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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02

300. 남매 Ep – 가면

“뭐어-? 결혼?”

레리아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그녀는 또래들과 놀다가도 종종 짬을 내어 오빠를 찾아갔는데 오늘 놀라운 말을 들었다. 오빠는 물걸레를 쥐어짜면서 놀라운 얘기를 대수롭지 않게 전했다.

“응. 조만간.”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야. 결혼이라니. 누구랑?”

“있어. 여기 사람은 아니야.”

“어, 언제, 어디서 만났는데? 뭐 하는 사람인데?”

“지지난 주였나… 시작한 지도 벌써 그렇게 됐네. 우연히 만난 사람이야. 연극배우고.”

“우연히 만난?”

“응.”

레리아나는 손을 허리에 얹으며 심통을 부렸다. 제 딴에는 단호해 보이려 코를 잔뜩 찡그렸다.

“우연히 만난 사람하고 결혼하겠다는 거야? 그것도 두 주일도 안 만났는데?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랑 평생 함께하는 거잖아. 오빠가 이러는 거, 난 잘못됐다고 생각해!”

“어쭈?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들었데.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쳐주디?”

“선생님은 아닌데…”

그러고 보니 누가 그랬지? 얼핏 초췌한 얼굴과 은반지가 스쳤다.

“아! 몰라! 암튼 난 인정 못 해!”

“얼굴도 안 봐놓고? 그렇잖아도 네 이야기를 했어. 보고 싶다더라. 주중에 같이 만나러 가자.”

“싫어! 난 바빠. 오빠 미워!”

레리아나는 흥! 토라져서 도도도, 달려갔다.

내가 왜 이러지?

그녀는 자기가 왜 화가 나는지 모르겠으면서도 혼자 있고 싶어 창고로 달려 들어갔다.

문을 쾅! 닫고 씩씩거리는데…

“레리아나야.”

창고에 걸쇠가 있을 턱이 있나. 달렸으면 바깥에 달렸지.

레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레리아나는 이불에 들어가 벽에 기대어 웅크려 앉았다.

“저리 가!”

묵직- 이불이 당겼다.

오빠의 목소리가 이불 너머,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왜 그래. 오빠가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오빠 결혼하지 말까?”

“……”

“알았어. 그럼 결혼 안 할게. 우리 동생이 싫다는 거, 오빠는 하나도 안 할 거야.”

오빠의 손이 이불 위로 토닥토닥, 머리를 쓰다듬었다.

레리아나는 그게 또 자길 애 취급하는 것 같아서 싫고, 본인이 어리광을 피우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것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는 짐덩이, 나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준 오빠다. 최근엔 근사한 방(창고)도 구해줬다.

하지만 왜 이렇게 심통이 나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게 오빠 말 듣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불 안에서 레리아나는 무릎에 턱을 댄 채 생각에 잠겼다.

다시 얼핏 옴뇸뇸뇸, 금속을 무는 감촉과 밤하늘, 몇 마디의 대화가 떠올랐다.

– “냑혼이 뭐야?”

– “결혼하겠다는 약속입니다.”

– “결온은 뭔데?”

– “어, 음.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함께하는 걸 결혼이라고 한답니다.”

– “사랑이 뭐야?”

초췌한 안색의 아저씨 얼굴이 뿌옇게 흔들렸다.

내가 이런 걸 어디서 봤지? 언제 꿈을 꾼 모양인데, 입술에 닿은 은반지의 감촉이 생생하다. 이내 고민하던 아저씨가 답해주었다.

– “으으음… 아! 공주님. 공주님께서는 여기 왕자님을 좋아하시죠?”

– “응! 나 오빠 좋아.”

– “그게 사랑이랍니다.”

– “그럼 나 오빠랑 결온해?”

– “그건 아닙니다만…”

– “아냐?”

당황한 얼굴. 충분한 답변은 아니었으나, 결혼은 오빠랑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았다. 내가 왜 이렇게 심술이 나는지도.

오빠랑 함께 평생 살고 싶다.

따뜻한 집이 있으면 금상첨화, 더 바랄 게 없겠다.

오빠가 결혼해서 떠나버리는 게 난 두려운 것이다. 오빠가 어디로 먹을 걸 구하러 가면 혼자 오들오들 떨며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내 입장이고, 오빠가 나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안다. 먹을 것도, 물도, 옷까지 내게 일방적으로 양보해준 오빠에게 이젠 결혼도 하지 말라 떼쓸 생각이냐.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러고 싶진 않은데…

레리아나는 또 문득, 울적해졌다. 혹시? 하는 생각이 들어 이불을 걷어치우며 말했다.

