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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88

복수자 (3)

“강민희를?”

나는 조금 놀라서 되물었다.

‘서립의 몸으로는 흑색귀골곡을 수소문해도, 서립 수준으로는 만나기 힘들단 정보밖에 없었는데….’

아무래도 명귀계에 가 있다는 제자들이 강민희의 소식을 알고 있다는 걸 보아, 어쩌면 강민희는 명귀계에 있을지도 몰랐다.

“혹시 그녀가 명귀계에 있는 건가?”

“아니. 정확히는 광한계에서 명귀계로 향하는 ‘길’에 그녀가 있다더군.”

“명귀계로 향하는 통로라….”

‘그런 건 또 처음 듣는군.’

진마계야 광한계와 인접한 계면이기에 진마계로 향하는 통로는 꽤 많았다.

각 대형 종족마다 진마계의 입구가 한둘쯤은 있을 정도로 인접한 계면이 진마계일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고력, 자금, 명귀 등의 중경계는 하나같이 상당히 거리가 멀었기에 정식 통로 같은 게 있기가 힘들었다.

내 의문을 이해한 듯 전명훈이 추가로 설명을 해 주었다.

“오직 섭명함을 통해서만 열리는, 굉장히 특이한 통로라더군. 명귀계 제자들이 수신해 온 정보에 의하면, 정식 통로라기보단 일종의 ‘샛길’이라고 한다.”

“샛길?”

차원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면 그게 차원의 입구였다.

그런데 어떻게 차원에 ‘샛길’ 같은 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뭐, 자세히 알 필요야 없겠지. 어차피 내가 샛길을 만들어 댈 것도 아니고.’

“흐음… 그래서, 네 말은 강민희를 통해 ‘샛길’을 이용하자는 건가?”

“그래. 네가 강민희에게 연락을 넣어 봐라. 옛 동료들이 부탁하는데 들어주지 않겠나?”

“으음… 왜 나더러 연락을 넣으라는 거지? 네가 연락하면 되지 않나?”

그 말에 전명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원영기에 오르면서 주마등을 봤다. 대부분 빠르게 지나쳐서 전부 기억나진 않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기억이 머리에 또렷하게 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회사 시절 기억도 그중에 있었는데, 회사에서 강민희는 날 엄청 싫어했더군.”

‘하긴 부서에서 전명훈이랑 겉으로나마 제일 친했던 건 오혜서밖에 없긴 했지.’

그러나 이어진 녀석의 말에 나는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회사 시절 기억 중에, 입사 초기에는 너랑 강민희랑 제일 친하게 지내던 기억이 있었단 말이지…. 등선향에서도 네 말에 맞장구를 잘 쳐 줬고. 그래서 아마 친하게 지내던 네 말이라면 잘 들어주지 않겠냐?”

“…내가 강민희랑 친하게…. 그래, 입사 초기 땐 그렇긴 했지.”

“그러니까 네가 부탁해 달라는 거다. 내가 다시 연락하면 강민희 성격에 욕이나 바가지로 얻어먹을 수 있으니까.”

“….”

‘아마 내가 연락하면 욕을 바가지로 먹이는 게 아니라, 바로 연락을 끊어 버릴 것 같은데.’

그러나 나는 생각을 고쳐 보았다.

‘아니지, 벌써 백 년 가까이 지난 일인데 강민희가 아직도 나를 껄끄러워하려나?’

내게는 너무 오래된 일이라 감상이 희미해져 있었지만, 정작 강민희는 나를 어찌 생각할지 몰라서 내 손으로 연락하기가 껄끄러웠다.

그렇다고 전명훈에게 강민희 허락 없이 그때 일을 얘기하는 것도 이상했다.

‘태수의 자리를 받았으니 흑색귀골곡 측에 공식적으로 연락하면 만나 줄 것 같긴 한데….’

문득 강민희가 정말로 나에 대한 감정이 사그라들었을지, 사그라들지 않았을지.

