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3

*

지이잉.

‘또야?’

경수는 노을에게 번호를 알려준 것을 후회했다. 정말 뼈저리게 후회했다. 천노을은 시도 때도 없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젯밤에는 ‘잘 들어 갔어요ㅇㅅㅇ?’라며 엄마도 묻지 않는 안부를 물었다. 또 ‘방금 씻었어요!’라며 현재 본인의 청결도를 알려주지를 않나, ‘저 잠이 안 와요ㅠㅠ’라며 불면증의 유무까지 알려주었다. 물론 경수는 천노을이 보낸 문자를 모조리 무시하고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바로 잠들어버렸다. 딱히 한 건 없었지만 천노을 때문에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한 탓이었다.

「할로윈가지: ;; 어제 자게에 올라온 글 본 사람?」

수업 시간, 짧게 울리는 진동 소리에 경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보았다. 뜻밖에도 메시지를 보내온 것은 천노을이 아니었다. 경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7교시는 자습 시간이었다. 음악 선생님은 칠판에 자습이라고 휘갈겨 적고 나가, 들어오시지를 않았고 아이들은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쿨쿨 자고 있거나 노트에 오목을 두고 있었다. 경수는 보는 눈이 없다는 걸 알자마자 대놓고 책상 위로 휴대폰을 꺼내 톡방을 열었다.

「완두완댜: ??먼데요? 누구 또 싸워여??」

「할로윈가지: 그러면 더 좋았겠지만ㅋㅋ」

「할로윈가지: www.illusions2.net/board_18191209」

다들 동시에 메시지를 읽고 있는지, 메시지 옆의 숫자가 빠르게 사라졌다. 경수도 곧장 올라온 링크를 클릭했다. 학교 컴퓨터실에 누군가 몰래 틀어둔 와이파이를 쓰고 있어 로딩이 느렸다. 익숙한 게임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 창이 떠올랐다.

제목: 거너들은 들어와(3채널 학살사건 관련)

“…….”

경수는 제목을 보자마자 내용을 읽지도 않았지만 무슨 내용이 나올지 단숨에 알아차렸다. 새벽에 올라온 글인데도 댓글이 많이 달려있었다.

작성자: 도현짱123/거너

내용: 거너 애들아 당분간 3채널 레인보우 홀 근처는 얼씬도 하지 마셈…ㅠ 진심으로 경고하는 거야 너희를 위해서ㅋㅋㅋ 3채널에 거너만 잡아다 조지는 소시오패스 있음

(동영상)

이 새끼 개찌밥 아니었어? ㅇㄴ;; 승률 좀 높여보려다가…ㅋㅋ 쪽팔려서 ㅆ1발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쳐 발렸음ㅠㅠ 딴 놈 말로는 PVP 수락할 때까지 끈질기게 쫓아온대

자 이제 천노을 발컨이라고 했던 새끼들 다 나와^^

“그 와중에 또 영상을 찍었다고?”

경수는 작게 중얼거리며 음량을 최소로 낮추고 영상을 재생했다. 와이파이가 느린 탓에 영상이 드문드문 끊겨 보이기는 했으나 경수의 플레이가 맞았다. 이동기로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꾼 뒤 스킬을 쓰는 패턴이 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댓글 창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저게 천노을이라고?’라며 믿지 못하는 반응이 태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엄청나게 느린 몬스터에게도 어그로를 끌려 죽는 놈인데 스킬을 손에 익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리 맡긴 것 아님?’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정답….’

하지만 거기다 ‘그거 나임’이라는 말을 달아줄 필요는 없었다. 패망에게도 분명 말이 들어갔을 테니 놈들을 불안에 떨게 구는 편이 나았다. 경수는 이전으로 가는 키를 몇 번 눌러 다시 톡방으로 돌아왔다.

「ㅈi9별: 왘ㅋㅋㅋㅋㅋㅋ 서당 개 3년이면 공부를 잘한다더니;;」

「neutaaaa: 그거 아님ㅋㅋ 풍월을 읊어야 서당 개지」

「ㅈi9별: ㅇㅉ 서당 개가 아니라서 몰랐음; 뜻만 통하면 됐죠ㅡㅡ」

「neutaaaa: 바보ㅇㅅㅇ~」

「박휘벌래: 패망 좆됐네ㅋ 개쫄리겠다ㅎㅎ 천노을 실력 하나만 믿고 캐삭빵 뜨자 했는데….」

「나: ㄴㄴ 저거 나임」

경수의 말에 톡방에는 얼마 동안 아무 말도 올라오지 않았다.

「박휘벌래: 좆 된 건 우리였내ㅅㅂ」

그 말에 ‘ㅋㅋㅋㅋ’이라 웃으려던 경수는 고민 끝에 채팅창에 입력해뒀던 자음을 모조리 지웠다.

「나: 그래도 처음보단 좀 나아지지 않았어요??」

「할로윈가지: ??」

「ㅈi9별: ??????」

「박휘벌래: ??님 지금 천노을님 깔이라고 감싸요?」

「나: 아니, 이젠 누가 때리면 피하기라도 하잖아요ㅋㅋ」

「ㅈi9별: ??그거 콩깍지… 존ㄴㄴㄴㄴ나 똑같거든요」

「neutaaaa: ㅊㄴㅇㄲ 캐삭일까지 D-1」

「박휘벌래: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

진심으로 질 거라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아 여태 장난처럼 넘어갈 수 있었는데, 막상 PVP 전이 당장 내일이란 생각이 들자 조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경수는 낙서장으로 쓰던 노트 한 장을 찢었다.

“야. 나 펜 좀.”

경수는 뒷자리에서 껌 종이로 하트 모양을 접고 있는 태열의 필통에서 펜 하나를 꺼내어 갔다. 그는 종이 가장 상단에다 큼지막한 글씨로 ‘목표’라고 적었다.

<목표>

패망 길마 캐삭시키기!

1. 실패망파티 구성원: 거너, 힐러, 킹세이버, 히어로

거너- 캐삭, 원거리

힐러– 대머리, 젤 먼저 죽여야 함

킹세이버– 방어 장벽 치는 놈. 탱커

히어로– 단거리 딜러(연속기 개빡침 반드시 막을 것)

이렇게 쓰고 보니 우리 팀에는 탱커가 없잖아? 단거리 딜러만 둘에, 경수는 원거리 딜러, 박휘벌래는 힐러였다. 하필 천노을을 탱커 계열의 직업이 아닌 딜러 쪽으로 전직시키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경수는 포지션 분배에 대해서는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어떤 직업이든 간에 천노을은 그의 3%도 잘 사용하지 못할 게 뻔했다.

어쩌다 이런 놈과 같은 편이 되어서…. 경수는 중간에 선을 기다랗게 그은 뒤,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2. 작전 A

천노을을 구석지에 박아두고 보호한다. 무의미한 데스를 줄이기 위함.

*장점- 방해가 안 됨.

*단점– 천노을이 없어서 셋이서 상대 넷을 상대해야 함. 힐러가 집중적으로 조져질 수 있음

폐기. 이건 안 되겠다. 힐러를 보호하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나았다. 같은 목숨이지만 힐러는 도움이라도 되니까.

3. 작전 B

ㅊㄴㅇ이 제자리에서 좌우로 나가는 스킬만 계속 쓰게 하기

*장점- 스킬을 쓰기는 함

*단점– 바로 뒤질 듯….

이것도 폐기. 경수는 본문에다 커다랗게 엑스 자를 그었다.

4. 작전 C

이동기로 장벽 뚫고 콤보 연계… 아니다 이걸 걔가 어떻게 해 ㅅㅂ

‘폐기, 폐기, 폐기! 다 폐기야, 넌 그냥 가만히 있어! 죽지는 말고!’

눈을 감고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지만,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구성원을 지들한테 유리하게 짜뒀네.’

킹세이버 직업은 본인의 정면에 빛의 장벽을 만들어내, 특수 공격의 데미지를 50%로 감소시킬 수 있었다. 즉, 아무리 센 공격이 연달아 들어간다고 해도 킹세이버가 장벽을 쳐 막아버린다면 무용지물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천노을은 돌격형 이도류 직업인 블레이즈이다. 같은 전사 계열의 두 직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로가 천적이었다. 만약 놈이 어제 알려준 걸 그대로 써먹기만 한다면, 블레이즈의 ‘돌격’ 특성으로, 대략 1.5초가량 상대편의 장벽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라 느낄 수도 있지만 그 정도면 놈들을 한 번에 끌어와 죽여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걔가 할 수 있느냐가 문제지….’

종이에다 볼펜으로 천노을의 이름을 끄적거리며 고민하던 와중에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반장은 부스스하게 일어나 칠판을 지우고 아이들을 깨워 청소를 시작했다. 경수는 빗자루를 한 손에 들고 청소하는 시늉만 했다.

지잉.

「ㅊㄴㅇ: 경수형 저희 학교 끝났어요!」

「ㅊㄴㅇ: 저 당번인데 반 열쇠 친구한테 맡기고 튀었어요^ㅇ^ 잘했죠??」

한 시간 내내 얘 걱정만 했는데, 정작 본인은 아무 걱정도 없어 보였다. 이렇게 태평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나: ㅇㅉㄹㄱ」

「ㅊㄴㅇ: 저 곧 도착하는데 정문에서 기다릴게요ㅇㅅㅇ!」

내가 어쩌다 천노을이랑 학교 끝나고 만나는 사이가 됐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전설 펫만 아니면 상대도 하지 않고 후문으로 도망치는 건데. 왠지 문자로만 상대해도 피곤해지는 놈이었다.

“김경수, 너 할 거 없지?”

“나? 청소 중이잖아. 안 보임?”

경수는 빗자루를 들어 보였다. 하지만 내내 바닥을 쓸기는커녕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던 것을 반장은 다 보았다.

“아영이가 당번인데 쟤 지금 깁스해서 못 내려가거든? 쓰레기통 좀 비우고 와.”

“싫어.”

“나 청소 시간에 벌점 카드 발부할 수 있는 거 몰라?”

“…….”

권력에 진 경수는 쓰레기통 두 개를 들고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갔다. 학교 뒤뜰로 나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려던 경수는 어디선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형, 왜 여기로 나와요?”

“……?”

“이럴 줄 알았어.”

