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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0

30화 용병들의 도시 (2)

30화 용병들의 도시 (2)

나는 일단 카인에 대한 일은 제쳐두기로 했다.

지금은 나의 세력을 일구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할 말이 있어.”

일행에게 내 의견을 말했다.

이야기는 조금 길어졌지만 핵심은 하나였다. 세르지오와 도박 대결을 벌이고, 랑베르 잡화점을 되찾자는 것.

“그, 그게 되겠어? 상대는 사기도박의 달인이라고!”

세르지오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족제비가 덜컥 겁부터 냈다. 이럴 때 하기 좋은 말이 있었지.

“닥쳐. 족제비.”

“······!”

“데미안. 방법은 있는 거지?”

테오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테오가 씩 웃었다.

“그래. 해보자. 우리가 광산을 탈출할 수 있었던 것도 네 덕분이었고, 덩치의 원수도 갚아주고 싶으니까.”

“하지만 테오······!”

족제비의 투정은 당연히 무시했다.

“테오와 족제비는 세르지오 잡화점을 조사해 줘. 덩치가 다시 그곳에 가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겠어. 누군가가 알아볼 수도 있으니까.”

테오, 족제비, 덩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세르지오라는 자에 대해 알아봐야 해. 최근 도박을 벌이는 장소가 어디인지. 뒤를 봐주는 자들이 있다면 누구인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세실을 돌아봤다.

이 임무의 적임자는 당연히 세실이다.

“열심히. 할게.”

세실은 묘하게 결의에 찬 얼굴이었다.

***

이틀 후, 나는 이른 아침부터 식당에 내려가 쿠를 기다렸다.

세실은 방에서 자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세르지오를 미행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엥? 금발 꼬마. 일찍 일어났구나.”

여관 문을 열고 들어오던 쿠가 나를 보며 둥그렇게 눈을 떴다. 저럴 때의 쿠는 꼭 놀란 호랑이 같았다.

나는 쿠와 함께 여관의 뒤뜰로 나갔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내가 작게 말했다.

“쿠. 부탁할 게 있어요.”

“부탁? 하하하! 어디 들어나 볼까!”

“저를 ‘어둠굴’에 데려가 주세요.”

쿠의 표정이 변했다.

“너, 어둠굴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어둠굴은 세실이 알아 온, 세르지오가 드나드는 도박장 이름이다. 낮에는 ‘팰리스’라는 이름의 찻집으로 운영되는 그곳은 달이 차오르는 깊은 밤이면 은밀한 도박장으로 변했다.

당연히 우리 같은 어린아이가 드나들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쿠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그곳이 질 나쁜 도박장이라는 것은 알고 있을 테고. 왜 그런 곳에 가려는 거냐. 설마 돈이 필요해서?”

“덩치의 집을 되찾기 위해서예요.”

“에엥?”

나는 덩치의 가족과 세르지오의 사기도박에 관한 내용을 쿠에게 말했다. 덩치와는 미리 의논을 끝낸 부분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쿠가 수염 가득한 턱을 매만졌다.

“덩치 꼬마를 도우려는 너희들의 우정은 잘 알겠다. 하지만 상대는 닳고 닳은 사기도박사야.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텐데.”

“그 부분은 염려 안 해도 돼요. 무조건 이길 테니까.”

자신 있게 말했지만 쿠는 영 미덥지 않은 얼굴이었다.

“설령 네가 이긴다 해도 그런 자들은 쉬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아. 뒤끝이 깔끔해지려면 제법 힘 있는 입회인이 필요할 거다.”

“알아봐 주실 거죠?”

나는 집요하게 쿠의 눈을 쳐다봤다.

쿠가 후우, 한숨을 뱉었다.

“어이, 금발 꼬마.”

“네?”

그러고는 콧구멍을 벌름대며 말했다.

“어른에게 부탁할 때의 적절한 말투가 있지 않을까아아아?”

······빌어먹을. 또 시작이다.

“으으응? 금발 꼬마. 으으으응?”

“······부탁드려요. 쿠.”

쿠가 껄껄껄 웃었다.

“으하하하 금발 꼬마! 네가 그렇게까지 고개를 숙이니 어쩔 수 없군! 좋다. 어둠굴에 데려가 주지! 대신 조건이 있다!”

무슨 조건.

“너희들 모두, 나에게 용병 훈련을 받아라.”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용병 훈련을 받으라는 것은 즉, 우리를 단련시켜 주겠다는 말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를 도와주겠다는 의미.

대체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 어떻게 우리를 도와주는 것에 대한 조건이 될 수 있는 거지?

“못할 것 같으면 지금 말해라. 분명히 말하지만 내 훈련은 쉽지 않을 거야. 예쁜 색시를 얻을 수 있는 진짜 사나이만이 견딜 수 있는 특훈이지. 암암!”

