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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95

호(護) (2)

‘어떻게 해야 하지? 깜짝 마술이라고 해? 미친 소리. 다시 입에 집어넣어? 아니, 나를 뭐라고 생각하겠어. 지병이 있다고 해? 원영기씩이나 됐는데 무슨 지병이야! 아니면….’

내 머리가 팽팽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강민희가 내게 다가왔다.

나는 머리가 더더욱 폭발할 거 같은 느낌을 느끼며 긴장했다.

강민희의 성격, 그리고 흑색귀골곡의 체벌 강도 등을 생각하면 아마 열흘간 노역장에서 법력을 봉인하고 일하게 되거나 며칠간 괴악한 수사들의 실험 상대가 될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괜찮은 거야, 서립?”

강민희는 내 이마를 짚어 주며 물어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한 실수에만 빠져서 그녀의 의념을 못 읽었다.

강민희는 나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더러운 꼴을 보여 드렸습니다.”

“더러운 꼴이라니. 피를 토했잖아?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아… 이건….”

나는 뭐라고 설명할까 하다가 적당한 것을 생각해 냈다.

“제가 광한계로 비승하기 전 익혔던 공법의 부작용입니다. 피만 조금 토하고 말 뿐이니 심려치 마십시오.”

“흐음, 그래?”

그러나 나는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의념이 싸늘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친구들이 그러는데, 거짓말이라는데?”

“…!”

아무래도 마공을 익혔던 귀신들 중 혈마진해광이나 혈쇄수림결 등을 알아본 귀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난 친구들이 아주 많아. 그리고 그 중에는 의술 실력이 뛰어난 친구도 있는데, 네 증상은 속이 뒤틀려서 나타나는 거래.”

“…그렇습니까…. 거짓을 고해서 죄송합니다.”

“후우….”

그녀는 피곤하다는 듯 나를 향해 손짓했다.

“이리 와. 약 줄게.”

“…!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명령이야. 이리 와. 딴 데 가서 또 피 뿜지 말고 여기서 치료하고 가.”

나는 얼떨결에 그녀의 집무실로 따라들어갔다.

내가 뿜은 핏물은 뒤쪽에서 귀신들 몇몇이 치우고 있었다.

‘젠장, 그냥 호감도나 올려 놓을 겸 인사나 하러 온 건데….’

본체가 갑자기 이상한 걸 보는 바람에 이쪽이 똥을 떠안게 되어 버렸다.

그녀는 집무실에 한쪽에 걸려 있던 저물도에 손을 넣더니 눈알만 한 환약을 두어 개 꺼냈다.

“여기. 음죽환이라는 환약이야. 내상 치료에 효험이 엄청 좋대.”

“혹시 그 약은 뭘로 만들어진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왜. 뭐, 두드러기 있어?”

“예… 비슷합니다.”

“음, 그 뭐냐. 내상에 좋은 지락초, 귀골곡 음기가 짙은 곳에서 피어나는 귀양화 잎 말린 것, 귀죽이라고 불리는 늪에서 자라나는 대나무, 그리고… 으윽. 백골두꺼비 똥??”

아무래도 ‘친구’들에게서 성분을 듣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검은 이끼랑… 집 짓는 데에 쓰인 진흙??? 진짜? 왜 약을 그런 걸로 짓는 건데? 뭐? 집 진흙에는 의식의 힘이 깃들어? 아니, 그게 뭔….”

잠시 당황하던 그녀는 내게 물었다.

“개구리 똥이랑 진흙 같은 게 들어가긴 했네…. 먹어도 문제는 없겠다만… 어때, 이걸 먹고 싶어?”

“예. 주십시오.”

원유의 몸이라고 생각하면 똥이 아니라 더한 것도 먹일 수 있다.

오히려 원립을 모욕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쾌해지고는 했다.

“으음. 그래.”

나는 강민희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환약을 씹어먹고, 혈마진해광을 운용했다.

몸에 생명력이 북돋아지며 가슴이 상쾌해졌다.

“어때. 괜찮아졌어?”

“예. 덕분에 괜찮아졌습니다.”

본체에게서 느껴졌던 더럽고, 역겨우며 속이 뒤집히는 듯한 그 기분.

그 토기가 완전히 빠져 버렸다.

그러나 나는 살짝 걱정이 되는 게 느껴졌다.

‘지금 본체가 기절해 버렸다.’

아니, 기절이라기보단 요사채에 누워 체력을 회복하며 기절하듯이 자고 있었다.