여긴 후문인데, 정문에서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나? 경수는 어리둥절하게 천노을을 바라보았다. 놈은 후문 울타리에 기댄 채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도망치려고 한 거죠.”

“뭐?”

이제야 알아챈 건데,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놈에게 은근히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다. 학교라는 곳이 그렇다. 다른 집단에 소속된 이방인이라면 일단 관찰하고 보는 것이다. 그 탓에 경수는 학생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불안한 눈으로 노을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해서 와본 건데… 진짜 너무해요…. 어쩐지 답도 없다 했어.”

“…….”

“제가 정문에서 기다린다고 아까부터 몇 번이나 말했는데….”

울상을 지으며 땅을 내려다보는 노을에 이름 모를 1학년들이 경수를 쓰레기 보듯 쳐다보며 지나갔다. 저 선배가 돈 떼어먹었나 봐…. 쓰레기야. 수군거리는 말소리에 경수의 표정이 절로 썩어들어갔다.

“씨발, 무슨 소리야? 나 도망치려 한 적 없어. 쓰레기 비우러 나왔다고!”

그 말에, 노을은 이제야 경수의 두 손에 들린 쓰레기통을 발견했다.

“제가 그걸 어떻게 믿어요?”

“……?”

경수는 쓰레기통을 들어 보였다. 가득 찬 페트병과 병이 짤그락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거 위장으로 들고 나온 건지 어떻게 아냐구요!”

“누가 씨발, 쓰레기통을 위장하려고 들고 다녀!”

“그럴 수도 있잖아요!”

“안 그래!”

경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채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노을은 영 내키지 않는지 입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그럼 폰 주세요. 도망 방지로 들고 있게.”

“도망 안 쳐, 내가 뭐가 아쉬워서 튀겠냐.”

“그러니까 주세요. …도망치실 거 아니면 상관없잖아요.”

어차피 휴대폰에 잠금도 걸려있어 안은 보지도 못한다. 경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놈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홱 돌아 쓰레기를 비우러 가는 내내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

경수는 종례가 끝나기 무섭게 반에서 일 등으로 달려 나와 휴대폰부터 돌려받았다. 잠금이 걸려있어 다행히 놈이 안을 보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런데 휴대폰을 받아 변한 게 있는지 꼼꼼하게 살피다 보니, 통화 내역에 노을의 번호가 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재중 전화 1건, ㅊㄴㅇ’

경수는 바로 옆에서 기분 좋은 얼굴로 걷고 있는 노을을 돌아보며 말했다.

“전화는 왜 했어?”

“아, 확인할 게 있어서요.”

설마 남의 폰을 주고 갔을까 봐 그러는 건가? 경수는 떨떠름했지만, 노을의 말을 흘려 넘겼다. 노을이 경수를 끌고 간 곳은 PC방이 아니라 오피스텔이었다.

“들어와요.”

“…왜?”

“걱정하지 마세요. 컴퓨터 두 대예요.”

“그게 아니라… 됐다.”

하려던 말을 삼키자 노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놈인데 벌써 집까지 구경하는 셈이었다. 컴퓨터 한 대는 거실에 설치되어 있었고, 나머지 한 대는 노트북이었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노을이 노트북을 꺼내 들고 나왔다. 방이 두 개인데 집에서 생활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혼자 살아?”

“네, 부모님이 바쁘셔서.”

“…….”

경수는 동질감을 느꼈다. 그의 자취방은 여기만큼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혼자 산다는 것에 마음이 짠해졌다. 경수의 부모님은 1년 전, 지방으로 내려가셨다. 하지만 경수는 학교는 다니던 곳에서 쭉 다녀야 한다는 엄마의 고집에 따로 살게 되었다. 방을 얻어 나와 혼자 사는 것은 생각만큼 즐겁지 않았다. 방바닥에 먼지가 그렇게 잘 생긴다는 것을 경수는 혼자 살며 처음 느끼게 되었다.

‘이 새끼 치대는 이유가 외로워서 그런 거구나. 그럴 수 있지….’

자신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경수의 눈빛에 노을의 얼굴이 미세하게 붉어졌다. 그는 컴퓨터를 켜고 그 옆에 노트북을 놓은 뒤 식탁 의자를 가져와 거기에 앉았다.

“형, 여기요.”

앉으라는 듯, 제 옆자리를 탁탁 두드리며 하는 말에 경수는 가방을 벗어두고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노을이 노트북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켜진 모니터의 배경화면은 온통 새까만 사진이었다. 노을은 잠시 멈칫하더니 재빨리 배경화면을 기본 설정으로 변경했다.

앉으니 주머니에서 뭔가 걸리적거렸다. 바지 주머니를 뒤적여 꼬깃꼬깃하게 접힌 종이를 꺼내 들자 노을이 그걸 빤히 바라보았다.

“…뭐지?”

종이를 펼쳐보니 자습시간에 혼자 고민하던 흔적이었다. 경수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너네 집 쓰레기통 어디 있어?”

“버리시게요? 저, 주세요.”

노을은 종이를 받아 펼쳐보았다. 별거 없는데 뭘 저렇게 열심히 읽는지 모르겠다. 게임 시작 창이 로딩되는 동안, 노을은 컴퓨터 책상의 유리 사이에 종이를 끼워 넣었다. 버려주겠다고 달라고 한 줄 알았더니….

“야, 버려. 쓰레기란 말이야.”

“싫어요. 이제 제 거예요.”

어차피 필요도 없고 민감한 말도 쓰여있지 않았기에 놈이 그걸 갖든 말든 별 상관은 없었지만, 어쩐지 찝찝했다.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뺏을 정도로 싫지는 않았다.

‘냥이냥나냥 님께서 게임에 접속하셨습니다!’

[길드] al0ha: ㅎㅇㅎㅇ

[길드] 냥이냥나냥: ㅎㅇ

[길드] ㅈi9별: ㅎㅇㅎㅇ

‘천노을 님께서 게임에 접속하셨습니다!’

[길드] 천노을: 안녕하세요^^/

[길드] ㅈi9별: 타이밍…?

[길드] 냥이냥나냥: 또 몰아가내ㅅㅂ

[길드] ㅈi9별: 별말씀을요ㅎ 쑥스럽다ㅎㅎ

[길드] neutaaa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경수는 빠른 타자 실력을 자랑하듯 키보드에서 손가락을 놀렸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문장을 완성해 엔터키를 눌렀다.

[길드] 냥이냥나냥: ㅊㄴㅇㄲ이라고 부르면 3대가 대머리의 저주를 받아 손잡고 흑채 공동구매함

[길드] ㅈi9별: ㅊ

[길드] neutaaaa: ㅊㄴㅇㄲ

[길드] ㅈi9별: ㅅ1발 놀래서 다 지움

[길드] neutaaaa: 아 ㅁㅊ

[길드] neutaaaa: 좃 댐;

[길드] 천노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박휘벌래: ㅋㅋㅋㅋㅋㅋㅋㅋ뉴님 대머리 됐다

[길드] ㅈi9별: 으

[길드] neutaaaa: 아니에요;;

‘박휘벌래 님께서 파티에 초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노을의 모니터에도 같은 창이 떠 있었다. 파티원은 경수와 노을까지 총 4명이었다. 내일 4대 4 PVP에 나가는 파티 구성원 그대로였다.

“아, 너 퀵슬롯에서 이모티콘부터 빼.”

“싫어요.”

어느새 이시스 마을의 경수 옆으로 이동해온 천노을은 ‘애교 부리기’를 사용해 ‘냥이냥나냥’에게 부비적거렸다. 경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하게 서 있었고, 천노을은 그런 경수 곁을 돌며 ‘춤추기’와 ‘애교 부리기’를 번갈아 써댔다.

[길드] 박휘벌래: 아 진짜 개빡친다

[길드] 냥이냥나냥: 나도

[길드] 박휘벌래: ㅗㅗㅗㅗㅗ

그 광경을 목격한 길드원 두 명이 가운뎃손가락을 뜻하는 모음을 연달아 보냈다.

[길드] ㅈi9별: 왜요?

[길드] 냥이냥나냥: 왜겠음?

[길드] 천노을: ㅋㅋㅋㅋ♡

[길드] 박휘벌래: 와서 보면 암…ㅡㅡ

[길드] ㅈi9별: 알겠다…. 진짜 가기 싫다ㅎㅎ

“그런데 파티는 왜 초대한 거예요?”

“연습전이겠지. 오늘 작전 짜자고 했잖아.”

“아.”

경수의 말대로, 파티원 4명을 제외하고도 다른 길드원 4명이 이시스 마을 경매장 앞에 모였다.

‘파티장이 냥이냥나냥 님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길드] ㅈi9별: 오늘은 홀블루 연결할 필요 없을 것 같아여ㅇㅅㅇ 8대 8이 아니니까 그리 복잡할 것도 없을 듯??

[길드] ㅈi9별: 아 아니다 천노을님 때문에 해야 하려나?

“연결 꼭 해야 해요? 형이 알려주실 거죠?”

“…….”

[길드] 냥이냥나냥: 괜찮대요

[길드] 천노을: 네 괜찮아요ㅇㅅㅇ!

[길드] ㅈi9별: 뭐냐 대변인 인줄ㅋㅋ

상대 4인은 할로윈가지, al0ha, neutaaaa, 완두완댜로 구성된 파티였다. 여덟 명은 다 같이 격투장 안으로 들어가, 다수 대 다수 PVP를 관할하는 NPC 앞에서 무기를 착용했다.

찰칵 소리가 나며, 여럿이 동시에 이동 아이템에서 무기로 장비를 갈아 끼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화려한 이펙트와 알록달록한 패션 아이템을 달고 있는 길드원들 사이에서, 투박한 갑옷을 입고 있는 천노을은 비교적 초라해 보였다.

[길드] 할로윈가지: 냥님이 참전 신청해요

[길드] 냥이냥나냥: ㅇㅋ

경수는 금발의 우람한 NPC에게 말을 걸었다. 익숙하게 키보드의 번호를 눌러 다수 PVP를 선택하자 선택 창이 떠올랐다.

‘연습 4인 PVP 전을 선택하셨습니다. 연습전은 격투 랭킹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맵을 선택해주세요.’

