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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3화 동기화

3화 동기화

“저 고문관 새끼 하룻밤 만에 말짱해져서 돌아다니는 거 봐라.”

“역시 아픈척했던 게 맞다니까?”

“빌어먹을. 나 여태 속은 거야? 119번은 그렇게 죽어 버렸는데.”

우리는 숙소를 벗어나 광산을 향하는 길이었다.

소년들의 말대로 119번은 오늘 아침 눈을 뜨지 못했다.

119번. 한국인이라면 익숙할 수밖에 없는 숫자.

차갑게 굳은 시체는 감독관이 수레로 실어 갔다. 소년들은 이런 일이 익숙해 보였다.

띠링. 띠링.

알림음이 울리며 미니맵 속 미지의 영역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나는 주기적으로 울리는 알림음이 시끄러워 적당히 볼륨을 줄였다.

“저 새끼 저거! 왜 저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거야!”

121번, 족제비를 닮은 녀석이 버럭 소리쳤다.

나머지 몇몇 소년도 동조하듯 무어라 지껄였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마음껏 짖어대라 월월월.

광산으로 가는 길은 듬성듬성 자란 나무를 제외하면 잘 다듬어진 평지였다.

평지의 끝엔 얼핏 봐도 4미터가 넘는 높다란 벽이 서 있었고, 벽 너머는 숲이었다.

‘저 벽을 넘어갈 수 있을까. 하지만 무작정 숲으로 달아나는 건 위험해.’

저런 울창한 숲에 들어갔다간 사나운 짐승이나 몬스터를 만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곳을 벗어나는데 숲을 통과하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식량은 필수적인 요소.

‘그렇다면 보급로가 있겠지.’

나는 지난밤의 일을 떠올렸다.

[아스트레아의 천칭]

내가 이 세계를 픽션으로 인지하는지, 아니면 현실로 인지하는지 가늠한다는 특성.

또 저울대의 방향과 기울기에 따라 ‘리메이크’ 스킬의 위력이 결정된다고 했다.

‘리메이크는 대체 어떤 스킬이지.’

그것을 알 수가 없었다.

아스트레아의 천칭이 해금된 후 스킬 설명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내용이 다소 추상적이었던 까닭이다.

◎ 리메이크

[리메이커가 소설 속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간섭할 수 있다.

연관 특성 ‘아스트레아의 천칭’의 기울기에 영향을 받는다.

리메이커의 ‘플레이어 레벨’에 영향을 받는다.

발현되는 힘의 크기에 비례해 RP가 소모된다.

현 플레이어 레벨(Lv.1)에서 스킬 발동을 위해서는 최소 10의 RP가 필요하다.]

머지않아 광산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우리 F조 외에 다른 조원들이 있었고, 나는 그들이 E조, G조, H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A조부터 D조는 다른 곳에 있는 건가.

“빨리빨리 처먹고 들어가! 이 빌어먹을 돼지 새끼들아!”

수프가 배급되기 무섭게 감독관이 소리쳤다.

소년들은 들이붓다시피 수프를 입 안에 욱여넣었다.

‘어느 쪽일까. 보급로는.’

나는 수프를 먹으며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하지만 보급로는 찾을 수 없었다.

.

.

.

미니맵은 갱도 안에서도 제대로 작동했다.

나는 일부러 후미에서 걸으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헥. 헥. 헥.

주머니 안에서 먼지가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수프에서 꺼내 챙겨둔 자그만 고깃덩이를 먼지의 입에 넣어줬다.

그러나 먼지는 그것을 먹는 대신 훌쩍 주머니에서 뛰어내리더니, 어딘가로 달려갔다.

‘먼지!’

나는 먼지를 쫓았다.

어느새 저만치 달려간 먼지는 벽과 바닥 사이의 경계를 꾹꾹 앞발로 누르고 있었다.

먼지의 의도를 알 것 같았던 나는 곡괭이를 손에 쥐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먼지가 주머니 안으로 돌아왔다.

“어이. 138번.”

테오와 F조 소년들이 다가왔다.

나는 그들을 무시한 채 먼지가 가리켰던 곳을 곡괭이로 찍었다.

쿠욱!

물끄러미 나를 보던 테오가 족제비에게 조원들을 데리고 먼저 가 있으라고 말했다.

족제비는 투덜대면서도 테오의 말을 따랐다.

