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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81

280화.

뉴욕에 머무는 동안 여러 대학에서 강연요청이 들어왔다.

뉴욕주립대, 컬럼비아대, 하버드대, MIT 등등. 특히 MIT는 총장이 직접 장문의 이메일을 보낼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칼텍에 방문했으니, MIT도 방문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

이런 걸 이유 같지 않은 이유라고 하는 건가?

명예학위라는 미끼를 내건 곳도 있었지만, 전부 거절했다.

왜냐하면 가봐야 딱히 할 얘기가 없기 때문이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만 모여 있을 텐데 가서 뭔 얘기를 하나?

“하버드대 학위면 간지나지 않나?”

“그래봐야 명예학위인데.”

나중에 MBA나 받아주면 좋겠다. 그전에 한국대부터 졸업해야겠지만.

미중무역분쟁이 마무리되고, 엘리의 일이 끝나자,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조용히 떠나려고 했는데, 공항에는 이미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로날드가 투위터를 통해 동네방네 광고한 것도 모자라 배웅을 하러 직접 왔기 때문이다.

뉴욕에서도 로날드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빅원 이전까지 지지율이 바닥을 기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다.

로날드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벌써 떠난다니 아쉽군.”

“또 놀러오겠습니다.”

“하하, 조만간 한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있을 예정이니 그때 보도록 하지.”

모여 있는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난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내 인기가 이 정도다.

계속 이러고 있기 부끄럽고 힘든 관계로 재빨리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먼저 들어가 기다리던 택규는 날 보며 말했다.

“할리우드 스타인 줄.”

* * *

비행기가 북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사이 난 오랜만에 독서에 매진했다.

책의 제목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비밀’.

그런데 읽다보니 내용의 절반 정도는 작가의 상상이나 추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만큼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온갖 음모론이 넘쳐난다. 금융계에서 가장 유명한 음모론은 바로 유대계 자본 배후설이다.

유대인들이 연방준비은행(FED)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장악해 세계 경제와 정치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브레튼우즈체제로 달러를 기축통화도 만들고, 이후 금태환을 폐지하도록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물론 이는 말 그대로 음모론이다.

이런 음모론이 힘을 얻는 이유는 현상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계에서 일어나는 각종 현상은 여러 원인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런데 이를 어려운 경제용어로 설명할 필요 없이 ‘유대계 자본의 음모다’라는 단 한마디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음모론이 아무런 근거가 없냐면, 그건 또 아니다. 유대인들이 일찌감치 금융업에 진출했고, 막대한 자본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니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유대인들은 이주민인 만큼 거주이동이 잦았다. 때문에 처분이 힘든 부동산보다는 바로 챙겨갈 수 있는 현금과 귀금속을 선호했다.

또한 과거 기독교는 고리대금업을 금지했다. 기독교인들끼리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죄악으로 여겼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교회법을 벗어나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고리를 받고 돈을 빌려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대부업이라는 게 이미지가 좋을 수가 없는 직업이다. 돈이 급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니 좋은 일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원래 사람 마음이라는 게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다른 법.

돈 빌릴 땐 고리에도 감지덕지하며 빌리지만, 나중에 갚을 때는 속이 쓰리기 마련.

그나마 제때 갚으면 다행이지만, 사정이 생겨 못 갚은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돈놀이를 개인사정 다 봐줘가며 할 수는 없는 노릇.

돈을 못 갚은 사람에게 강제로 돈을 받아내려다 보면, 온갖 악질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이 동원된다.

이렇다 보니 유대인은 피도 눈물도 없고 돈만 밝히는 악덕 자본가 같은 이미지를 얻게 됐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는 샤일록이라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가 나온다. 그는 주인공이 빌린 돈을 갚지 못하자 심장에 가까운 살 1파운드를 잘라내려 했다.(비록 미수에 그치고 역관광 당하긴 했지만)

이는 당시 유럽인들이 바라보던 유대인에 대한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가 쌓이고 쌓여 이후 2차 세계대전 때는 홀로코스트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됐다.

어쨌거나 오늘까지도 유대인들은 막대한 자본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미국 정치, 경제, 금융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있다.