일대일 PVP는 랜덤 맵으로 이동되지만, 다수 PVP의 경우에는 맵을 선택할 수가 있었다. 정글, 사막, 폐허 도시, 들판. 총 네 가지 맵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된다.

“형, 정글이요.”

“정글 하고 싶어?”

“아마 걔네 내일도 정글로 고를 거예요.”

“왜?”

“그냥요.”

노을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놈의 감은 믿을 수 없었다. 정글은 바닥이 지나치게 울퉁불퉁하고 장애물도 공중에 떠 있어, 공격과 방어가 모두 어려웠다. 들판은 직선 바닥에 공중 발판도 없어 너무 심심한 편이었고, 사막이나 폐허 도시는 장애물과 발판이 곳곳에 위치해 있어 유저들이 가장 선호하는 맵이었다.

‘정글 맵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냥 하나씩 다 해 보지 뭐. 어차피 다들 한 게임만 하려고 온 게 아니었다. 적어도 열 판은 하고 나야 안심하는 사람들이니까.

‘정글로 이동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상단에 ‘0:30’이라는 글자가 떴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파티원들이 버프를 얻기 위한 시간이었다.

[파티] 박휘벌래: 축복 걸게요 ㄱㄷ

몸통 절반만 한 마법서를 든 박휘벌래가 버프와 축복 스킬을 걸어주었다. 버프가 하나씩 걸릴 때마다 퀵 슬롯 아래에 조그맣게 아이콘이 떴다.

[길드] 할로윈가지: 그냥 하면 심심하니까 내기하나 할까요?

[길드] 할로윈가지: 10판 해서 진 팀 중에 기여율 낮은 사람 대머리 깎기 어떰

[길드] ㅈi9별: 님 왠지 불안한데… 보통 내기하자 말 꺼낸 사람이 지더라고요;

[길드] 할로윈가지: 그럴 리가요ㅋㅋㅋ

[길드] 냥이냥나냥: 그런데 그 팀에 이미 대머리 하나 있잖아요?

[길드] neutaaaa: ㅅㅂ

[길드] ㅈi9별: 대머리는 매력 없는데…. 뉴님이 지면 헤어져야지ㅠ

[길드] 천노을: 전 내기 좋아요ㅇㅅㅇ!

[길드] 박휘벌래: 나만 아니면 됨ㅎㅎ

버프를 다 건 박휘벌래가 신이 나서 좌우로 비눗방울을 날렸다. 경수도 게임에 들어가기에 앞서 손가락부터 풀었다.

[파티] ㅈi9별: 전 부길마님 잡을게요

[파티] 천노을: ㄴㄴ할로윈 님은 제가 잡을게요

“엉?”

경수는 옆을 슬쩍 돌아보았다. 그리고 못 미더운 얼굴로 노을의 옆모습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파티] 박휘벌래: ???

[파티] 천노을: 지구별 님이 이동기 많으니까 다른 딜러들 잡아주세요

[파티] ㅈi9별: ????

“킹세이버는 어차피 저밖에 못 뚫잖아요. 형은 광역 딜러니까 딱히 한 명 잡을 필요는 없고, 지구별 님은 탱커 대신에 다른 원거리 딜러 맡거나 힐러 저격이 편하실 것 같아요.”

“아, 그게….

“어차피 연습전이니까요.”

그게 정석이 맞기는 하지만, 천노을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고 있어서 내린 결론이었다. 킹세이버를 초장에 제거하지 않으면 공격이 잘 들어가지 않으니까….

“…지면 너 대머리 돼.”

기여율로 따지면 아마 천노을이 최하위일 것이다. 그게 걱정되어 말해준 것인데 노을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

[파티] 냥이냥나냥: 일단 그대로 해봐여 어차피 연습전이니까

[파티] ㅈi9별: 넹~

[파티] 박휘벌래: ㅋㅋㅋㅋ넹

[파티] 천노을: ㅇㅅㅇ

그런데 정말로 할 수 있을까? 영 믿음직스럽지 않아 경수는 입을 꾹 다문 채 모니터만 노려보았다. 30초가 0으로 바뀌었을 때,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며 ‘8:00’으로 바뀌었다.

READY… FIGHT!

경수네 파티는 좌측 하단에서, 그리고 상대 파티는 우측 하단에서 시작되었다. 10초도 지나지 않아 할로윈가지가 반투명한 장벽을 펼쳤다.

‘빛의 장벽이 발동됩니다!’

[파티] ㅈi9별: 흐뤼얍

지구별은 발판 위로 올라갔다. 장벽을 넘어 상대 진영으로 침범할 작정이었다. 그런 그를 막기 위해 상대편 소서러 al0ha가 동시에 위 발판으로 뛰어올랐다.

“또 저러네.”

“뭐가요?”

“지구별. 어수선하게 날아다니는 거….”

한곳에 뭉쳐있어야 힐러의 치유를 받기 쉽기 때문에 혼자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지구별은 ‘그럴 거면 이동기를 왜 배움?’이라며 개인행동을 일삼았다. 워낙 익숙해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플레이 방식이 독특할 뿐이었다.

‘댄싱 체인!’

경수의 캐릭터가 기다란 쇠사슬 채찍을 휘둘렀다. 전방에 있던 세 명의 HP가 동시에 깎이며 독 효과에 걸려들었다. 세 사람의 몸에 초록색 테두리가 지며 희미한 독 연기가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상대편 힐러가 다시 축복을 걸자 상태 이상이 모조리 회복되었다. 상태 이상도 먹히지 않고, 또 데미지가 절반씩만 들어가니 골치 아팠다.

“천노을. 너 어제 이동기 등록한 거 기억나지?”

“네. 그런데 아직 BP가 덜 차서….”

BP(배틀 포인트)는 상대를 타격할 때 조금씩 차오른다. 경수는 연달아 스킬을 사용하며 노을의 화면을 흘깃 들여다보았다.

“다 차면 말해. 장벽 뚫을 때.”

“네.”

[파티] ㅈi9별: ㅅㅅ

‘1 KILL!’

그새 지구별은 al0ha를 죽이고 상대 진영으로 뛰어내렸다. 공중에서 운석을 내리던 소서러가 죽자, 고정 데미지가 사라져 한층 더 수월해졌다.

“형, 저 BP 다….”

‘맹수의 징벌!’

neutaaaa의 스킬에 소환된 늑대가 천노을을 길게 긁어내렸다.

‘천노을 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부활까지 10초….’

“…….”

“……찼었어요.”

경수는 노을에게 걸던 기대감을 완전히 버린 채 실소를 터뜨렸다. 천노을이 죽었지만 상대의 HP가 깎이는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파티] ㅈi9별: ㅋㅋㅋㅋㅋㅋ 천놀님 주무시나요?ㅎ

[파티] 천노을: 분석 중이에요ㅇㅅㅇ!

[파티] 박휘벌래: 분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크흡.”

무슨 분석? 핑곗거리가 신박해 경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옆에서 느껴지는 노을의 시선에 순식간에 언제 웃었냐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장벽을 깨는 것에만 집중했다.

[파티] 박휘벌래: 머리카락한테 작별 인사 해두십쇼^^

[파티] 천노을: ㅎㅎ싫어용ㅇㅅㅇ

잠시나마 얠 믿은 내가 병신이지…. 이제 믿을만한 사람은 지구별밖에 없었다.

[파티] 냥이냥나냥: 지구님 완두님부터 잡아요

[파티] ㅈi9별: 라져

죽었던 자리에서 부활한 소서러가 제 진영으로 돌아가 지구별에게 속박 스킬을 사용했다. 3초간 속박에 걸린 사람은 그 자리에 발이 묶여 움직이지도, 위로 뛰어오르지도 못한다.

[파티] ㅈi9별: 느리내ㅇㅅㅇ

[파티] 완두완댜: ㅅㅂ

피했다.

딜이 잘 들어가는 편은 아니지만, 길드 내 ‘PVP 할 때 제일 빡치게 하는 놈’ 1위가 지구별인 이유는 달리 있지 않았다. 이러한 공격을 기가 막히게 잘 빠져나가니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것이다. 힐러를 골라 때리는 나이트 스피어와, 제 힐러를 보호하려는 소서러의 전투가 펼쳐졌다.

‘빛의 장벽이 50% 파괴되었습니다.’

그때, 장벽을 무효화시켜줄 천노을이 살아났….

‘파이어 블라스트!’

‘천노을 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부활까지 10초….’

…다가 다시 죽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공격도 하지 않고, 위로 폴짝 뛰어올라 울퉁불퉁한 땅을 삽으로 파다가 얻어맞았다.

[파티] 박휘벌래: 전 진짜 살리려고 노력했음ㅠㅠ 저 인간이 공격 맞으려고 불길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고요

[파티] 천노을: ㅇㅅㅇ?

[파티] 박휘벌래: 아오

[파티] 냥이냥나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ㅈi9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져도 머리털 뽑힐 걱정은 없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ㅎ

LOSE….

결국 내리 세 판을 연속으로 져버렸다. 첫판은 그렇다 치더라도, 두 번째 세 번째 판은 답답하기가 그지없었다. 도저히 킹세이버의 장벽을 뚫을 방법이 없었다. 지난 패치 때 스킬이 상향된 보람이 있었는지 할로윈가지는 상당히 즐거워했다.

[길드] 할로윈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발키리 ☆거아니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약하네 약해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냥이냥나냥: 다음 판엔 별 모양으로 구겨드릴게요ㅎ

[길드] 할로윈가지: ㅋㅋ아이 무서워~~~~~

[길드] 완두완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박휘벌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neutaaaa: 님은 우리 편도 아닌데 왜 웃어요?

[길드] 박휘벌래: 웃겨서요ㅋ

[길드] 박휘벌래: 머리를 미는 것도… 캐삭 당하는 것도… 저는 아니니까^^ 화이팅!

[길드] 천노을: 재치 있으시네요ㅎㅎ

[길드] 냥이냥나냥: ****야; ***

[길드] ㅈi9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미1친 필터링ㅋㅋㅋㅋ 개 오랜만에 봐ㅋㅋㅋㅋㅋㅋㅋ

[길드] al0h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해돼.’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고 뒤에 틀어박혀 있으면 좋겠다.

“경수 형.”

경수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익숙하게 NPC에게 참전 신청을 했다.

