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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82

280. 약혼 Ep – 출병식

성이 나 콧김을 뿜어대는 레라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랬다.

어떻게 알았는지 디에고 브리나 자작이 저택에 방문했단다. 노엘을 불러오라 하더니 기껏 한다는 말이 ‘기사로서, 에이브릴 성의 실태가 엉망이란 걸 증언해달라’는 것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브리나 자작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아이나르 부족의 대전사인 데호르만에게도 추파를 던졌다.

에이브릴 성이 자기네 자작령에 포함되면 세금을 낮추고 성의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노역을 덜어주겠다는 것이었는데, 그의 속 보이는 욕망은 노엘의 몇 마디 말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만 어렵겠습니다. 저는 이미 왕자님께 에이브릴 성에 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에이브릴 성에서 살다 왔다고 하니 여쭤보시더군요.”

“왕자님을… 만났어? 뭐, 뭐라고 했나?”

“에이브릴 성의 방비 상태가 어떠하냐고 여쭤보시기에, 아는 대로 답했습니다. 성벽이 견고하고, 해자가 깊이 파였다고요. 보급품이 다소 불충분하고, 도검과 같은 군수품이 완벽하게 정비되어 있진 않으나, 허용 범위 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브리나 자작이 안면을 몰수한 건 그때부터였다. 서글서글, 돼지머리에 띄운 미소를 싹 걷어치우고 시비를 걸었다.

“자넨 여긴 왜 왔나?”

“자네의 공이 높다 하는데, 들리는 풍문으론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더군. 가족을 잃은 바르나울 시민들이 아직도 난리야. 자네가 나서서 공개 사과해야 하지 않겠어?”

“덱스터라는 성은 왕께서 자네와 자네 아들만 사용하라 내려준 것이 아닌가. 자네 형이 제가 운영하는 용병단에 덱스터라는 이름을 붙여 사용던데… 괘씸하군. 내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그는 온갖 진상을 부리고 떠났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엘슨이 불벼락을 맞아 돌아왔다.

용병단의 현판을 브리나 자작가의 사병들이 떼어갔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마친 레라가 역정을 내며 말했다.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아까 와 있을 때 턱을 갈겨줬어야 하는데… 노엘 아저씨, 이게 정말 참아야 하는 일이에요?”

노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봉변을 당한 당사자, 엘슨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태도였고, 펄펄 화를 내는 사람은 레라 뿐이었다.

그녀는 귀족이 평민에게 벌이는 부당한 행위를 처음 접해본 것이다.

“아- 왜요. 왕자님도 만나셨다면서요. 왕자님께 말씀드리면…”

“아서라.”

엘슨이었다. 그가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고작 이런 거로 야단법석 피울 필요 없어. 드문 일도 아니고… 차라리 잘 됐다. 지겨웠는데. 용병단 이름을 뭐로 바꿀지나 생각해보자꾸나. 유안. 너도 그러고 있지 말고 앉아라.”

“…네.”

식당을 서성이던 유안이 자리에 앉았다. 레라는 ‘가만히 있지 말고 너도 좀 뭐라고 해 봐.’ 레이의 옆구리를 찔렀으나 레이의 걱정거리는 그쪽이 아니었다.

엘슨의 말마따나 용병단의 이름 따위는 바꾸면 그만이다. 말파스를 잡으려는 지금, 브리나 자작도 신경 써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다만 유안, 레이는 저놈이 눈엣가시처럼 밟혔다. 아버지에게 원한이 있는 저 귀족놈이 언젠가 사고를 칠 것만 같아서 레이가 말했다.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뭐냐?”

레이가 눈짓으로 노엘을 데리고 나갔다. 레라는 ‘우씨. 뭔데 자꾸 나한테만 비밀이야.’ 토라져선 뺨을 부풀렸다. 데호르만이 그런 그녀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왜 이래요, 징그럽게.”

“애비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역시 딸 키워봤자 소용 없…”

“자꾸 말 돌리지 마요. 성묘하러 왔다면서 성묘도 안 가고… 아빠는 뭘 한다고 돌아다니는 거예요?”

“난 할 일이 많거든. 우리 모질이 딸이랑은 달리.”

“누가 모질이라는 거예욧!”

“너지, 모질이가 어디 또 있나? 파하하하. 너무 신경 쓰지 말려무나. 곧 알게 될 테니.”

레라가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위를 올려다보며 따졌다.

“아니, 뭐에요 대체. 곧 전쟁이 터진다던데, 참전이라도 하려구요?”