오빠는 아주 가까이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호, 혹시… 그 결혼한다는 거 나 때문이야?”

“음? 그게 무슨 말이니.”

“오빠는 잘생겼잖아. 마, 만약 나 때문에 얼른 결혼해서 집을 구하려 하는 거라면…”

이를 어쩌지. 돈 때문에 오빠가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결혼하려는 건 아닐까.

외모가 그렇게 쓰일 수도 있다는 걸 레리아나는 최근에 알게 되었다. 본인이 예쁘다는 것도. 레리아나가 이불을 움켜쥐며 말했다.

“차… 차라리 내가 시집을 갈게. 그게 더 나을…”

– 꽁!

바로 꿀밤을 얻어맞았다.

히잉- 아파. 눈물이 쏙 나와서 고개를 들어보니 오빠는 엄청 화가 난 표정이었다.

“쪼끄만 게 못 하는 말이 없네.”

레안은 후, 코로 심호흡하곤 울상이 된 동생을 다독여주었다.

“그런 거 아니야.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오빠 그 사람 사랑해. 일단 같이 만나러 가자. 만나보면 너도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될 거야.”

“…정말?”

“그럼.”

레안은 단단하게 약속해주었다.

동생의 꿀밤을 맞아 빨개진 이마를 어루만지며 “그럼, 모두 잘 될 거야.” 읊조렸다.

“그래도 나 오빠 결혼하는 거 싫어.” ─ 잉잉 우는 동생과 마음이 한껏 적막해진 오라비가 서로를 끌어안은

허름한 창고였다.

* * *

레리아나는 도로 공부하러 가고, 레안은 하던 청소를 이어서 했다.

오늘 할 청소는 물걸레질.

타일(tile)이 깔린 바닥을 닦는 날이었다.

타일은 점토를 구워 만든 값비싼 마감재였다. 당연히 아무 곳에나 막 깔아둘 순 없는 것이라 공용 현관 쪽 바닥이나 라우노 패밀리 가족의 모임 장소인 식당, 일부 복도에만 깔려 있었다.

말하자면 대리석의 대용인 셈이다. 레안은 무릎 꿇고 빡빡, 닦아나갔다.

식당과 현관을 다 닦고, 2층 복도에 가서도 그러는데, 언뜻 그림자가 덮쳤다.

고개를 들어보니 거구의 오베르가 딱딱히 굳은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오베르 씨? 제게 무슨 용건이 있나요? 용건이 없으면 발 좀 치워 주시죠.”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다리.

그는 혼자 심각한 얼굴이었다.

차갑게 굳은 얼굴로 레안을 한참 내려다보던 오베르가 탄식과도 같은 한숨을 뱉었다.

“너흴 데려온 내 잘못이다. 당장 떠나. 동생 데리고. 난 너희를 못 찾은 거야.”

레안은 주섬주섬, 물통에 물걸레를 담그며 물었다.

“왜요?”

“가랄 때 가. 솔직히 이러는 거, 나한테도 큰일이야. 보스께서 널 데려오라 하셨어. 대체 뭘 한 거야? 어디 마차를 타고 가더니 옷을 쫙 빼입고 돌아왔다지 않나… 여하튼 죽고 싶지 않으면 도망쳐. 앞으로는 동생 얼굴 좀 잘 가리고.”

오해를 했구나.

레안은 조세프 라우노가 자기를 왜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조세프는 지난주, 엘런의 전시회장에서 내가 크세니아와 데이트하는 걸 봤다.

아마도 내가 크세니아와 사귀고, 어쩌면 페테르 백작가에 다녀온 것까지 알게 돼서 부르는 것일 텐데, 오베르는 그가 우릴 죽이려는 줄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레안은 피식, 실소했다.

“웃어? 이게 진짜…”

하지만 오베르를 비웃는 건 아니었다. 제가 데려온 꼬맹이들이 잘못될까 봐, 보스의 명을 어기고 달아나라 권하는 마음씨가 곱다.

레안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오베르 앞에서 그의 상냥한 마음씨를 만끽했다. 잔정이 많은 사람이다. 이러니 카시아랑 친하지…

레안이 뻔뻔하게 대꾸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안 되겠어요. 저녁도 먹어야 하고… 시간이 애매한걸요. 내일 생각해 볼 테니, 앞장서세요. 보스를 만나러 가죠.”

아드득, 이를 악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오베르는 뭐라고 쏘아붙이려는 듯 검지를 치켜세웠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싱겁게 몸을 돌렸다. 조세프 라우노는 본인의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데려왔습니다.”

“어서 오게. 앉지.”

“저… 보스. 그 전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

오베르가 각오를 다지고, 말했다.