‘정글 맵을 선택하셨습니다.’

‘정글로 이동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이번 판은 한 번만 던져봐요. 부담 갖지 마시고.”

“…부담?”

“네, 저처럼요!”

경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너 던진 거 아니잖아. 평소 실력이면서 왜 던진 척하냐?”

“…아직 일곱 판 남았잖아요.”

‘1 KILL!’

‘ㅈi9별 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부활까지 10초….’

상대 진영에 들어가자마자 지구별은 힐러를 죽이는 대신에 소서러의 불길에 직통으로 얻어맞아 죽고 말았다.

[파티] ㅈi9별: 저 넘 느린 것 같죠. 속도 퍼즐 구해다 강화해야 하나….

[파티] 냥이냥나냥: ㅗ

[파티] ㅈi9별: 하긴 내일이면 넘 촉박하긴 하다ㅠㅅㅠ

희망이 없었다. 뒤의 적들을 직업 스킬로 끌어오려 해도, 장벽에 갈고리가 튕겼다.

“씨발, 뭐가 이렇게 무적이야?”

밸런스 패치를 할 거면 발키리 스킬 쿨타임이나 조금 낮춰줄 것이지. 킹세이버의 장벽이 영 방해가 되어 머리가 아팠다.

“장벽도 약점은 있잖아요.”

“뭔데.”

“저요!”

천노을이 배시시 웃으며 한 말에 경수는 한 손으로 스킬 단축키를 누르며 대답했다.

“넌 쟤네가 아니고 우리 약점이야.”

“…….”

“그러게 왜 자신만만하게 탱커를 상대한다고 그랬어?”

“저밖에 못 하니까요.”

‘천노을 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부활까지 10초….’

“…….”

답답해. 너밖에 못 한다고? 그걸 왜 그렇게 확신하느냐고. 왜!

“저 못 믿어요?”

“너라면 믿겠냐?”

경수는 지구별처럼 맵을 지그재그로 올라가 공중에서 ‘후킹 스타’ 스킬을 사용했다.

[파티] 박휘벌래: 머임??

[파티] 박휘벌래: 다 어디 가요?

박휘벌래는 조금 헤매다 경수를 따라 위로 뛰어올랐다.

[파티] 박휘벌래: 힐러 귀한 줄 모르네; 감히 바퀴 님을 버렸겠다…?

‘2 KILL!’

‘3 KILL!’

박휘벌래는 곧 상대의 공격에 맞아 죽고 말았다. 그렇게 경수네 팀은 힐러를 희생하는 대신에, 장벽을 비스듬히 비껴 들어가는 공격을 쏟아부었다. 상대편 힐러와 뮤직로드가 쓰러졌다. 그리고 경수 본인도 킹세이버의 묵직한 철퇴에 맞아 죽었다.

경수가 다시 부활을 기다리는 동안 살아난 천노을은, 놈들의 공격을 피해 발판 위를 뛰어올라가 덩굴줄기에 매달렸다. 상대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하는 탓에 노을을 쫓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좁은 맵 곳곳에 발 도장을 찍으며, 노을이 중얼거렸다.

“형, 왜 지형 이용을 안 해요? 저랑 할 땐 잘 쫓아오셨잖아요.”

“지형?”

“네…. 왜 바닥에서만 싸우는지 모르겠어요.”

“……?”

“제가 왜 정글로 맵을 선택하라고 했겠어요. 발판 아껴뒀다 뭐 할 거예요?”

꼭 게임도 못 하는 것들이 저렇게 훈수 질을 둔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 나도 일대일이면 그렇게 하지. 그런데 다수 PVP에서 그러면 욕먹어. 힐 하기 어렵다고….”

“누가 욕해요? 데려와요.”

“데려와도 네가 죽는데 뭘 데려와? 그리고 발판 많은 건 정글 맵만 해당되잖아.”

“정글로 할 거예요.”

“뭘 그렇게 확신해? 패망 애들이 다른 맵 선택할 수도 있는데.”

“거기 제 친구 들어가 있는데, 정글로 마음 굳혔대요.”

“……그래?”

노을은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 그리고 파티원들 힐 하는 건 힐러 일이니 저흰 알 바 아니잖아요. 못하면 그냥 욕하면 되는 거예요.”

[파티] 박휘벌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짜증 나!

[파티] ㅈi9별: 망판이니 던집니다ㅋ

[파티] 박휘벌래: 딱히 님은 던지는 것도 아니자나여 맨날 그러면서;

[파티] ㅈi9별: ㅎㅅㅎㅋㅋㅋㅋ

지구별은 맵 가장 위쪽으로 올라가 떨어지며 스킬을 사용했다. 그리고 낙사 데미지를 받고 상대의 공격에 맞아 바로 죽고 말았다.

[파티] 박휘벌래: 모르겠다 저도 던져요ㅡㅡ

박휘벌래도 디버프와 저주 스킬을 사용하며 위로 뛰어올라갔다.

[파티] 천노을: ㅎㅎ

천노을도 그 말에 덩굴에서 떨어져 장벽 뒤로 넘어갔다.

[길드] 할로윈가지: 아 ㅁㅊ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막장이네

할로윈가지가 몸을 돌리자 장벽도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다만, 파티원들은 장벽 반대편에 있었다. 기회였다.

‘댄싱 나이프!’

‘5 KILL!’

‘6 KILL!’

‘7 KILL!’

연속 3킬이었다. 그것도 천노을이.

‘천노을 님이 무자비한 학살을 시작했습니다!’

천노을은 아무 스킬이나 사용하며 무분별하게 칼을 휘둘러댔다. 박휘벌래는 상대 뮤직로드에게 달라붙어 디버프를 걸던 것을 멈추고 한 칸 위로 올라가 천노을에게 힐을 주기 시작했다.

“…….”

얼핏 보면 규칙 없이 스킬을 사용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어제 경수가 사용하던 패턴 그대로, 공격이 들어오면 무기를 돌려 막아내고 적절한 이동기도 섞어가며 할로윈가지를 상대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수는 아래로 내려와 할로윈가지의 뒤에서 직업 스킬 ‘끌어당기기’를 사용했다.

[파티] 박휘벌래: ????

“뭐야? 반대쪽은 장벽이 안 먹히네…?”

경수는 그가 다시 몸을 돌리기 전에 스킬을 사용했다… 커다란 폭탄을 칭칭 감은 쇠사슬이 회오리치며 할로윈가지를 옭아맸다.

‘빛의 장벽이 2초간 무효화됩니다!’

그때 천노을이 이동기와 공격을 연계해 할로윈가지의 허리춤을 스쳐 경수의 옆으로 넘어왔고, 폭탄이 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6 KILL!’

할로윈가지가 처음으로 죽었다.

[길드] 냥이냥나냥: ☆

[길드] 할로윈가지: …?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정글 바닥에 깔린 커다란 통나무들과 울퉁불퉁한 바닥 덕에 원거리 직선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맵 내에서 도망치는 천노을을 후드려 패던 경험을 떠올려내니 복잡한 정글 맵도 어렵지 않았다. 다수 PVP답지 않게 이동기를 써가며 소서러와 뮤직로드만 따라다니며 부활하는 족족 목숨을 앗았다.

천노을은 첫판을 시작할 때 했던 말처럼, 할로윈가지가 부활하기가 무섭게 장벽을 파괴했다. 그러면 경수가 한 번에 놈들을 갈고리로 끌어왔고, 상대는 힘을 써볼 여력도 없이 죽기만을 반복했다.

‘22 KILL!’

‘23 KILL!’

[파티] ㅈi9별: 누구세요…? 천노을님 어디 갔어….

경수도 낯설었다. 분명히 다른 사람이 아니고 천노을이 맞는데…. 심지어 놈은 당당하게 기여율 2위 자리를 차지했다.

*

[서버] 냥이냥나냥: <3ch> 이시스 마을 메이크업 숍 ㄱㄱㄱ

경수가 전체 서버에 좌표만을 외치자, 영문도 모른 채 메이크업 숍 안으로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귓속말] 레이미: ???

[귓속말] 할로윈가지: ……? 저기요 냥님;;;;;;;

[귓속말] 에임이오짐: 님 그게 모애요?

[귓속말] 하카세: 가면 뭐 주나요?

“경수 형…. 형한테 귓속말 보내는 애들 다 차단해주세요.”

노을이 침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경수는 당연히 그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러면 너부터 해야 하거든.”

다양한 코스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자 닉네임들끼리 겹쳐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서버] ㅈi9별: 포세이돈 부길마 ★삭발식★ 보/러/오/세/요 >ㅁ< 3채널 절찬 상영 중 ♡

[서버] 완두완댜: 3채널 이시스 마을 >>>메이크업 숍<<< 경매장 옆 포탈 타고 들어오세요^^

[길드] 할로윈가지: 야 이 ㅁ/칭ㄹㅁ들ㄷ아

[서버] ㅈi9별: <포세이돈> 바(ㄷ)r 0ㅣ야7ㅣ◆ 후회 없이 즐겨요. 신개념 바다 문어 스타일 유. 행. 중#$ 머리 홀1딱 벗음☆ 많은 참석 바람니다.^^**

[길드] 완두완댜: ㅋㅋ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neutaaa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할로윈가지: 말도 안 돼

[길드] 박휘벌래: 그러게 누가 지래요ㅋ

[길드] 천노을: 맞아 맞아!

[길드] 할로윈가지: ** 저 만악의 근원

[길드] 냥이냥나냥: 그러게 누가 지래요ㅎ

[길드] 박휘벌래: 그러게 누가 지래요ㅎ

[길드] al0ha: 그러게 누가 지래요ㅎ

[길드] 완두완댜: 그러게 누가 지래요ㅎ

[길드] ㅈi9별: ㄷㄷ렉 걸린 줄 알앗내

마지막 판에서 1킬 차로 간신히 이긴 경수의 파티는 겨우 벌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킹세이버가 하는 일이라곤 장벽을 치고, 가까이 다가오면 그제야 공격을 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장벽마저도 약점을 찾아낸 덕에, 할로윈가지의 기여율은 겨우 1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대가로 그는 대머리 형에 처하게 되었다.

“천노….”

“네?”

“천노을.”

학교 명찰에도 똑똑히 박혀있는 본명인데도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았다. 게임에서도 같은 이름을 써서 그런지, ‘냥님’하고 부르는 것과 별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네?”

