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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95

293. 남매 Ep – 사제가 될 방법

“그래, 레브. 오랜만이다.”

“엇!”

외마디를 지른 레브는 잠시 말이 없었다. 눈에서 뿌연 안개가 걷히며 깨어났으나, 자신이 ‘지금’ 깨어날 줄은 몰랐는지 당혹스러워했다.

거지남매 시나리오는 클리어됐다.

소꿉친구와 약혼관계 시나리오만 클리어를 앞두고 있었고, 레브는 오른 왕국의 왕이 되어 레아를 공주로 만든 뒤, 약혼관계 시나리오의 레오에게 바통을 넘겨 레나 아이나르를 공주로 옹위할 예정이었다.

그리하여 [ 레나 키우기 ]는 그 장대한 끝을 맞이할 것이었는데…

‘거지남매는 끝났잖아.’

약혼관계 시나리오면 몰라도 거지남매로 회차가 넘어갈 일이 없었다. 하지만 레브는 이내 레오 덱스터와 레나 아이나르의 이름이 바뀌었음을 알아차렸다.

레이와 레라 아이나르로.

덱스터라는 성(姓)마저 탈락했으며 역사가 바뀌었다. 레브는 곁에 레아가 있는 것도 잊어버리곤 나지막이 물었다.

“지금이 몇 회차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레안 드 예리엘은 어깨를 으쓱, 간단하게 답했다.

“스물두 번째지.”

…난 ‘열아홉 번째 레오’인데. 레브는 침묵을 택했고, 순서를 넘겨받은 레안이 인사했다.

“처음 뵙겠어요. 오랜만이네요, 레아 님. 저는 레안이라고 해요.”

“저, 절 아세요?”

“이야기 들으셨잖아요.”

듣긴 들었지. 몇 주일 전에. 레아는 당혹스럽게 머리를 긁었다.

레브가 한 말이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그럼 내가 꾼 꿈도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딸꾹, 레아는 레브를 혼란스럽게 바라보았다. 레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황을 정리해야겠다. 레안이 입을 열었다.

“레나들을 공주로 만드는 게 클리어 조건이 아니었어. 우리가 착각한 거야. 우린, 레나들의 꿈을 이뤄줘야 해.”

“꿈… 이라고?”

벌써 여러 번 그랬지만, 레브는 이번에도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레아를 돌아보길 반복했다.

스치는 장면이 많을 것이다.

소꿉친구도 끔찍한 엔딩을 많이 겪었으니까. 레브(Lev)는 특히 마음고생이 심했다.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 장군 노릇이며, 최종적으로는 왕이 되겠노라 결심하기까지.

레이가 민서를 향해 화를 터뜨렸다면, 상대적으로 말을 잘 듣는 레브는 갈등하며 안으로 썩어들었다.

‘레나들이 누구야?’ 레아가 궁금해하는 한편, 레안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어. 우린 오리아스와 아스타로트를 잡아야 해. 민서가 다시 갇혔어.”

그는 지난 두 번의 약혼관계 회차를 설명했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을 죽이자 아스타로트가 강림해 모두를 몰살했던 것과 민서가 자신의 세계로 튕겨 나갔으나 되돌아온 것. 레이가 레라, 아르펜 알바세테 남작, 그리고 자코브 모드레드 백작의 조력을 받아 마르하스를 처치한 것까지.

레아는 어느 순간부터는 레안과 레브의 대화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스틴? 아스터? 그녀가 모르는 왕국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 명의 소드마스터라니. 소드마스터는 온 대륙에 헤르만 포르테 백작, 한 명뿐이지 않은가.

레아의 의문을 뒤로하고 레안은 민서가 알아챈, 중대한 사실을 짚었다.

“바르트 경이 오리아스를 견제하는 소드마스터가 될 사람이었어. 그를 내버려 둬선 안 돼.”

“……그랬구나. 미안해. 내 잘못이야.”

