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293

291. 남매 Ep – 닭요리

어둠이 확 걷히며 민서의 시야가 드넓은 평야를 가로질렀다. 펼쳐진 논밭, 따사로운 여름 햇살을 머금은 작물이 들넋바람에 흔들리고, 민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지남매다.

하지만 분노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회차 보상이 없다니.

약혼관계 회차는 이미 진엔딩을 보았기 때문일까, 진엔딩 선택 보상을 얻으면 더는 회차 보상을 주지 않겠다는 것일까. 레이의 개고생이 수포로 돌아간 기분이라 민서의 속이 끓었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레라와 관계가 끊어진 것도 아닌데, 그래도 최선을 다했는데.

민서는 레이를 대신해 주신을 욕해주었다. 아니, 그도 쌓인 게 많아서 아는 육두문자를 분노와 함께 쏟아부었다. 그러나 영상은 느려짐도, 빨라짐도 없이 오르빌을 향해 다가갈 뿐이었다.

시야는 성벽을 넘어 남문 장터 골목길을 파고들었다. 햇볕이 들지 않는 골목길을 오른쪽 왼쪽, 두 번을 꺾어 들어간 민서는 그곳에 주저앉아있던 레안 드 예리엘이 되었다.

그 순간 분노가 삽시간에 사그라들었다. 쇠약한 신체가 느껴지고, 걷잡을 수 없는 기갈이 몰려들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가 알던 역사가 바뀌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 업적 : ‘22’번째 레오 – 플레이어가 레오에게 동화되는 속도가 미약하게 빨라집니다. ]

[ 22/24 ]

[ 업적 : 왕 4/6 ]

[ ‘귀족 사회’ 정보가 변경되었습니다. ]

아스틴 & 아스터 왕국은 더 이상 없다. 5/7이었던 ‘왕’ 업적의 앞뒤가 줄어들고, 아스란 왕국은 내전이 터진 적 없이 강대한 국력으로 북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6 왕국 시대.

레이 덱스터, 아니, 레이의 바람이 성취된 것이었으나 민서는 이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의 옆에서 레리아나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민서는 울컥, 가슴을 움켜쥐었다.

쏟아지는 기억들.

어릴 적의 레안이 바르트 경의 손에 이끌려 네비스 왕성을 탈출했다.

힘들고 배고프다며 와앙! 울음을 터뜨리는 동생을 부여잡고, 시체가 깔린 초원을 가로질렀다.

– “북서쪽에 있는 벨리타 왕국으로 가셔야 합니다. 국경 부근의 마을에 숨어계시면 근위기사들이 왕자님을 찾아올 겁니다.”

바린 경.

그의 마지막 근위기사의 조언만이 레안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이었다. 레안은 바린이 남긴 식량으로 연명하며 어린이의 발걸음으로 북쪽을 향했다. 오랜 시간이 걸려 모나크 남작령이라는 영지에 당도하였다.

모나크 남작령은 북서쪽으로는 벨리타 왕국과, 북동쪽으로는 아이셀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각자의 이유로 국경을 넘으려는 비렁뱅이들이 넘치는 곳이어서 레안은 그곳에서 레리아나가 갖고 있던 ‘은반지’를 빼앗았다.

바린 경의 약혼반지였다. 울상짓는 동생의 얼굴에 흙을 묻히고, 반지를 대가로 어느 비렁뱅이의 도움을 받아 국경을 넘었다.

중간에 그자와 사투를 벌였지만, 잊어버리자. 그 비렁뱅이는 남색(男色)을 밝혔다.

국경을 넘어와 어느 마을 부근에 숨어 기다렸지만, 찾아온다던 근위기사들은 오지 않았다.

우리가 너무 늦어서일까.

아니면 애초에 우리를 찾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닐까. 어느새 레안은 국경 부근의 마을을 전전하는 거지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따뜻한 남부인 것이 다행이었다. 파리해졌음에도 잘생긴 외모가 뭇 사람들의 측은함을 배가시켰다. 그에게 호의를 베풀려는 어른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성인의 추악한 성욕을 접해본 레안은 살랑살랑 고개를 저었다. 또, 동시에 동생을 끔찍이도 숨겼다.

