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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76

275화.

난 무역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에 남아 일을 처리했다.

OTK컴퍼니와 서성SB가 합작해 세운 TS컴퍼니 공장은 1차 생산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전기차용 OTK배터리 생산에 나선 것이다.

공장을 둘러보기 위해 김호민 교수는 미국으로 건너왔다.

“어서 오세요.”

“덕분에 미국 구경도 다 와보네.”

“원래 미국에서 공부하셨잖아요.”

“그때는 거의 학교 안에만 있었거든. 매사추세츠주 구경도 제대로 못해봤어.”

김호민 교수 주위에는 경호원들이 따라붙었다. 그는 뒤따라오는 사람들을 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난 웃으며 말했다.

“혹시 모르잖아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헛짓거리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중국기업들은 그동안 김호민 교수를 모셔가기 위해 온갖 조건을 제시했다. 수십억의 연봉을 제시하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OTK배터리의 특허는 연구소에 귀속됐고, 그는 연구소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미 엄청난 부가 보장된 마당에 굳이 다른 나라로 옮겨갈 이유가 없다.

그래도 성과가 없는 건 아니라서 연구원 몇 명을 빼가는 것에 성공했다. 김호민 교수는 흔쾌히 그들의 사표를 받아주며,언제든 다시 돌아와도 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중국기업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한국에서 수많은 연구원과 기술자들을 데려갔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연봉 두세 배에 각종 대우를 받는다.

그 사이 중국기업들은 그가 가진 기술과 노하우를 차근차근 빼먹는다.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다.

그렇다고 새로운 걸 만들어 내지도 못한다.

남쪽의 귤나무를 북쪽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열린다는 말처럼, 이 회사에서 좋은 성과를 냈더라도 저 회사로 옮겨 가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애초에 기업문화도 다르고 의사소통도 잘 안 되는 곳에서 제대로 된 역량을 발휘하기는 힘들겠지.

이용만 당하고 쫓겨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연구원들의 중국행은 끊이지 않고 있다. 당장의 이익도 이익이고, 그만큼 한국에서의 대우가 안 좋은 것도 이유겠지.

나와 택규는 데릴, 임진용 회장, 김호민 교수와 함께 공장을 둘러보았다.

김호민 교수는 양산된 배터리를 살펴보며 말했다.

“설마 중국이 이것도 베끼지는 않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미치지 않고서야 한동안은 엄두도 못 내겠지.

* * *

내가 미국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방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빅원 이후의 일부터, 이번 무역전쟁까지 묻고 싶은 게 많을 것이다.

난 인터뷰 요청을 전부 거절했다.

대신 택규와 함께 전세기를 빌려 타고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실리콘밸리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빅원 당시 쓰나미가 밀어닥치며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 일대는 완전히 물에 잠겼고, 샌프란시스코 베이는 바다와 연결되었다.

도시에 들어차던 물은 다 빠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건 폐허가 된 도시였다. 샌프란시스코를 상징하던 골든게이트 브릿지는 끊어진 채 바다에 잠겨 있었다.

사진과 영상으로 숱하게 보긴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이곳에서 얼마나 엄청난 일이 벌어진 건지 피부로 와 닿았다.

그래도 이 광경이 그렇게 끔찍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다.

피해가 덜한 외곽지역에서는 이미 복구 작업이 한창진행 중이었다. 중장비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잔해를 치웠다.

앞으로 1, 2년 안에 이곳에서는 대규모 건설과 인프라 사업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겠지.

* * *

난 편한 복장에 모자를 눌러쓰고 캘리포니아공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방학 중이라 그런지 교정 안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내 손에는 근처 서점에서 산 책이 들려있었다.

얼마 전,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으로 제목은 ‘After the Big One’이다. 저자는 키란 모한 교수.

빅원이 일어나기 직전과 당시의 상황, 그리고 이후의 일들을 담은 일종의 회고록이다.

이 책은 14개국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 동시출간 됐고, 즉시 모든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빅원 이후 키란 모한 교수는 최고의 인기인이 됐다. 타임지 표지도 장식했고,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1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감사의 마음을 담은 수천만 달러의 후원금이 모였지만, 모한 교수는 그 돈을 받지 않고 전부 빅원 피해성금으로 기부했다.

지질학이라는 게 그렇게 인기 있는 과목이 아니다. 글로벌 IT기업에 취직이 보장되는 다른 과들과는 달리 취직이 그렇게 잘 되는 학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빅원으로 인해 지질학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며, 올해 신입생 경쟁률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다들 한 번쯤 키란 모한 교수의 강의를 들어보고 싶어 했고, 덕분에 강의는 항상 만석을 이룬다고 한다.

이곳을 찾은 것은 오늘 ‘After the Big One’의 출판기념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원래는 강당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참가인원이 너무 많아져 부랴부랴 체육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상원의원이 참석했을 정도면 말 다 했지.

출판기념회는 한창 진행 중이었고, 여러 지역인사들과 정치인들이 참석한 만큼 진행요원들과 경호원들이 출입구를 지켰다.

내가 다가가자 서있던 진행호원이 말했다.

“초청장 보여주시겠습니까?”

“초청장은 없는데, 그냥 입장하면 안 될까요?”

그러자 진행요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이미 내부는 만원이라서요.”

“그래도 교수님께 인사드리려고 멀리서 찾아왔는데…….”

“이만 돌아가세요.”

그가 눈짓을 하자, 경호원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난 하는 수 없이 눌러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내 얼굴을 본 진행요원과 경호원들은 화들짝 놀랐다.

“헉! 서, 설마 강진후?”

“안 된다고 하시면, 행사가 끝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내 말에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정말요?”

