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284

283화.

초대형 허리케인 레드케이는 북해를 지나 북상하며 급격히 세력이 약해져 소멸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부상자 몇 명 외에는 없었지만, 엄청난 재산피해를 남겼다. 북해유전 시추설비 파손도 문제지만, 원유유출이 더 큰 문제였다.

현재도 손상된 파이프를 통해 계속해서 원유가 새어나왔다. 바다를 가득 메운 기름띠를 본 사람들은 2010년 발생한 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 폭발사건을 떠올렸다.

그 일로 무려 원유 7억7천만 리터가 멕시코만에 유출됐고, 수습과 방재에만 수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그때와 비견될 정도는 아니지만, 유럽에서 발생한 원유유출 사고 중에는 최악이었다.

시추설비를 운영하는 로열 더치 쉘 관계자들은 기상예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을 탓했고, 정부는 업체의 관리부실을 탓했다.

허리케인이 유럽 쪽으로 오기 전까지만 해도 투자전문가들과 펀드들은 유가하락을 전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북해유전 피해 여파로 유가가 폭등하자 다들 망연자실했다

이런 상황에서 OTK컴퍼니에서 미리 현물과 선물계약을 잔뜩 맺어 놓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북해유전이 박살날 줄 알았나?

-혹시 허리케인 이동경로를 파악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게 말이 됨? 내로라하는 기상전문가들도 몰랐는데.

-날씨를 예측하는 인공지능 같은 걸 개발한 거 아닐까?

-만약 알고 있었으면, 빅원 때처럼 미리 경고를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야?

-미국의 대이란 제재와 OPEC 감산에 베팅했는데, 얻어걸린 거겠지.

-운빨 지린다ㅜㅜ 천운을 타고 난 듯.

-로또 당첨번호 좀 알려주세요!

대부분 우연일 거라 치부했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번 일만이 아닌 그동안의 OTK컴퍼니의 투자사례를 면밀하게 검토했다.

* * *

원유유출로 인해 물고기들이 집단폐사하고 조업이 중단되자, 유럽전역에서 환경단체들이 시위를 벌였다.

바다를 지키기 위해 당장 북해유전을 전부 폐쇄하고, EU에서 해저 유전채굴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을 보호하자는데 누가 싫다고 하겠나? 취지에는 공감하나 대안이 없다는 것이 문제지.

환경단체는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자고 주장하지만, 이를 통해 생산할 수 있는 전력은 한계가 있다.

엄밀히 따지면, 완전히 친환경적이지도 않고.

택규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훗, 어차피 인류문명이란 석유 없이는 안 돌아가지.”

맞는 말이다. 이러니 석유가 금과 함께 실물의 왕이 된 거겠지.

상엽 선배는 포지션을 청산하는 대신 상황을 지켜보았다. 여러 대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여기저기 쉴 새 없이 통화했다.

“지금 국제 투기자본들이 이동하고 있어. 유가가 지금보다 훨씬 뛸 거야.”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돈은 수익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 한동안 수급이 개선되기 힘들 거라는 우려가 커지자 투기자본은 너도나도 원유 매수에 나섰고, WTI도 심리적 마지노선인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유가상승은 또다시 물가를 끌어올렸다. 장바구니 물가는 물론, 당장 주유소 휘발유 가격부터 치솟았다.

실물이 금융을 움직이고, 금융이 실물을 움직이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OPEC 회원국들을 포함한 산유국들은 뜻밖의 호재에 환호했다. 한 사우디아라비아 왕족은 북해유전 파손은 알라의 가호니 어쩌니 했다가 영국과 노르웨이의 강력한 항의에 사과했다.

돈에는 선도 악도 없다는 말처럼, 돈 앞에서는 타인의 불행쯤이야 우습게 생각되기 마련이다.

나도 딱히 할 말은 없다. 이번 일로 인해 가장 이득 본 사람이 바로 나니까.

상황이 이렇게 된 건 허리케인의 이동경로와 속도 모두 정부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며칠만 먼저 알았더라도 충분히 대비할 만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경보했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도 시추시설이 파손될 건 알았지만, 원유가 유출될 줄은 몰랐다.

난 북해를 잔뜩 뒤덮은 기름띠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복구성금이나 좀 내죠.”

* * *

눈을 떠보니 옆에는 엘리가 이불을 덮은 채 잠들어 있었다. 며칠 동안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잠이 깊게 든 것 같은 모습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밖은 아직 깜깜했다.