구걸하러 마을에 들어갈 때면 레리아나를 담장 아래에 숨겨놓았으며 누구라도 동생을 목격했다면 그자가 선량한 사람이건 아니건, 동생의 얼굴을 보았건 어쨌건 간에 그 마을에 두 번 다시 들리지 않았다.

사실 동생이 아니었더라면 레안이 살아갈 길은 많았을 터였다.

그는 무섭도록 잘생긴 소년으로 자라났으니까.

언제부턴가 먹을 걸 주는 사람이 죄다 여자였고, 소녀들은 첫눈에 호감을 보이며 구걸을 마친 그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레리아나의 존재가 들통나면서, 하나씩 하나씩 들러선 안 되는 마을이 늘어났다.

그에게 외모는, 생계를 유지할 수단인 동시에 저주였다.

동생도 같은 저주에 걸려 옴짝달싹 못 하게 아름다워져 갔다.

레안은 나이를 먹는 게 무서웠다.

이를 어쩌면 좋지? 점점 과해지는 친절과 사람을 종마(種馬) 보듯 하는 눈길.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혈통}과…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동생.

벨리타 왕국 남부의 따뜻한 시골 마을들을 지워내며 북상하던 레안은 거대한 도시를 만나 결심했다.

저기에 숨어 살아야겠다. 오히려 바글바글한 인파에 숨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는데, 다행히 옳았다.

각국의 상인이 몰리고, 하루 벌어 하루 풀칠하느라 인심이 각박한 그 거대한 도시의 이름은 오르빌. 벨리타 왕국의 수도였고, 도시의 흔해 빠진 거지 생활이 시작됐다.

민서에게 ─ 레안이 느낀 고통과 두려움은 아무래도 좋았다.

레안, 본인도 이를 앞세우지 않아서 그와 융화되어가는 민서는 잠이 든 동생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대단히 게으른 동생.

레리아나가 하루에 16시간도 곧잘 자는 이유가 레안의 과거에 담겨 있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처럼, 오빠가 구걸하러 마을에 가면, 레리아나는 잠을 잤다. 동생도 나름 생존할 방법을 찾은 게 습관이 된 것이다.

동생은 세상을 오직 ‘꿈’으로 배웠고, 보았다.

레리아나의 바람이 무엇이었을지 짐작한 민서는 목걸이와 함께 움켜쥔 가슴이 저리도록 아파옴을 느꼈다.

레리아나는 단 한 번도 해피엔딩을 보지 못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쉽고, 소박한 꿈을 가졌음에도 그놈의 {혈통}, 레나를 공주로 만들 길이 이 거지남매에 있어서 동생의 삶을 매번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지난 회차, 에릭 드 예리엘 왕자를 몰아내고 맞이한 ‘The Princess’ 엔딩이 진엔딩이 아닌 클리어에 그친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속이 뒤틀어 문드러질 것만 같다.

구정물을 마신 동생이 쫄랑쫄랑 걸으며, “다음엔 저기에 집을 짓자.” 말하던 게 떠올랐다.

왜 돈을 벌겠다고 창관에 갔는지 알았다.

왜 타티안 후작가의 양녀로 들어가는 게 결정된 이후 앓아누웠는지, 가족이 된 라우노 패밀리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겠다고 고집을 피웠는지, 어째서 오빠를 잃어버리면 공주가 되고도 불행한 삶을 살았는지.

레리아나는 집을 가지고 싶어 했다. 그녀는 매번 집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고, 오빠랑 함께 살고 싶어 했다. 그게 다다.

지난 거지남매 회차 엔딩은 레리아나가 공주가 되어서 뜬 것이 아니었다. 만백성의 환호 속에서 아키네를 치르며, 왕성을 비로소 저의 집으로 인식하면서 엔딩이 뜬 것이었다.

그때는 진엔딩이었을 것이다.

저 왕성에서 오빠와 함께 평생 살겠지!

레리아나가 본인의 꿈이 이뤄졌다 생각해 진엔딩이 떴지만, 그 이후 아이셀 왕국으로 시집가 오빠와 떨어지면서 ‘클리어’로 격하되었다.

맞다. 떠오른 사진 속의 동생은 오빠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나는 드디어 거지남매 시나리오를 클리어했다며 한심하게도, 기뻐하였고.