레안은 어깨를 다시 으쓱, 사과를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이미 지나간 일이기도 하지만, 레브는 아직 바르트 경을 내버려 두라는 말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복잡한 시간의 실타래 속에서 레안이 말했다.

“괜찮아! 그 대신이라긴 뭐하지만, 이번엔 네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네가 오리아스를 잡아야 해. 난 오르빌을 떠나지 않을 거야.”

“…내가? 플레이어가 아닌 내가 잡아도 소멸이 돼?”

“그럴걸?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바르바토스도 네가 없앴잖아. 그… 타아문 마을에서.”

그랬다. 바로 지난번… 이 아니라 18번째, 거지남매 회차에서 오르빌로 달려가던 레브는 중간에 레안을 만났고, 레리아나와 크세니아를 추행하려던 어느 취객을 죽여버렸다.

그 놈팽이가 하려던 짓에 분노하기도 했지만, 녀석의 가슴에 ‘나팔 문양’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레브가 그 녀석을 끌고 간 지 얼마 안 되어서 세계가 뒤흔들리며 ‘바르바토스(Barbatos)의 사도’ 업적이 소멸했다. 정황상 그 만취한 사내가 바르바토스의 마지막 신도였던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수호자(守護者) 업적이 해금됐을 때 바르바토스가 이미 포함돼 있던 걸 보면, 아신은 레오들 중 누가 잡건 상관이 없는 듯했다.

레안이 단정 지었다.

“지금 오리아스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잘 들어. 내 계획을 설명해줄 테니까. 넌 당.장. 하르베이 가이단 후작의 영지로 달려가야 해. 네가 탈것을 소환할 수 있으면 편했을 테지만… 네겐 아직 그 업적이 없겠지.”

“뭐? 레나들의 꿈을 이뤄주는 게 진엔딩 조건이라면서. 후작을 설득해서 반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

“가만히 들어. 반란이 목적이 아니니까. 가서 후작 부인을 깨워줘. 너한테 필요한 건 돈이야. 병을 치료해준 대가로 여비와 관문 통행권을 구한 다음에 ‘마리사’를 만나러 가.”

…아! 레브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아차렸다. 레안은 지금 이로타시 강에서 하리에와 팔라스 테르탄을 습격하려는 바르트를 막을 방안을 그리고 있었다.

“마리사가 누군지 기억하지? 바르트 경의 아내야. 가이단 후작령에서 시녀로 일하고 있으니까… 그녀를 후작 부인을 만나는 데 이용하든 어쩌든, 순서는 알아서 해. 중요한 건 가능하면 그녀를 데려가고, 설득이 안 되면 둘째 아들이라도 동행시키는 거야. 그러면 바르트 경을 멈춰 세울 수 있을 거야.”

“이해했어.”

레브가 고개를 끄덕이고, 레안이 계속 말했다.

“일이 잘 풀리면 네가 이로타시 강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바르트 경이 팔라스를 죽이지 않게 하는 것만으론 부족해. 하리에한테서 목걸이를 받아야 하는데, 아마 쉽게 내주지 않을 거라서 약간의 연출이 필요해. 마찬가지로 네가 바르트 경을 설득해서 데리고 다니려면 그한테 목걸이를 보여주어야 하니까…”

“바르트가 팔라스 일행을 공격할 때까지 내버려 두라는 거지? 내가 중간에 등장하고.”

“그렇지. 팔라스만 안 죽으면 돼. 바르트 경은 목걸이를 보면 굉장히 불안해할 거야. 그걸 잘 이용해. 바르트 경을 데리고 가서, 오리아스를 잡아.”

말은 쉽지만, 어려운 여정이 될 것이었다. 레브는 레안이 직접 이 일들을 하지 못하는 까닭이

[ 디버프 : 오리아스의 발자국 – 도발, 달아날 수 없습니다. 11년 11개월 11일 11시 11분 11초. 고정됨 ]

‘오리아스의 발자국’이 찍혀 있어서라고 추측하고 말았다. 사실 오리아스의 낙인은 지워지고 없었지만.