“비켜 봐. 데미안.”

테오도 곡괭이를 들었다.

누가 그렇게 하자고 정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번갈아 곡괭이로 바닥을 찍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곧 감독관이 올 거다. 그전에 작업 장소로 가야 해.”

그러던 중 카앙! 내 곡괭이 끝에 무언가 걸렸다.

테오의 눈빛이 변했다.

서둘러 바닥을 파헤친 우리는 빛나는 마석 한 조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석을 찾았습니다.]

“너······ 어떻게······.”

테오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하지만 나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제 채굴되지 않은 마석의 위치를 미니맵에 표시할 수 있습니다.]

잠시 후 미니맵 곳곳에 반짝이는 표식이 생성됐다.

***

사흘이 지났다.

회복력 특성 덕분에 나의 몸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갱도에서의 작업만으로 나의 레벨은 세 단계가 뛰어 4가 되었다.

조원들도 나의 작업 실력에 더는 군소리하지 못했다. 나는 테오와 아주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럼 가 볼까.’

깊은 밤, 조원들이 잠든 것을 확인한 나는 숙소를 빠져나왔다.

지난 사흘간 나는 미니맵의 다른 사용법을 시험했고, 놀랍게도 ‘감독관의 위치’를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쉬운 점은 감독관의 위치를 띄우면 마석의 표식은 사라진다는 것.

“탈출하려면 지형 파악이 먼저겠지. 안 그래? 먼지야.”

주머니 안의 먼지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나는 세심하게 주위를 탐색했다.

감독관들이 교대로 불침번을 섰지만, 미니맵을 가진 나는 어렵지 않게 그들을 피해 움직일 수 있었다.

‘저건.’

새로운 광산 입구가 보였다. A조부터 D조의 작업 장소인 것 같다. 그렇다면 멀지 않은 곳에 숙소가 있겠지.

숙소를 찾아 움직였다.

나는 오늘 밤 이곳의 지형지물을 모두 파악할 생각이다.

‘찾았다.’

마침내 숙소로 보이는 건물을 발견한 나는 살금살금 다가가 유리창 안을 들여다봤다.

낯선 얼굴의 소년들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이유 없이 두근, 심장이 박동하는 것을 느꼈다.

[조건이 충족되어 새로운 전용 스킬이 해금됩니다.]

갑작스러운 메시지에 놀란 나는 몸을 웅크렸다.

아스트레아의 천칭이 해금됐을 때처럼 스킬란의 검은 도형이 진동했고, 글자로 변했다.

[동기화 Lv.1]

‘······동기화?’

[대상과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난데없이 등장한 스킬.

심지어 스킬을 실행한 적도 없는데 제멋대로 동기화를 시작한다니.

상세 설명을 확인하려는데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맞은편 건물로 달려가 몸을 숨겼다. 미니맵을 체크했지만 감독관의 표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 누구지?

저벅. 저벅. 저벅.

달빛 아래 네 개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감독관과 달리 그럴듯한 가죽 갑옷을 입었고,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다.

‘병사?’

빠르게 머리가 회전했다.

병사가 이곳에 있을 만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외부의 침입을 대비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보급로 경계.’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나는 병사들의 뒤를 밟았다.

다행히도 그들은 등 뒤를 경계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저들이 경계해야 할 쪽은 벽 안이 아니라 바깥이니까.

“어이. 수고들 했어. 이만 교대하자고.”

병사들이 멈춰 선 곳에는 커다란 창살문이 있었다.

그곳에서 경계 근무 중인 또 다른 4인의 병사가 보였다.

“날이 쌀쌀하구먼. 그럼 고생들 하게.”

“그래. 이따 보자고.”

창살로 만들어진 통문 너머는 숲속으로 이어지는 인공적인 도로였다.

찾았다.

저기가 바로 바깥을 향한 유일한 출구이자, 보급로다.

‘이런 곳에 있으니 그동안 찾을 수 없었군.’

보급로의 위치는 F조 숙소와 정반대 방향이었다.

나는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병사들의 면면을 살폈다.

‘제대로 훈련받은 자들 같은데.’

아무리 보급로를 찾았다 해도 저런 자들의 눈을 피해 달아나는 건 무리다.

교대를 마친 4인의 병사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그림자 깊숙이 몸을 숨기며 그들을 주시했다. 그러던 중 문득 떠올랐다.