히죽히죽 웃으며 말하는 쿠의 눈은 아주 얄밉게 구부러져 있었다.

.

.

.

“이게 다 뭐예요?”

“뭐긴! 훈련을 위한 장비지!”

우리는 너른 들판에 나와 있었다.

나는 바닥에 놓인 장비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검술을 배울 거로 예상했는데, 쿠가 가져온 것은 군장을 닮은 등짐 여섯 개였으니까.

“금패 용병님의 말씀에 의문을 품지 말지어다! 하하하하!”

쿠가 우리의 발밑에 등짐 하나씩을 내려놨다.

세실을 잘 구겨 넣으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등짐이었다.

“저는 검술을 배우고 싶은데요.”

“어허! 금발 꼬마! 어디 기초 체력도 없는 놈이 검을 쥔다고 입을 놀리는 거냐!”

쿠가 짐짓 엄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콧구멍이 벌름대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꼴을 보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걱정 말거라. 기초 체력을 다지고 나면 그땐 질리도록 검술을 가르쳐 줄 테니. 으하하하하!”

후우, 한숨을 쉬며 나는 등짐을 들려 했다.

‘뭐야. 뭐가 이렇게 무거워.’

흔들어 보니 빠그락 빠그락,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린다.

등짐을 열어보자 안에는 커다란 돌덩이들이 차 있었다.

“이걸 메라고요?”

“싫으면 그만둬도 좋다! 대신 우리의 계약도 깨지는 거겠지.”

히죽 웃으며 쿠가 등짐을 멨다.

어쩔 수 없이 나도 등짐을 들었고, 다른 일행도 괴로운 신음을 흘리며 각자의 등짐을 짊어졌다.

“자! 그럼 달린다! 시이이이작!”

쿠가 달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따라오면 오늘 밤에는 붉은 털 멧돼지보다도 맛있는 고기를 구워주마! 대신 못 따라오는 녀석은 저녁밥 없다!”

세실의 눈빛이 변했다. 득달같이 쿠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나도 두 사람을 쫓았다.

“하하하! 이제야 따라온 거냐! 금발 꼬마!”

10여 분을 달린 뒤에야 두 사람을 따라잡았다.

내 몸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었지만 세실의 얼굴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 정도였다. 반면 쿠는 천천히 공원이라도 거니는 사람처럼 말짱했다.

“어떠냐! 몸을 움직이니까 상쾌하지?”

“어, 언제까지, 뛰는, 거죠?”

무거운 등짐 탓에 내 입에서는 저절로 세실어가 튀어나왔다.

“해질 때까지 달린다! 내 속도를 따라오면 오늘 저녁은 정말로 근사한 고기를 먹여 주지! 하하하하!”

이런 미친.

아직 정오도 안 됐는데 해질 때까지 달린다고?

“중간에. 쉬겠지.”

세실이 속삭였다.

그러나 세실의 예상은 틀렸다.

한 시간, 그리고 두 시간이 지났지만 쿠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이 족제비 꼬마! 일어나! 낙오하는 녀석이 하나라도 있으면 고기는 없다!”

테오와 덩치가 족제비를 억지로 잡아 일으켰다.

족제비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더는 못 뛴다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 테오를 이기지 못했다.

“속도가 늦다! 어서 따라와! 내 등짐은 너희 것보다 세 배는 더 무겁다!”

내 입에서 괴물이 내는 것 같은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세실의 호흡도 거칠어졌다. 나만큼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었지만.

“자, 천천히 씹어 먹으며 달리거라.”

쿠가 나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힐링 블룸이었다.

“이것이 내 훈련법이다! 휴식 같은 건 개나 줘버리라지! 약으로 깡으로 버티는 거다! 으하하하하!”

흉악한 정신병자 같으니.

마음속으로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나는 으적으적 힐링 블룸을 씹었다. 옆을 보니 세실도 독기에 찬 얼굴로 힐링 블룸을 먹고 있었다.

힐링 블룸을 먹자 체력이 다소 회복됐다. 조금 살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돌연 쿠가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하하하하!”

나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세실도 내 옆을 나란히 달렸고, 등 뒤에서는 테오 일행의 짐승 같은 숨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으하하하! 근성이 있는 꼬마들이로구나!”

정신을 차리니 나는 들판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세실이 콜록콜록 기침했다. 이 정도의 훈련은 세실에게도 강행군이었던 모양이다. 족제비가 엉엉 우는 소리도 들렸다. 어느새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정말로 우리는 해질 때까지 달렸다.

“사나이가 흘린 노력의 땀방울은 귀한 법! 하하하하!”

이 와중에도 즐겁게 웃는 쿠는 정말로 미친 사람 같았다.

우리와 똑같이 달렸는데 왜 저 사람만 멀쩡한 걸까.

“가자! 약속대로 근사한 저녁을 대접하지!”