난 침실에서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맥주 한 캔을 꺼내 정원으로 나갔다. 인적이 없는 정원에는 은은한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밤에도 무더위는 지속됐다. 열대야가 도시 전체를 뒤덮은 듯했다. 잠깐 나왔는데도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난 테이블에 홀로 앉아 맥주를 마셨다. 주변이 조용했다. 간간히 저 멀리서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자서 뭐해?”

“잠이 안 와서 맥주 마시는 중이야.”

고개를 돌려보니, 택규가 나와 있었다.

“같이 마시자.”

택규는 돌아가서 맥주를 들고 나와 옆에 앉았다. 예전에는 편의점 파라솔에 앉아 맥주를 마셨는데, 이젠 얼굴 팔려서 그것도 못하게 됐다.

난 그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처음 투자했을 때만 해도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곧 힘이다. 돈이 많아지면 자연히힘도 세진다.어느새 자산 규모는 대기업 수준으로 커졌고, 세계적인 명성(악명?)도 얻었다.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돈을 너무 많이 벌긴 했지.”

본격적인 무인차 시대가 열리면, 카로스의 가치가 1조 달러에 달할 거라는 전망도 있다. 그만큼 시장규모와 기업가치는 급성장하는 중이다.

그거 외에도 포르노사업과 피자사업도 잘 되고 있고.

세상에 우리보다 더 큰 자본을 굴리는 곳은 얼마든지 있다.

운용자금이 수백조가 넘는 연기금, 국부펀드, 사모펀드, 투자은행, 금융회사 등등. 그렇다 해도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글로벌 금융시장이란 망망대해와도 같다.

돈이 많다는 건 그저 크고 좋은 배를 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강에서 좀 큰 배를 탄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바다에 나오면, 그저 수많은 배 중 하나일 뿐이다.

내 말을 들은 택규가 말했다.

“그래도 뗏목보다는 항모가 낫잖아.”

“그렇긴 하지.”

배가 크면 클수록 가라앉을 확률은 줄어든다. 하지만 덩치가 큰 배는 그만큼 다루기가 힘들다.

타이타닉처럼 앞에 있는 빙산을 발견하고도 피하지 못해 침몰할 수도 있고, 해안포나 다른 배에서 쏜 어뢰를 얻어맞고 침몰할 수도 있다.

베어링스나 리만 브라더즈 같은 유서 깊은 거대 투자은행이 파산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바다가 수많은 배를 집어삼킨 것처럼, 시장 역시 수많은 기업과 돈을 집어삼켰다.

어느 기업이 흥하든 망하든, 누가 돈을 잃든 벌든 상관없이 시장은 바다처럼 계속 그 자리에 존재하겠지.

난 택규를 보며 말했다.

“우리 나중에는 뭐하고 있을까?”

“글쎄. 어느 섬에서 낚시나 하고 있지 않겠어?”

“낚시 할 줄은 알아?”

“그럼. 게임에서 해봤어.”

“…….”

생각해보면 얜 돈이 많을 때나 적을 때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차이가 있다면 돈이 없는 오타쿠에서 돈이 있는 오타쿠가 된 건가?

난오래전 워렌보트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어째서 돈을 버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했었지.

과연 돈을 버는 데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 * *

우리는 같이 저녁을 먹기 위해 현주 누나네 집에 모였다.

어머니께도 말씀드렸지만, 골프약속이 있어서 못 온다고 하셨다. 요즘 임수미 사장에게 골프를 배우고 있다고 하는데, 나름 재미를 붙이신 모양이다.

택규가 선물해준 집은 맨해튼에 있는 펜트하우스에 비해 화려하진 않았지만, 깨끗하고 아늑했다. 정원이 있어서 나중에 애가 뛰어놀기도 좋을 테고.

헨리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처음 봤을 때는 귀공자나, 금융 엘리트 같은 모습이었데, 지금은 그냥 팔불출 같은 모습이다.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아니면 우리랑 붙어 다녀서 이렇게 된 건가?

어쨌거나 지금 모습이 훨씬 좋아 보인다. 사람이 행복한 게 제일이지.

“어서 와.”

현주 누나는 배가 잔뜩 불러 있었다. 뱃속의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집과 회사에는 의료인력이 상주했다.

현주 누나가 잠시 누워있겠다며, 방으로 들어간 사이 난 헨리에게 물었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뭔가요?”

난 헨리에게 물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해 알아요?”

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모두가 알고 있는 것 말고 실체에 대해서요.”

