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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91

289. 약혼 Ep – 마르하스

“불을 지켜야 해!”

하지만 어떻게?

어느 기사가 다급히 외쳤으나 대안이 없었다. 이리저리 빠르게 날아다니는 할파스를 저지할 방법도, 거센 날갯짓에 허망하게 꺼지는 불을 막을 방도도 없었다. 몸으로 막아도 바람은 손가락 틈새를 파고들었다.

눈이 뿌옇게 흐려진 왕자를 대신해 레이가 소리쳤다.

“방에서 물건을 끄집어내라! 회랑 복도로 가져와 불을 붙이고, 호롱불 기름을 쏟아라! 시야가 차단돼서는 안 된다!”

기사들은 그리하였다. 급히 수십 명이 달려가 왕궁의 가구를 나르고, 불을 붙였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렸다. 더군다나 왕국 기사가 보급받는 부싯돌, 황철석(黃鐵石)을 탁탁 튀겨 불을 붙여도 잘 타오르지 않았는데, 목재의 질이 너무 좋아서였다.

북부의 혹독한 추위에 십수 년을 건조하고, 발레이나(balaena, 고래)의 타액인 암베그리스(ambergris)를 몇 겹이나 발라 만든 가구들.

암베그리스를 칠한 목재는 불이 붙지 않았다. 동화와 같은 무게로 교환될 만큼 값비싸고, 왕궁의 품위를 한껏 드높이는 것임이 분명하지만 지금은 야속할 따름이었다.

기사들은 커튼과 옷가지 따위를 쌓고, 호롱에 담긴 기름을 부어 불붙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전당은 불이 군데군데 피어오르는 곳을 제외하면 어둠에 휩싸였다. 그때, 할파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들, 너는 특별히 살려주겠다. 밖으로 가라. 가서 아이셀 왕국의 공주마저 마다하고 네가 사랑한 그 평민 계집애를 죽여라. 그리하면 넌 풀려나리라, 까악!

레이가 왕자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건 어둠뿐이고, 레이의 머리 위에 뜬 숫자만 줄어들었다.

어두워서 소리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기사들은 깜박깜박 할파스의 말을 듣고 말았다.

– 깍깍깍깍깍깍깍! 모두 뛰어내려라!

어두컴컴한 전당에 육편이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기사들은 점점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명령 체계도 박살이 나고, 어둠은 그들에게 달콤히 속삭였다.

달아나라고.

너 하나쯤 달아나도 아무도 모를 거라고.

레이는 층층에 있던 기사의 수가 많이 줄었음을 느꼈다. 불붙일 것을 가져오겠다던 이들이 돌아오지 않아 전당은 더 빠르게 어둠과 고요에 휩싸여갔다. 퍼덕, 날갯짓이 들렸다.

– 깍깍깍깍! 여기 있었구나, 멍청한 소드마스터. 난 네 앞에 있다. 아까처럼 다시 뛰어보겠느냐? 까악!

“제기랄! 비겁한 새끼. 이리 안 내려와? 정정당당하게 붙자!”

– 네가 날아와라. 정정당당하게. 난 여기에 있을 테니까. 까악!

그들은 아래 3층 즈음에 있었다. 레이는 아르펜이 받았을 숫자를 짐작하며 소리쳤다.

“아르펜 남작님! 녀석의 말을 들어선 안 됩니다!”

“이 새끼가 열받게 하잖아!”

– 깍깍! 깍깍깍깍깍! 보니 네놈도 참 우습구나. 남작이라고? 야만인이 출세했구나. 그래서 옷을 그딴 꼴로 입고 다니는 것이냐? 넌 그냥 야만인으로 사는 게 어울린다. 네놈도 알고 있겠지? 까악!

“안 들린다! 난 안 들린… 어?”

– 까악?

뭐지? 갑자기 아래가 조용해졌다.

레이는 아르펜마저 할파스에게 넘어간 줄 알고 심장이 덜컥했으나, 이윽고 들려온 건 그의 화통한 웃음소리였다.

“크핫핫핫핫핫핫! 뭐야,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 이, 이런…

주신의 선택을 받아 소드마스터가 된 인물이기 때문일까. 아르펜은 ‘1’을 받고도 멀쩡했다. 되려 머리에 뜬 숫자가 허망하게 사라져버리자 할파스는 부리를 딱딱 부닥치며 역정을 냈다.

– 더러운 주신 놈이 별 짓거리를 다 해놨구나. 하긴… 자코브 그 녀석도 [매혹]이 걸리지 않았지. 까악! 그럼 넌 일단 내버려 두고…

할파스는 목표를 바꿨다. 소드마스터는 마지막에 처리하기로 마음먹곤 위로 날아올랐다. 난간에 기대어 있던 레이는 눈앞의 어둠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훅- 끼쳐오는 깃털 냄새. 할파스가 코앞에 있다.

