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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87

286화.

강진후는 한국대의 전설이나 다름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였다면 모를까, 전역 후 평범한 학생에서 세계최고의 부자가 됐다. 그렇게까지 걸린 시간은 4년이었다.

고작 4년 만에 세계적인 투자자로 이름을 날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노벨평화상 수상을 앞두고 있다.

학교 정문에는 강진후, 그리고 김호민 교수의 이름이 내걸렸다.

경영학과는 완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강진후와 학교를 같이 다녔던 몇몇 학생들은 후배들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같이 강의 듣던 도중 브렉시트 터졌잖아.”

“그때 학과에서 내기했었는데, 다들 잔류에 걸 때 진후 선배는 당당하게 탈퇴에 걸었지.”

“술집에서 돈 쌓기 게임한 거 대박이었는데.”

같이 밥을 먹고, 같은 강의를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자랑거리였다.

“난 진후 선배랑 밥도 같이 먹었어.”

강진후의 얼굴을 못 본 이들은 매우 아쉬워했다.

“복학은 안 하시나?”

“에이, 이제 와서 대학 다니겠어?”

“그 정도 돈이 있으면, 아예 대학 하나 설립해도 되겠는데.”

그러던 차에 김명준 교수는 학과 학생들에게 말했다.

“월요일에 강진후가 와서 강의 한 번 하기로 했으니, 그날 시간되는 애들은 남아.”

그 말에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다른 투자자들이 자신의 투자성과의 방식을 열심히 떠들어대는 것과는 달리, 강진후는 명성에 비해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특히 강의를 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강진후가 온다는 소식에 학교 전체가 술렁거렸고, 사방에서 신청이 쇄도했다.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관심을 보이자 학교 측에서는 수강자격을 한국대 재학생으로 한정지었다. 그리고 경영학과 학생들에게 우선권을 줬다. 본인만 신청할 수 있게 했고 양도도 금지시켰지만, 자리는 순식간에 다 찼고 학생들 사이에서 암표가 돌았다.

한국대 천윤화 총장은 괜한 기대감에 휩싸였다.

‘혹시 강진후가 학교에 거액의 기부금을 내지는 않을까?’

성공한 사업가가 모교에 지원해주는 것은 대단히 아름답고 권장할 만한 일 아니겠나?

지역 정치인들은 얼굴도장이라도 찍기 위해 한국대를 기웃거렸다.

* * *

난 오랜만에 학과장실에서 김명준 교수님을 만났다.

“바쁘지 않아?”

“똑같죠 뭐.”

김명준 교수님은 웃으며 말했다.

“요즘 너 때문에 경영학과 인기가 장난 아니야. 웬만한 의대보다도 커트라인 높아진 거 알지?”

왜냐하면 취업이 엄청 잘 되기 때문. 여러 대기업에서 졸업하기 무섭게 모셔간다고 한다.

난 김명준 교수님과 함께 경영학과 과방을 둘러보고 후배들과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새파란 신입생들을 보니 왠지 나이가 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는 얼굴도 몇몇 있었다. 여학생들은 대부분 졸업했지만, 그 사이 군대를 다녀온 남학생들은 여전히 재학 중이다.

신유리도 저번 학기를 끝으로 졸업했다. 졸업하고 나서 통화 한 번 했었다. 하필 다른 일로 바빠서 만나지는 못했지만.

난 커피를 마시며 학과 후배들과 얘기를 나눴다.

학교 다니면서 뭐가 가장 힘드냐는 질문에 대부분 돈 문제를 꼽았다. 집안 환경이 좋은 학생들이야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 한두 개 정도는 하고 있다.

이유는 한 학기에 수백만 원인 등록금 때문.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대학교 등록금이 대단히 비싼 편이다. 국립대인 한국대야 그렇다 쳐도, 사립대 중에서는 1년 등록금이 1천만 원이 넘는 곳이 수두룩하다.

예전에도 이 문제가 이슈가 되자 각하께서는 ‘내가 대학을 다녀봐서 아는데,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으면 된다’라는 주옥 같은 말씀을 하셨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차피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숫자는 한정되어 있다. 피터지게 경쟁해봐야 누군가는 탈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도 장학금 한 번 못 타봤고.

그나마 집이 서울인 학생들은 상황이 좀 낫다. 그러나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서울의 엄청난 거주비용까지 감당해야 한다.