헨리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겁니까?”

“유대계 자본에 대해 궁금해져서요.”

골든게이트 설립자는 독일계 유대인 에리히 골드맨. 초기에는 유대인 가문의 가족경영으로 시작했다.

“아시겠지만, 저희는 직계든 방계든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가업을 물려받았죠. 유대인들끼리 결혼을 한 것도 아니라 지금은 유대계 자본과 큰 관련이 없습니다.”

실제로 경영진들만 해도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있고, 각 지사들은 어느 정도 독립경영이 보장된다.

하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은 당연히 유대계에 의해 움직이겠지.

난 뉴욕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JP모건 본사에서 그레이스 로스차일드라는 여자를 만났어요.”

“우연히요?”

“아마 그럴 거예요.”

내가 그곳에 간 것은 전혀 예정에 없는 일이었으니.

“로스차일드와 JP모건은 관계가 깊습니다. 재단이나 차명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지분도 꽤 될 테구요.”

이것 역시 이미 알려져 있는 얘기.

“로스차일드 가문의 자산이 50조 달러는 된다는 얘기가 있던데.”

헨리는 어이없다는 듯이웃음을 터트렸다.

“그 정도면 미국 1년 GDP보다 크네요. 설마 그걸 믿는 건 아니겠죠?”

얘기를 듣던 택규는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크윽! 온갖 음모론의 주역인 놈들 재산이 50조 달러도 안 되다니.”

“…….”

얜 설마 그걸 믿고 있었던 건가?

“전 세계에서 OTK컴퍼니를 주목하고 있으니, 그쪽에서도 관심을 갖는 게 당연하겠죠.”

“제가 가진 돈 때문에요?”

헨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돈도 돈이지만, 나이가 젊다는 것도 있죠.”

시장수익률 이상의 수익을 계속해서 벌어들일 수만 있다면, 시간과 결합한 자본은 막대한 위력을 갖게 된다.

“매년 10퍼센트씩만 자산이 늘어나도 약 7년 후면 두 배가 됩니다. 14년 후에는 네 배, 21년 후에는 여덟 배. 수익률이 그 이상이라면 기간은 더욱 짧아지겠죠.”

“그건 중간에 단 한 번도 손실을 보지 않았을 때잖아요.”

시장 평균수익만을 추구한다면 큰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 이상의 수익을 추구한다면 위험은 필연적이다.

연 10퍼센트는 투자를 조금이라도 잘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올릴 수 있는 수익이다. 그러나 매년 실패 없이 그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자본 규모가 커질수록 수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100만 원을 1천만 원으로 만드는 것과 100억 원을 1천억 원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지 않습니까?”

“워렌 보트요?”

그 할아버지는 놀랍게도 매년 20퍼센트씩 수십 년 동안 수익을 거뒀다. 그리고 작은 섬유회사였던 버크셔캐셔는 시총 6천억 달러가 넘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중요한 건 진후가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든 없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어쨌거나 예지력이 있으니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내 재산이 1500억 달러 정도니, 20년 후에는 1조 달러가 넘는 돈을 갖게 될까?

사우드 왕가나 아부다비 왕가가 그 이상의 부를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그쪽은 가문이고 난 개인이다.

“역사상 누구도 진후처럼 단기간에 그 정도 돈을 번 사람은 없습니다. 그건 존 데이비슨 록펠러나 앤드류 카네기조차도 못했던 일입니다.”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스탠더드 오일을 만든 석유왕, 그리고 앤드류 카네기는 카네기 스틸을 만든 철강왕이다.

그 둘 모두 전성기 때에는 수천억 달러(현재 금액으로 환산했을 때)의 자산을 갖고 있었으며, 그들이 만든 기업은 지금도 엑슨모빌과 US스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미국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돈은 모이면 모일수록 그 자체로 힘을 갖는다.

명문가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가문이 가진 자산이 밑바탕이 된다. 명예만으로 존속할 수 있는 가문이 얼마나 되겠나?

“그쪽 재산은 얼마나 될까요?”

“글쎄요. 50조 달러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1, 2조 달러는 될 겁니다. 어쩌면 더 많을 수도 있구요.”

로스차일드는 가문은 자금운용과 내부의 일에 대해 오로지 가족과 친척끼리 처리한다. 때문에 정확한 재산이나 운용방식 등이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군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사람의 인식이란 결국 자신이 가진 지식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쩌면 내가 이제까지 접한 금융시장이란 전체의 극히 일부분이 아닐까?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