일단 본체가 잔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결단기에 이른 후 거의 잠이나 먹을 것이 필요하지 않아졌고, 향화가 죽은 이후, 원립에게 복수를 다짐한 후로는 제대로 잠도 잔 적이 없었다.

애초에 잠을 잘 정도로 기력이 떨어진 적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기절한 적이 있다면, 그건 굉장히 강력한 적을 만나서 싸워 정신이 나갔을 때, 혹은 극한 환경에 떨어져서 10년 이상 법력이 전부 떨어질 정도로 버텼을 때나, 위대한 존재를 만났을 때 정도였다.

‘그런데, 본체는 지금 탱화도 하나만 보고 갑자기 이상해졌다.’

육체 상태도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태열전이 준 깨달음으로 인해 무의식 깊은 곳에서부터 힘을 끌어오는 방법을 알아냈고, 그 힘을 무형검을 통해 생명력으로 전환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뜬끔없이 속이 뒤집히며 구역질을 하고, 기절하듯이 쓰러졌다.

너무나 이상한 일이었다.

‘그 탱화도에 뭔가가 숨어 있나?’

어쩌면 그럴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연이도 함께 그 탱화도를 보았으니까.

어쩌면 태열전은 자신도 인식 못 하는 사이에 칠화왕이니 미래왕이니 하는 신(神)들에게 조종당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본체의 안위가 가장 내 근심사였고,

동시에 나는 ‘우리’의 안위가 걱정스러웠다.

‘본체는 지금껏 항상 나였다.’

나는 서은현이고, 서은현이 서립이었다.

그냥 한 손에 인형을 끼우고 복화술을 하며 노는 것과 겉보기에밖에 차이가 없는 짓이었다.

물론 단순한 복화술이라기엔 여기에 쓰인 자원과 술사의 수준이 너무 높긴 했지만 말이었다.

‘지금 내 상황은, 복화술사가 힘들어서 쓰러져 자는데, 인형이 깨어서 계속 복화술을 하는 상황이다.’

절대 말이 안 되는 상황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본체 ‘서은현’인가, 아니면 ‘서은현’에게서 탄생한 ‘제2의 인격’인 건가.

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고통스럽다거나, 나와 본체가 정말로 분리되었을 경우가 걱정스럽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렇게 된 거라면, 그렇게 된 거겠지.’

본체 서은현의 기억도 가지고 있고, 동시에 그의 깨달음도 가지고 있다.

내가 서립이든 서은현이든, 그로부터 탄생한 제 2의 인격이든.

솔직히 그뿐이었다.

본체의 몸을 가지고 싶다거나, 그의 인생과 회귀라는 권능을 뺏고 싶다거나 하는 욕심도 없었다.

본체의 인생과 회귀라는 권능, 그리고 그의 운명은 그 자체로 끔찍한 절망이자 고통이었으니까.

굳이 떠안고 싶지도 않았다.

‘걱정되는 건 ‘회귀’지….’

지금까지는 본체의 몸이 죽으면 본체의 의식이 완전히 내 쪽으로 넘어오며 내가 본체의 부활체가 되고, 부활체가 죽으면 다시 회귀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본체와 의식이 분리되는 조짐이 보이자 한 가지 가능성이 신경 쓰였다.

‘본체가 죽으면, 나로 부활하지 못하고 그대로 회귀해 버릴 가능성….’

본체에게 손해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나에겐 엄청난 고민거리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본체를 따라 회귀하는가, 아니면 이 세계선에 남는가?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었다.

‘일단 본체가 깨어나면 본체에게 이 문제를 상담해 봐야겠군.’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눈앞의 강민희에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로님.”

“그래. 괜찮아졌으면 됐어. 다음부터는 무례라고 생각하지 말고 힘들거나 고통스러운 일이 있으면 바로바로 말해. 나는 그런 식으로 내숭 떠는 새끼들이 제일 싫거든.”

“하하… 그러십니까?”

“그래. 예전에도 말이지. 그런 녀석이 있었거든. 내 고향에 한 바보가 살았어.”

“어떤 바보입니까?”

“나랑 그 바보랑… 뭐라고 해야 할까. 상회 같은 곳에서 같이 일을 했거든. 그 바보가, 상회에 들어가고 실수를 엄청 하는 거야. 실수 이후엔 곧잘 고쳐 나가긴 했는데…. 어쨌든 들어간 지 2주째에 자기 상관 자리에 음료 하나를 쏟았어.”

“….”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정신이 착 가라앉았다.

‘이런 젠장.’

내 얘기다.

현석 형님의 자리에 커피를 쏟았던 사건이 분명했다.