“너 갑자기 왜 이렇게 잘해?”

“형이 어제 알려주셔서요. 손에 익었어요.”

“웃기지 마. 그걸 그렇게 금방 익혔을 리가 없잖아. 네가.”

노을은 눈을 깜빡였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의아해하는 게 이보다 더 가증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게임 캐릭터 ‘천노을’이 노을 자신인 것처럼 움직임이 자연스러웠다. 함께 게임을 진행했던 길드원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경수도 함께 PVP를 뛰었기에 대신 조작해주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전체] ㅈi9별: 다들 물러나 주세요 가까이 가면 옮을지도 몰라용

[전체] 레이브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 할로윈가지: ;;부길마에 대한 존중은요?

[전체] 냥이냥나냥: ㅋㅋ머래; 30초 남았음

[전체] 할로윈가지: ㅠㅠ….

10시 정각이 되면 헤어스타일을 바꾸기로 했기에, 초 단위까지 나오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초를 셌다. 10초가 남았을 때는 메이크업 숍 안에 들어와 있는 유저들이 모두 가세해 카운트다운을 진행했다.

정각이 되자 길드원들은 약속한 대로 할로윈가지 쪽으로 이벤트 폭죽을 터뜨렸다. 화려한 반짝이가 공중에 흩날렸다. 할로윈가지의 머리를 덥석 집어삼켰던 미용실 기계가 한참을 꿈틀대더니 펑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갔다. 은빛 바람머리는 온데간데없이, 삶은 달걀처럼 뽀얀 민머리만 남아있었다. 나름 시니컬해 보였던 회청 빛의 반눈마저 아련하게 느껴졌다.

[전체] 천노을: ㅋㅋㅋㅋㅋㅉㅉ

[전체] neutaaa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 ㅈi9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 레이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 asdfzxcv: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할로윈가지는 재빨리 메이크업 숍을 빠져나갔고, 유저들은 이마를 연달아 치는 모션 이모티콘을 사용하며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다들 즐거워 보였다. 메이크업 숍에는 노을과 경수, 그리고 미처 뒤를 따라 나가지 못한 유저 몇 명만이 남아있었다.

경수는 노을에게 일대일 PVP를 걸었다.

“…저 또 뭐 잘못했어요?”

“아니, 일단 받아.”

노을은 잠시 생각하더니 수락 버튼을 클릭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전장에서 그렇게 날뛰던 놈은 어디로 갔는지, 노을은 폐허 도시 맵의 부유물 위를 밟으며 경수를 피해 다녔다.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뭐해? 빨리 무기 스왑해.”

“전 형이랑 싸우기 싫어요. 사이좋게 지내고만 싶다구요.”

경수는 노을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작 열 판을 옆에 딱 달라붙어 알려줬다고 해서 그 좆같던 센스가 순식간에 고쳐졌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일도 이렇게 할 거야?”

“아뇨, 내일은 열심….”

“내일은 열심히 한다고? 그러면 나랑 있을 땐 장난질이나 하겠다는 거야, 뭐야?”

그 말에 노을은 화들짝 놀라며 경수를 돌아보았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경수의 말을 듣고 놀랐는지, 당황한 노을은 더듬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형 캐릭터가 형이랑 너무 닮아서요….”

노을은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경수의 머릿속에서 노을에 대한 해석이 와르르 무너졌다. 일루전 역사상 둘은 없을 희대의 발컨트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내게 현상금을 걸고 따라다니던 스토커. 현피 뜨자고 했더니 사과를 하기는커녕 냉큼 좋다고 달려들던 놈. …이었는데 게임을 못 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이렇게 단기간에 실력이 늘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처음부터 센스가 없던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얜 도대체 뭐 하는 새끼지?’

그때, 노을이 타고 다니던 우주선을 무기로 스왑한 뒤 경수에게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제야 제대로 할 마음이 생긴 듯했다. 직업 간 상성으로 따지자면 단거리 딜러인 노을이 훨씬 유리했다. 노을은 제 공격에 경수의 캐릭터가 맞을 때마다 어깨를 흠칫 떨었고, 결국에는 경수가 이겼는데도 긴 한숨을 내쉬며 바들바들 떨었다.

꼴값을 떤다, 아주.

경수는 컨셉질을 하는 노을을 질린 듯 바라보았다. 노을은 얼굴을 감싸 쥔 채 울망한 눈으로 경수를 마주 보았다. 경수는 부길마의 삭발 소식으로 소란스러운 길드 톡방을 나와 시간을 확인했다. 집에 들어가면 열한 시가 될 것 같았다. 그는 게임을 종료한 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늦었어, 이제 집에 간다.”

“밖에 비 오는데….”

그 말대로 어느새 유리창에 빗방울이 맺혀있었다. 도로는 온통 축축하게 젖었지만 그리 세차게 내리는 비는 아닌듯했다.

“자고 가실래요?”

경수는 코웃음을 쳤다. 집이 그리 먼 것도 아닌데 실제로 만난 지는 일주일도 안 된 애의 집에서 잘 정도로, 그는 염치가 없지 않았다.

“우산 있어?”

“없어요. 다 학교에 놓고 와서요.”

“그럼 됐어.”

“형, 요즘 비 별로 안 좋아요. 먼지도 머금고 있어서 피부병에 걸릴지도 모르잖아요.”

“엄청 많이 오는 것도 아닌데 뭐.”

경수는 내팽개쳐둔 가방을 들고 신발을 신었다. 얼떨결에 경수를 따라 1층까지 내려온 노을은 아직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손바닥으로 받아보고는 경수를 돌아보았다.

“다 젖을 텐데….”

“괜찮아.”

경수는 가방을 머리 위로 들어 보였다.

“가방을 쓰면 어떡해요? 아무리 방수라도 그렇지!”

“방수 아닌데? 그리고 든 게 없어서 괜찮다는 말이었어.”

경수는 머리 위에서 가방을 흔들어 보였다. 하나도 든 게 없는 가방이 힘없이 풀럭거렸다. 노을은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작게 벌렸다. 그런 그를 내버려 둔 채 경수는 젖은 길을 밟으며 집까지 전력 질주했다.

이상했다. 분명히 부슬비였는데, 맞는 느낌도 나지 않았는데… 집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온몸이 흠뻑 젖어있었다.

*

경수는 커뮤니티 안에서 킹세이버의 ‘빛의 방벽’ 스킬의 약점을 언급한 내용이 있는지 내내 훑어보는 중이었다. 제발 아무도 몰라라…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한판 승부니까. 도영이 내내 다리를 떨던 경수에게 말을 붙였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안절부절못해?”

“나 오늘 캐삭빵 떠. 일루전….”

“뭐야? 그 게임 아직도 해?”

“너도 다시 할래? 저번 달에 신직업 나왔는데…… 진짜 진심 존나 재미없어.”

“재미없는데 왜 해…? 나 저번에 미친놈한테 이벤트 맵에서 PK 당하고 접었잖아. 아이템 다 뺏겨서.”

아, ‘그’ 사건. 일루전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이었다. 안 좋은 의미로 말이다. 그때 유저들이 대거 항의한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게임은 인생의 낭비야. 너 나 해, 너나. 한도영 꼬시지 마라.”

“지랄. 네가 못하니까 그러는 거면서.”

“…….”

권태열은 비아냥거리는 도영의 어깨에 팔을 앉으며 다녀올 데가 있다며 그를 끌다시피 반을 나갔다. 보나 마나 매점이나 가는 거겠지…. 최신 글을 뒤적이던 경수는 오늘 있을 PVP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글을 발견했다.

제목: 대박 패션숍 버그 찾아냄!! 무과금러 이걸로 펫 전부 샀다!!

작성자: 하카세/마법사

내용: 어그로 ㅈㅅ합니다 구라예요ㅎㅎ

존경하는 지엠 님들 제가 오늘 할 말이 하나 있는데, 공성전 때처럼 관전 모드 좀 만들어주심 안됩니까? (상황 모르는 애들은 캐삭빵 검색해서 댓글 수 제일 많은 거로 들어가서 보고 와ㄱㄱㄱ. 존나 웃기니까ㅋㅋㅋㅋㅋ)

패망 길마 캐삭하는 날인데 개 쳐 발려서 풀발 하는 거 꼭 보고 시픔^^ 아 솔직히 GM 님들도 보고 싶잖아요ㅠ 걔네 플레이 씹더럽고 맨날 지붕에서 일진 놀이하던 거 꼴도 보기 싫었는데 잘됐다ㅎㅎ

(26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개 꿀팁 인줄 알고 들어왔다가 공감 추천 박고 감

-아 벌써 존나 재밌다! 먼저 시비 턴 것도 걔네고 캐삭빵 제의도 걔네가 해서 재미가 두 배!ㅅㅅ

-야야야야 솔직히 양심이 있으면 여덟 명 중 아무나 방송 좀 후원 쏴 줄게ㅠ

└222

└33333

└4444444

-너 천노을 너무 얕본다? 패망은 걜 믿고 캐삭까지 건 거야…. 그 새끼들이 얼마나 얍삽인데 믿는 구석 하나 없이 캐삭빵을 제안했겠냐

└ㅇㅈ

└ㅇㅈ 사실상 3:5 PVP임 천노을 거의 스파이급ㅋㅋㅋ

└그래도 걔 전직 3차까지 다 했던데? 포세이돈에서 데리고 다니면서 버스 태워주고ㅋㅋㅋㅋ 이 정도면 실력 좀 늘었을 만도 하잖아

└그 정도면 발컨으로 유명해졌겠냐?

└아이고 레벨 높은 허접이 된 거지 ㅂㅅ아…. 천노을 사흘 전에 아쿠아리움에서 낙사로 죽더라…. 거기서 낙사 쉽지 않음….

└아쿠앜ㅋㅋㅋㅋ리움에서ㅋㅋㅋㅋㅋ낙사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냐 거너 학살하던 거 생각해보면 포세이돈이 이길 가능성 다분함ㅇㅇ

└ㅊㄴㅇ 그거 대리라는데?