“비슷하지. 넌 그렇게 알고 훈련에나 힘쓰거라.”

“어? 진짜요? 정말로 참전하는 거예요? 그런 거면 진작 말을 하지. 전 좋아요. 전장에서 공을 세우면 금방 기사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아빠는 뭐하러 가요?”

“음? 뭐하러 가다니? 어째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구나. 하하하. 설마 이 애비를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제가 자식 된 도리로 아버지를 무시하겠어요?”

“그렇지?”

“네. 그냥 나이도 많이 잡수셨는데 집에서 고이 쉬셨으면 하는 바람인 거죠. 솔직히 이젠 제 상대도 안 되실 텐데…”

“뭐라고?”

데호르만이 쌍심지를 켜며 으르렁거렸다.

“우리 따님이 드디어 실성하셨나. 세상에 이 아빠보다 힘이 센 사람이 없어요. 우리 딸 다칠까 봐 대련을 안 해줬더니, 아빠가 얼마나 강한 줄을 모르네에?”

“아, 그럼 한 판 붙어보시든가요. 제가 이기면 아빠는 참전하지 않는 거로. 어때요?”

“내가 이기면?”

“그럴 일은 없죠.”

“딸. 딸! 오늘 혼날 것 같으니까 똑바로 말해요.”

아빠가 존댓말을 쓰기 시작하면 진짜 화났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단 한 번도 매를 들지 않은 아빠인지라, 레라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글쎄요, 뭘 해드릴까요? 뭘 사드리고 싶어도 내 돈이 아빠 돈이니 의미가 없고… 매일 어깨라도 주물러드려요?”

“……엄마한테도.”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시집간 뒤에도.”

“…그건 좀 아니지 않아요? 대련 한 번으로 뽕을 뽑으려 드시네. 좋아요. 어차피 내가 질 리 없으니까. 도끼 갖고 나와요.”

데호르만은 기분이 풀렸는지 히죽 웃었다. 내깃거리가 꽤 마음에 든 모양이다. 이윽고 대문짝만 한 도끼를 어깨에 걸친 데호르만과 얄팍한 검을 든 레라가 대치했다.

데호르만이 미리 경고했다.

“조심해라. 난 조절이 안 되니까.”

“걱정 마요. 그래봤자 도끼… 엇! 치사하게!”

데호르만의 도끼가 느리게, 그러나 무시무시한 압력을 담아 횡으로 그어지고, 레라가 높이 뛰어올랐다.

레라는 날렵하게 몸을 뒤집어 검을 내려쳤지만, “크하하하! 날 너무 우습게 봤구나!” 데호르만은 익숙한 몸놀림으로 문짝만 한 도끼 뒤로 쏙, 숨어버렸다. 레라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마수나 잡을 줄 알지 대련은 영 못할 줄 알았는데…

세상 그 누구보다도 거대한 덩치.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레라를 덮고도 남는다. 데호르만이 이를 활짝 드러내며 웃었다.

“약속한 거다? 매일 어깨 주물러주기로.”

그제야 레라는 졌다간 큰일 나겠다는 위기감이 들어 “퉤.” 손바닥에 침을 뱉었다.

* * *

“아버지. 소자, 다녀오겠습니다.”

출병식(出兵式) 날이 다가왔다.

아놀프 드 클라우스 왕자는 남문까지 친히 행차해준 아버지를 향해 깊이 고개 숙였다.

그러나 왕이란 본디 저래야 할까.

아스틴 왕국의 왕, 파올로 드 클라우스는 인간적인 감정이 배제된 메마른 눈동자로 출병식을 보러 몰려든 인파를 쓸어볼 뿐이었다. 그가 살짝 입맛을 다셨다고 느낀 건 착각일 터였다.

왕자도 그만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보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머뭇거리기엔 여덟 계단, 연단 아래서 기다리는 병사가 너무 많았다.

“바르나울에서 징집된 병사, 총원 삼천 칠백 삼십 명과 제1, 2 기사단 총원 사백 오십 명. 왕의 명을 받아 출정 준비를 마쳤습니다. 군대는 남하하며 각지에서 파병한 군사와 합류해 전장으로 향할 것입니다. 이에 승인을 구합니다.”

“승인하노라.”

정해진 수순이기에 왕자가 공손히 읍한 뒤 보고를 이어갔다.

