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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89

287. 약혼 Ep – 卵의 앤 아비커

만 년의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요새가 세 개 있다.

아카이아 제국의 남부를 총괄하며 제2의 수도로 작동했던 바도보나.

토들러 아키우넨을 기리는, 아즈라 성인으로 인하여 중축된 토리돔.

그리고 마누비울이다.

‘마법 전쟁’ 이후 아스란 왕국이 건설한 요새 마누비울은 철저히 대(對)마법전을 상정해 지어졌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 신비로운 광물, 마누비움으로 성벽 전체를 쌓아 올렸을 뿐만 아니라 운하(運河)를 건설해 적진을 가르게 하였다.

상황에 따라 물난리를 일으키거나, 운하를 타고 기습 공격을 감행하기 위함이다.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공격받지 않았지만, 난공불락의 요새로 지어진 마누비울은 수 세기를 거쳐 아스터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구일 전쟁이 일단락된 평화 협정에서 아스란 왕국의 유구한 수도, 바르나울을 아스틴 왕국이 가져가기로 합의한 것이다.

아스터 왕국은 새로운 수도를 만들어야 했다.

여러 대도시가 물망에 올랐고, 개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경제적이었을 텐데도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왕, 페트라 드 클라우스는 도시가 아닌 요새를 선택했다.

거센 반대에 부닥쳤으나, 왕의 고집으로 함께 시찰을 나온 귀족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요새를 멀리, 둥글게 감싸고 도는 운하와 눈부신 백색의 요새.

마누비울은 아름다웠다.

거대한 백색 성벽은 기포가 낀 폭포수를 연상케 했고, 강줄기를 끌어와 건설된 운하는 새 수도의 식수를 공급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페트라 드 클라우스의 감언이설과 마누비울의 아름다움에 취한 귀족들은 마음을 돌렸다. 이곳이 자신들의 가문과 왕국 천 년의 역사가 새로 쓰여질 곳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대단한 오판이었다.

말들이 탈진하도록 하루를 꼬박 달렸다. 레이가 도착했을 때, 마누비울은 백색이 아닌 흉악한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도시를 크게 감싼 운하는 검은색.

지옥에나 있을 법한 황천이 되어 마누비울의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시민들은 앞을 다투어 달아나려 하였는데, 난리가 터진 지 하루, 그제야 강을 건너려 한 그들은 욕심이 많은 이들이었다. 세간살이를 잔뜩 챙겨서 도망치려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었다.

[ 전장의 부름 ]

마누비울을 둘러싼 외각에 무수한 첨탑이 솟아나 있다.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깃발이 오르고, 미처 달아나지 못해 전장의 부름을 받은 시민은 싸워야 했다. 누구든 한 명을 죽여 붉은색 승자의 첨탑에 공양하든가, 그럴 자신이 없으면 패자의 첨탑에 가서 할파스의 병사로 입대해야만 죽임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지 않고 강을 건너려 하거든 이마에 찍힌 ‘병(兵)’자 낙인이 타들어 갔다.

“미, 미안해요.”

입대하지도 않고, 강을 건너지도 않는 방법 또한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흉악하게 빛나는 요새, 도시를 뒤덮은 전운(戰雲)이 그들을 미치게 했다.

눈에 불을 켜고 저보다 약한 사람을 찾아다니는지라 강자는 배회하고 약자는 군인이 되었다. 약자로 이루어진 그 빈약한 군대는 꾸역꾸역, 마누비울 요새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를 지켜본 아르펜은 한 마디로 소감을 밝혔다.

“개판이네.”

“우리도 가야 합니다. 지금 파블로 드 클라우스 왕자가 요새 안에 있습니다. 분명 싸우고 있을 터이니, 그를 도와야 합니다.”

“자넨 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

“뭐, 됐어. 하지만 우리가 꼭 들어가야 할까? 이미 난리가 났는데, 십자교회가 보낸 성전사단이 오기를 기다리는 편이 낫지 않겠어?”

“그럼 너무 늦습니다.”

딱히 영웅이 되고픈 건 아니지만, 레이는 죽어가는 시민들을 구해야 한다는 것처럼 단호히 말했다.

사실 기다리는 게 더 나은 선택이다. 그도 아르펜과 같게 생각했다.

하지만 몇 달씩이나 시간이 끌리면 저 요새는 할파스의 차지가 될 것이었다. 그럼 성전사단만으로는 부족하고, 군대가 동원돼야 한다. 성녀까지 호출돼야 할지도 모르고.

그게 뭐 대수냐 싶겠지만… 맞다.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정체가 탄로 난 이상 할파스는 죽은 목숨이었다.

신력 수급이 원활할 리 없기 때문이다. 당장은 온 세상을 전쟁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을 것처럼 기세등등하지만, 녀석은 곧 겨울철의 빵처럼 말라붙을 것이고, 토벌되리라.