그의 머리에 뜬 숫자는 그새 ‘2’가 되어 있었다. 레이는 아무것도 듣지 않으려 했다. 놈이 공격하면 막고, 주둥이를 열거든 신경을 분산하려 하였는데, 할파스는 영악했다.

– 레라였지? 넌 네 연인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냐? 까악!

“앗! 레라!”

할파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내 부리를 딱딱딱! 신경질적으로 부닥쳤다.

– 빌어먹을.

신의 장난감에게도 그의 자랑거리, [죄어오는 운명]이 통하질 않았다. “푸하하하핫! 뭐야, 너 병신이냐?”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드마스터의 비아냥에 열이 받아서 날개를 거세게 퍼덕였다.

할파스는 고개를 돌렸다. 이 잡것들을 죽여버리고 말겠다.

어둠 속에서 할파스가 급강하했다. 레이는 {추적술}로 레라의 생사를 확인하곤 놀란 가슴을 추슬렀는데, 번쩍, 좋은 생각이 들었다.

내겐 {신력 간파} 능력이 있다.

이걸 왜 진작 사용할 생각을 못 했을까, 이 능력이라면 어둠 속에서도 할파스를 찾을 수 있을 터였다.

레이는 즉시 {신력 간파}를 사용했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에게 전당은 더 이상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새빨갛다.

전후좌우, 위아래 모두가.

{신력 간파}로 본 전당은… 아니, 마누비울 왕성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벽을 마감하는 데 쓰인 대리석과 기둥, 가구들, 카펫과 장식품들을 제외하면 온통 붉은색이라 눈이 아렸다.

“이… 이건…”

레이는 그제야 왜 마누비울 성벽과 왕성 외벽이 붉게 빛났는지를 알아차렸다. 대(對)마법전을 상정하여 지어진 그것들은 ‘마누비움’이라는, 마법이 통하지 않는 광물을 이용해 지어졌는데, 마누비움은 ‘신력’을 증폭하는 성질이 있었다.

주신의 것이든, 아신의 것이든 상관없다. 신력은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이 같은 것이다.

할파스가 요새 마누비울을 수도로 정한 데에 이유가 있었던 거다.

놈은 성과 왕성 전체에 신력을 차곡차곡 불어넣어 왔고, 마누비움에 의해 증폭된 신력은 [전장의 부름]을 거뜬히 유지하고 있었다. 할파스가 조금도 지치지 않은 까닭이, 말파스처럼 거대한 모습으로 등장하지 못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그럼 여긴… 여기는 정말로 위험하다. 성녀를 기다렸어야 했다!’

후회는 언제나 늦다.

회차를 반복하지 않는 한 돌이킬 수 없어서 레이는 아린 눈을 비비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살아 나가려면 어떻게든 저놈을 처리해야 하는데…

시뻘건 시야, 아래에 있는 할파스는 색이 짙어서 또렷이 보였다. 녀석은 깨진 알을 쪼아먹고 있었다.

“으헉! 말도 안 돼!”

황철석을 닮은 정육면체(正六面體). 팔각형이었던 할파스의 신력이 빠르게 변화하고, 레이는 기겁했다.

저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납작한 면(面)이 높이와 부피를 지닌 형(形)으로, 신력의 급이 수직 상승했다. 17각형이었던 오리아스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어 아스타로트의 것에 근접해가기에 레이는 눈을 비비며 다시 살펴보았다. 그리고 곧 자신이 속았음을 알아차렸다.

정육면체는 정육면체인데, 앞에서 보기에만 그렇고 뒤가 비었다. 반짝이는 바보 금(Fool’s gold)처럼 남을 속이려 드는 것이었다.

레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 말파스와 다시 합쳐지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앞으로는 이 몸이 마르하스(MalHas)가 될 것이다!

할파스의 말마따나 알을 쪼아먹는 녀석은 덩치가 부풀고, 검은 깃털에 붉은빛이 맺히고 있었다.

마르하스(MalHas). 머나먼 과거, 동부 늪지대에서 탄생해 아즈라 성인에 의해 둘로 찢어지기 전까지 대적할 이가 없던 고대의 아신으로 변모해가는 것이었다.

레이는 꿀꺽, 침을 삼켰다. 놈에게 더는 시간을 줄 수 없어서… 난간에 발을 디뎠다.

5층이다.

잘 착지해도 다리가 부러질 높이였다. 레이는 문득, 레라가 추락사한 지난 엔딩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난 죽어도 레라는 살려야 하겠다.

{신력 간파}로 보이는 붉은 왕성이 각오를 부채질했다. 그래, 내 이름은 ‘레이(Lei)’ 덱스터. 돌아가신 어머니가 붙여준 이름 ─ ‘용기’였다.