레브는 몇 가지 걱정거리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내가 오리아스를 잡을 수 있을까? 난 너랑은 달라. 너는 기사들을 쉽게 설득할 수 있었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을 거야.”

“그렇겠지.”

“그리고 오리아스를 잡으려면 베르크 추기경이 도와줘야 해. 너도 이젠 알겠지만 베르크 추기경은…”

“크세니아의 할아버지지. 걱정하지 마. 내가 연락해둘게. 사실 이쪽도 문제가 생기긴 했는데…”

“무슨 문제?”

“크세니아랑 내가 연인 관계가 아니야. 아침에 만나서 고백하긴 했는데, 카트리나가 말썽이네.”

“…?”

레브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꽂혔다. 저게 뭔 소리야. 하지만 레안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돌렸다.

너도 내게 거짓말을 했었지.

이번에 레브가 해야 할 일과는 관계가 없어서, 불필요한 혼란을 덜어주고자 레안은 정보를 밝히지 않았다. 주신이 우리에게 그러했듯이.

“몰라도 돼. 걱정하지는 마. 만약 어떤 문제가 생기면 거울로 알려줄게. 내 거울이 남았으니까. 여차하면 바르트 경과 이야기할 수도 있고, 베르크 추기경을 설득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어. 오리아스를 사냥할 방법은 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네가 말해준 거, 성공했어.”

“…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

“발레이나의 타액을 이용하라던 거. 아 참, 그리고 하리에의 목걸이는 바로 부수면 안 돼. 이건 민서가 한 생각인데, 그 목걸이를 에릭 드 예리엘 형님 앞에서 부숴버려. 그럼 오리아스가 정체를 드러낼 거래.”

“…알았어.”

이것으로 중요한 이야기는 끝났다.

레안은 앉아있던 계단에서 일어나 복도를 왔다 갔다, 느긋하게 거닐었다. 그는 사소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겨울에 레이한테서 연락이 올 거야.”

“그쪽은 어떻게 됐대? 역사가 바뀌었잖아. 아, 너도 모르겠구나.”

“응. 아마 잘 됐겠지. 내전이 터진 적이 없으니까 레이 어머님도 살아계실 테고… 맞다. 혹시 모르니까, 레이한테 거울을 버리지 말라고 전해줘. 지난 회차에서 레이가 거울을 벽난로에 넣어 버렸어.”

“뭐? 이 새끼가 진짜…”

귀속 아이템, 거울은 레브의 어머니의 유품이다. 유품이었다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어머니와 관련이 있는 물건이어서 레브가 인상을 찌푸렸다. 레안이 말했다.

“오해하지는 마. 그땐 걔도 제정신이 아니었거든. 연락이 오면 레이한테는 일단 행복하게 살아보라고 전해줘. 지난, 지지난 회차에서 고생이 심했거든.”

“나는?”

“넌 그동안 잘 살았어.”

“…어떻게?”

잘 살았다는 말에, 레브는 그걸 간절히 듣고 싶은지 입술을 다셨다.

이 레브는 진엔딩 조건을 알게 된 이후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해피엔딩을 가졌는지 모른다.

지금 소꿉친구 시나리오는 ‘클리어’된 거지남매 회차 직후라 레브는 끔찍한 실패의 연속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의 미래가 어찌 되었을지, 무엇이 자신과 레아의 해피엔딩일지 궁금해하는 건 당연했다.

레안은 그런 레브를 측은해하며, 알려주었다.

“너랑 레아는 결국 결혼하더라. 레아가 너랑 결혼하려고 많이 애썼어. 미리 축하해.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야.”

푸쉬식. 레브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일단 부정했다.