해서 한 반년쯤 지체된다는 것 외에는 문제 될 것이 없었는데, 안타깝게도 반년은 레이가 기다릴 수가 없는, 지나치게 긴 세월이었다.

그 안에 레라가 기사가 되어버릴 거다. 그녀의 실력은 이미 기사가 되고도 남았고, 기사가 된 레라는 내게 결혼하자 할 터였다. 어제부터, 벌써 그럴 기미가 보였다.

그때 가면 과연 내가 무슨 생각을 할는지…

레이는 자신을 믿지 않았다. 난 회차를 낭비하게 되더라도 레라의 청혼을 거절하지 못할 거다. 늘 그랬듯이.

주신이 우리에게 바라는 게 훤히 드러났지만, [ 레나 키우기 ]는 여전히 우리의 목줄을 죄고 있었다.

레나를 키워라. 수호자 퀘스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너와 찰떡같이 붙은 그녀를 잃고 싶지 않다면. 하지만 직업이 결정되면 엔딩이다.

결혼해도 엔딩이고, 둘 중 하나라도 죽으면 당연히 엔딩이고, 관계가 깨져도 엔딩이고, 레라가 절망해서 꿈을 포기해도 엔딩이다.

회차 횟수는 제약돼있고, 목숨은 5/6, 남은 여유분이 하나뿐이다. 생각만으로도 숨통이 막혔다.

이번에 할파스를 처리하지 못하면 말파스부터 다시 잡아야 하는 것이다. 엔딩이 난 다음에 잡는 건 업적에 포함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성녀까지 호출되어 일이 커지면 벨리타 왕국에서 웅크리고 있는 아스타로트에게 어떤 영향이 갈는지… 그것도 걱정이었다.

지난 회차와 같은 엔딩을 맞을지도 모를 일이라, 레이는 파블로 드 클라우스 왕자를 도우러 가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르펜은 쯥쯥, 혀로 이를 헹구며 난장판이 된 마누비울을 바라보았다. 고민하는 듯하다가 기사들을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우린 저기에 돌입할 거다. 무서워서 도망쳐야겠다는 겁쟁이가 있으면 지금 말해라. 없지? 그럼 출발.”

“…”

“…”

일언반구 할 기회 따위는 주지도 않고 아르펜이 출발했다. 그의 귓가엔 말파스와 조우했을 때처럼

– 죽여라.

라는 울림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기사들은 기회도 없었지만, ‘저흰 당신이 더 무서운뎁쇼.’ 군말 없이 탈진한 말을 다독여 강을 건넜다.

들어서니 더 가관이었다.

시민들 다수는 공포에 질렸음에도 약해 보이지 않으려고 그렇지 않은 척, 무기를 험하게 휘둘렀다. 전장에서 흔히 보이는 부류다.

하지만 일반적인 전장과는 다르게 그들에겐 가족이 딸려 있었다.

힘센 가장이든 부부든, 나이 든 부모를 모시는 아들이건 시집간 딸이건, 사랑하는 자식과 부모를 지키려 필사적이었다. 저걸 두고 감히 꼴사납다고 평가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다 보니 바깥에서 본 것에 비하면 의외로 사망자가 많지 않았다. 양아치 같은 것들, 혹은 레티이 대회에 참가하러 온 전사들이나 지킬 사람 없이 떠돌아다니는 용병과 행상인들이 문제였는데 그들은 아무나 죽여 공양하면 달아날 수 있으므로 외곽에서 소요를 일으키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한들 감히 기사단을 건드릴 수 있겠는가. 레이와 레라를 포함한 기사단은 아무런 제제 없이 마누비울 외각 대로를 가로질렀다.

지나가면서 살인을 저지르려는 사람에게 가끔 으름장을 놓았고, 이내 붉게 빛나는 성문에 도달하였다.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회색빛 창을 든 시민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조잡한 회색 투구를 쓴 그들은 스스로 몸을 지킬 능력이 안 된다고 판단해 검은색 패자(敗者)의 첨탑으로 달려간 이들이었는데, 그게 최악의 선택이었다.

몽롱한 눈동자, 말파스의 병사가 된 것이다. 대부분이 부녀자인 병사들이 말파스에게서 받은 창을 들곤 겁도 없이 달려들었다.

“죽여. 별도리가 있나.”

아르펜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는 좀 잔인한 구석이 있었다.

피보라를 일으키며, 기사단이 문을 통과했다. 성내로 들어서니 그제야 마누비울의 수비병들이 보였다.

“너희들은 뭐… 기사님이십니까?”

“아스틴 왕국의 제1 기사단이다. 왕자님은 어디에 계시냐.”

병사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뭔가 우물쭈물하기에 아르펜 알바세테가 다그쳤다.

“왕자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서, 설마 아스틴 왕국까지… 그 전에 답하십시오. 당신들은 누구의 편입니까?”

