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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87

< 백기사 (2) >

어느 아파트의 현관 앞.

“이렇게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매님.”

“아유~ 아닙니다, 신관님.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자매님께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예, 예. 감사합니다.”

자애롭게 미소 지으며 허리를 숙이는 성직자의 말에 그 앞에 있던 중년 여인이 당황하며 마주 고개를 꾸벅거렸다.

그렇게 작별 인사가 끝나자 30대 초반의 여성 성직자는 곧바로 주차장으로 이동해 정차해 있던 차의 뒷자리에 올라탔다.

부르릉—

직후 부드럽게 출발하기 시작한 차 안에서, 그녀는 옆에 놓여있던 태블릿을 들고 안에 정리된 자료들을 다시 훑어보았다.

<백기사 조사 진척 보고서>

-······

-백기사 추정 스펙 정리. (상세 보기)

-각 차원의 귀환자들을 통해 신성력을 수소문한 결과, 아우테리카 차원의 주신이 가장 유력함. (인터뷰 전문 상세 보기)

-특정 환자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가정, 관련자 방문 조사 실시. (현재 진행률 28%)

-······

“흐음.”

저도 모르게 나오는 고민 소리와 함께 살짝 옆으로 기우는 머리.

판테온 한국 지부에서 백기사를 추적하기 위해 파견된 조사단의 대표인 그녀는 이내 태블릿에 뭔가를 표기하곤, 그것을 다시 내려놓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역시 대단하네요.’

그리고 그녀는 이번 방문에서 재차 확인한, 지금은 퇴원한 환자의 몸속에 아직까지 남아있던 신성력의 잔향을 떠올리며 몇 번째인지도 모를 감탄을 터트렸다.

‘대체 믿음이 얼마나 깊기에 그런 게 가능한 걸까요.’

그녀는 이미 병원 테러 당일에도 제법 먼 거리에서 그 기척을 감지하고 경악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고 하나, 그 잔재를 이렇게 직접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또 새로운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조사하면 할수록 그 당사자에 대한 존경과 경외가 물씬 피어올랐던 것이다.

‘단순히 규모가 큰 정도가 아닌, 오직 신실한 믿음으로 정련된 순수하기 그지없는 신성력. 대체 어떤 성인이기에 지구에서 그만한 에너지를 끌어오는 게 가능했던 건지···.’

그녀 또한 이세계에선 제법 높은 지위까지 올라간 고위 신관이었지만, 아무리 후하게 쳐주더라도 백기사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굳이 그녀의 출신 세상에서 비슷한 수준을 꼽자면, 아마 신에게 직접 간택 받았다는 사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인지 꼭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사실 그것이 그녀가 적극적으로 조사단의 대표를 맡은 가장 큰 이유였다.

대체 어떤 성품의 사람이기에 그만한 이적이 가능했는지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흥미 본위 말고도 실질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 정도 수준의 성인이라면 정말 판테온의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을지도···.’

치유 능력이 가진 중요성만큼, 지구에서 성직자들의 처우는 단순히 양호한 정도가 아니었다.

신성력 사용에 제한이 있으니 오히려 다른 세상에서보다 더 귀하다고 보는 게 맞을 터.

그러나 문제는 대외적인 평판이 아닌 내부에 있었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가 얼굴을 몇 번 문질렀다.

신성력 덕분인지 매끈하고 탱탱한 피부가 나름의 자랑이었는데, 최근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피부 트러블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파벌 간의 반목이 너무 심해요.’

어찌 보면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같은 신도들이 모인 일반적인 교단과는 다르게 판테온의 성직자들이 따르는 신과 교리는 모두 제각각이었으니까.

아무리 악신을 숭배하는 등 부정적인 신앙을 품은 이들은 배제했다고 해도, 기본적인 가치관이 다른 만큼 계속해서 마찰이 생기고 불만이 쌓여 균열이 발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모두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이가 중심에 서 준다면···.’

지금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된다면 쓸데없는 파벌 싸움에 쓸 힘을 좀 더 선한 방향으로 표출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

또 그것은 자연스럽게 사회의 공익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 위인을 타국에 빼앗길 순 없죠.’

연합 집단인 판테온의 특성상 미국에 있는 총본부도 상위 기관이 아닌 그저 대표 개념에 더 가까웠다.

이미 요청이 들어온 이상 협조는 하겠지만 맹목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다는 소리.

다시 굳게 마음을 다잡은 그녀가 옆에 내려놓았던 태블릿을 들어 조사단원들의 결과 보고를 눈으로 훑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띠링!