그것이 궁금해졌다.

‘…한번, 연락해 볼까?’

나는 전명훈의 설득을 듣고 내가 강민희에게 연락을 할지를 고민해 보았다.

입사 초.

사실 나와 강민희는 부서 사람들 몰래 사내 연애를 했었다.

* * *

깜빡.

나는 눈을 떴다.

본체도, 나도 강민희에 대해서만큼은 공통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강민희는 나를 지금 어떻게 생각하려나?’

강민희와 나는 기묘한 관계였다.

처음에는 같은 사회 초년생에, 입사 동기, 그리고 우리 둘 다 ‘사내 연애’라는 것에 기묘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첫 회식 후 집 가는 길에 ‘한번 해 볼까?’라는 생각으로 서로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3주 만에 헤어졌다.

우리는 끔찍하게 안 맞는 유형이었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대다수가 그렇듯, 우리는 그 이후로 급격하게 어색해졌다.

같은 부서에, 비록 3주밖에 안 되는 연애 기간이라지만 전 남자 친구, 전 여자 친구가 한 공간에 공존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일이었다.

강민희는 공적으로는 밝은 모습을 보일 줄 알았지만 사적으로는 친해지기 힘든 유형이었기에 회사에 별 애정을 못 느끼고 있었고, 나는 그 반대였기에 전명훈의 괴롭힘에도 현석 형님과 기타 부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간단하고도 어색한 논의 후, 결국 강민희가 사표를 쓰기로 했다.

그런데 그녀가 사표를 쓰기 전, 강민희가 심심풀이로 작성한 프로젝트 기획서가 SJD 컴퍼니 사장의 눈에 우연히 들었고, 기획서를 눈여겨본 사장은 굉장히 놀라며 공개적으로 강민희를 불러 칭찬하고 초봉을 3호봉으로 높여 주었다.

그녀는 빠르게 주임 자리가 예정되었고,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그녀는 나와의 어색한 관계를 그냥 감내하기로 한 후, 그냥 부서 이동을 목표로 하며 남아 있기로 했다.

…물론 부서 이동은 전명훈이 부린 수작 때문에 실패했지만.

‘나도 회사에 애정이 생기던 단계기도 했고, 또 여기서 나가면 다음 취업이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서 일단 남아 있기로 했었고….’

그렇게 우리는 어색하게 지냈고, 강민희는 나보다 빨리 승진을 하며, 어느 순간부터 나를 무시하고, 싫어하는 티를 대놓고 내기 시작했다.

어색한 걸 넘어, 우리는 정말로 사사건건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었다. 자리가 가까운 편이었기에 원래는 내가 가끔 업무상 그녀에게 뭔가를 물어봤지만, 나도 어느 순간부터 강민희보다는 현석 형님을 찾아가서 물어보곤 했다.

거기다가 사귄 것 역시 반쯤은 사내 연애에 대한 동경, 반쯤은 첫 회식 후 들떴던 마음으로 사귀었던 것이기에 서로에 대한 애정도 없었다.

우리는 말 그대로 견원지간이 되었었다.

‘돌이켜 보면, 전명훈에 대한 괴롭힘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내가 정신력이 뛰어나서 같은 것보단, 강민희와의 숨 막히는 관계에 더더욱 신경이 쏠려서 전명훈에게는 별로 관심이 안 갔던 것일지도.’

그런 나쁜 사이는 쭉 이어져, 심지어 등선향에서도 그녀는 겉으로는 나를 대할 때 웃고 있었지만 항상 뭔가를 해야 할 때는 나와 떨어져 있었다.

첫날 오혜서와 김연은 나와 함께 묵을 장소를 찾았고, 강민희는 나와 떨어져 다른 이들과 함께 차를 찾아다니러 간 것도 그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추억이군.”

나는 내 숙소로 돌아와서 피식 웃었다.

그것도 벌써 몇천 년 전의 추억.