일부 학생들은 반지하도 모자라, 고시원이나 원룸텔 같은 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전에 기숙사 짓지 않았어요?”

김명준 교수님은 고개를 저었다.

“그랬는데 주변 원룸업자들이 들고 일어났지.”

원룸업자들은 시청과 구청에 몰려가서 항의했고, 표를 의식한 구청에서는 환경평가를 하네 마네 하며 허가를 미뤘다.

결국 원래 건설예정이던 규모를 절반 이하로 줄여 간신히 승인을 통과했다. 당연히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원룸업자들이 반대한다고 기숙사를 못 짓게 한다는 게 말이나 되나?

* * *

난 김명준 교수님과 함께 강당으로 이동했다.

안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입학식이나 행사 때도 이만큼은 안 모였던 것 같은데.

난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강당 위로 올라섰다.

“반갑습니다. 강진후입니다.”

엄청난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난 마이크를 붙잡고 말했다.

“먼저 이렇게 시간 내서 이 자리에 와주신 것에 대해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런 자리에 서도 딱히 할 말은 없다. 예지가 보여서 투자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래서 내가 강의나 연설 같은 걸 안 한다.

정기홍 홍보팀장에게 PPT라도 하나 만들라고 해서 신산업이라던지, 자동차산업의 변화 같은 것을 발표해볼까 생각했으나, 어차피 그 얘기가 그 얘기다.

다 아는 얘기 또 해서 뭐하겠나? 그래서 계획을 좀 바꾸었다.

“여러분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것은 돈 얘기일 겁니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 말에 학생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어떤 식으로 투자를 했고,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는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그 얘기를 또 해봐야 별 의미 없겠죠. 그래서 저보다 훨씬 뛰어나고 유명한 분을 모시고 돈과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어렵게 이 자리에 모셨으니,많은 박수 부탁드립니다.”

내 말이 끝나자 한 외국인 노인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머리가 하얗게 셌고 두꺼운 안경을 썼고, 양복과 멜빵바지를 입었다. 겉보기에 그냥 평범한 백인 할아버지처럼 생겼다.

갑작스런 상황에 사람들은 놀라 수군거렸다.

“자, 잠깐. 저 할아버지……?”

“혹시 그 사람 아니야?”

“이거 진짜야?”

난 그를 소개시켜주었다.

“버크셔캐셔 워렌 보트 회장님이십니다.”

버크셔캐셔가 소유한 보험사는 자율주행차와 무인차에 맞는 보험상품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중이다. 워렌 보트는 서성그룹 계열사인 서성생명과 서성화재와의 협력 및 지분투자를 위해 잠시 한국을 방문했고, 내가 한국대로 초청했다. 다행히 그는 내 제안에 흔쾌하게 응했다.

앞자리에 앉은 김명준 교수님과 다른 교수들은 깜짝 놀랐고, 사람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과 함께 박수를 쳤다.

짝짝짝!

“와아아아!”

마이크를 받아든 워렌 보트는 푸근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말했다.

“자, 무슨 얘기부터 시작해볼까요?”

* * *

한국대 강당에서의 나와 워렌 보트의 깜짝 대담은 그날 저녁뉴스를 장식했다. CNN과 BBC 등 외신에서도 우리의 대화 내용을 주의 깊게 다뤘다.

안타깝게도 워렌 보트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 바로 베트남으로 떠났다.

공항까지 배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연락을 받았고, 바로 서성병원으로 달려갔다.

분만실 밖에서 먼저 도착해있던 엘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어서 와요.”

“어떻게 됐어요?”

“들어간 지는 좀 됐는데, 아직이에요.”

헨리도 같이 있었다. 그는 초조한 모습이었다.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잠시 후, 택규네 부모님도 도착하셨다.

“안녕하세요.”

“아! 진후도 왔구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분만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밖으로 나왔다.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합니다.”

그 말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헨리는 죽다 살아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남편 분 먼저 들어오세요.”

“예.”

헨리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택규는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삼촌이라니! 나 아직 분유 먹이는 법도 모르는데.”

“……그걸 니가 왜 걱정해?”

“아니, 누나가 나한테 시킬 수도 있잖아.”

좀 더 시간이 지난 뒤, 우리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누나의 품에는 포대에 쌓인 아기가 안겨있었다.

