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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76

외전 레온과 유쾌한 친구들(1)

이것은 내가 이세계에서 열일곱의 수행길에서 있었던 일이다.

퀘스트를 찾아 헤매는 수행의 여정길.

이 세계 정점이라 불리는 성배기사가 되기 위해선 신들의 눈에 들어 퀘스트를 수행해야만 한다.

막연하게 왕국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명예를 드높이면 알아서 찾아온다는데, 환장하겠네.

하지만 이 냉혹한 판타지 세계에서 기사로 대성하려면 아무튼 혼자 싸돌아다니면서 명예를 드높여야 한단다.

까짓거 해봐야지!

이왕 판타지 세계에 왔는데, 소드마스터 한 번 찍어봐야지!

교회도 안 다닌 몸이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레온 경, 자네는 어떤 분을 신앙하시는가?”

여행 중에 만났던 수행기사 안토크의 질문이었다. 이에 길두스와 그 옆의 나무인간 군라르도 슬쩍 귀를 세운다.

“허허, 어찌 한 분만을 섬긴다고 말할 수 있는가. 라이온하트를 가호하시는 신들께서는 모두 존경스러운 분이거늘.”

모범적인 답안을 내놓는다. 이 세계에서 종교는 다신교가 기반이다. 인도나 일본처럼 신이 몇만씩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신들이 꽤 많아서 모두 신앙하며 공양하는 이들도 많았다. 신성력을 사용하는 성법이 있는 걸 보면 진짜 신들이 있을지도.

뭐, 판타지 이세계니까 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역시 기사도의 귀감일세. 내 페토스 님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께도 섭섭지 않게 공양해야겠어.”

“······그러시게.”

하여튼 이세계의 주민들이란. 보이지도 않는 신들에게 너무 광적이다. 이쪽 세계는 신앙이 디폴트라 무교인 나로선 맞장구 쳐주기도 피곤하다.

어쨌뜬 적당히 호응해주던 차에 군라르가 포로로 잡은 야만인 부족들을 도륙하는 것을 목격했다!

“어어, 군라르 경! 지금 뭘 하는 건가!”

“응? 왜 그러지, 레온 경?”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길두스. 얌마, 아무리 조금 전까지 서로 죽고 죽였다지만 포로를 그렇게 막 죽이면 어떻게 해?

“아···! 내 잊고 있었군.”

“후우······.”

그래, 사람을 그렇게 막 죽이면 안 되는 거야, 임마.

“곧 위대한 성배기사 그라타스 경이 창안한 농노축제가 열리지 않나! 도시마다 죽일 농노가 부족할 텐데, 유흥거리를 제공할 필요가 있음이야!”

“······뭐?”

미친놈들 아냐, 이거?

진짜 이세계 계몽 마렵다······.

* * * *

이 세계는 뭐라 말하기 복잡미묘한 세계였다.

“기사님! 기사님이야!”

“기사님! 저희들을 축복해주세요!”

사회 기득권인 기사들과 귀족들은 자유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그들은 기사들이 가는 길에 꽃을 뿌리거나 바쳤고, 기사들의 말이 밟고 지나간 땅에 입을 맞추었다.

뭔가 좀 과하긴 하다. 대공령에서도 기사들이 존경받는 이들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냥 내가 대공의 적자라서 그런 줄 알았지.

원래 높으신 분 앞에 계시면 뒷골목 거렁뱅이도 넙죽 엎드리는 법 아닌가?

“꺄아악! 기사님! 여길 봐줘요!”

하지만 이곳에서 기사란··· 무슨 슈퍼스타 뺨치는 인기를 자랑했다.

“방금 나하고 마주쳤어! 날 보셨다구! 금발 기사님이 날 보셨어!”

아, 안 봤어요.

“······.”

“하하하! 레온 경. 어찌 그리 긴장하고 있는 건가?”

길두스가 내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갑옷 사이로 전달되는 충격이 상당하다.

“끙··· 별것 아닐세.”

“허허허, 이 친구 이거 개선식을 처음 해보는 모양이군. 하긴, 왕국기사로서 복무한 적은 없으니 그럴 법도 하군.”

나 같은 경우 편력기사, 왕국기사, 수행기사로 이어지는 코스를 뛰어넘고 바로 수행기사로 직행한 몸이다.

대가문의 직계들은 편력과 왕국기사로서 복무하는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 이런 배려를 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꿀 빠는 건 아니다.

혹시 왕국에 무슨 일이 생기면 대가문의 일원으로서 복무할 의무가 있으니까.

“어쨌든, 자유민들에게 손이나 흔들어주게나. 이거 아무래도 가장 인기 있는 건 자네인 듯하니.”

길두스의 말대로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시민들의 반응은 더욱 격렬해졌다.

“흠.”