어쩌면 병사들도 미니맵에 추가할 수 있지 않을까.

‘오.’

결과는 성공이었다.

병사들의 위치가 미니맵에 표시됐다.

물론 이러면 감독관의 위치는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수시로 번갈아 켜면 되겠지.’

기왕 이렇게 됐으니 나는 병사들의 숙소까지 파악하기로 했다.

병사들이 미니맵 끄트머리에 닿을 즈음 나는 일어나 뒤를 돌았다.

그리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털북숭이 감독관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냐 138번. 앙?”

이해할 수 없었다.

미니맵의 표식을 병사로 바꾸기 전까지, 근처에 감독관은 한 명도 없었으니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병사의 표식을 띄우자마자 미니맵 안으로 들어온 건가.’

퍼억!

감독관의 주먹이 나의 배를 강타했다.

바닥에 쓰러진 나는 둥글게 몸을 웅크렸다.

그냥 순순히 맞아줄 생각이었다.

말도 안 되는 행운이 따라 내가 감독관을 제압한다 해도, 멀지 않은 통문에 병사들이 있다.

‘······빌어먹을.’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감독관은 마땅히 이어져야 할 구타 대신 내 몸을 짓누르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다.

악취가 뒤섞인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간 네놈의 금발을 눈여겨보고 있었지. 너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흐흐흐흐······.”

나는 감독관이 하려는 짓을 깨닫고 경악했다.

이 상황에서는 침착함이고 뭐고 소용없었다. 발버둥 치며 녀석을 밀어냈다. 이 미친 새끼. 손 떼. 당장 내 몸에서 손 떼라고!

콰드득!

묵직한 소음과 함께 뜨거운 액체가 나의 얼굴로 쏟아졌다.

얼빠진 표정의 감독관이 맥없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어······. 어어······?”

감독관의 목에는 마석을 깎아 만든 날붙이가 박혀 있었다. 나의 눈에 부릅 힘이 들어갔다. 나는 저것을 본 적이 있다. 나흘 전, 테오의 품 안에서.

“데미안!”

테오가 소리치며 나를 일으켰다.

나는 머지않아 이곳으로 닥쳐들 병사들을 떠올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 멍청한 놈아. 도와준 건 고맙지만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하냐.

“버러지 같은 새끼가······!”

쓰러진 줄 알았던 감독관이 테오의 옆구리에 단검을 꽂았다. 테오는 그 상태에서도 주먹을 뻗어 감독관의 얼굴을 때렸다.

나도 근처에 떨어진 돌을 쥐고 감독관에게 맞섰다. 이대로면 나를 도와준 테오가 죽는다. 싸워야 한다. 어떻게든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

나는 미니맵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런 난리 통에도 병사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잘 됐다. 나는 감독관의 목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놈의 목에 틀어박힌 날붙이를 돌로 내리쳤다.

콰직······!

섬뜩한 소음을 내며 날붙이가 뽑혔다. 구멍 난 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았다. 부르르 몸을 떨던 감독관이 허수아비처럼 무너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테오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옆구리의 출혈이 심했다. 나는 테오를 이해할 수 없었다. 녀석과 내가 조금 가까워진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목숨을 걸고 도와줄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테오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은 통문 쪽을 향해 있었다.

“저게 뭐지? 데미안······.”

나는 불길한 낌새를 느끼며 뒤를 돌아봤다.

콰아아앙!

통문이 박살 나며 길고 시커먼 것들이 뛰어 들어왔다. 저게 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인간도 아니고, 몬스터도 아닌 그 무언가였다.

“으악! 으아아아악!”

통문의 병사들이 그것들의 손에 찢겼다. 테오와 나는 뒤돌아 달렸다.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우리의 뒤를 바짝 쫓았다. 주머니 속의 먼지가 공포로 몸을 떨었다.

“데미안!”

놈들의 손에 먼저 찢긴 건 테오였다. 테오는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채 바닥을 뒹굴었다. 오래지 않아 내 몸도 그것들의 손에 붙잡혔다.

“빌어먹······!”

파앙! 시야가 핑그르르 회전했다. 통통거리며 지면을 구른 나는 목 없는 나의 몸뚱이를 멍하니 바라봤다. 눈앞으로 암흑이 내려앉았다.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익숙한 알림음이 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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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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