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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99

297. 남매 Ep – 관찰자

레안이 크세니아의 허리를 바싹 끌어당겨 안았다. 극장을 박차고 나온 에들린 페테르는 기가 차서 “허!” 외마디 숨을 뱉었다.

역시 예의 따위라곤 찾아볼 수 없는 평민이로구나. ─ 생각하며 그를 고깝게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뭐 이런 녀석을 좋아한담.

키도 작고 사내구실을 할 수 있을지 의심될 만치 말랐다. 옷차림도 허름한 것이, 거지였다는 게 맞말인 모양이다. 그런데 생김새는…

‘……잘생겼네.’

도저히 흠잡을 데가 없었다.

높은 콧등이 번쩍이는 황금빛 눈동자에 깊이를 더했다. 짙은 턱선은 사내다운데, 불그스름하니 예쁜 입술엔 보조개가 묻어 자칫 느끼해지기 쉬운 인상을 중화하였고, 눈썹은 고운 머릿결 아래, 반듯한 이마를 잘 구분하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귀는 귀엽고… 크흠!

에들린은 딸이 왜 이 거지 놈한테 죽고 못 살겠다는 것처럼 구는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잘생기면 얼굴만 뜯어먹고 살아도 배고플 날이 없겠다.

하지만 안 될 일이지.

딸년이 워낙 왈가닥이라 백번 양보해 신분은 둘째치더라도 목적이 불순하다. 저 반반한 얼굴을 무기 삼아 돈을 뜯어 갈 요량인가 본데, 그럼 나도 방법이 있지.

에들린은 네까짓 것과는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한 꾸러미의 돈을 던졌다.

“그것의 열 배를 주겠네. 원한다면 백 배를 주겠어. 당장 내 딸 곁에서 떨어지게.”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내가 묻기 전에는 답하지 말게. 기회는 지금뿐이야.”

“…”

[ 업적 : 클레오 드 프레데릭을 만남 – 프레데릭 왕가를 섬기는 모든 귀족에게 미약한 호감을 얻음. 클레오 드 프레데릭에게 미약한 호감을 얻음. ]

에들린과 레안이 눈싸움했다.

‘클레오 드 프레데릭을 만남’ 업적으로 인한 호감은 별로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기사, 하나뿐인 딸을 웬 거지 놈팡이가 채어가게 생겼는데 그까짓 호감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말도 못 하게 하니, 레안은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계획이 있었다.

– 쨍그랑.

“이, 이놈이?”

허나 팅! 튀어 오르는 금 쪼가리.

에들린이 던져준 꾸러미에 더해 크세니아가 건네준 것까지 뒤집자 금화가 우수수, 나뒹굴었다.

해맑은 목소리가 스쳤다.

– “내가 번 돈이야. 이거면 엄청 좋은 집을 살 수 있대!”

끄윽.

레안은 그리 호쾌하지도, 자랑스럽지도 못한 동작으로 빈 꾸러미마저 떨궈버렸다.

멈칫, 굳어버린 손으로 크세니아를 더 바싹 끌어당겼는데, 그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건 에들린에게 꽤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배짱을 부려 값을 올려받으려는 수작은 아닌듯하다.

왠지 울 것만 같은 표정도, 묻기 전엔 답하지 말랬더니 꾸욱 앙다문 입술에도 진심이 담겨있었다.

마음이 한결 누그러진 에들린이 입을 열었다. 손가락질하며.

“주워. 당장.”

“저는…”

“주워. 그래야 가서 이야기하지.”

검지 손가락질에 뒤이은 엄지 손가락질. 제 신분을 밝히려던 레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그는 순순히 금화를 주워 담았다.

제가 버릴 땐 언제고. 이대로 허리를 굽히는 건 영 면이 서지 않는 꼴이지만… 상관없었다. 레안은 제가 과거에 저지른 실수를, 동생이 벌어온 금화를 주워 담았다.

그런 기분이었다.

“레안…”

크세니아가 무릎 꿇어 거들고, 에들린은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길버트 포르테는 물론 토턴 타티안까지. 이 나라의 내로라하는 신랑감들을 도도하게 차버린 딸의 모습이 말이 아니어서다.

저렇게 좋을까.

한여름. 전시회를 보러 온 시민들이 웅성거리고, 흩어진 금화를 주워 담는 두 사람을 에들린이 착잡하게 지켜보았다. 그녀가 평소 오만하게 치켜드는 고개가 조금 떨구어졌다.

* * *

레안과 크세니아는 교제를 허락받았다. 크세니아의 저택으로 돌아와 차를 나눠마신 에들린은

“그래. 너희가 그렇게 좋아 죽겠다는데 어쩌겠니. 하지만 조심하렴. 아빠가 알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말하곤 총총, 자리를 비워주었다.

레안과 크세니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달그락. 크세니아는 곧이어 빈 찻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조용히 앉은 그녀는 서글픈 얼굴이었다.

레안이 물었다.

“왜 그러죠? 당신이 귀족이어서, 제가 당신을 달리 대할까 봐 걱정인가요?”