그때, 말을 탄 우리와 달리 저벅저벅 걸어가는 나무인간 군라르가 머리에 난 꽃을 긁적거렸다.

“왜 그러는가? 군라르.”

“인간들은··· 어째서··· 꽃으로 환대하는 거지? 꽃을, 좋아하나?”

“뭐, 평소에는 귀한 것이라 그런 것 아니겠나.”

보통은 꽃을 키울 땅에 작물을 심으니까.

먹을 수도 없는 꽃을 키운다는 건 사치이니 그것을 선물함으로서 성의를 보이는 것 아니겠냐는 내 나름의 해석.

“그렇군.”

군라르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제 머리에 난 꽃송이를 뽑아 내게 건넸다.

“성의, 일세.”

“아니, 따지고 보면 이거 자네 머리털이잖나.”

숲의 현자가 되기 위한 여정을 떠나고 있는 군라르, 그는 아는 것이 참 많았지만, 가끔 이렇게 엉뚱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다.

“자! 이제 영주성으로 가봄세! 이 영지의 남작께서 성대한 환영식을 준비하셨다더군!”

“후~ 겨우 육포가 아닌 평범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건가!”

안 그래도 육포가 질리던 차였다. 간만에 제대로 된 밥 한번 먹어볼 수 있겠어.

“어서 오시오, 수행길에 오른 명예로운 기사들이여. 나는 이곳의 영주인 란돌프라고 하네.”

영지의 주인인 란돌프 남작은 우리를 환대해주었다.

보통 편력길에 오른 편력기사는 영주성에 들어와도 환대가 대충대충이라는데, 이는 그들이 자신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나나 안토크, 길두스는 수행길에 오른 명예로운 기사. 성배기사가 되기 위한 여정을 떠난 이들이었으니 그 대우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포로로 잡아오신 야만족 놈들은 잘 수령했소이다. 튼실한 놈들로 잘 잡아왔더이다.”

“하하, 별것 아닙니다. 야만족 놈들이 왕국의 국경을 침탈한 것을 우연이 붙잡은 것에 불과합니다.”

길두스가 별것 아니라는 듯 겸양을 떨었다. 뭐, 기사 세 명, 트리맨 한 명이 야만족 전사 수백 명을 도륙내고 백 명이 넘는 포로를 잡아온 것이다.

나도 한 거긴 한데, 진짜 우리가 탈인간들이라는 걸 새삼 실감한다니까.

“그놈들은 최근 국경에서 설치던 놈들일세. 가여운 백성들의 작물들을 강탈하고 멀쩡한 밀밭을 태워버렸지.”

“저런··· 백성들의 고충이 말이 아니었겠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내 그래서 피해를 입은 이들을 신전으로 호송하고 세금을 면제해주긴 했네만.”

“작물을 수확하지 못했다면 구호도 필요할 테니 왕도에 요청하시길 바랍니다. 아르헨 마제스티 라이온하트께선 구호 기사단도 운용하고 계시니까요.”

“어찌 왕도의 기사단을 함부로 움직일 수 있겠는가. 가능한 영지 선에서 끝내야지. 다행히 내 아내가 데메라 여신의 신관이니 상처 입은 이들을 돔볼 수 있네.”

뭔가··· 쫌 어색하다.

그, 원래 판타지에서 영주들은 그런 캐릭터잖아?

백성이요? 그거 다 개돼지 아니야? 세금이나 따박따박 바치란 말이야!

기득권층은 다 죽창으로 쑤셔 죽여야 한다! 저 더러운 영주 놈들에게 레볼루숑을!

방랑하던 주인공이 탐욕스러운 귀족을 처벌하고 백성들을 구하는··· 뭐, 그런 흔한 클리셰 말이다.

아니, 물론 제대로 된 영주도 있겠지! 그런데 내가 수행길에 오르면서 마주한 영주들은 어째 다 성군에 참된 사람들뿐이었다.

확률적으로다가 한둘쯤은 씹새끼가 나올 법도 한데, 다들 이리 착하니 내가 모르는 귓구멍으로 뭔가 사악한 짓거리를 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야.

진짜 어색하다, 이 중세 판타지······.

영주와는 여행 중에 생긴 무용담이나 지역의 소식 등을 전하며 보람찬 시간을 보냈다.

왕도에서 직접 요리를 배우고 왔다던 요리장의 솜씨는 감동적이었고.

“그나저나 길두스 경들과 지혜로운 숲의 주민이시여. 괜찮으시다면 축제를 즐기다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축제 말입니까?”

내 귀가 쫑긋 세워졌다. 그러고 보면 대공령에서도 매년 시조룡 드라고니아 토벌을 기념하는 축제를 열곤 했다.

대공가의 시조이신 지크 드라고니아께서 세우신 업적인지라 온 대공령의 시민들이 즐기었더랬지.