말 그대로 핏덩이나 다름없을 때의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강민희는 고작 100여 년 전의 일이기에 어찌 생각할지 알 수 없었다.

“….”

나는 잠시 벽에 기댄 채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다, 일단 본체를 통해 강민희와 바로 소통하는 건 미루기로 했다.

‘일단, 서립으로 먼저 정보를 조금 모아 보지.’

예전 성격 그대로에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똑같다면, 나에 대해서도 똑같이 생각할 게 뻔했다.

만약 이전에 비해 달라진 게 있다면 나에 대해서도 조금 생각이 달라졌을 확률도 있었다.

나는 바로 옆 숙소로 가서 흑색귀골곡의 장로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후학 서립이 흑색귀골곡의 장로님들께 인사를 올립니다.”

“오냐, 예의 바른 녀석이구나.”

“허허, 시험을 볼 때 다 봤다. 저주에 한해서는 음혼귀시문 잡것들보다 훨씬 뛰어나더구나. 이런 인재가 흑색귀골곡에 들어오다니….”

그들은 내 어깨를 두드리려 했고, 나는 은근슬쩍 어깨를 피하며 질문했다.

“그나저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후학이 처음 들어와서 모르는 게 많은데, 선배님들께 질문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내 인사에 흑색귀골곡의 천인기 저주술사 둘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흠, 신입 음혼 제자라면 귀왕 한 분을 임시 귀려로 받지 않았느냐?”

“이보시오, 선배. 후배에게 흑색귀골곡의 기본적인 것들을 알려 주시지 않으셨소?”

그들은 체내에 있는 비율을 인식하며 물었다.

하지만 나도 비율에게 묻고 싶지 않아 안 물었던 게 아니었다.

비율을 받고 시간이 날 때에 강민희에 대해서도 질문했지만, 비율은 ‘이름은 들어 봤다’라고 답할 뿐이었다.

‘비율은 애초에 꽤 오래된 영혼이라서 최근 들어온 제자나 최근 흑색귀골곡의 운영에는 몇몇 사건을 제하고는 관심이 없었다고 했으니….’

[아, 후배님들. 오해하지 마시게. 이 늙은이는 아무래도 음혼귀시문 병합 같은 문파의 숙원 말고 문파의 대소사는 그렇게 관심이 없어서 말일세. 너무 예전의 사람이었는지라….]

“음, 그렇군. 오래되신 귀왕이시라면 그러실 수 있지.”

천인기 장로.

위혼과 급운은 내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며 말했다.

“우선, 현 광한계 흑색귀골곡의 최고 지도자는 어떤 분이십니까?”

“흐음, 어떤 분이시냐라…. 경지가 가장 높으신 건 사축기 대원만에서, 반보 합체기에 걸쳐계신 계류 흑색 원로님일세. 3천 년 전 돌아가셔서 귀왕(鬼王)의 형태로 대묘역에 봉안되어 계시지. 합체기를 눈앞에 두고 계시지만, 이미 인족의 육신을 버린 데에다 합체기에 이르시면 명귀계 본종으로 건너가실 예정이라 들어서 사실상 없는 분이나 다름없으시고….”

“그분 다음으로는 사축기 중기이신 허위 흑색 원로님, 사축기 중기이신 허령 원로님, 사축기 초기이신 허곽 원로님들이 문파의 최고 수뇌부이시네. 사실상 그분들이 문파의 최고 어르신들이라고 할 수 있지.”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설명을 들어보니, 흑색귀골곡은 금신천뢰문이나 창천개벽문처럼 사조 한 명이 모든 걸 독단으로 결정하는 게 아닌, 흑색 원로 여럿이 모여 일을 처리하는 과두정 체계인 듯싶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문파의 중진 분들은 어떤 분들이 계십니까?”

“뭐, 음혼각, 귀혼각, 시혼각, 문혼각, 집무각 등 각 각주들이 흑색 원로님들의 밑에 자리하고 있지.”

음혼각은 섭명함의 관리와 항해를.