현주 누나는 창백하고 지친 얼굴이었지만,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들이래.”

포대에 쌓인 아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다.

“아기 이름은 뭐예요?”

엘리의 물음에 현주 누나가 대답했다.

“로건. 로건 골드맨.”

“예쁜 이름이네요.”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으니, 이 아이는 당연히 이중국적이다.

택규가 물었다.

“그럼 한국 이름은?”

“건이라고 부르려고.”

현주 누나의 성을 따면, 오건이 되는 건가?

아기를 품에 안은 현주 누나는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헨리는 현주 누나의 손을 붙잡은 채 사랑하는 이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수십조 원을 버는 것보다 한 생명을 만들어낸다는 게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 * *

현주 누나가 무사히 출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방에서 축하인사가 쏟아졌다. 임진용 회장과 임수미 사장은 병원에 다녀갔고, 헨리의 부모님과 제임스는 아기를 보기 위해 전용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왔다.

현주 누나는 며칠 더 병원에 있다가 퇴원했다. 산후조리원에 들어가는 대신 집에서 쉬며 관리를 받기로 했다.

내년까지 육아휴직을 신청했고, 본사에서는 전문경영인을 파견했다. 이미 출산 전에 중요한 일은 다 끝내놓았고, 업무를 분산시켜놓은 만큼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난 헨리가 내민 봉투를 받아들었다. 다름 아닌 사직서였다.

“사유는요?”

“육아입니다.”

“붙잡아도 소용없겠죠?”

“붙잡을 겁니까?”

“아니요.”

떠나는 직원을 깔끔하게 보내주는 것도 경영자의 미덕이겠지.

헨리는 골든게이트의 후계자. 이제 원래 위치로 돌아갈 때다. 좀 쉰 다음 골든게이트로 복귀하게 될 것이다.

난 손을 내밀었고, 헨리는 내 손을 굳게 잡았다.

“그동안 즐거웠어요.”

“같이 일해서 영광이었습니다.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는 OTK컴퍼니의 첫 직원이었다. 그런 만큼 감회가 남달랐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택규가 말했다.

“다시는 못 볼 사이인 줄.”

“…….”

뭐, 한 동네에 사니 앞으로도 자주 보겠지.

* * *

기쁜 소식은 연달아 전해졌다. 나와 김호민 교수는 노벨평화상과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어머니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세상에! 우리 아들이 노벨상이라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래? 확실히 정해진 거 맞지? 나중에 안 준다고 말 바꾸는 건 아니지?”

“설마요.”

만에 하나 그럴까봐 백악관에서는 재빨리 성명을 발표했다.

이제까지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국 대통령은 몇 명 있었다. 그러나 전부 민주당 출신이었고, 공화당 출신 대통령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공화당은 아주 신이 났다.

유럽을 순방 중이던 허창민 대통령은 축하인사를 전해왔다.

“강진후 대표와 김호민 연구소장의 노벨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는 우리 국민들 모두의 기쁨입니다.”

자유국민당도 국민여론을 의식한 듯 슬쩍 태도를 바꾸었다.

이렇게 되자 보수단체가 주축이 돼 만들어진 ‘강진후 노벨상 수상 저지 범국민 행동위원회’는 슬그머니 ‘로날드 대통령님 노벨평화상 단독 수상 추진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는 일은 똑같았다.

“빅원을 성공적으로 대비해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낸 것은 오직 로날드 대통령님의 업적이다! 따라서 노벨평화상은 반드시 로날드 대통령님 혼자 수상해야 한다!”

……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난 모한 교수와 통화했다.

[노벨상은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꿈꾸는 상이지. 그런데 학문적 업적으로 받는 게 아니라, 평화상을 받게 될 줄은 전혀 몰랐네.]

난 웃으며 말했다.

“그게 학문적 업적 아니겠어요?”

그가 빅원에 대해 연구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을 구할 수도 없었겠지.

캘리포니아 공대는 이제까지 3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냈다. 학생과 교수 숫자를 생각한다면, 이는 말도 안 되는 비율이다.

참고로 인구대비 노벨상 수상자가 가장 많은 나라 역시 미국이다.

미국인이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대단히 똑똑하고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엄청나게 투자를 한 것은 사실이다.

산업이 변화하는 지금 같은 시기에는 더 많은 인재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도 그만큼 투자를 해야 한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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