“자, 자, 잠깐만. 레아의 꿈을 이뤄줘야 한다면서. 레, 레아는 사제가 됐을…”

“응~ 그러고도 결혼해. 레아도 참 대단하지. 너랑 결혼하려고 교회를 뜯어고치더라니깐. 너는 레아랑 결혼하려고 제롬 신성 왕국이랑 십자교회를 모조리 불태워버릴 생각이나 하고. 둘 다 아주 대단…”

“그, 그만!”

한편 레아도 곁에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조금 전에 꾼 꿈을 떠올리며 더욱 부끄러워했다.

꿈속에서 사제가 된 나는 레브를 찾아 온 대륙을 헤매었다.

방랑 사제가 되어 악착같이 돌아다니던 나는 콘라드 왕국에 당도해 레브가 묻힌 묘 앞에서 탄식하였고, 부질없는 축복을 내렸다.

꿈과 사랑, 내게 두 가지가 모두 소중함을 깨달았다.

내가 레브랑 결혼한다고… 레아는 꼼지락, 무릎을 당겨 앉았다.

빛나는 거울 속에서 근사하게 생긴 왕자가 이죽거리고, 무언가 어마어마한 일들을 겪은 레브가 당황해 손사래 치며 반말하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기하다. 그녀는 레브의 손을 슬며시 움켜쥐었다.

“너… 너까지 왜 이래.”

레브의 귀는 어둠 속에서도 또렷이 보일 정도로 붉었다.

레아는 슬며시 잡아빼려는 그의 손을 붙들곤 선언했다.

“나 수도교회 안 갈 거야. 레브, 날 데려가. 나도 도움이 되고 싶어. 그래… 내가 하리에 가이단이라는 분의 시녀로 들어가면 되겠다.”

“뭐, 뭣?!”

“…오! 역시 레아가 머리가 좋네.”

이 주일 전에, 레브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죄다 털어놓았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레브와 레오 덱스터, 레안 드 예리엘이라는 왕자님은 무수히 많은 일을 겪었고, 전혀 믿기지 않았지만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레아는 해답을 빨리 찾아냈다.

“어차피 지금은 네 순서가 아니라면서. 그럼 내가 뭐가 되든 상관없는 거 아니야? 난 너랑 결혼할 거야. 내가 지금 그렇게 정했어.”

“거, 거짓말하지 마. 그러면 사제는. 넌 사제가 되고 싶잖아.”

레아가 무어라 답하려던 순간에 레안이 끼어들었다.

“레브, 레아 말 들어. 지금 생각해보니까 레아가 정말 똑똑한 게… 사제가 될 수 있는 곳이 십자교회만 있는 게 아니잖아. 나도 이제야 알았는데, 대단한걸.”

레브는 이해하지 못했다.

얘네들이 단체로 날 속이려 드나. 수도교회에 가야 사제가 되지, 그 외에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뒤이어진 레아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베르크 추기경이라는 분이 무슨 사제를 키운다면서. 내가 거기에 들어가면 안 되는 거야?”

어버버, 레브가 말문을 잃었다.

그때 빠지직, 거울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레안이 든 거울이 빛을 잃었다. 내 껀 멀쩡한데, 너무 오래 떠들어서 레브의 것이 깨진 모양이었다.

‘저쪽은 이제 됐다.’ ─ 고, 거울을 품에 갈무리하며, 레안은 생각했다.

레브에게 전하려던 말은 모두 전했고, 곁에 똑똑한 레아가 붙었으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

이젠 나만 잘하면 된다.

다른 레오들 걱정을 덜어낸 레안이 동생이 있는 방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코- 잠든 레리아나의 곁에 누워 머리를 쓰다듬으며, 크세니아와 카트리나, 카시아를 떠올리다가 서서히 잠이 들었다.

청련달이 빼꼼. 황량한 창고에 누운 남매를 포근히 감싸 안은, 그런 밤이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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