는 유안을 잡아끌었다. “유안이라 합니다.” 무뚝뚝하게 인사한 그가 말했다.

“아주머니를 모셔올게요.”

“아, 그래. 그게 좋겠구나. 다들 시장하시죠? 먼저 식사부터 하시죠. 그러고 보니 노엘. 네가 무척 반가워할 분이 있구나.”

“누구요?”

“그 왜, 어렸을 때 네가 누나 누나 하면서 따라다니던…”

이윽고 유안을 따라 삼십 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그녀는

“어머!! 어머나 세상에! 작은 도련님! 아니지, 이젠 작은 주인님이죠. 잘 지내셨어요?”

말하며 노엘을 반겼다. 한때 하인을 다섯 명쯤 부리던 덱스터 가의 유일한 하녀였다.

아주 어린 나이에 상경한 그녀는 노엘과 엘슨의 어머니(레이의 돌아가신 할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였는데, 노엘보다는 나이가 많고, 엘슨보단 어렸다.

하인과 하녀를 낮잡아보는 집안이 아니었기에, 노엘은 자신을 챙겨주는 그녀를 잘 따랐다. 십이 년 전, 구일 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갔던 그 하녀가 돌아와 있는 것이다. 노엘도 그녀를 무척 반가워하며 손을 맞잡았다.

다시 한번 통성명하고, 서로를 반가워하는 시간이 있었다. 아주머니는 부엌에서 요리를 내오며 “제 남편도 곧 올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덱스터 가에서 쭉 일해온 하인이다. 고용주인 엘슨과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들. 덱스터 가에 속한 이들이 즐겁게 떠들며 이야기했다.

오직 유안만이 물에 뜬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가운데 오늘 하루는 이것으로 종료되었다.

* * *

“미안해. 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나가봐야겠네. 전쟁이 터질 것 같아. 우리 용병 중에 징집 대상인 녀석이 많아서 업무를 분담해줘야 하거든.”

다음 날 아침, 엘슨이 말했다.

그는 못내 미안해하며 저택을 떠났고, 유안도 어쩐 일인지 아버지를 따라 용병 사무소로 출근했다. 덱스터 가의 이층집에는 레이 일행만이 남았다.

“나 집 구경시켜줘.”라고 요구하는 레라. 레이는 슬슬 그녀에게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 말파스와 싸우게 되는 건 레라에게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아버지와 데호르만에게는 오러블레이드를 보이며 내가 신탁을 받았노라 고백했다. 하늘이 내린 소드마스터가 되어 악신을 물리칠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에둘러 설명했는데, 과연 레라에게 그래도 좋을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실망해 어깨를 떨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나를 경쟁자로 여기며 함께 기사가 되고파 하는 레라에게, 나는 그녀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강자가 되었노라 밝히는 건 잔인한 일이었다.

‘ㅏ’와 ‘ㅓ’가 다르다고, 그녀가 납득할 만한 상황이 필요하다. 아니면 레라가 더는 나와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단계까지 성장한 뒤에 밝히는 게 좋아 보인다.

레이가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자극을 줄 생각으로 퉁명스레 말했다.

“레라. 검 들어.”

“엥? 왜?”

“요즘 너 검술 훈련에 소홀하더라. ‘마나의 축복’을 받았다고 체술만 연습하고… 너 오늘 나한테 혼 좀 나야겠어.”

“페헷! 웃기네. 레이, 내가 말은 안 했는데, 네가 지금 내 상대가 될 것 같아? 억울해할까 봐 봐줬더니… 그래! 어디 붙어보자. 내기할까? 이기는 사람 소원 들어주기!”

잔모래가 깔린 마당으로 나왔다. 자신만만하게 검을 치켜드는 레라와 신발 굽을 검으로 툭툭, 털어내는 레이를 노엘과 데호르만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마구간에 있는 쿠스는 당근을 와작와작 씹었다.

성의가 없어 보이는 레이 덱스터. 레라가 재촉했다.

“뭐해. 검 안 들고.”

“준비됐으니까 덤벼.”

“얼씨구?”

다행히 두 사람이 든 검은 연습용 목검이었다. 레라는 검을 아래로 늘어뜨린 레이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검을 내리찍었다. 그리고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돌아온 건…

“악!! 뭐, 뭐야?”

별똥별. 눈앞이 캄캄해졌다.

“왜? 자신 있다더니. 넌 벌써 한 번 죽었어.”