귀혼각은 공법과 귀왕들의 관리 및 명계를 향한 제사와 명귀계 본종과의 소통을.

시혼각은 문파의 기율과 집법을.

문혼각은 입곡소 관리나 문파의 전체적인 행정을.

집무각은 문파의 여러 문제를 임무 형식으로 배당하고 보상을 관리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장로님들이 생각하시기에는, 최근 들어온 흑색귀골곡 제자 중 어떤 이들이 가장 눈에 띄십니까?”

내 질문에 그들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음… 제자는 아니지만, 최근 들어온 이들이라고 치면 사실 한 명밖에 없지.”

“그러게 말일세. 사실 그분 말고도 쟁쟁한 이들이 많이 들어왔지만 가장 뛰어난 건 그분이시니….”

나는 위혼과 급운의 의념을 읽었다.

그들은 명백히 존경심을 품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현 귀혼각 부각주, 천인기 대원만 수행의 강민희 원로님이 그분일세.”

“대단하신 분이시지. 수선을 시작한 지 백 년이 채 안 되었는데 벌써 천인기 대원만에서 사축기로 넘어가시려 한다 하시니.”

“호오… 100세도 안 되셨단 겁니까?”

“그래. 굉장히 창창하신 분이실세.”

나는 강민희가 나오자 눈을 빛내며 그녀에 대해 질문했다.

“놀라우시군요…. 혹시 흑색귀골곡의 음혼각, 귀혼각 등에 들어가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오대전각에 들어가려면 우선 공적치가 필요하지. 공적치를 천 점 이상 모으면 오대전각 중 한 곳을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네.”

“그게 아니라면 천인기 장로가 되면 각 소속의 당주(堂主)가 되어 들어갈 수도 있지.”

‘공적치를 모으거나 천인기가 되면 들어갈 수 있다라….’

나는 일단 최대한 빨리 공적치를 모으거나 천인기가 되자고 생각했다.

강민희에 대한 정보나 일화 몇 가지를 들은 나는 내 숙소로 돌아와 생각했다.

‘강민희는, 100년 전과 변한 게 없다.’

그렇다면 높은 확률로 나에 대한 껄끄러움과 어색함 역시 상당히 남아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럼 역시 전명훈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지.’

* * *

“…내가 강민희한테 연락하라고?”

“그래. 너도 알겠지만 등선향에 떨어지기 1년 반 전, 나랑 강민희는 굉장히 싸웠던 일이 있었지.”

“…아! 그거군. 부장님한테 들은 적 있긴 하네. 사무실에서 둘이 언성 높여서 싸웠다고 했었지?”

“그래… 그런데 생각해 보니 업무 시간에 일어난 일인데 왜 넌 들어서 알고 있는 거냐?”

“흐흠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잖냐. 그래도 내가 예전에 강민희가 부서 이동하려는 거 삼촌한테 막아 달라고 한 걸 안 이후로는 나랑은 거의 상종도 안 했었는데… 내가 연락하라고?”

나는 이 녀석의 답 없음에 한숨을 쉬었다.

‘나랑 전명훈이라… 강민희에게는 최악의 조합이겠군.’

그녀의 성격이라면, 우리 둘이 ‘샛길’을 이용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면 정색을 하며 안된다고 할 터였다.

가장 싫어하던 둘이 부탁하는데, 뭐가 부족한 게 있다고 들어준단 말인가.

‘그렇다고 고작 금신천뢰문 제자 두셋 때문에 그녀에게 강제로 샛길의 개방을 명하고 싶지도 않고….’

나는 뭔가 생각을 하며 위화감이 짙어지는 느낌이었지만 무시했다.

“…뭐, 할 수 없지. 정 그러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말해 보도록 하지.”

“누구를?”

“김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차피 구하러 갈 생각이었다만 조금 더 일찍 가야겠군. 이젠 도망치는 게 어렵지도 않을테니.’

“따라와라. 괴군을 만나러 간다.”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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