갑자기 그녀의 태블릿 메신저에 긴급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그 내용을 읽던 그녀의 눈이 커다랗게 떠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끼이익—!

정속으로 주행하던 그녀가 탄 차가 급하게 드리프트 하며 방향을 틀었다.

다행히 근방엔 다른 차량이 없는 상황.

덕분에 차는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곧바로 급가속을 밟았다.

부우웅— 부아아앙!

그 차량의 목적지는 새로운 급보가 들어온 장소.

백기사가 등장했다는 서울의 한 대학 병원이었다.

***

따스한 빛이 주변을 감쌌다.

화아악—

그 영역은 단순히 주변 몇 미터 정도가 아니었다.

로비에 가득한 사람들을 넘어서 더 멀리, 더 높이 뻗어나간 그것은 마침내 어린이 병원 전체를 아우르며 은은하면서도 아름답게 타올랐다.

그것은 기적의 실재이자 소망의 구현.

이 자리에 있는 환자들의 상처를 쓰다듬어 주는 자비의 현신이었다.

‘이왕 할 거 확실하게 해야지.’

그저 따스하게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그 초고순도의 신성력은 즉각적인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회복과 치유, 그리고 재생.

그에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그러한 변화를 곧바로 체감할 수 있었다.

“아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아! 엄마, 이거 신기하다! 디게 따뜻해. 히힛!”

그 말로만 듣던 현상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이, 두 손을 모은 채 계속해서 기도를 올리는 이,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터트리는 아이들 등.

하지만 그 여러 반응 속에서도 단 한 가지, 그들이 보인 공통된 행동이 있었으니.

바로 이 기적을 행한 주체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로비의 중앙에 선 채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찬란한 빛을 휘감고 있는 이.

매끄럽고 유려한 순백의 갑옷을 입고 바닥에 세워진 아름다운 장검의 손잡이에 두 손을 올린 고결한 성인.

백기사 하인리히를.

“아···.”

“······.”

그 신성한 모습에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은 그저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처음 그가 등장했을 때 아우성치며 자비를 갈구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차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도 말을 걸 수도 없었다.

그저 예술품을 감상하듯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경외만 보낼 뿐.

‘역시 효과 한번 확실하군. 그럼 이제 슬슬···.’

그러나 시간이 멈춘 듯 모두가 굳어있던 그때.

타박— 타박—

가장 먼저 움직임을 보인 이가 있었다.

“수··· 수아야?”

이제 예닐곱 살은 되었을까?

자그마한 키만큼 왜소한 여자아이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환자복을 입은 채 힘겹게 발걸음을 옮겨 그에게로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 타고 있었던, 아비가 끌던 휠체어를 뒤로하고서.

‘오? 어른들도 굳은 이 상황에서 가장 먼저 움직였다?’

뒤늦게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은 장년의 남성이 안절부절못하면서도 감격스러운 듯한 기색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차마 아이의 뜻을 무시하지 못한 그가 걱정스럽게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

하인리히의 앞까지 도착한 여자아이가 조심스럽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똘망똘망하게 눈을 빛내며 자그맣게 입을 열었다.

“···천사님?”

질문하는 것처럼 말꼬리를 높이긴 했으나, 그간 이야기로만 들으며 상상했던 이미지와 겹쳤기 때문인지 아이의 눈빛에는 어떤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혹시 수아가 착해서 데리러 온 거에요?”

다만 그다음에 이어진 말은 그도 미처 예상할 수 없었다.

하인리히는 물론 아이의 뒤에 있던 보호자도 멈칫 몸을 굳혔다.

“···저 아직 안 가면 안 되나요? 아직 인사도 다 못했는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힐끔힐끔 그를 올려다보는 아이.

대체 저 작은 머릿속에서 무슨 상상이 펼쳐지고 있는 걸까?

하지만 이미 한 차례 신성력을 쐬었음에도 느껴지는 아이의 몸 상태에 어떤 상황인지는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흐음.’

생각을 정리하며 가만히 아이를 내려다보던 그는 이내 천천히 다리를 굽혀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그렇게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보니, 그 자그마한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투구가 시선에 들어왔다.

‘그래, 이왕 하는 거 아예 이렇게 하는 게 더 확실하겠지.’

그에 천천히 두 손을 들어 투구를 쥔 그는.

그대로 그것을 위로 들어올렸다.