“인솔자는 저, 아놀프 드 클라우스가 될 것입니다. 본대가 총사령관에게 인도될 때까지 통솔권한을 왕을 대신해 짊어질 것이며, 이동 간에 발생할지 모를 모든 불미스러운 사태의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저는 클라우스 왕가의 후계자이자 왕국을 위해 헌신하는 자로서, 왕께 위임받은 군대를 오직 나라와 왕가를 위해 사용할 것을 맹세합니다. 이에 승인을 구합니다.”

“승인하노라.”

그제야 비로소 왕자는 이 군대의 통솔자가 되었다. 아놀프는 몸을 더욱 낮추며 말했다.

“전장을 향하는 당신의 백성을 가엽게 여기소서. 소신(小臣), 아놀프 드 클라우스가 감히 청하옵니다. 왕께서는 이 병사들이 배불리 먹을 군량과 적과 맞서 싸울 군수품, 충분한 녹봉을 약속해주십시오. 만에 하나, 부족할 시 당신의 왕국으로부터 재원을 임의로 징발(徵發)하겠습니다. 이에 승인을 구합니다.”

자율 징수권. 이것까지 승낙받아야 군대가 완전한 독립체가 된다. 마찬가지로 정해진 수순이기에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인하노라.”

아놀프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이후론 허리를 굽히지 않았는데, 군을 통솔하는 자로서 마땅히 보여야 할 태도였다.

그는 여덟 계단으로 이뤄진 연단에서 두 칸을 내려왔다. 제법 따뜻해진 봄바람이 휙- 무수히 달린 클라우스 왕가의 깃발을 펄럭였다.

마법의 도움을 받아, 아놀프 왕자가 출정을 앞둔 병사들과 수없이 몰려들어 이를 지켜보는 바르나울의 시민들에게 연설했다.

우리는 이길 것이며, 저 악독한 벨리타 왕국을 무찌를 것이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이 모든 이들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끝맺음만큼은 진심이었다.

다소 심심한 왕자의 연설이 끝나고 다음으로 한 중년의 기사가 연단 다섯 번째 칸에 올라섰다.

검을 다잡은 기사가 올라왔다는 건, 열정적인 연설로 사기를 고취하겠다는 뜻이었으므로 바르나울 시민들은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설은 그 도입부터가 기대 이상이었다.

– “노엘 덱스터가 고하노라.”

“…노엘? 방금 노엘이라고 했어?”

“노, 노엘 덱스터?!”

“귀족 도살자다!”

남문 앞, 넓은 광장이 술렁였다. 시민들이나 도열한 병사들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바르나울의 악몽.

시적으로는 이렇게도 묘사되는 악명 자자한 기사가 그들 앞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 다소 어린 사람 중에는 “뚝 안 그치면 노엘 덱스터가 잡아간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이도 있었다.

마법으로 확대된 노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름값을 하며 군중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니, 이제 정돈된 말솜씨로 이 전쟁의 타당함과 애국심, 승리에 대한 확신을 불어넣으면 될 것이었는데, 이어진 말은 전쟁을 독려하는 연설이 아니었다.

– “바르나울의 시민들이여, 죄스러운 나의 동포 이웃들이여. 십여 년 전의 전쟁을 우린 잊지 않았다. 누군가는 부모를 잃었고, 누군가는 자식을 잃었다. 나는… 내 반려를 잃어버렸다.”

광장이 조용해졌다.

– “우리가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인가? 전란이 낀 땅에 태어나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게 우리의 운명이었단 말이냐?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해서, 당신들은 무엇을 탓하였는가? 아마 나를 탓하며 위안 삼았을 테지만, 나는 그조차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그 전쟁의 한 축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엘이 놀라서 곁에 선 마법사를 밀치며 돌아섰다. 책임감과 죄책감, 마지막으로 분노를 담아 말했다.

– “그러니 책임지겠다. 역사의 그늘에 숨어 우리의 부모, 자식, 형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저놈에게! 속 시원히 말해주겠다. 왕! 네놈이 전쟁을 일으켰노라고!”

“그게 뭔 개소리냐아아!! 왕께서는 휴전 협정을 맺으셨다!”

“맞아! 우리의 왕께선…!!”

시민들의 아우성이 터지는 순간, 노엘이 검을 던졌다. 충격에 빠져 그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날아간 검은 왕을 직격했고, 사방에서 비명이 터졌다. 왕이 죽어서가 아니라…

삼 장(丈)에 달하는 강철 날개 때문이었다. 옥좌를 덮은 여덟 날개 사이로 붉은 까마귀가 고개를 내밀곤 중얼거렸다.

– 어떻게 알았지?

말파스의 시선은 저 아래 우글우글 몰려든 사제와 성전사들, 그 앞에 선 청년을 향해 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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