└대리라는 거 걍 궁예임 아무도 확신 x

└당연 대리지 ㅂㅅ아

-캐삭하기 전에 템 전부 부캐로 빼돌리기 금지ㅋㅋㅋㅋ 솔직히 지킬 건 지키자ㅋㅋㅋㅋㅋㅋ

└ㄹㄹ 개 노간지^^

└서버 제일 노간지 패왕쨩 이 댓 보고 당장 우편함부터 가겠네ㅋㅋ

└안 갈걸ㅋㅋㅋ 걔가 여기에 현질을 얼마나 많이 했는뎈ㅋㅋㅋㅋ 져도 캐삭 안 한다에 손목 검ㅋㅋ

이 글을 보고 나니 다시 천노을의 실력이 생각났다.

‘어느 쪽이 진짜란 말이야? 일부러 그러라 해도 못 할 만큼 끔찍한 실력? 아니면 굳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방벽을 뚫고, 힐러에게 일대일로 붙어 상대 딜러로부터 능숙하게 케어하던 실력?’

둘 중 어느 쪽이든 소름 끼치는 건 마찬가지이다. 궁금한 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자신을 따라다니는 이유가 뭔지가 가장 궁금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자신이 랭킹이 높아서라거나, 천노을이 발키리에 관심이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는 결국 전직을 블레이즈로 했다. 그렇다면 서버 1위가 블레이즈니 그를 따라다니면 될 일이었다. 발키리를 키우는 것도, 앞으로 키울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왜?

천노을에게 묻는다고 해서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것 같지는 않았다.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할 뿐이었다.

*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져 내렸다. 어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빗줄기가 거셌다. 다행히 오늘 아침에는 일기예보를 본 덕에 우산을 챙겨올 수가 있었다. 어제처럼 쫄딱 젖어 돌아갈 일은 없다.

“형, 여기요.”

노을은 마시멜로를 하나 띄운 코코아를 내밀었다. 마시멜로는 두 발 위에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는 고양이 형태를 띠고 있었다.

“진짜 귀엽다….”

“감사해요.”

노을이 뒷목에 손을 얹으며 쑥스러워했다.

“……너 말고.”

먹기 아까울 거라 생각했는데 고양이는 금세 녹아버리고 말았다. 뜨거운 코코아를 입안에 머금으니 절로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는 분이 쿠키 세트 보내주셨는데, 그것도 드실래요?”

“그럴까.”

천노을은 여전히 별로지만 놈이 주는 음식은 죄가 없으니 억지로 먹어주는 것이다. 경수는 저도 모르는 사이 콧노래를 부르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약속한 시간까지 한 시간이 남았다. 실패망 길드원들이 서버 마이크나 귓속말로 유치한 신경전을 해댔다. 경수는 그들을 무시한 채 거실에 놓인 탁자 앞에 앉아, 노을이 하트 모양 접시에 담아온 하트 모양 쿠키를 집어 들었다.

[귓속말] 스페이드퀸: 노을노을 나 2억만 내다 쓸게 8강 하다 터짐

“너 귓속말 왔어.”

노을은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힐긋 바라보곤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요. 무시해도 돼요.”

[귓속말] 스페이드퀸: 사실 이미 썼음^^ 대신 나중에 채워둘게 사랑해ㅎㅎ

“전에 그 퀴즈 친구라던 애 아냐? 어디서 많이 본 닉인데….”

“…그건 됐고, 형 입가에 가루 묻었어요.”

가루를 털어줄 듯 가까이 다가오는 손에, 경수는 화들짝 놀라며 코 아랫부분을 손바닥으로 마구 쓸어내렸다. 파바바바박! 세수하듯 격렬한 움직임에 노을은 슬그머니 들었던 손을 무릎 위로 내렸다.

“이제 없지?”

경수는 입술을 비틀었다. 노을은 얼굴을 털어주지 못한 게 영 아쉬운 듯 씁쓸하게 웃었다.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미리 격투장에서 대기 중이던 경수와 노을의 곁에 구경꾼들과 실패망 길드원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격투장에 놓인 연습용 짚더미들을 때리며 시간을 보냈다.

[전체] 패왕1: 다 오셧나요?

[전체] Iove: 튈 줄 알았더니ㅋㅋ

[길드] ㅈi9별: [속보] 러브 머리 심어ㅋㅋㅋㅋㅋㅋㅋ 상처받았나 봄ㅠ 대머리라고 놀려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Iove는 지난주와는 다르게, 어깨까지 오는 까만 단발을 하고 있었다.

[길드] 냥이냥나냥: 진짜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할로윈가지: 저도 다시 심어도 되나요?

[길드] 천노을: 아뇨^^

[전체] 투명인간: 왜 아무도 대답이 없음 쫄려서 잠수 탓나

[길드] 할로윈가지: 짭러브가… 부럽다… 전 언제까지 이 머리로 살아야 하죠? 게임할 맛이 안 나네요

[길드] 냥이냥나냥: 저희 질릴 때까지요

[길드] 박휘벌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웃겨 당당한 척 오1지게 하더니 머리카락 심었엌ㅋㅋㅋㅋ 엄청 신경 쓰였나 봐ㅠㅠㅠ

[전체] 패왕1: 야 쫄리냐고ㅋㅋㅋㅋㅋ 대답

[전체] 파란김: ㅋㅋㅋㅋㅋㅋ무서워서 손가락 다 굳었나~

길드 채팅은 길드원만 볼 수 있으니 아무 말도 없는 것처럼 보일 만도 했다. 그때였다. 천노을이 공중에서 대시해 날아가, 쌓여있는 연습용 짚더미에 검 두 개를 동시에 휘둘렀다.

Perfect!

숫자 ‘600000’이 빨간 글씨로 떠올랐다. 이전의 천노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데미지였다. 한참을 저들끼리 비꼬고 비웃던 실패망은 일제히 조용해졌다. 50만 정도만 나와도 쓸만한 딜러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노을의 딜량이 60만 이상으로 나온다는 건 패망으로서는 예상도 하지 못한 전개였을 것이다.

[전체] 천노을: 말 잃으셨네… 또 지껄여보세요ㅇㅅㅇ!

[전체] 패왕1: 말 잃은 적 없습니다만? 빨리 신청하시죠.

[파티] ㅈi9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웃겨서 어떻게 하냐ㅋㅋ 저 손힘 다 풀림ㅋㅋㅋㅋㅋㅋㅋ

구경꾼들이 보기에는 패왕1 혼자 성질내다가 갑자기 진정한 것으로 보인 게 분명했다. 여기저기서 웃는 소리와 이중인격이냐는 말이 튀어나오자, 패왕1은 다시 한번 참전을 신청할 것을 보챘다.

[전체] 패왕1: 전에 말했다시피 우리가 이기면 전체 서버와 자게에 사과문 올릴 것. 그리고 깔끔하게 캐삭할 것을 요구합니다.

[전체] 냥이냥나냥: ㅇ

[전체] 투명인간: 대답 꼬라지 보소;

[전체] ㅈi9별: 저희 애가 과묵한 편이라서요^^

파티장인 경수는 미리 등록된 ‘패왕1 외 3인’ 파티를 찾아 참전 신청을 했다. 노을이 장담한 대로 맵은 정글이었다. 게임 시작 전 30초, 힐러가 주는 버프를 받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안 그치네….”

“내일 오전까지 계속 온다던데요?”

“…….”

그러면 내일 체육 시간도 자습이겠네. 경수는 불만을 굳이 숨기지 않은 채 손을 풀었다.

[파티] 박휘벌래: 님들 또 넘어가실 거?

[파티] ㅈi9별: 당연 당빠

[파티] 냥이냥나냥: ㅇㅇ

[파티] 박휘벌래: 뭔 이딴ㅋ

[파티] ㅈi9별: ??저 녹화 중이에요 끝나고 올릴 거임

[파티] 박휘벌래: 다들 파이팅!^//^

지구별은 손을 푸는 듯 공중을 파리처럼 날아다녔다. 게임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10초. 아직도 노을의 퀵슬롯에서 이모티콘은 빠지지 않았지만, 그는 보기 드문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파티] 냥이냥나냥: 지구 님은 히어로랑 힐러만 노려주세요 거너랑은 상성 안 좋으니까

[파티] ㅈi9별: ㅇㅇ

[파티] 냥이냥나냥: 천노을 님은 킹세이버 장벽만 뚫으면 되니까 거너 상대해주셈

[파티] 천노을: 네!!

노을은 채팅을 치면서 동시에 “네에.”라고 말을 늘려 대답했다.

[파티] ㅈi9별: 천노을님 되게 낯설다ㅋㅋㅋㅋ 갑자기 왜 잘해요? 진짜 누구세요….

[파티] 박휘벌래: 그럼 귀여운 힐러는 누가 지켜여?

[파티] 냥이냥나냥: 안 귀여운 힐러는 알아서 살아남아 보세요^^ ㅎㅇㅌ

[파티] 박휘벌래: ㅋㅋㅋㅋㅋㅋㅋ?

READY… FIGHT!

어제 했던 연습게임만큼만 하면 된다. 게임이 시작되고 8분이 거꾸로 카운트되기 시작했다. 실패망들은 하나로 뭉쳐 장벽을 세우고 앞으로 전진해오기 시작했다.

[전체] Iove: 뭐야???

포세이돈이 샅샅이 흩어져 위로 올라가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한 채. 천노을이 장벽을 뚫기 위해서는 배틀 포인트가 조금 차야만 했다. 보통 가만히 보호를 받으며 힐을 주는 힐러마저 콩콩 뛰어 덩굴과 발판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자 상대가 우왕좌왕하는 것이 보였다.

[파티] ㅈi9별: 저 먼저 가요~

지구별은 가장 위에서 창을 아래로 향한 채 놈들의 진영으로 떨어졌다. 그 뒤를 천노을이 따라 내려갔고, 경수는 한 칸 위에서 킹세이버를 저격했다. 뒤로 다가가 놈을 끌어당기려 했으나, 재빨리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스킬 사용에 실패했다.

[전체] Iove: 아ㅅ비ㅏㄹ

‘1 kill!’

[전체] ㅈi9별: 대머리 삭제ㅅㅅ

[전체] Iove: ㅡㅡ

힐러인 Iove가 죽고 나니 거너인 패왕1이 위로 뛰어올라 왔다. 경수 바로 옆 칸으로 올라온 패왕1은 팔을 커다랗게 벌려 기를 모았다.