사라락—

답답한 공간에서 해방되며 허공에 흩날리는 은빛 머리칼.

그것이 병원 로비를 비추는 전등과 주변을 감싼 광채를 산란시키며 눈부시게 반짝였다.

“헙!”

“······!”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용히 숨을 죽인 채 그것을 바라보던 이들이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하인리히는 가볍게 은발을 쓸어 넘기고 금빛으로 빛나는 눈매를 부드럽게 휘며 다시 아이와 마주 보았다.

조명과 연출이 어우러진 그 이국적인 미남자의 용모가 환상처럼 사람들의 뇌리에 틀어박혔다.

그는 주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헤 벌린 아이의 머리로 한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그리고 다시 팔을 되돌려 오른손의 금속 건틀릿을 벗고는 맨손으로 천천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으헤헤···.”

그 조심스러운 손길에 쑥스러운 듯 헤픈 웃음을 흘리는 아이.

하인리히는 손에 가득 담은 신성력으로 아이에게 추가적인 조치와 함께 축복을 내려주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럼 기다려 줄게. 수아가 다 클 때까지. 언제든 괜찮으니까.”

“···정말요? 그럼 진짜 진짜 나중에도 괜찮아요?”

“그래, 대신 앞으로도 치료는 꾸준히 받아야 한다? 그럼 백 살까지도 충분할 거야.”

“어··· 배, 백 살?”

장난스럽게 던진 말에 이리저리 눈을 돌리는 걸 보니 아직 그 숫자가 정확히 가늠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치웠다.

그리고 뒤쪽에서 눈물을 글썽거리던 장년의 사내에게 눈짓하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 보호자는 얼른 아이를 안아 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 와중에도 아이는 천진하게 웃으며 팔랑팔랑 손을 흔들 뿐.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가는 아이였다.

‘예상 밖의 이벤트이긴 했지만.’

옆구리에 투구를 낀 하인리히가 다시 건틀릿을 착용하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덕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홍보를 한 것 같았다.

‘테러 때만큼 대규모는 아니어도 치료 수준은 그리 떨어지지 않겠지.’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자연스럽게 시선을 끌고 얼굴까지 공개했으니, 이제 그에게 남은 일은 하나뿐이었다.

그는 목소리에 신성력을 가득 담은 채 나직이 입을 열었다.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이세계에서 주신에게는 따로 이름 같은 게 없었다.

창조주나 마찬가지인 주신은 그저 홀로 오롯한 존재일 뿐이었으니.

하지만 차원 외적으로 보자면 그를 지칭할 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모두에게 아우테리카 님의 가호가 함께하길.”

해당 차원의 이름이야말로 주신을 지칭할 수 있는 단어 그 자체.

그렇게 신성력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새긴 하인리히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왔나.’

그리고 사방에서 몰려들기 시작한 기척을 느끼고 기운을 갈무리하며 바닥에 박혀있던 성검을 뽑아 들었다.

당장 그는 자신을 찾는 이들과 대면할 생각이 없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일단 목표는 달성했으니 더욱 극적인 순간을 위해선 더 애를 태울 필요가 있었다.

이 관심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홍보도 좀 하고.

‘무작정 설교를 늘어놓으며 포교하는 건 하책이지.’

지금 하인리히에게 쏠린 관심이라면 슬쩍슬쩍 떡밥만 흘려도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볼 것이다.

그럼 그때까지 자신이 할 일은···.

파앗—

뒤를 쫓는 이들이 들이닥치기 직전에 「축복 : 도약」을 사용한 그가 병원 로비에서 사라졌다.

이후 그가 모습을 드러낸 장소는 그곳과 한참 먼 곳에 떨어진 또 다른 병원.

그렇게 마치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몇 차례 깜짝 방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첫 방문부터 이어진 그 꾸준한 소식이 누적된 끝에.

마침내 국내 인터넷 여론이 폭발했다.


           


My Alter Ego’s Path to Greatness

My Alter Ego’s Path to Greatness

My Alter Ego is Becoming A Giant, 내 분신이 거물이 되어간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Horror of the Continent: The Immortal King Brings Despair, While the Light Knight Defies the Divine Will. In an era of chaos, numerous heroes emerge, striving to navigate the tumultuous land. However, amidst this turmoil, sudden and enigmatic forces make their appearance on the continent. Little did they know, it was all me. …To be precise, they were my alter egos sent to this other world. #Unintentionally becoming the villain of the world. #Somehow, I become both the demon king and the hero. #One person, multiple ro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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