크세니아가 살며시 미소 지었다.

“반은 맞네요. 당신이 절 다르게 대하지 않으시리라는 걸 알아요. 그냥… 제 처지가 한심해서요.”

“어째서요?”

레안이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크세니아는 잠시 넋두리를, 레안이 처음 듣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귀족으로 태어난 업보죠. 제 아버지는 절 급이 맞는 가문으로 시집보내려 하셨어요. 영애가 가문을 위해 시집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저는 그게 싫었어요.”

“…”

“처음엔 괜찮은 사람을 못 만나서 그런 줄 알았죠. 그래서 맞선을 많이 봤어요. 길버트 포르테라고, 그 유명한 포르테 가문의 공자도 만나 봤고, 타티안 후작가의 공자와도 맞선을 봤죠. 모두 별로였어요.”

“토턴 타티안이요?”

“그 사람을 어떻게 아시네요? 네. 그 공자도 참 딱했어요. 자길 호위하는 여기사를 본인 마차에 태우고 다니더라구요. 아마 그 여자를 좋아하는데, 아버지께 말씀드릴 도리가 없었나 봐요.”

이렌느?

레안은 자신을 죽어라 뒤쫒아오던 기사를 떠올렸다. 그녀는 거의 반쯤 미쳐서 자신을 막아서는 카시아를 죽이고, 카트리나마저 죽여버렸다.

이렌느가 토턴을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토턴도 내심 그녀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리 중요하진 않은 정보라 레안은 일단 생각을 밀어 넣었다. 중대한 정보는 이미 나왔고, 크세니아가 말하는 중이다. 그녀의 넋두리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귀족들이 이래요. 자기 좋을 데로 행동하는 것 같아 보여도 그렇지가 않죠. 짊어진 게 많아서 옴짝달싹 못 하기도 해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건… 가주들? 개중에서도 대귀족이나 그럴 거예요. 나머지는 나름 필사적이죠.”

“…그렇군요.”

“하하. 전 왜 귀족으로 태어나선… 가출한 뒤에야 알았어요. 자기 한 몸만 건사하면 되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물론 먹고 사는 게 빠듯하지만, 그것만 해결하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겠더군요.”

크세니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그동안 숨겨온 예법으로 단아하게, 레안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치맛자락 양쪽을 살짝 들어 올린 게 산뜻하다.

“당신한테 실례가 될지도 모를 말을 했네요. 사실 이해해주길 바라고 말씀드린 건 아니었어요. 당신과 저는 살아온 삶이 너무 다르니까, 아마 이해하기 힘드시겠죠.”

“…그렇네요. 이리 와요.”

레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내가 모르리라 생각한 듯하지만…

방금 크세니아가 보인 예법은 제 가슴골을 가리지 않은, 남편을 대하는 예법이었다.

이를 무척 귀엽게 여기며, 레안은 그의 가슴에 폭 안긴 크세니아를 위로해주었다.

“분명 무척 힘들었겠네요.”, “걱정하지 말아요, 모두 잘 될 거예요.”

─ 말하며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는데, 크세니아는 레안이 많은 걸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그의 안락한 품에서 풋, 웃고 말았다.

내게 콩깍지가 씌긴 아주 단단히 씌었나 보다. 거지로 살아온 이 남자가 날 이해해주는 것만 같이 느껴지니…

크세니아가 레안의 목을 입술로 더듬어 올랐다.

그때 절그럭, 레안의 품에서 어떤 목걸이가 만져졌지만, 그 청색의 목걸이는 산산이 깨어져 본래의 문양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 * *

크세니아와 헤어져 돌아와, 레안은 다시금 빗자루질에 집중했다.

요 며칠간 그녀를 만나러 다니느라 청소가 밀려있어서 한동안은 바쁠 듯하다.

그는 물통과 물걸레를 가지고 다니며 라우노 패밀리의 저택 곳곳을 쓸고 닦았다.

동생은 공부 잘하고 있나,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나 훔쳐보기도 하였는데, 레리아나는 산티안과 함께 마당에서 ‘히베루나’라는 체술을 배우고 있었다.

운동을 퍽 싫어하는 동생이 저렇게 바깥 활동을 하는 건 여기, 라우노 패밀리에 들어왔을 때 외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얼마 안 있으면 오빠를 한번 이겨보겠다고 들겠지.

이미 겪어본 행복이지만, 레안은 미리 기뻐하였다.

이번에는 져줄까? 생각하다가 동생과 산티안이 어디로 도도도도 사라지고, 그는 다른 생각에 불을 붙였다.

어스름이 져오는 저택, 복도들에 불을 밝히며 베나르 타티안 후작을 떠올렸다.

베나르 타티안 후작이 크세니아를 며느리로 받으려 했었단 말이지.

그게 뭐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베나르 타티안 후작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크세니아를 언급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때는 후작이 제 아들을 죽여달라 청부한 때였다. 당시 민서는 자신이 양자로 들어가는 건 어떻겠느냐, 은근히 선전했고, 후작이 말을 돌렸다.