그것 외에도 또 다른 큰 축제가 있었는데, 성년을 맞이한 시민들만 참가할 수 있어서 나는 참가하지 못했다. 교육적 차원에서 성년 미만은 참가를 못한다나?

그게 뭐였는지는 지금도 의문──

“오! 농노축제 말입니까?”

아 진짜.

안토크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러고 보면 레온 경은 성년식을 치르자마자 수행길에 나섰지? 그럼 농노축제는 이번이 처음 아닌가?”

“······.”

“왕국법령에 의거해 미성년에게는 농노축제 참여를 금하니 말이야. 하하핫! 이거 레온 경이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반드시 참여해야겠는걸?”

“레온. 농노 축제도. 안 해본 거냐? 많이, 어리군.”

노인과 아저씨들의 시선이 짜증날 정도로 능글맞다. 대체 농노 축제가 뭔데?

“흠, 기사님이 농노 축제를 경험해보지 못해서야 있을 수 없지요! 위대한 드라고니아 대공령의 공자께서 저희 영지에서 첫 농노축제를 경험하신다니! 이거 예년보다 훨씬 크게 준비해야겠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 * * *

농노.

악신을 섬기는 사교도들··· 즉, 야만족들을 노예화한 이들을 말한다.

라이온하트 왕국 주변에 산재한 사교도와 야만스러운 이민족들은 오랜 시간 골칫거리였다.

왕국은 끊임없이 이들과 싸워왔고, 제국이 이민족들을 포용하는 정책을 내세울 때도 사교도는 몰살! 을 주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나라도 참 빠꾸가 없다고 생각은 드는데······.

“경들을 위해 농노 사냥축제를 열었소이다. 달과 순결의 여신 디나 님께서 지켜보시는 가운데, 누가 더 많이 농노를 사냥했는가로 점수를 나눌 것입니다.”

예?

란돌프 남작의 말에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니까 지금 인간 사냥을 하겠다는 거 아닌가?

이럴 줄 알았다! 미개한 중세 놈들!!

숲에 농노를 풀어놓고 사냥을 한다고? 대가리로 점수를 높인다고? 이것이 정녕 사람의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짓거리란 말이냐!!

“어, 어찌··· 어찌 그런 무도한 짓을 한단 말이오.”

“레온 경?”

더이상 참을 수 없다! 내 이 미개한 중세 놈들을 계몽하고 말리라! 인권이란 무엇인지 그들에게 외치리라!

설령 인권이 천박한 농담이 된 시대에 새겨듣는 이가 없더라도!

나는 비명을 질러야만 한다!

“아무리 전쟁포로라 해도 생명과 자유의지가 있는 이들을 사냥감으로 삼아 확살하겠다니! 당신들의 피는 대체 무슨 색이란 말이오!”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사냥에 참가한 기사와 귀족들뿐만이 아니라 절망에 고개를 늘어뜨린 농노들도.

“무릇 기사라 함은 정의와 법도를 수호하고 마땅한 정도를 달리는 자요! 생명을 이토록 허투루 여기고 유희거리 삼아 해치다니 이것이 정녕 기사도인가! 그대들은 말탄 개가 아니오!”

“그래, 맞아!!”

농노 중 한 명이 번쩍 일어섰다. 그는 나의 호소에 각성한 것처럼 초롱초롱한 얼굴로 기사들을 손가락질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자칭 여신이라는 수상쩍기 없는 것 심부름 좀 했다고 사람을 핍박할 권리가 생기는 게 아니지!”

아니, 이 시대에 이런 논리적인 농노가?

“당신들이 내세우는 케케묵은 왕권적 도그마 때문에 세상의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이 계속된다고! 사회가 진보하려면 투표주의에 의한 자치 공동체가 필요하오!”

아니, 이건? 설마··· 설마?

“절대다수에 의한 다수주의와 노동조합적 공동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요! 최고집행권한은 대중이 부여해야 하는 거란 말이오!”

이, 이럴 수가! 나는 지금 시대의 혁명가를 목격한 걸지도 모른다!

이 야만스러운 중세에 수백 년은 앞선 사상과 신념을 가진 농노라니? 이 시대의 정신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 내게 주어진 역할일 지도──

“자유민 살해, 여성 납치, 영유아 살해 및 시체훼손. 저자가 우리 영지에서 저지른 죄일세.”

“헤일 라이온하트으으으으!!”

-서걱!

미개한 중세시대였지만, 엄벌주의는 아무리 과해도 칭찬받는 바람직한 시대였다.

“체제 본연의 폭력···! 난 억압받고 있다아아아아아아······.”

모가지가 날아갈 때까지 그 주둥아리는 멈추지 않았다.

“후······.”

조심하지 않으면 삽시간에 쓰레기가 된다니까. 빌어먹을 중세 같으니라고.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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