레이가 조용히 뛰었다. 검을 다잡아 녀석의 등을 정조준했다. 바람이 머리칼을 휙- 휩쓸었는데…

– 깍깍깍깍! 내가 무모한 용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던가?

할파스는 보고 있었다. 여덟 개의 눈을 따로 움직이면서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녀석은 깍깍거리며 한 발짝, 옆으로 비켜서는 것으로 레이의 용기에 화답해주었다.

“으아아아아아…! 이 개색…!”

– 멍청하긴.

녀석은 곧 바닥에 처박힐 것이다. 허공에서 방향을 틀 방도도 없으니 할파스는 남은 껍질을 쪼는 데 집중했다. 떨어지면 그때 쪼아먹…

“크핫! 이 새끼, 그렇게 안 봤는데 너도 남자구나! 짜식아! 가자!”

5층에서 4층으로, 4층에서 3층으로 하릴없이 떨어지는데, 아르펜이 달려들었다. 그는 3층에서 양팔을 벌려 뛰어서는 레이의 허리를 부둥켜안았다.

“아르펜 남작님!”

“집중햇!”

– 까악!

할파스가 황급히 날개를 퍼덕였다. 하지만 늦은 감이 있었다. 가속이 붙은 두 남자가 등을 직격했다.

퍽! 레이의 검이 할파스의 목에 꽂히고 레이는 박힌 검에, 아르펜은 날개에 매달렸다. 녀석의 폭신한 깃털이 충격을 받아주었다.

– 까아악!!

“죽어라!”

[ 업적 : 마수 사냥 – ‘1’, 몸에 미약하게 마나가 깃듭니다. ]

레이의 검에서 새하얀 빛이 폭발했다.

아끼고 아껴온 오러블레이드가 녀석의 목을 내리그었고, 업적이 달칵 줄어들었다. 하지만 할파스는 곱게 죽지 않았다.

–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녀석의 까마귀 머리에 눈이 무수히 솟아나고 있었다. 징그러울 지경이다. 덩치도 몇 배로 커져선, 날개까지 여러 장 돋아내더니 퍼덕퍼덕 날아올랐다. 녀석의 목소리가 점점 변해갔다.

– 나, 마르하스는 전쟁의 신이자 온 날것들의 왕이다! 이 몸을 천신(天神)이라 부르고, 경배하라!

“뭔 개소리야! 죽을 때가 되니까 돌았나. 어, 어어?”

아래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할파스, 아니, 마르하스는 날갯짓을 멈추곤 고요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검붉은 깃털은 칼날이 되고, 목소리가 굵어졌다.

– 바람 또한 나의 것이다! 세상의 반짝이는 모든 것 또한 나의 것이니 주신에게 날아가 그 소유권을 물으리라! 왕을 알아보지 못하는 너희, 버러지들! 땅에 붙어사는 천것들이 감히 이 몸에 매달리다니! 용서치 않으리라!

칼날 깃털이 우수수 일어섰다.

왕궁이 드드드드드드드, 진동하며 전당 벽에 붙은 대리석 마감재들이 떨어졌는데, 왕궁을 이루는 바위, 마누비움이 훤히 드러나 이젠 불이 필요 없을 정도로 새빨갛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은 빠르게 마르하스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칼날에 베인 아르펜은 견디다 못해 외쳤다.

“야!! 그어! 빨리 베라고! 이러다 다 죽겠어!”

[ 업적 : 마수 사냥 – ‘0’, 몸에 미약하게 마나가 깃듭니다. ]

하지만 레이는 답하지도, 마르하스의 목에 박힌 검을 마저 내리긋지도 못했다.

마나가 모자라다.

오러블레이드는 픽, 꺼져버리고 레이는 더는 소드마스터가 아니었다. 아니, 소드마스터이지만 오러를 뽑아낼 수가 없었다.

그의 검은 마르하스의 목에 덜렁 박혀 있을 뿐이었다.

“뭣 하는 거야! 그으라고!”

“…아르펜 남작님. 혹시 이쪽으로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거길 어떻게 가 이 멍청아! 여유 작작 부리고 죽여! 빨리!”

진퇴양난이다.

마르하스는 점점 떠오르고, 칼날이 되어 일어난 깃털은 레이와 아르펜의 몸을 파고들었다. 오른쪽 날개에 매달린 아르펜은 마르하스의 덩치가 몇 배로 커지는 바람에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렇게… 끝인가, 생각할 때였다.

“레이!!”

언제 올라갔는지 레라 아이나르가 전당 꼭대기 층에서 뛰어내렸다. 그녀의 손에 역수로 들린 건

A’ bota.

토들러 아키우넨이 라차르 신을 벤 검이었다. 운석처럼 떨어진 레라 아이나르가 마르하스의 목덜미에 검을 수직으로 내리꽂았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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