“시, 시끄러!”

레라가 얼굴을 붉혔다.

레이의 검이 섬전과도 같이 올려 쳐졌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검을 막고, 목검이 딱! 맞부딪치기가 무섭게 걸음을 디뎠다. 소름이 돋는 흘리기. 레라의 검을 미끄러뜨리며 파고들어 그녀의 머리를 다른 손의 손날로 친 것이었다.

당연히 레라도 막으려 했다. 검을 수습해 몸을 돌리려 했는데, 내 검이 레이의 것에 달라붙어 움직이질 않았다.

흡착(吸着)이다.

진짜로 달라붙은 게 아니라 상대가 검을 움직이려는 방향으로 저의 검을 따라 붙여 훼방을 놓는 것. 대단한 고급 기술이었다.

레이가 언제 이런 검술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레이가 검을 출수해왔다. 이번엔…

– 쐐액!

모래밭과 완벽한 수평을 이루는 횡 베기. 검사라면 누구나 꿈에 그릴 법한 평행이 레라를 가로질렀다.

이걸 효과적으로 막을 방법은 몇 가지 안 된다. 45도의 완벽한 사선 내려치기 또는 흘리기인데, 레라는 두 가지를 모두 할 줄 몰랐다. 검을 세워 따악!! 충격을 곧이곧대로 받아내는 수밖에. 손잡이를 잡은 손이 저릿했다.

“이, 이게!”

검술 수준에서 압도당하고 있다. 이미 졌다는 걸 알았지만, 레라가 발악을 시도했다.

요즘 몸이 가볍다.

힘이 넘치고, 유연하다.

레라는 맞닿은 레이의 검을 쓸어내며 몸을 회전했다. 부쩍 좋아진 육체 성능을 백분 활용해 대회전을 감행하려 하는데, 레이가 쿵! 발을 굴렀다. 뒷다리를.

‘발차기다!’

자세를 바로잡으며 날 밀어 차려는 속셈이다. 대회전이 물 건너갔음을 알아챈 레라는 얼른 회전을 수습했다. 한데 레이는 애당초 발차기를 준비한 게 아니었다.

빙그르르르…

속았다! 레이가 방금 찍은 뒷발을 축으로 작게 회전하고 있었다. 뒤로 날아간 검을 빠르게 잡아당겼고, 레라는 기회를 허망하게 놓쳤다.

탁. 레이의 검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왔다. 난 호흡을 모조리 써버렸는데 레이는 자세도, 호흡도 소모한 것이 없었다.

완패… 다.

“어, 언제 이렇게…”

“네가 몸이 좋아졌다고 희희낙락하는 동안 애 좀 썼지.”

사실은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저만한 경지가 그 짧은 시간에 성취될 리 만무하다.

레라는 레이가 자신을 봐주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내 태만을 문제 삼으며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다는 것도.

‘…쓸데없이 친절하긴.’

“졌어.”

하기사, 레이가 언제 나보다 약했던 적이 있었나. 그는 내가 조금 강해졌다 싶으면 또 한 발짝을 앞서 있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무슨 영문인지 내가 ‘마나의 축복’을 받아 부쩍 강해졌다. 레이를 노력이 아닌 재능으로 추월했다고 생각해 내심 미안해했지만… 레이에겐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다.

‘다시 원점이네.’

기다려라. 언젠간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 ─ 다짐하며, 레라가 고개를 돌렸다. 방금 대련한 걸 복기해볼 생각이었는데, 레이가 뭐하냐는 듯이 그녀를 붙잡았다.

“뭐, 왜.”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로 했잖아.”

“…칫. 뭔데. 나 돈 없다는 것만 알아 둬.”

“돈 드는 소원은 아니고… 나중에 말할게. 지금은 저기서 아버님들이 보고 계시네.”

“뭐, 뭘 하려…”

– 쪽.

레이가 내 귓불에 입을 맞추고 사라졌다. 레라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저 멀리서 데호르만이 중얼거렸다.

“저건 사기 아닌가? 소드마스터가 대련으로 내기를 하는 건…”

“하하하하!”

노엘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딸에 관해 이랬다저랬다 하지만, 데호르만은 어찌 됐건 딸을 물가에 내놓은 부모일 수밖에 없었다. 드르르륵. 우물에서 자신의 문짝만 한 도끼를 갈던 데호르만의 손길이 거칠어졌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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