왕조도 100년 이상 이어지기 힘든 마당에, 한 가문이 250년 이상 부와 권력을 유지한 채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일이다.

과거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럽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후 세계경제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그에 따라 부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물론 로스차일드 가문 역시 부를 늘렸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론은 많긴 해도 신경 쓸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난 JP모건 본사에서 만난 그레이스 로스차일드를 떠올렸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눈치였는데…… 뭐,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뭐하고 있어요?”

고개를 돌려보니 엘리가 바짝 다가와 있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비밀이라. 재밌어요?”

“재미는 별로 없어요. 그냥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서요.”

엘리는 잠시 책을 훑어보았다.

“흐음, 진후는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거예요?”

“그럴 리가요. 어차피 죽을 때까지 다 쓰지도 못할 돈인데, 더 벌어봐야 뭐하겠어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다. 남들이 세계 1위 부자니 어쩌니 하는 것에는 별 관심도 없다.

엘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잖아요.”

난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긴 하죠.”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어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게 현실이지

* * *

남산 실론호텔 회원라운지.

이곳은 오직 회원권을 가진 회원만 들어올 수 있다. 실론호텔의 회원권은 8천만 원을 호가했다. 비싼 만큼 혜택도 많다.피트니스센터, 야외수영장, 골프연습장, 사우나, 회원라운지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실론호텔 소유의 골프장도 예약이 가능했다.

특급호텔의 피트니스센터는 단순한 운동시설이 아니라, 부유층의 사교장이라 할 수 있다. 회원들은 친목관계를 형성하고 각종 정보를 공유했다.

이곳에는 재계 주부들 모임도 있었다. 나이 대는 중년여성들부터 이제 갓 결혼한 20대 새댁까지 다양했다.

청운그룹 황재훈 회장의 아내 박영자.

80년대 설립된 청운건설이 모태인 청운그룹은 주거용 아파트와 오피스텔 건설을 통해 성장했다. IMF와 금융위기로 수많은 중견건설사들이 무너질 때도 오히려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불렸다. 덕분에 지금은 재계서열 22위까지 올라섰다.

박영자가 라운지 안으로 들어서자 미리 와있던 다섯 명의 여자들은 일제히 일어났다.

“사모님 오셨어요?”

“오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왜 다들 일어나세요? 어서 앉아요.”

주부들 사이의 서열은 남편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결정되기 마련. 박영자는 사실상 이 그룹의 리더나 다름없었다.

그녀들은 커피를 마시며 재계에 떠도는 각종 소문들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다가 강진후 얘기가 나왔다.

“며칠 전,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하던데요.”

“말 한마디로 미국 행정부를 움직이다니.”

“전 그거 보고 깜짝 놀랐잖아요.”

“대체 OTK컴퍼니가 언제 이렇게 커졌는지.”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그냥 웃었는데, 이젠 서성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잖아요.”

“조만간 역전할 거라는 얘기도 있던데.”

“어머, 그럼 OTK컴퍼니가 재계 1위가 되는 거예요?”

한 번 강진후 얘기가 나오자 끝날 줄을 몰랐다.

OTK컴퍼니가 중국정부에 찍혀서 제재를 받을 때만 해도, 결국 중국에 굴복할 수밖에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강진후는 미국 행정부를 움직여 이 상황을 해결했다. 그리고 저우차로 하여금 기술탈취 사실을 인정하게 하고 사과와 배상을 받아냈다.

이는 이제까지 어느 기업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번 일에 정재계는 또다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치인들은 항상 정치권력이 시장권력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강진후는 정치인들에게 쉽게 고개를 숙이기 않았고, 때문에 자유국민당은 물론 집권여당인 새정치당 역시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도 감히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강진후가 갖는 위상은 대단했다.

이런 점들도 중요하지만 정작 그녀들이 강진후에 대해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나이가 이제 겨우 20대 중반이고, 미혼이라는 것이다. 이는 결혼을 통해 그와 사돈을 맺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강진후는 누구랑 결혼할까요?”

“딸 가진 정치인과 판검사들도 다들 눈독들이고 있다고 하던데.”