“저희 패밀리는 특별한 사유 없이 민간인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전 그걸 크게 자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랬지.”

“또 거지였던 저를 거둬주신 은혜 또한 잊지 않았습니다. 보스는 제게 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이십니다.”

머리가 제법 희끗한 조세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두툼한 손가락으로 턱을 쓸며 물었다.

“…그리 생각해준다니 고맙네만, 무슨 말을 하려는 겐가?”

“제가 말주변이 없습니다. 얘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몰라도 용서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좀 당돌한 구석이 있다 뿐이지 성실한 앱니다.”

“어이쿠, 이런.”

조세프가 화들짝 놀라 손사래 쳤다. 그는 행여나 레안이 오해할까 봐 얼른 말을 이었다.

“용서는 내가 할 일이 아닐세. 내가 이분을 부른 건 여쭤볼 게 있어서야. 레안 님. 이 친구가 뭘 오해했나 봅니다.”

“하하. 그러신 듯하더군요.”

“오베르. 잠깐 나가 있게.”

오베르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그는 동그래진 눈으로 레안과 보스를 번갈아 보다가 머쓱하게 방을 나섰다. 커다란 벽난로 앞에서 조세프가 레안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퍽 정중한 태도였다.

레안은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으며 잠시 옛날을 떠올렸다.

여기서 연초를 태웠었지. 그때는 패밀리 보스와 나란히 연초를 태운 것조차 기념할만한 일이었다.

레안은 연초를 피울 생각은커녕 사뭇 공손한 자세인 조세프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제가 기대를 저버리진 않은 듯하군요.”

“…그렇습니다. 말씀을 편하게 해주시지요.”

“그럴까요? 하지만 어디까지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페테르 백작가의 외동 따님과 교제 중이지 않으십니까. 백작가에 다녀오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것 참… 민망하군요.”

귀족 영애와 사귀는 평민이라니.

조세프는 이 소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청년을 어찌 대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제가 대인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저의 불찰입니다. 혹 불쾌하셨던 게 있으시다면, 분명 있으시겠지만, 용서해주십시오.”

귀족과 관련된 문제로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다가는 자칫 씨몰살이 나는 것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사죄하며 눈치를 살폈는데, 다행히 상대는 “하하하.” 거리낌 없는 태도로 사과를 받아주었다.

“불쾌할 것까지야…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아 고맙게 생각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다만?”

“이제 청소는 그만두고 싶습니다. 앞으로 밥값은 다른 것으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레안이 흠뻑 젖은 무릎을 어루만졌다.

조세프는 아휴, 그럼요. ─ 말하려다가 망설였다. 그는 뱉을 말을 혀 밑에 완성한 뒤에 물었다.

“물론입니다. 공자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겠습니다. 방도 새로 마련해드리는 게 좋겠지요?”

여기에 머물 생각이냐? ─ 라고 에둘러 질문한 것이었다.

솔직히 귀족과 얽히는 게 싫어서 나가주기를 바랐는데, 레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동생의 방을 마련해주세요. 저는 객실로 족합니다만… 아니다. 가능하면 동생 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제 방도 하나 마련해주면 고맙겠습니다. 그리 자주 이용하지는 않을 터이니 방이 넓거나 좋을 필요는 없습니다.”

응. 나는 돌아다닐 건데, 동생은 여기에 머물 거다. 라는 뜻이었다. 조세프는 군말을 붙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당장 바꿔드리지요.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십니까?”

“지금은 딱히 없군요.”

“…알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조세프는 졸지에 상전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페테르 백작가라… 이번엔 또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궁리하는데, 레안이 물었다.

“그럼 이야기는 이걸로 끝입니까? 제게 물어볼 게 있다 하지 않았나요?”

“네. 있었습니다만, 해결됐습니다.”

당신이 여기에 계속 머물 거라는 걸 알았다. 레안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안다는 듯이 말했다.

“저와 제 동생이 여기에 그렇게 오래 머무르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크세니아와 사귀는 건 당분간 비밀로 해주시고… 아, 저야말로 묻고 싶은 게 있네요.”

“무엇입니까?”

조세프는 대수롭지 않게 되물었다. 한데 이 마뜩잖은 상전이 난데없는 질문을 던졌다.

“라우노 패밀리는 어째서 이름이 ‘라우노(Launo)’입니까? 혹 ‘라오노(Laono)’와 관계가 있습니까?”

주름이 맺혀 사람 좋은 인상을 주던 조세프 라우노의 얼굴에 가면이 내려앉았다. 그건 주름이 미세하게 깊어진 것에 불과하였으나, 레안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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