민서가 꾸벅꾸벅 조는 동생의 어깨를 감쌌다. “에엣?!” 놀라 깨어난 레리아나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미안해… 정말… 목마르지? 오빠가 물을 못 떠 와서 미안해. 어서 이거라도 마셔.”

여섯 번째 사망 업적으로 미뤄진 시간은 여기까지였다. 저의 과거를 모조리 기억해낸 레안 드 예리엘이 민서의 정신을 집어삼켰다.

그는 재빨리 민서의 실수를 무마하며, ‘빗물이 담긴 컵’을 내밀었다. “어? 그새 많이 찼네?” 레리아나는 허겁지겁 물을 들이켰다.

나도 목이 마르지만, 동생을 챙겨준 레안은 민서를 떠올렸다. 그는 민서의 폭발한 감정이 싫지 않았다.

내 치부를 들여다본 평민. 잘못된 판단으로 나와 동생을 여러 번 고통에 빠뜨린 이방인.

그러나 암울한 미래만이 놓인 우리에게 기회를 주었고, 쏟아지는 기억 속에는 저만 생각하던 민서가 한 행동이 맞나 싶은 일이 있었다.

방법이야 어찌 됐건, 제가 살던 세계로 나갔음에도 민서는 이곳으로 돌아오길 택했다. 절대 혼자 도망치지 않겠다던, 사실 레오들 중 누구도 믿지 않던 약속을 그는 지켰다.

‘고맙구나.’

레안이 민서의 기특한 마음씨를 치하했다. 그때, 꼴깍꼴깍 물을 아껴 마신 동생이 컵을 돌려주었다.

“오빠, 여기… 오빠도 마셔.”

또 반도 안 마셨구나.

다 마시라 하고 싶지만, 레안은 동생의 마음을 받아주었다. 조금이나마 목을 축이고, 축축한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물을 마셨지만, 여전히 타들어 가는 갈증, 배가 찢어질 듯한 허기가 몰려들었다.

그러나 익숙하다.

그는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다리, 무릎을 살 한 점 없는 손으로 짚었다.

극심한 상황이었으나, 레안 드 예리엘은 웃었다.

지나간 회차들에서 겪은 다사다난한 비극들조차 밝아진 미래 앞에서는 보잘것없었다.

레안이 손을 내밀었다.

“가자. 밥 먹으러.”

가자, 행복해지러. 레리아나는 알쏭달쏭한 눈으로 오라버니의 손에 그녀의 앙상한 손을 얹었다.

* * *

왜인지 오늘은 장사가 안되네.

닭고기 집 주인은 무료하니 가게 앞을 지키고 있었다. 슬슬 손님이 점심을 주문하러 올 시간인데도 가게가 텅 비었다.

운이 없는 날인가, 아니면 역시 판촉에 신경을 써야 하는 걸까.

장사가 안되면 장사꾼의 마음은 시시각각 심란해진다.

음식점이 맛만 있으면 됐지, 고집스럽게 지켜온 신념마저 흔들리는 것이다.

그때, 상가와 상가 사이 외진 골목길에서 추레한 거지 꼬맹이들이 등장했다.

끔찍하게 더러운 옷을 입은 그들은 오늘은 정말 재수가 없는 날인지 우리 가게를 향해 다가왔다.

‘하필이면 여기로 오네. 귀찮게.’

닭고기 집 주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닭고기를 때려 살을 부드럽게 다지는 둥그런 몽둥이를 들고,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야. 좋게 말할 때 저리 가라.”

“몰골이 이래 미안하오. 실례지만 안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겠소?”

무슨 거지새끼 말투가 이래?

상인이 거지 소년을 다시 바라보았다.

차분하게 치켜든 고개와 흔치 않은 금빛 눈동자, 번지르르한 외모.

남자인 그에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었으나 묘한 기품이 느껴졌다.

상인은 말을 조심할 필요를 느꼈다. 인제 보니 허리에 매달린 게 작대기가 아니라 검이지 않은가.

“…그, 음. 손님. 죄송하지만 돈이 없어 보이십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이건 확인해야지.

몽둥이를 등 뒤로 숨기고 존대한 것만으로도 낯부끄러운 친절이었다. 그만큼 거지 꼬맹이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는데, 다행히 거지 소년이 은화 두 개를 꺼내 보였다.