“무, 물론입니다. 뭐하고 있나? 어서 문 열어드려.”

“감사합니다.”

난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인산인해였다. 준비된 좌석은 물론 통로까지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었다. 학생들, 정치인들, 지역인사들, 실리콘밸리에 본사가 있던 기업의 CEO들, 빅원의 피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 등등.

그야말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였다.

한쪽에 모인 취재진들은 열심히 영상과 사진을 찍었다.

그 가운데 마이크를 든 키란 모한 교수의 모습이 보였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난 2층 뒤쪽에 서서 출판기념회를 지켜보았다.

질의응답 시간인지 한 사람이 질문했다.

“앞으로 빅원 같은 일이 또 생길까요?”

“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겁니다.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지구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그러니 미국기상청의 날씨예측이 매번 틀리는 거겠죠.”

그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런 일이 또 생긴다 하더라도 반드시 방법을 찾을 거라는 겁니다. 현재도 지진을 예측하거나 막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만약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때는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이젠 예산도 두둑하게 증액됐으니까요.”

그 말에 또다시 웃음이 터졌다.

이번에는 학생으로 보이는 동양인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만약 강진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글쎄요. 흐음, 과연 어떻게 됐을지 저도 궁금하네요.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 테고, 어쩌면 그게 저나 여러분이 됐을 수도 있었겠죠.”

모한 교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체육관 안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다시 말하려는 듯 모한 교수는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설마 날 발견한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모한 교수는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어, 어떻게 여기……?”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난 어쩔 수 없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강진후다!”

“뭐? 진짜야?”

“강진후 맞네!”

“말도 안 돼!”

“오! 맙소사!”

그들을 일제히 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통로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알아서 길을 비켜주었고, 난 아래로 내려갔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하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알고 지낸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힘든 일을 함께 겪었기 때문인지 헤어진 옛 전우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모한 교수는 기뻐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쩐 일로 말도 없이 온 건가?”

“교수님 출판기념회가 있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죠. 축하해드리려고 왔어요.”

“그럼 미리 연락이라도 하지 그랬나?”

“깜짝 놀라게 해드리려구요.”

모한 교수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가 아시겠지만, 강진후입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

사람들은 벌떡 일어나 일제히 박수를 쳤다.

“이제부터 궁금하신 건 이쪽에 질문하시면 됩니다. 사실 아까부터 계속 참고 있었는데,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예?”

모한 교수는 나에게 마이크를 넘긴 다음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난 사방에서 쏟아지는 질문에 일일이 답변해야 했다.

출판기념회는 성황리에 끝났고, 전 세계 언론에 기사가 나갔다.

* * *

중국은 미국의 일방주의가 세계무역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창이 외교부장 성명을 통해 미중협력을 강조했다.

“협력하면 이익을 얻고, 싸우면 모두가 피해를 입습니다. 양국관계의 본질은 상생협력입니다. 양대시장인 중미가 협력하는 것이야 말로 세계를 이롭게 만드는 길입니다. 중국은 미국과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 신뢰와 존중을 쌓아나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로날드는 코웃음을 치며 예정대로 나머지 2500억 달러의 중국 수출품에 대해서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포했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급하게 끝낼 이유가 없습니다. 중국이 기존의 불공정한 방식을 바꿀 때까지 우리는 이 일을 지속할 겁니다. 중국은 외국기업에 기술이전을 강요하고, 특허를 침해하고, 지적재산권을 훔치고, 심지어는 서버에 스파이칩을 심고 백도어를 통해 기술을 빼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도둑질과 강도질을 일삼고 있습니다. 미국은 무참히 짓밟히고 강간당했습니다.”

로날드는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미국은 더 이상 참지 않겠습니다. 제재 대상에 올라있는 중국기업들과 거래하는 모든 기업들에 대한 제재도 검토하겠습니다. 그 기업들은 앞으로 미국과의 거래에 있어서 제한을 받게 될 겁니다.”

상상을 뛰어넘는 강력한 조치에 기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글로벌기업들 중 미국기업과 거래하지 않는 기업이 몇이나 되겠는가?

사실상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2차 제재)으로, 전 세계에 중국기업과 아예 거래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미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충격이 지나고 나자 기자들은 일제히 질문을 던졌다.

“미국 기업들이 고립될 우려는 없습니까?”

“중국의 반발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다른 나라들이 동참할 거라고 보십니까?”

로날드는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빈정거리듯 말했다.

“미국은 바보가 아닙니다. 우리는 룰을 지키는 기업과 국가만 상대할 겁니다. 미국과 거래하고 싶다구요? 그러면 우리의 규칙을 따르면 됩니다. 그게 싫으면 하지 마세요. 우리가 거래하자고 징징거리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 * *

난 디트로이트의 호텔에서 리쑤웨이 상무부장과 왕이창 부회장을 만났다. 전에 만났을 때에 비해 둘 다 표정이 안 좋아보였다.

난 멀리서 온 그들을 위해 직접 차를 끓여주었다.

“전에 선물해주신 보이차예요. 마셔보니 참 좋네요.”

둘 다 차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난 찻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다음 자리에 앉았다.

“저번에 후회하게 될 거라고 하시더니, 어쩐 일로 다시 찾아오신 건가요?”

리쑤웨이 상무부장은 나에게 물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난 대답 대신 왕이창 부회장을 보며 말했다.

“다시 한 번 묻죠. 정말로 저우차가 카로스 기술을 베끼지 않았다고 말씀하실 수 있나요?”

“…….”

내 말에 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겠지.

난 충분히 우러난 보이차를 마시며 말했다.

“뭘 하든 일단 사과와 배상이 우선돼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확신도 필요하겠죠.”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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