‘현석 형님… 그때는 부서에서 제일 무섭다고 생각했지.’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자가 분노하면 왜 서리가 안 내릴까.

남자는 분노하면 그 자체로 힘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오현석과 내가 형 동생 하며 잘 지냈고, 그 자체가 잘 웃었고 친해지기 쉬운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보통 그런 부류일수록 분노할 때 무섭기 마련이다.

퇴근 이후 1시간 반 동안 흡연장으로 불려가서 열중쉬어 자세로 혼났다.

사람이 안 맞고도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 있는지는 그날 처음 알았다.

‘애초에 덩치랑 근육이 꽤 되는 사람이 정색하고 낮게 깔면서 말하니까….’

무슨 사자가 앞에서 으르렁거리는 줄 알았었다.

“그때 그 병신 새끼가 상관한테 혼나는 거 기다렸다가 같이 집 갔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새끼 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하더라고. 다리 풀려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놈이… 여기서는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음, 비행법기? 그런 거에 자리가 있어서 앉으라고 했는데, 나보고 앉으라고 버티는 거야.”

분명 그랬었다.

그녀도 날 기다려 주느라 힘들어 했었으니까.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심지어 지하철에서 내리니 비까지 내렸고, 강민희는 우산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우리 둘 다 자취방이 아닌 경기 남부 본가에서 출퇴근했기 때문에 지하철 신분당선을 타고 서울에서 광교까지 내려갔었다.

내가 그녀와 사귄 이유 중 하나가 심지어 출퇴근 길까지 겹쳤기 때문이었는데, 우린 둘 다 광교에서 내렸다.

‘내리고 보니 편의점 우산이 다 팔려 버려서 살 곳도 없었고….’

우리 본가는 광교역이랑 가까웠기에 나는 뛰어가기로 하고, 광교역에서 더 가야 하는 강민희에게 내 우산을 주고 뛰어갔었다.

‘그때도 추억이군.’

강민희는 내 기억과 동일하게 내가 우산을 주고 간 일까지 말해 주었다.

그러나 거기서 느꼈던 감상은 나와는 조금 달랐던 모양이었다.

“그 병신 모지리 새끼가, 다음 날 감기 걸려와서는 하루 종일 열 난 채로 맹하게 돌아다니는 거 챙겨 주느라 짜증 나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 하루 종일 제대로 말도 못 하고 훌쩍거리는 거 보느라 답답했거든.”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내 기억상으로는 꽤 멀쩡하게 돌아다녔었다.

그런데 강민희 기억에는 조금 다르게 남았나 보다.

“그리고 심지어 그날 엑셀이라고 내 고향에 있던 게 있는데, 그거 그날 상관이 날 잡고 가르쳐 줬는데 감기 때문에 그날 제대로 머리에 넣지도 못 하고 나한테 매번 와서 물어보는 거 있지?”

그녀는 기가 차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괜히 제때 자기가 필요한 걸 못 챙기고 본인이 아프거나 힘들면, 그 손해는 집단 전체에 전파된다는 거야. 너도 이 말 명심하렴. 그 모지리처럼 그러고 다니지 말고.”

“….”

나는 그녀의 얘기를 듣다 보니 뭔가 오기가 생겨 질문했다.

“그런데, 송구하오나 원로님.”

“뭐지?”

“아까 해 주신 이야기에… 그 바보가 비가 올 때 우비를 원로님께 주고 갔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리고 다음 날 감기에 걸렸다고요.”

“그랬지.”

“그럼 만약 그때 원로님이 우비를 받지 않으셨다면, 감기가 걸린 건 원로님이 된 게 아닙니까?”

“그랬을 수도 있지. 그런데 나는 그 모지리랑 다르게 똑똑하거든.”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모지리 대신 차라리 내가 감기에 걸렸으면, 나중에 그 모지리한테 배웠으면 되잖아? 걔는 멍청해서 내가 설명해 줘도 설명해 준 것만 아는데, 나는 한 가지만 설명해 줘도 대강 다 알아들으니까 차라리 내가 그 멍청이한테 배우는 게 나았을 거야. 그러니까….”

그녀는 곰방대를 피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민희는 명귀계와 소통하는 진법을 바닥에 그리며, 다음의 말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만약 과거로 간다면, 내가 대신 아플 거야.”

“….”

* * *

본체가 다시 일어났다.

나는 본체에게 내가 겪었던 일을 전부 설명하고, 본체가 잠들었던 사이 일어났던 일을 전부 정리해서 본체의 의식에 전달했다.

다만.

강민희의 마지막 발언만큼은 본체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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