“이거면 충분하리라 생각하오. 자리를 마련해주고, 먼저 따뜻한 마실 물을 주시오. 손 씻을 볼(Bowl)과… 수건을 주시겠소? 주문은 안에서 하리다.”

말을 조심하길 잘했다. 귀족이다. 상인이 고개를 조아렸다.

“무, 물론입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곧 대령하겠습니다.”

은화를 받아든 상인이 분주해졌다.

가게 문을 활짝 열어 귀한 손님의 걸음을 편하게 하고, 테이블보를 펼쳤다.

의자를 적당히 당겨 앉기 좋게 만들곤 그들이 자리하기를 기다렸다가 주방으로 달렸다.

귀족을 접대해보긴 오랜만이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한때는 귀족가의 주방장이 되길 꿈꿨던 사람이었다.

제 실력을 보이겠노라 귀족의 저택을 돌아다닌 적이 있는데, 아쉽게도 주방장이 되진 못했다.

왕과 왕자, 공주에게 대접하는 꿈까지 꿨었건만.

갈고닦은 요리 실력이 무색해졌다. 그는 한동안 술독에 빠져 지내다가 생계를 위해 닭고기 집을 차렸다. 고만고만한 손님들이나 상대하면서 무뎌진 솜씨를 발휘해볼 날이 왔다.

상인은 먼저 손을 씻었다.

닭 머리, 다리를 분리하느라 지저분해진 앞치마를 새것으로 갈아입곤 끓는 물에 자신이 즐기는 차를 담갔다. 은화 두 개가 이렇게까지 서비스할 정도로 큰돈은 아니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다.

손 씻을 볼을 가져다 달라고 했지.

금방 우러난 차를 찻잔에 따르고, 남은 물을 찬물에 섞어 볼(Bowl)에 담아 내갔다. “오빠, 그거 어디서 난 거야?”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손님들 앞에 내려놓았다.

“여기, 수건도 있습니다.”

“고맙소.”

수건을 받아드는 손길에조차도 고아한 예법이 담겼다.

‘진짜 귀족이다.’라고 생각한 그는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안 쓴지 워낙 오래된 거라 구깃구깃 접힌 자국이 많아 부끄러웠다.

“돈을 더 드려야겠군요.”

가게를 차릴 적에 만든 것이라, 메뉴에는 패기 있게 만든 레시피가 몇 개 적혀있었다.

아무도 주문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들이고, 비싼 재료가 들어가 값이 나가는 요리였는데, 감사하게도 이 귀족 나리께서는 은화 세 개를 더 지불하며 말씀하셨다.

“풀레 오 블랑(poulet au vin blanc)이 있군요. 이걸로 주시죠. 시간이 좀 걸릴 듯한데, 혹 전채(前菜)로 나오는 것이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준비된 것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그러면 좌판에 놓인 닭고기를 잘게 찢어서 조금만 가져다주세요.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근사한 음식을 기대해도 좋겠지요?”

“그, 그럼요. 물론입니다.”

상인은 조금은 감동했다.

나도 돈이나 밝히는 상인이 된 줄 알았는데 기다리겠다는 말이 감사할 줄이야.

주방으로 돌아온 상인, 아니, 요리사는 얼른 닭고기를 잘게 찢고, 신선한 채소에 버무렸다. 귀한 손님들께 드리고, 그분들의 양해를 구해 가게 밖으로 나갔다.

풀레 오 블랑을 만들 재료가 가게에 없어서다. 장터로 나온 상인은 바쁘게 재료를 찾아다녔다. 그때, 한 이웃 상인이 달라붙었다.

“이봐, 자네. 거지새끼들을 가게에 들이면 어떻게 해? 어? 내 말 듣고는 있는 거야?”

“아 좀 닥쳐.”

그는 이웃 상인의 잔소리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쌀과 버섯, 백포도주와 버터, 그리고… 그래 맞아, 크림이 들어갔었지.

풀레 오 블랑에 들어갈 재료를 골라 집는 그는 묘한 감상에 젖어 들었다.

내게도 꿈이 있었는데. 요리하는 기쁨을 잊었구나.