[파티] 냥이냥나냥: ㅋㅋ박휘님 한 칸 더 위로

[파티] 박휘벌래: ㅇㅇ

‘스핀 토네이도!’

거너들은 다 이런가? 스킬 쓰는 요령이 전혀 없었다. 명색이 길드 마스터인데, PVP에서 차징이 긴 스킬을 사용하다니.

“아, 실수….”

천노을이 죽어있었다.

“……?”

[파티] 박휘벌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ㅈi9별: …???????? 거길 왜 뛰어듬????

[파티] 천노을: 실수…ㅎㅎ

패왕1이 좌우로 총을 갈기며 회전하는 동안 뛰어올랐던 천노을이, 그의 필살기에 맞아 쓰러져 죽었다. 박휘벌래는 패왕1에게 ‘속도 감소’와 ‘회피력 감소’ 디버프를 주었다.

‘2 KILL!’

지구별이 위로 살짝 뛰어 기본 공격으로 두 번을 때리자 스핀 토네이도를 사용하느라 절반이 깎였던 HP가 다 떨어졌다. 거너가 쓰러지기 무섭게 힐러 Iove가 부활했고, 경수는 이동기를 써 그에게 다가간 뒤, 순식간에 다시 죽여 버렸다.

[전체] Iove: ****들아

[전체] 투명인간: 바로 죽이는 게 어딧음 매너도 없냐

[전체] 냥이냥나냥: ㅋㅋㅋㅋㅈㅅ

[전체] ㅈi9별: PVP에서 매너 찾고 앉았네ㅇㅅㅇ 저러니까 맨날 처 발리지

[전체] 패왕1: ㅋㅋ두고 보자;

[파티] ㅈi9별: 근데 천놀님은 대체 뭐임?? 전 님을 알 수가 없어요

[파티] 천노을: ??

[파티] ㅈi9별: 갑자기 좀 잘하는 것 같으면서… 중요할 때 불구덩이로 스스로 들어가는 게 불나방이 따로 없음

[전체] 투명인간: 히어로 무서운 줄 모르네ㅋㅋㅋ

지구별이 내내 붙어있었음에도 끈질기게 목숨을 유지하던 히어로가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구별은 쥐새끼처럼 공격을 피해 위로 뛰어올랐다. 단거리 딜러인 히어로가 연속기를 쓰기 시작하면, 다른 공격도 모조리 막아내는 데다 주위로 아무도 다가갈 수 없어 곤란해진다.

“형, 위로 유도해요.”

“누구를?”

“히어로. …잠시만요.”

[파티] 천노을: 박휘님 나락 준비 좀

[파티] 박휘벌래: ?? 나락?을요?

[파티] 천노을: 네

[파티] 박휘벌래: ㄱㄷ 등록해야 함

[파티] 천노을: 제가 말하면 그때 히어로한테 쏴주세요

[파티] ㅈi9별: 아 알았다ㅋㅋㅋ ㅇㅋ 그럼 전 힐러 막을 게요

[파티] 냥이냥나냥: ????

“나만 몰라?”

바닥으로 내려오기는커녕 이리저리 이동해 다니는 포세이돈에, 히어로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난 거너까지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락이 뭐야?”

“나락의 주문이라고 마법사 계열 레전드 스킬인데, 상대를 아주 잠깐 기절시킬 수 있어요.”

“그게 뭐야. 나는 처음 듣는데?”

“연속기 막는 용도로는 괜찮은데 원래는 잘 안 써서 모르셨을 거예요. 평소엔 효율이 별로라.”

경수는 자신이 모르는 걸 천노을이 알고 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했다. 마법사를 키워봤어야 알지.

‘빛의 장벽이 2초간 무효화됩니다!’

천노을은 다시 부활하자마자 상대가 뿔뿔이 흩어진 틈을 타 장벽을 파괴했다.

‘3 KILL!’

곧장 내려가 킹세이버의 목숨을 앗았다. 10초 뒤 부활한 킹세이버는 더 이상 빛의 장벽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어차피 파티원들도 뿔뿔이 흩어졌으니 방어막을 친다고 유리할 게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데스 체인!’

경수는 히어로를 새빨간 쇠사슬로 엮어 끌어올리는 스킬을 사용했다.

‘나락의 주문!’

히어로가 짧은 시간 동안 기절 상태에 빠졌다. 뒤늦게 공격하는 바람에 기절이 풀린 히어로가 HP의 절반을 깎아 필살기를 사용했다.

‘괴성의 그림자!’

바닥에 진 그림자가 순식간에 괴물처럼 변하더니 경수를 집어삼켰다. 그림자가 입을 우물거리다 퉤 소리를 내며 뱉어내자 경수는 눈이 엑스 자로 변해 바닥에 툭 널브러졌다.

[전체] 투명인간: 꺼억 잘묵읐다

[전체] 파란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천노을: ㅋㅋㅋㅋ개1새가ㅋㅋㅋㅋㅋㅋ

[파티] 박휘벌래: ㅋㅋㅋㅋㅋ헉 욕하는 거 처음 봐

[파티] 천노을: 전 히어로만 조1질게요ㅇㅅ;ㅇ

[파티] ㅈi9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냥이냥나냥: 하지 마….

[파티] 박휘벌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노을은 꼭 이럴 때만 약속을 기가 막히게 잘 지켰다. 히어로가 죽고 난 뒤에는 그 자리에 얌전히 앉아있거나 기를 충전하다가, 10초 뒤 그가 다시 부활하고 나면 ‘기절-넉백 스킬-기절-넉백 스킬’을 사용하며 철저히 히어로만 공격했다. 결국 나머지 셋을 지구별과 경수가 상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체] 투명인간: ㅅㅂ;

[전체] 패왕1: 야 너 대리 쓰지ㅋㅋㅋㅋㅋㅋ

[전체] 천노을: 자기 위안하면 기분 좋아? 그냥 졌다고 해ㅇㅅㅇ!

‘27 KILL!’

‘WIN!’

천노을이 휘두르는 이도류를 마지막으로, 경쾌한 나팔 소리와 함께 게임 결과 창이 떴다.

‘+길드 포인트 100’

‘+경험치 300000’

‘+500000벨’

다시 격투장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길드원들과 구경꾼들이 결과를 물어왔다.

[전체] 패왕1: …….

실패망 파티원들의 접속이 끊어졌다.

“도망쳤네요. 이럴 것 같기는 했는데.”

“다시 들어오겠지.”

그때 천노을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천노을 님께서 교제를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야!”

“보니까 세 개 남았더라구요. 빨리 써버려야겠다 싶어서.”

‘아니요.’

‘교제를 거절하셨습니다. 10분간 고백 이벤트 버프가 활성화됩니다.’

‘최소 공격력 5% 상승’

[전체] 천노을: ㅠㅠ

[전체] ㅈi9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 쿠키맛솜사탕: 뭐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 할로윈가지: ㅅㅂ개웃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쉽다….”

“응, 난 별로.”

경수도 Esc를 눌러 접속을 종료했다. 가방을 들고일어나 신발장에 세워 둔 우산을 쥐자 노을이 뒤늦게 뒤를 돌아보았다.

“가시게요?”

“그래.”

“왜요? 오늘은 아무것도 안 알려주셨잖아요. 전 형을 고용한 건데… 계약 불이행 아니에요?”

“계약 뭐? 어려운 소리 하지 마. 아이템 잠금 언제 풀려?”

“2주 걸린다니까요. 신청은 해뒀어요.”

노을은 어제처럼 경수를 배웅하기 위해 그를 따라 나왔다. 로비로 나오자 밖의 나무가 미친 듯이 휘청거리는 게 보였다.

“…….”

경수의 동공이 떨렸다.

바람 왜 저러지? 여기서 버스정류장까지 가려면 20분이나 걸리던데, 택시를 부를 만한 돈도 오늘은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경수는 손을 흔드는 노을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우산을 펼쳤다. 그리고 어제처럼 달려나가는데, 갑작스레 반대로 부는 바람에 우산이 거꾸로 뒤집혔다.

“으악!”

경수의 절규에 천노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놈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수치스러워 죽고 싶었다. 우산을 다시 오므려도 원래 모양대로 돌아오기는커녕 우산살만 휘었다. 바람 탓에 비가 옆으로 내렸다. 나팔처럼 뒤집힌 우산을 앞으로 쳐든 채 걸어보려던 경수는 손이 미끄러져 우산을 놓치고 말았다.

“아, 안 돼!”

반대로 날아가던 우산을 주웠을 무렵에는 온몸이 비에 젖어있었다. 결국 경수는 다시 오피스텔 아래로 뛰어 들어왔다.

“헉… 헉….”

노을은 한참 배를 잡고 웃다가 찔끔 새어 나온 눈물을 훔치며 쫄딱 젖은 경수의 우산을 받아들었다. 말을 듣지 않던 우산이 놈의 손에 들어가자 다시 원래 모양으로 돌아왔다.

“올라가요. 그러게 자고 가셔도 된다니까.”

“…….”

나 택시비 좀 빌려줘. 그 말을 하기에는 한 살 형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

바람은 언제쯤 잦아드나. 경수는 내내 창가에 앉아 휘청거리는 나무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벌써 한 시간째였다.

“그러고 있으니까 산책 나가고 싶어 하는 강아지 같아요.”

“뭐, 개라고?”

“경수야, 오늘은 날씨가 안 좋아서 못 나가요.”

정말 소동물을 대하는 듯 상냥하게 중얼거리는 말투에 경수는 다소 충격을 받았다. 그러니까 지금 쟤… 나보고 개새끼라고 한 거지?

“처맞고 싶냐?”

“아뇨. 형, 그런데 옷 정말 안 벗을 거예요?”

“…….”

씻고 나와 젖은 머리카락을 탈탈 털며, 노을은 경수의 옆에 슬그머니 앉았다.

“감기 걸린다니까요.”

“초등학교 때 이후로 걸려본 적 없어.”

경수는 이미 축축하게 젖은 수건을 꽉 쥔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수건으로 닦아도 젖은 옷이 뽀송뽀송하게 마를 리가 없었다. 그 탓에 슬슬 입술이 파리해지기 시작했다.

“저도 지금 자야 내일 학교 가는데.”

