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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83

281. 약혼 Ep – 혈전

“아르펜 경! 이게 무슨 짓이요? 노엘 경이 검을 소지하고 있지 않소! 왜 막아선 거요?”

연설하기 위해 연단에 오른 노엘 덱스터가 검을 휴대하고 있었다. 근위병이 막아섰으나 알바세테 남작이 용인하였고, 아놀프 왕자가 다가와 따졌다.

“무기를 들고 왕의 근방에 들어서는 건 그 어떤 경우에도…”

“가만히 계십쇼 왕자님. 저도 지금 좀 쫄리니까.”

왕이 정말 인간이 아닐까?

아르펜은 성녀로부터 ‘그 레이라는 분을 믿으라. 십자교회는 전적으로 협력하겠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내심 불안했다.

만약 왕이 그 악신이라는 게 아니면 어쩌지? 노엘이 검을 던지기로 했는데, 푸확! 피가 터지기라도 하면 어쩌냔 말이다.

반란을 획책했다는 오명을 피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아르펜은 그만의 방식으로 불안을 떨쳐내고 있었다.

– 난 저 새끼 옛날부터 맘에 안 들었어.

아르펜이 왕자의 두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왕자님. 지금부터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으셔야 합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게요?”

힐끔, 아르펜은 노엘이 뒤돌아서는 걸 확인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왕자님은 오늘, 왕이 되십니다.”

“뭣? 여봐라! 당장 저자를…”

노엘이 검을 던진 건 그때였다.

순간 이상을 감지한 아르펜이 왕자를 잽싸게 뒤로 물렸고, 물결치는 강철의 날개가 폭발하듯이 터져 나왔다. 아르펜은 뇌리를 파고드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

– 죽여라.

“하… 하하… 으핫하하하하하!! 정말이었구나! 그래, 내 저 새끼 옛날부터 마음에 안 든다 했다! 뭘 하고 섰어?! 비켜!”

새빨간 부리를 오만하게 치켜들며 본색을 드러낸 말파스. 아르펜이 기겁한 근위병들을 제치며 그 거대한 까마귀를 향해 달려들었다.

대검이 푸르게 작렬하고, 아르펜은 깃털 대신 날붙이가 주렁주렁 매달린 날개를 조각내며 전진하였다.

이래서 곤란한 존재다.

소드마스터란.

붉은 까마귀, 말파스는 아르펜을 무감정한 눈으로 내려보다 날개깃을 활짝 펼쳤다. 그러자 후웅! 8개의 날개에서 무쇠 폭풍이 몰아쳤다.

“끄악!”

날카로운 쇠붙이가 비산한다. 아르펜은 버티려 했으나 장소가 좋지 못했다. 사각뿔 형의 높은 단상엔 엄폐할 것이 없어서 속절없이 걸음을 돌렸다. 그는 먼저 왕자를 챙겼다.

“왕자님. 물러나 계십시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아바마마께선 어디에…?”

“말씀드리자면 깁니다. 왕자님, 정신 차리시고 당장 보이는 것에 집중하세요. 왕자님께선 무엇을 하셔야 하겠습니까?”

아놀프 드 클라우스가 마른세수했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둘러보니 공황에 빠진 백성들이 보였다. 그는 의문을 접고 제 소임을 다하였다.

“병사들은 들으라! 군중을 통솔해 뒤로 물러선다! 바르나울의 시민들이여! 물러서라, 물러서!!”

마법사는 거품을 문 채 쓰러져 발버둥 치고, 왕자는 생목으로 외쳤다.

다행히 시선이 단상에 집중돼있던 터라 시민들이 왕자의 몸짓을 알아차리곤 달아나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군중들. 하지만 개중에는 되레 안으로 파고드는 이들이 있었다.

레이를 위시한 바르나울 교회의 성전사와 사제들, “하하핫! 저 봐라. 내가 기대해도 좋다고 했지?” ─ 호탕하게 웃는 데호르만과 왕국 각지에서 몰려든 수십의 대전사들,

그리고 노엘에게 신세를 졌던 귀족들이다. 반신반의하던 귀족들은 제 기사를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아르펜이 폭풍이 몰아치는 단상에서 왕자를 끌어안고 뛰어내렸다. 그가 제1, 2 기사단원에게 소리쳤다.

“전원 발검! 왕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우릴 농락한 저 괴물을 처단하겠다! 옌센이 없는 지금, 제2 기사단의 통솔권은 제1 기사단장인 나, 아르펜 알바세테에게 있다! 전원 전투 대형으로!”

기사들이 빠르게 대형을 갖췄다.

450명, 기사의 왕국답게 온 대륙 어느 왕국보다 많은 숫자다. 그들이 세 줄의 횡대를 이뤄 단상을 둘러싸고 무기를 뽑아 든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거기에,

“Deus proptius eris impus Shea! 신이시여 악인을 용서하소서!”