그는 한 아름의 재료를 품에 안고 보기에도 경쾌한 걸음으로 돌아왔다. 제대로 만들어 드리겠다, 손님들께 다시 양해를 구할 생각이었는데 요리사는 하마터면 재료를 모두 떨굴 뻔했다.

무시무시하게 아름다운 소녀가 앉아있었다. 잘게 찢은 닭고기를 오물오물, 입에 한가득 물은 소녀가 해맑게 웃었다.

“무슨 일이죠?”

“아, 아닙니다. 아니, 그게… 돌아왔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그는 어영부영 말을 끝맺지 못하고 걸음을 돌렸다. 그랬다가 오물이 묻은 수건과 새까만 물이 담긴 볼이 식탁에 놓여있던 걸 기억해내고는 치워주었다.

아까 그 애가 맞나?

소녀의 금발 머리엔 아직 오물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눈부시게 빛나는 소녀… 그는 이분들이 귀족인지조차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귀족이 아니라 왕족, 감히 올려다볼 수 없는 분들이라 해도 과하지 않았다.

주방으로 돌아와, 풀레 오 블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먼저 쌀을 불리고, 닭고기를 와인에 재운다. 미리 해놨으면 좋은 것이지만,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냄비 바닥에 버터를 두르고 불린 쌀을 섞여 익힌다. 그 사이 닭고기를 뜨거운 기름에 담가 2~3분가량 익히고, 보기 좋은 갈색이 될 즈음에 꺼내어 다른 냄비로 옮긴다.

힐끔, 식사를 기다리는 손님들을(정확히는 소녀를) 훔쳐보곤, 닭고기에 그동안 손질해둔 버섯을 뿌렸다.

이제 고기에 풍미를 담을 차례다.

버섯이 뿌려진 닭고기에 반병이 남은 백포도주를 두른 뒤, 뚜껑을 덮지 않은 채 중불로 3분을 요리한다.

뚜껑을 덮지 않는 이유는 백포도주의 알콜은 날려 보내고, 향만 남기기 위함이다.

요리사는 이젠 소녀를 훔쳐볼 틈도 없이 크림을 그릇에 담아 바쁘게 휘저었다. 기포를 내어 부드럽게 하고, 구수한 내음을 풍기는 닭고기와 향이 무겁게 올라오기 시작한 버섯에 크림을 첨가했다.

백포도주와 크림이 섞인 소스가 살짝 걸쭉해질 때까지, 마찬가지로 뚜껑을 열어둔 채로 3분을 더 익혔다. 한 손으로 간간이 저어주며, 다른 손으로는 플레이팅을 준비한다.

그래도 실력이 녹슬지 않았는지, 스스로가 대견하게도 접시를 화덕 위에 올려 데워두었다. 기분 좋게 따끈한 접시에 버터와 섞여 노랗게 익은 쌀을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대망의 닭고기를 얹으면…

노란 쌀에 풍미가 더해진 하얀 소스가 젖어 들고, 향이 깊은 버섯과 닭고기가 자랑스러운 풀레 오 블랑, poulet au vin blanc 완성이오!

요리사는 양손에 접시를 하나씩 들고 보무도 당당히, 내갔다.

“와아!” 터지는 아름다운 소녀의 탄성과 기뻐하는 귀하신 손님. 서투른 예법으로 인사드리고 번잡해진 주방으로 돌아와 주저앉았다.

그는 자신의 꿈을 돌아보았다.

“맛있어?”

“응! 응! 응!”

쌀과 닭고기를 입에 넣고 부르르 행복해하는 동생을 보며 레안도 활짝 웃었다.

이번 회차는 철저하게 동생을 행복하게 해줄 공산이었다. 첫 끼니를 만족스럽게 주기 위해서 여기, 닭고기 집을 찾았다.

물론, 여기로 온 까닭이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카시아가 굴레에서 풀려나기 전에는 카시아의 신발가게를 찾아갔고, 나의 연인 크세니아가 비를 피하며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된 이후에는 그녀를 찾아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침 운동을 나온 그녀와 부닥쳐 물을 쏟은 것까지는 같았는데…

– “넌 뭐야? 헛소리 말고 비켜! 이분이 어떤 분인 줄 알고.”

크세니아는 혼자가 아니었다.

붉은 머리의 여검사, 카트리나가 그녀를 호위하고 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