– “오, 그렇지. 혈육만큼 가까운 사람이 없지. 옛날에 내 친우가 접시를 깨뜨렸는데…”

여기서 말하는 친우가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인 건 나중에 알게 됐다. 타티안 후작은 접시를 깨뜨린(결혼하기 전에 사고 친) 친우가 딸을 가졌는데 그 딸이 아주 왈가닥이라는, 다소 사소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름은 말하지 않았지만, 그건 크세니아였던 게 분명하다.

당시에는 술에 취한 후작이 아무 이야기나 꺼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 사람이? 그 대단하신 대귀족께서 이유 없이 그런 잡담을 늘어놓았을까? 그것도 고작 깡패 부스러기한테?

그 뒤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술이 워낙 독해서 나도 취했기 때문에, 잘하면 양자로 들어갈 수도 있겠다 싶어서 몸이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나간 건 어쩔 수 없고.

그럼 베나르 타티안 후작은 왜 내게 크세니아를 언급했을까?

아들을 죽일까 말까 고민하는 마당에.

어쩌면… 후작은 대타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크세니아를 꼭 좀 후작가로 데려오고 싶은데, 맞선도 잘 안 풀렸을뿐더러 아들놈은 클로에 드 타탈리아 공주에게 홀려 제정신이 아닌데다가 크세니아는 가출해버렸네?

왜 후작에게 크세니아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만 내게 그녀를 언급한 이유가 뒷받침됐다.

즉, 그는 말을 돌리지 않은 것이다.

민서가 절 양자로 들이는 건 어떻겠습니까? 물어보자 크세니아란 애가 있는데, 걔를 데려올 수 있으면 고려해보겠다… 이렇게 제안한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민서는) 그것도 모르고 그의 마음을 돌리고자 동생을 데려갔고.

깨달음과 함께 욱! 레안의 속이 치밀어올랐다.

거지남매 시나리오는 정말이지 하나하나, 모조리 잘못된 길만 골라 걸어왔구나.

그때는 카시아의 굴레 퀘스트가 뜨지도 않았던 때였다.

크세니아의 존재조차 모르던 시기였는데, 그녀를 만날 길이 있었던 거다. 동생의 외모를 이용하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방안까지도…

레안은 가까스로 토악질을 참아냈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생각을 마저 가다듬었다.

그래. 베나르 타티안 후작이 모종의 이유로 크세니아에게 관심을 두었다면, 분명 감시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몇 가지 이해되지 않았던 후작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15번째 회차. 근위기사가 됐었던 다섯 번째 거지남매 시나리오에서 나는 타티안 후작을 다시 만났다.

‘클리안 드 타탈리아를 만남’ 업적을 해금하려고 실수인 척, 왕자의 집무실에 박차고 들어갔을 때였다.

그곳엔 헤르만 포르테 백작과 왕자, 베나르 타티안 후작이 있었고, 바짝 경계하는 포르테 백작과 달리 후작은 나를 향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마치 날 안다는 듯이.

크세니아와 연애하고 있을 때였다. 비로소 퍼즐이 맞춰졌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 사람이 왜 저러지? ─ 생각했었지만 그게 아니었던 거다.

얼마나 웃겼을까.

웬 거지 놈이 제가 지켜보는 영애, 크세니아랑 연애하는가 싶더니 카트리나를 이용해 근위기사가 되고, 왕자의 집무실을 박차고 들어 왔으니.

타티안 후작이 내게 접근한 건 그로부터 몇 주일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스틴 왕국의 왕자가 도착해 열린 연회장에서, 그는 차갑게 얼어붙은 눈으로 값을 매기듯 날 위아래로 훑더니…

– “잠시 시간을 내주시지요. 드리고 싶은 제안이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클로에 드 타탈리아 공주와 길버트 포르테가 키스하는 걸 막겠답시고 공주를 막아섰다가, 그녀와 입맞춤하자 날 묘한 눈으로 바라보다 등을 돌렸다.

쓸모가 없어졌다고 판단한 거다.

그 직후, 크세니아랑 헤어진 것도 맞았다. 레안은 문득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의 경고가 떠올랐다.

– “왕자님께서는 겁이 없으시군요. 타티안 후작을 만나시다니… 그 용기를 높이 사, 제가 조언을 하나 해드리지요.”

– “후작을 어떻게 만나셨는지는 몰라도 접근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 친구는 아주 무서운 사람이지요. 왕자님께서 여기에 들렀다는 것도 곧 알게 될 겁니다.”

난 매번 후작의 코앞에서 놀았던 것이다. 그리고 크세니아를 만난 지금도… 베나르 타티안 후작이 나를 지켜보고 있을 터였다.

매서운 관찰자.

주신의 사도도 뭣도 아닌 주제에, 후작이 헤르만 포르테 백작과 함께 아스타로트를 억누르는 잠금장치인 까닭이었다.

레안은 어디선가 오만한 숨결이 훅- 끼쳐오는 것만 같았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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