“누군들 안 그러겠어요?”

한 중년여성이 박영자에게 아부를 하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유진 양 올해 고등학교 졸업 아닌가요? 강진후도 이제 20대니 둘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한 번 만나보게 하는 게 어때요?”

박영자는 슬하에 딸만 둘이다. 그중 둘째인 황유진은 정재계에 소문이 날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다. 재계의 미녀로 가장 유명한 건 CL그룹의 양하나지만, 황유진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우리 유진이가 양하나보다 더 어리니까.’

단아하고 차분한 인상이라 아직 고등학교 재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며느리로 들이고 싶다고 난리였다.

특히 화안그룹이 적극적이었다. 원래는 그쪽 차남과 결혼시킬까 했으나, 생각이 바뀌었다.

화안그룹 차남이 도마뱀이라면, 강진후는 용이다.

황유진 역시 상대가 강진후라면 마음이 있는 듯했다. 졸업하는 대로 바로 결혼을 시켜도 좋지 않을까?

이런 자리에서야 사모님 소리 들으며 왕 노릇을 하지만, 막상 다른 자리에서 10대 그룹 사모님들을 만나면 고개 숙이며 하녀처럼 굴어야했다. 심지어는 이제 막 결혼한 새파랗게 어린 여자애 앞에서도 아양을 떨고 아부를 해야 했다.

그러나 강진후를 사위로 얻기만 하면 단숨에 지위가 바뀔 것이다. SSK그룹 사모님이고, CL그룹 사모님이고 할 것 없이 다들 머리를 조아리며 떠받들지 않을까?

‘강진후도 남자인 이상 우리 유진이를 보면 분명 마음에 들어할 테고. 문제는 어떻게 자리를 마련하느냐인데…….’

정계든 재계든 강진후를 노리고 있는 집안이 한둘이 아니다. 결혼 안 한 딸이 있는 집이라면 전부 관심이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강진후가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어머니를 끔찍하게 생각한다던데.”

“저도 그 얘기 들었어요. 어머니 말이라면 꼼짝을 못한다고.”

박영자는 눈을 빛냈다.

‘맞아. 그런 좋은 방법이 있었네. 그럼 강진후 어머니와 친해지는 게 우선인가?’

한 여성이 말했다.

“그런데 그때 파티에 데려온 백인 여자랑 아직 만나고 있지 않나요?”

강진후는 개관파티 때 애인을 데려왔고, 그 일은 한동안 재계의 이슈였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녀는 골든게이트 법무팀장. 미모와 능력을 갖춘 재원인 셈이다.

박영자는 웃으며 말했다.

“남자가 여자 만나는 게 흠이 되나요? 능력이 되면 몇 명을 만나든 상관없죠. 젊을 때 여자도 많이 만나고 경험도 많이 해봐야, 나중에 결혼해서 가정에 충실한 법이에요.”

여자들은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어머, 맞아요.”

“호호, 역시 사모님이 뭘 좀 아신다니까.”

“그럼요. 연애야 아무나랑 하더라도 결혼은 재계끼리 하는 게 맞지 않겠어요?”

“OTK컴퍼니는 건설사가 없으니, 청운그룹과 딱 어울리네요.”

아부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강진후가 사위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청운그룹을 OTK컴퍼니의 계열사로 편입시킬 생각도 있었다. 어차피 그 회사를 물려받는 건 딸이 낳은 자식일 테니.

“자, 이제 얘기는 그만하고 골프 연습하러 가요.”

“알겠습니다, 사모님.”

그녀의 말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했다.

투숙객도 들어올 수 있는 피트니스센터와는 달리 골프연습장은 회원만 출입이 가능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대기의자에 한 중년여성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박영자는 습관적으로 상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입고 있는 복장은 명품이나 브랜드 제품과는 거리가 멀었다. 머리스타일과 화장은 수수했고, 손은 거칠었다. 얼굴에는 고생한 티가 났고, 딱히 돈 들여 관리한 것 같지도 않았다.

‘뭐야, 이 아줌마는? 설마 이런 여자도 회원권이 있나?’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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