“Dant animos militis non kkeok! 전사에게 용기를 주소서!”

바르나울 교회 사제들의 축복이 덧씌워졌다. 남문 광장 바닥에 교회의 문장이 하얗게 새겨지고, 구름 낀 하늘, 구름 사이로 찬란한 빛이 쏟아졌다. 라차르의 이름을 읊은 성전사들의 갑주에 눈이 부시다.

“어이고. 시련이 있을 거라더니… 이거 잘못하면 국물도 없겠는걸?”

게다가 대전사의 시련을 거친, 마수를 여럿 사냥해본 대전사들까지 건들건들 끼어들었다. 준비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완벽했는데…

– 까악-!

말파스는 전쟁통에서 자연 발생한 신이다. 저를 섬기던 미노타우르스만 소환할 줄 아는 오리아스나 사냥을 기반으로 탄생한 바르바토스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복합적인 살육의 예술.

그게 전쟁(戰爭)이다.

불길한 까마귀 소리, 말파스의 부리가 진동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광장 곳곳에서 까마귀 떼가 날아오르고, 남문 성곽에 불이 붙었다. 슈우우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돌무더기가 쾅! 떨어졌다.

“뭐, 뭐냐? 투석차?”

바르나울의 수성 병기가 제멋대로 작동했다. 돌과 끓는 기름이 든 단지가 떨어지고, 광장 주변 상업지구에 붉은 안개가 끼더니 핑! 화살이 날아들었다.

[수성전(守城戰)]

전쟁의 신, 말파스의 기본 능력이다. 당연히 그보다 더한 것이 남아 있었다.

– 까악! 까아악!

[ 혈전(血戰) ]

저 멀리 시민들을 이끌고 물러서던 병사들이 뒤돌아섰다. 전부는 아니고 이천 명 정도가.

시민들 중에서도 돌아서는 이들이 있었는데, 결혼반지 같은 걸 소지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 숫자는 약 팔천. 말파스의 가장 경제적이고 강력한 능력이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혈전이 벌어지려면 양측의 힘이 비슷해야 하지 않겠는가? [ 혈전(血戰) ]은 그 균형을 잡아주었다.

적을 지정하고, 그것을 딱 상대할 만한 전력을 확보하는 것. 물론, 고작 팔천의 시민군이 도합 칠백이 넘어가는 왕국 기사와 성전사, 대전사, 사제, 소드마스터를 상대하기란 역부족이겠지만…

“너, 너희들! 이게 무슨 짓이냐!”

단상을 둘러싼 근위병들이 기사들을 향해 칼부림하기 시작했다. 데호르만이 데려온 대전사 중 ‘바랄 아비커’와 같이 까마귀 문신을 한 대전사들도 눈이 돌아가 주위 사람을 베었다.

– 까악 깍깍깍깍깍!

이거지. 이게 전쟁의 참맛이 아니겠는가.

서로 죽이고, 또 죽여라. 한쪽이 기울어지면, 나는 밀리는 쪽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그게 설령 내 편이 아니더라도.

그리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승리한 자들을 맛있게 쪼아먹을 생각이었다. 말파스가 즐겁게 짖고, 환경은 조성되었다. 레이 덱스터가 외쳤다.

“당황하지 마십시오! 저놈을 잡으면 됩니다! 성전사들은 저를 따르십시오!”

“기사들은 두 패로 나뉜다! 제1 기사단은 정신 나간 근위병을 상대하며 놈을 친다! 노엘! 자네가 제2 기사단을 통솔해 후방을 맡아주게! 사제들을 보호해!”

“데호르만, 우린 뭘 하지?”

미쳐서 날뛰던 바랄 아비커를 단숨에 베어버린 전사가 물었다. 칼리 톨루카였던가… 데호르만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알아서들 하게. 괴물을 잡고 싶은 사람은 가서 잡고, 난 저쪽이 신경 쓰여서… 윽!”

눈먼 화살이 푹! 데호르만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가죽 갑옷과 탄탄한 근육에 막혀 그리 심한 상처는 아니었기에 화살을 뽑으며 말을 이었다.

“저쪽에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여기 남겠네. 이제 알아서들 해. 몸조심하고.”

대전사들은 각자 하고 싶은 걸 골라 흩어졌다. 데호르만과 같이 돌아선 이도 많았는데, 그건 저쪽에서 몰려오는 시민군 때문이었다.

“애기 아범! 아범! 왜 이러나!”

“여보!!”

가난하지만 화목해 보이는 일가족이 건장한 사내에게 달라붙어 애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내는 몽롱한 눈으로 아내와 장모를 쳐내며 걸어갈 뿐이었는데…

“어쩔 수 없다! 죽여라!”