“먼저 자. 비 그치는 대로 나갈게.”

“……안 되겠다.”

노을은 끝내 포기한 듯 보였다.

“…으, 으엇!”

이상한 소리를 내며 경수가 위로 쑥 끌어 올려졌다. 노을은 경수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위로 불쑥 들어 올린 뒤 욕실로 성큼성큼 걸었다.

“놔, 씨발! 가, 간지러워! 으학! 아하하!”

“간지럽다고요? 이게?”

열린 욕실 문 앞에 경수를 옮긴 노을은, 다시 한번 확인하듯 겨드랑이에 낀 손을 슬쩍 움직여보았다. 경수는 자지러지듯 고개를 저으며 버둥거렸다. 겨우 노을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을 때는 이미 욕실 안이었다.

“……?”

“씻고 나서 불러요.”

욕실 문이 닫혔다. 당황한 경수는 문고리를 잡아 돌려 문을 열었지만, 문 앞에 노을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는 다시 경수를 욕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보나 마나 물소리가 들릴 때까지 저러고 있을 작정인가 본데.

“그럼 씻어야지.”

불필요한 체력 낭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축축한 교복을 벗고 들어간 샤워부스 안에는 노을이 씻고 나온 탓에 향이 남아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달달한 향이 났다. 과일 향? 뭐지? 따뜻한 물을 틀고 코를 킁킁대던 경수는 자신이 변태 같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야 냄새를 맡던 행위를 중단했다.

달달하던 향의 정체는 보디워시였다. 남자애가 혼자 살면서 쓰는 보디워시가 자몽 향이었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려다, 놈의 얼굴을 떠올려보니 묘하게 어울려 수긍하고 말았다. 온몸에 단 냄새가 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씻고 나서 생각해보니 옷이 없었다. 젖은 교복을 다시 주워 입어야 하나 생각하던 와중 노을이 문을 똑똑 두드렸다.

“형, 문 앞에다 옷 놔둘게요.”

그 말에 경수는 곧바로 문을 확 열어젖혔다. 바닥에 옷가지를 놓아두려던 노을과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

“뭘 봐.”

놈의 손에서 옷을 건네어 받는데 손이 스쳤다. 새 속옷 한 장과 긴 바지, 그리고 흰 티셔츠였다. 바지는 조금 길었다. 경수는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꼈다. 내가 다리가 짧은 게 아니야. 저 새끼가 쓸데없이 긴 거라고! 애써 자기 위안을 하며 욕실을 빠져나오자 노을이 젖은 교복을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오늘 빨면 내일 아침에 안 마를 테니까, 그냥 이대로 말려 놓고 자요.”

“…….”

어차피 교복도 두 벌뿐이라 지금 집 세탁기에 들어가 있는 것을 빼면 이게 다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옷 벗을걸. 괜히 한 시간이나 덜덜 떨었네. 머쓱해진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노을의 방은 허전했다. 책상 위는 널브러진 물건 하나 없이 말끔했으며, 그 흔한 사진 한 장조차 없었다. 그래서인지 조금 심심한 느낌이 들었다. 놈의 방에 있는 가구는 책꽂이와 책상, 그리고 혼자 자기엔 꽤 넓어 보이는 침대가 다였다.

경수는 여기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제 자취방을 떠올려보았다. 똑같이 혼자 살며, 정리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도 동일한데 천노을의 방과 비교하면 제 방은 쓰레기장이었다. 경수는 내일 집에 돌아가자마자 방 정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 어디서 자?”

“침대요.”

“침대가 두 개는 아니지?”

“베개는 두 개예요.”

“어, 응. …그래. 다행이다.”

노을은 화장실과 거실의 불을 모두 끄고 방에 들어왔다. 친구 집에서 잔 게 하루 이틀도 아니었는데, 같은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노을은 보조 등을 켠 뒤 침대로 다가와 이불을 걷어냈다.

“불 안 꺼?”

“네, 완전히 어두우면 악몽을 꿔서요.”

노을은 먼저 침대에 누워 경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불빛이 없으면 잠을 못 잔다고? 어린애 같긴. 경수는 노을의 옆에 놓인 베개를 짚고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노을은 옆에서 듣기 좋은 목소리로 자기 전까지 종알거렸다. 성의 없이 대답하면 좋다고 목을 울려 웃기까지 했다.

경수는 눈을 질끈 감고 오늘 하루를 회상해보았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왜 하필 오늘 우산이 고장 나서. 왜 하필 오늘 바람이 이따위로 세게 불어서. 왜 하필 오늘 택시비를 들고 나오지 않아서…. 후회만 가득한 하루였다.

*

“……흣, 형.”

뭐지? 근처에서 들리는 앓는 소리에 경수는 문득 눈을 떴다.

…별거 아니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경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졸음이 몰려왔다. 그에게는 제 몸만 한 베개를 껴안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 그마저 없을 때는 이불을 안고 자야만 했다. 경수는 오늘따라 따뜻하게 느껴지는 베개를 다시 고쳐 안았다.

“으, 읏.”

“뭐야?”

또다시 끙끙거리는 소리가 났다. 잠이 확 달아났다. 평소보다 주변이 밝았다. 그제야 경수는 여기가 제 방이 아닌 것을, 그리고 제가 안고 있는 것이 천노을의 몸임을 자각했다. 그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오렌지색의 조명에 비친 천노을은 조금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동공은 마구 떨리고 있었으며, 평소와는 다르게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노을의 머리, 어깨, 가슴… 여기저기를 재빨리 살피던 경수는 이상한 부분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씨발, 뭐야?”

“형, 너무해요….”

노을은 얼굴을 손으로 감싸 쥐고 중얼거렸다. 조명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얼굴이 붉어진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경수의 눈에는 천노을이 부끄러워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거 나 때문이야?”

“형이 막 만졌잖아요….”

노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경수는 눈만 끔뻑거렸다. 노을의 바지춤이 불쑥 솟아나 있었다.

“내가?”

“네에….”

더러워! 경수는 손을 벌벌 떨며 물었다. 노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눈만 힐끗 올려 경수를 바라보았다. 경수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자각조차 하지 못했다. 제정신이었다면 씨발, 남의… 거기를 만질 리가 없잖아!

“형, 어떡해요?”

“네가 아기야?”

“아니요.”

“그렇지? 그러니까 너 알아서 해결해.”

“…….”

경수는 한동안 답이 돌아오지 않자 엉겁결에 사과를 하고 말았다.

“미, 미안. 만지려고 그런 건 아니야. 잠버릇이 험해서….”

“…알았어요. 그럼 해결하고 잘게요. 형 먼저 주무세요.”

노을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경수는 다시 제 자리에 누우며 눈을 질끈 감았다. 손 씻고 싶어. 물론 닿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씻고 싶어. 경수는 잠을 청하려 애쓰며 속으로 양을 세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흐, 으….”

“…….”

잠이 오지 않았다. 올 리가 없지. 바로 등 뒤에서 미친 새끼가 신음하고 있었다. 화장실에라도 갈 것이지, 3D 서라운드로 생생하게 들리는 음성에 잠이 싹 달아났다.

“경수 형….”

경수는 벌떡 일어나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너 나 좋아하냐? 왜 좆같이 내 이름을 불러!”

“…그럴걸요?”

“……?”

“좋아할걸요?”

“……그렇군. 마저 해.”

경수는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 누웠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잠은 다 달아났지만 눈을 꾹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악몽을 꿨을 때와 같은 대처다. 눈을 감고 있으면 언젠가 다시 잠에 들기 마련이고, 뒤에서 헉헉거리는 놈의 숨결도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형, 혀엉….”

“…….”

“경수 형….”

“아, 왜!”

경수는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외쳤다.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머리끝까지 수치심이 차올랐다.

“화장실이라도 좀 가!”

“여기 제 방인데요?”

“…….”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형 때문에 이런 거잖아요…. 진짜 너무해.”

“…….”

그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하필 잠결에 만지작거린 것이 베개가 아니라 놈의 거기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천노을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멀쩡히 잘 자고 있다가 희롱을 당해 깨게 된 것이었다.

‘심지어 날 좋아한다고까지 말했어.’

얼떨결에 나온 말인데, 거기에 긍정적인 답을 줄 줄은 몰랐다. 그래, 사람이 살다 보면 같은 남자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지. 얼떨결에 마음을 이야기하게 해서… 그건 미안한데.

“…….”

그래도 그 좋아한다는 사람 앞에서 대놓고 이름을 부르며 하는 것도 제정신은 아니다. 경수는 노을의 얼굴이든 아랫도리든 쳐다보고 있기가 어려워, 이불을 내려다보며 노을이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를 바랐다.

“나 때문에 그런 거 맞지? 확실해?”

“그럼 제가 멀쩡히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이러고 있게요?”

맞는 말이었다. 제 잠버릇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할 말이 더는 없었다. 경수는 한풀 꺾인 태도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미안. 내가 뭘 했으면 좋겠어?”

“해줄 거예요?”

“그래. 나가줄까?”

절레절레. 노을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갑자기 경수의 손목을 잡아챘다. 노을은 경수의 손을 가져오며 눈웃음을 쳤다.

“형이 해결해줘요.”

“…….”

해결, 뭐? 경수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함부로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경수는 한참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 시선을 돌려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을 바라보았다.

“씨발 놈아, 이게 뭐야.”

“뭐긴요.”

“…….”

아니, 이딴 걸 숨기고 다녔다고? 손에 반사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노을이 달뜬 신음을 작게 내뱉었다. 경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꿈이었으면.


           


The Dark Mage’s Return to Enlistment

The Dark Mage’s Return to Enlistment

gwihwanhaessneunde ibdae jeonnal-ida I returned, but it was the day before enlistment.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
Score 3.3
Status: Ongoing Native Language: Korean

Kim Minjun, who was a normal high school senior in South Korea, was suddenly summoned to another world and became a dark magician.

Minjun, who persevered through all sorts of hardships with the single-minded goal of returning home, saved this other world with his dark magic.

Casting aside a life as a hero and guaranteed riches, he returned to Earth.

Just when he was about to fully enjoy his life, a problem arose. A dungeon break occurred, and monsters began pouring out. Not only did this threaten the peaceful Earth life that Minjun had just returned to… But on his very first day back, he was also ordered to enlist in the mili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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