간신히 몸을 일으킨 우리는 등짐의 돌을 하나씩 빼냈다.

그마저도 손이 부들부들 떨려 쉽지 않았다.

“뭐 하는 거냐! 여관에 도착할 때까지 훈련은 끝난 게 아니야!”

버럭 소리친 쿠가 성난 호랑이처럼 달려와 우리의 등짐에 다시 돌을 채워 넣었다.

심지어 꾀를 부린 벌이라며 자신의 등짐에 담겨있던 돌을 몇 개씩 추가했다.

“그. 그건. 왜.”

세실이 억울하다는 얼굴로 쿠를 올려다봤지만 쿠는 그저 껄껄 웃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약 올리듯 여관을 향해 달렸다.

“달려라! 나보다 늦으면 저녁밥은 없다!”

우리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쿠의 뒤를 쫓았다.

.

.

.

황소머리 여관으로 돌아오니 주인은 이미 뒤뜰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있었다.

쿠가 어디에선가 커다란 고깃덩이를 가져오더니 각종 양념을 뿌려 굽기 시작했다.

“황금 뿔 사슴 고기다. 여기에 적당량의 달빛 꽃잎과 눈물나무 수액, 그리고 백호초(白虎草) 가루를 뿌려 먹으면 손상된 근육을 회복시키는 데 아주 그만이지.”

나는 문득 카론 늪지에서 쿠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배부르게 고기를 먹은 다음 날, 나를 포함한 일행 모두는 이상할 정도로 몸이 개운하다고 느꼈었다.

“쿠. 빨리.”

세실이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쿠를 재촉했다.

하도 울어서 붕어처럼 눈두덩이 부푼 붕제비도 꼴깍꼴깍 침을 삼키며 고기를 주시했다.

“자, 다 됐다! 먹자! 하하하하!”

우리는 게걸스럽게 고기를 먹었다.

족제비가 팔에 힘이 안 들어간다며 고기를 바닥에 내려놓은 채 들개처럼 씹었고, 그런 족제비의 이마를 세실이 손날로 찍었다.

테오와 덩치가 크게 웃었다. 하지만 더욱 커다란 쿠의 웃음소리에 묻혀버렸다. 그렇게 우리의 첫 훈련은 끝이 났다.

***

깊은 밤, 세실은 눈을 떴다.

오랜만에 몸을 혹사하는 훈련이었는데 이상하게 몸이 개운했다. 그러고 보면 쿠의 요리를 먹을 때마다 이런 느낌이다.

세실은 곯아떨어진 데미안을 보며 피식 웃었다. 훈련할 때 데미안이 괴로워하던 표정은 정말 웃겼다.

“예쁜. 금발.”

세실은 데미안의 머리칼을 슬쩍 만져봤다. 이어 옷을 갈아입고,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뒤 창을 열고 나갔다.

구름이 짙다. 남몰래 활동하기 좋은 날씨다. 어둠에 은닉하기에도, 영력을 운용하기에도.

타탓.

세실의 발놀림은 빨랐다. 마치 나비가 날갯짓하는 것 같았다. 세실은 세르지오를 미행하고 관찰해야 했다. 데미안의 부탁이었기에 불만 같은 것은 조금도 없었다.

세실은 데미안이 좋았다. 테오도, 덩치도, 족제비도 좋았다. 물론 족제비는 조금 시끄럽지만, 그래도 나쁜 녀석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쿠는 어떨까. 세실은 쿠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쿠가 악인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은 페르디나에 도착한 후 세실이 갖게 된 가장 절실한 바람이었다.

‘······?’

세르지오 잡화점에 불이 켜져 있다.

훌쩍 지붕으로 올라간 세실은 2층 창문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런 꼬마들이 있다고?”

“그렇다니까 세르지오. 특히 한 녀석은 얼굴이 제법 반반하니 꽤 비싼 값에 팔릴 거라고.”

“호오. 우리 돈 많은 귀족 나리들께서 군침깨나 흘리시겠는데?”

세실은 조심스레 안을 들여다봤다.

세르지오.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장발의 사내.

두 사람은 얼마 전 도시로 들어왔다는 소년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까 보니 단장이 훈련을 시킨다며 막 굴리고 있더군. 나 원, 그러다가 얼굴에 상처라도 생기면 안 되는데.”

“물건은 언제 넘길 생각이지?”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당장은 어려워. 어쩌면 이번 임무를 다녀온 뒤에나 가능할 지도. 하지만 염려할 것 없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수수료나 확실히 챙겨 달라고.”

세르지오와 악수를 나눈 장발 사내가 잡화점을 나섰다.

세실의 가슴이 쿵쿵, 터질 것처럼 뛰었다. 세실은 장발 사내를 미행했다. 지금은 세르지오가 문제가 아니다. 믿고 싶지 않은 의심의 싹이 마음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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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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