단상 아래서 기사들이 근위병을 죽이기 시작하자 남편을 말리던 아내의 동작이 굳었다. 등에 젖먹이를 업은 채, 그녀도 피바람이 몰아치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아가! 아가! 너까지 왜 이래.”

노파가 딸과 사위를 붙들고 늘어졌지만, 늙은이는 맥없이 끌려갔다. 이런 참극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시민군은 쾅!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바윗돌, 끓는 기름 단지가 떨어져도 아랑곳없이 나아갔다. 보다 못한 아놀프 드 클라우스 왕자가 남은 병사에게 지시해 시민들을 막아섰으나 동원된 병사만큼 뒤돌아서는 시민이 생겼다.

사위를 말리던 노파가 한 병사의 뺨을 감싸더니, 엄지로 푸욱! 눈알을 찌르려 들었다.

“할머니, 할머니! 제발 이러지 마세… 악! 이, 씨… 아악!!”

난장판이다. 아니, 지옥이다.

데호르만의 우려가 맞아떨어졌다. 이쪽으로 걸어오는 시민 중에는 레라도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백부님! 백부님! 멈춰요!”

“아버지!”

유안과 함께 엘슨을 잡아끌고 있었다. 기절시키려 몇 번이나 시도했는지 엘슨의 머리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레라야!”

“아빠! 이 아저씨 좀 어떻게… 앗!”

엘슨이 검을 뽑아 데호르만에게 달려들었다. 챙! 도끼를 세워 막았으나, 손이 저릿했다.

엘슨은 준기사 출신의 용병단장이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어서 데호르만이 혀를 찼다.

“큰일 났구나. 레라, 이 친구 검을 좀 뺏어주겠니? 그럼 내가 힘으로 잡아보마.”

“네.”

하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데호르만을 적으로 인식했는지 주위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결국, 데호르만은 자신의 거대한 도끼를 부웅! 휘두르고야 말았고, 그러는 한편 노엘은 끔찍한 시련에 처해 있었다.

적의를 품고 다가오는 시민들. 제2 기사단과 기사들은 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제들은 말파스와 격돌한 이들에게 축복을 내려주기 바쁘다.

저들을 죽여야 한다. 죽여야 하는데…

구일 전쟁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목적에 방해가 되는 이들을 모조리 쳐 죽이던.

한참을 갈등한 끝에 노엘이 이를 악물고 명했다.

“접근하는 자, 모두 죽여라.”

명령을 받은 기사들은 노엘보다 한결 편한 표정이었다. 사방에서 피가 터지고, 노엘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절망해버렸다.

“…형님.”

젊을 적, 자신 때문에 검을 버린 친형이 검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레라는 데호르만을 도우러 가고, 유안만 그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끌려왔다.

그 말고도 엘슨을 알아보는 기사가 몇 있었다. 다들 주저하는 기색이라, 노엘이 앞으로 나섰다.

“아, 안 돼요. 제발, 제발.”

유안이 애원했다. 노엘은 검을 든 채 잠시 망설이다가…

– “양손검은 이렇게 잡는 거야. 맞아, 그렇게. 오우 잘하는데? 그리고 찔러!”

어릴 적, 크게만 보였던 형의 가슴을 찔렀다. 엘슨은 끄르륵, 피거품을 물고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아아… 아버지…! 아버지!!”

노엘이 오열하는 유안에게 다가섰다. 무릎 꿇고, 부릅뜬 엘슨의 눈을 감겨주었다. 형님 얼굴에 잔주름이 이렇게 많았나… 생각하는 그때였다.

– 푹.

단검이 쇄골 아래, 가슴에 박혔다. 바짝 달라붙은 유안이 그를 노려보았다.

“이, 이 개자식…! 내 아버지를… 내 아버지를 또!”

“…미안하구나.”

“미안? 미안하면…”

노엘이 유안을 되려 감싸 안았다.

누가 보지 못하게 망토로 단검에 찔린 걸 가리며 속삭였다.

“네 아버지, 팜필리 백작님은 비록 적이었지만 대단한 분이셨다. 내 형님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 알고 있었다. 네게 지은 죄를 씻을 길이 없구나.”

“…”

“하지만 약속하마. 내가 쌓은 업보를 청산할 테니… 날 잠시만 놓아주겠니? 고맙다. 너는 꼭 살아서 우리 가문을 이어주려무나.”

노엘이 단검을 움켜쥐었다. 유안의 손을 잡아 스르륵, 뽑히는 날을 망토로 깨끗이 닦아주었다.

형님이 입양한 조카의 손에 피가 묻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마침 달려온 레라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내 검을 돌려다오.”

“…네?”

“옛날에 네가 내 검을 가져갔잖니. 그래, 그거. 지금 쓸 일이 있구나.”

무척 익숙한 무게, 검을 돌려받은 노엘이 뒤돌아섰다. 고함이 울리는 단상엔 피가 예까지 흐르고 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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