아르펜은 말을 주의 깊게 뱉어야 함을 느꼈다. 잠시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지금 내편 네편을 가릴 때인 줄 아느냐. 우린 누구의 편도 아니다! 이 소란을 일으킨 놈을 응징하러 왔다!”

“저, 정말이십니까? 그럼 왕자님은 왜 찾으신 겁니까.”

“너희 왕이 이 소란을 일으킨 게 아니냐?”

“…네? 아니요. 저희는 반역을 저지른 왕자님이 대란을 일으킨 거로 압니다만… 엊저녁에 공문이 떨어졌습니다. 파블로 드 클라우스 왕자님이 자코브 모드레드 백작의 꼬임에 넘어가 반란을 일으켰다고요. 해서 경비를 강화하였는데, 왕궁이 공격당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 난리가 터졌습니다.”

진짜 개판이구나.

마누비울의 수비병들은 피아조차 식별하고 있지 못했다. 말다툼할 시간이 없었으므로 아르펜이 우격다짐했다.

“누가 소란을 일으켰건, 상관없다. 길을 비켜라. 우리가 왕궁에 가서 해결하겠다.”

“하, 하지만 당신들이 누구의 편인지…”

“하지만은 뭐가 하지만이야! 지금 사람들 죽어 나가는 거 안 보여? 시간 없으니까 비켜!”

“그럴 수 없습… 엌! 소… 소…”

아르펜이 기어이 검을 뽑았다. 불타오르는 오러블레이드를 과시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래. 이 몸이 아스틴 왕국의 소드마스터, 아르펜 알바세테 남작이시다. 왕이건 왕자건, 소란을 일으킨 놈을 때려잡아 줄 테니… 당장 비켯!”

곳곳에서 벌어지는 시가전을 무시하며 기사단은 왕궁을 향해 달렸다.

왕궁은 작았다.

여태껏 레오들이 본 그 어떤 왕궁보다 작아서 오르빌에 흔히 깔린 대귀족의 저택만도 못하였는데, 마누비울이 애당초 수도로 기능할 걸 상정해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왕이 거하는 곳이라 많은 증축이 이뤄졌다. 요새의 사령탑이었던 것이 주위 땅을 되는대로 잡아먹고, 왕의 권위와 보호를 위해 두툼한 벽을 둘렀다.

비좁은 대지와 두꺼운 벽, 내부가 가능한 한 넓어야 한다는 조건들로 인해 마누비울 왕궁은 성곽과 궁이 결합된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수도교회의 본당(本堂)을 연상케 하는 그 궁전 역시 붉게 빛나고 있었다.

레이는 좀 불안해졌다.

마누비울 성벽도 그러더니만, 이게 왜 빛나는 거지?

일단은 불안감을 뒤로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궁을 지켜야 할 근위병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는데, 왕성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레이는 몸에 힘이 붙는 것을 느꼈다.

[ 업적 : 첫 왕궁 입성 – 왕궁에서 더 강해집니다. ]

아주 옛날에, 레안 드 예리엘이 루티나 왕성에 들어서면서 받은 업적이었다. 여타 다른 레오들의 경험과 자신의 과거사를 구분해 인식하는 편인 레이 덱스터는 이를 다소 생경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온통 붉게 빛나는 회랑을 지나친 레이는 또 다른 업적이 작동하는 것을 느꼈다. 지난번에 말파스를 만났을 때도 작동한 그 업적은

[ 업적 : 아신(兒神) – 아신과 사도(使徒)를 상대로 더 강해집니다. ]

마찬가지로 아주 옛날, 레안 드 예리엘이 오리아스와 조우해 얻어낸 업적이었다. 이윽고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해진 레이는 (바르바토스의 사도였을 적은 논외다) 제가 상대해야 할 적을 발견하곤 낮게 신음했다.

눈 여덟 개가 달린 검은색 까마귀.

할파스가 높이가 근 오백 피트(feet, 150m)에 달하는 전당(殿堂)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열댓 층의 회랑으로 둘러싸인 전당을 누비며, 저를 잡겠다고 달려온 기사를 피하기도, 쪼아먹기도 하였다.

녀석은 화가 많이 난 듯했다. 레이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전당 바닥에는 알처럼 생긴 것이 깨져서 널브러져 있었다. 그 밑에는 턱이 없는 기사가 쓰러져 있었는데, 아르펜이 놀라 소리쳤다.

“자코브! 아오! 이 새끼는 왜 여기서 죽어있는 거야? 왕이 악신이니까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했구만.”

한편 자코브의 얼굴을 모르는 레이는 다른 사람을 보곤 놀라 있었다. 깨진 알 안쪽에서 반쯤 걸쳐져 죽어있는 여인. 깃털 머리끈을 하고, 가슴에 소드 브레이커가 박힌 그녀는…

란의 여동생, 앤 아비커였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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