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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04

302. 남매 Ep – 똑똑한 거인

“그, 그럼 소인은 물러가겠습니다. 길버트 포르테 공자는 제가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나이에 비해 잔주름이 이상하리만치 많은 사내, 브리안 자우어가 뒷걸음질 쳐 후작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베나르 타티안 후작은 자신의 책상에서 고개를 끄덕였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점점 흥미가 떨어져 가고 있었다.

저의 가문, 자우어 자작가가 국외 간섭을 받았다며 찾아왔을 때는 꽤 흥미로웠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음에도 자작위는 결국 브레틴 자우어가 차지하고, 브리안 자우어, 저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자칭 오르빌의 모든 창관의 주인이 되었노라, 제 쓸모를 증명하려 애쓰지만, 번잡하기만 할 뿐이었다.

베나르는 이내 브리안 자우어를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이까짓 것에 시간을 들이기엔, 그가 보는 세상이 너무 넓었다.

달그락- 남은 술을 마저 마시며 베나르 타티안 후작은 새로 올라온 서류철을 꺼내 훑어보았다.

근래에 들어 제롬 신성 왕국의 동향이 심상치 않았다. 눈여겨볼 만한 사건이 다수 발생했는데, 모두 메리엘 성녀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최고의 신학자이자 교회의 실권을 쥐고 있던 미하에르 추기경이 돌연 실각당했다.

사이먼 백작가와 무슨 불법적인 거래를 했기 때문이란다. 뭐,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성녀가 프레데릭 왕가에 힘을 실어주는 게 문제였다.

어쩌면 ‘무역’에 악영향이 올지도 모른다.

베나르는 자신의 서부 영지와 국경을 맞댄 오스카 백작가에 연락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다른 건…

‘아스란 왕국에선 마우닌-레티이 대회가 성황리에 종료됐고, 콘라드 왕국의 왕자, 에릭 드 예리엘은 아직도 엘리카 공주와 혼인하고 싶다며 아이셀 왕국을 압박 중이라… 나머지는 별것 아니군.’

국외 현황을 대강 훑어본 베나르가 서류철을 벽난로에 던져넣었다.

그의 눈은 이제 국내를 향했다.

왕.

잠잠하던 카로만 드 타탈리아께서 최근 또 재미있는 일을 꾸미셨다.

아이셀 왕국의 왕자, 비비안 드 이사도라를 초청했는데, 이번에는 무슨 생각일까.

왕이 하는 행동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하나같이 희한해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꼭 나라를 망치려고 작정한 것 같다. 주색잡기에 빠진 것도 아니면서 국정은 돌보지 않고, 저번엔 감옥을 증축하려 하길래 한마디 했다.

– “왕께선 ‘이끼’가 깔리는 곳에 참 관심이 많으신 것 같사옵니다.”

그러자 부글부글 노려보는 꼴이 어찌나 우습던지. 도무지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희한한 인간이다.

베나르는 이윽고 생각을 돌렸다.

그는 왕과 마찬가지로 다소 희한한, 강박적으로 보일만치 왕자를 감싸고 도는 그의 정적(政敵), 포르테 백작을 떠올리다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은 ‘아리스타 드 클라우스’ 왕의 통치 아래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아스란 왕국을 빌미로 기사단을 확충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작년엔 “기사는 가르치면 된다!”며 기사단 입단 기준을 대폭 낮추기도 하여 논란이 일었다.

뭐가 그렇게 급한 걸까.

반란을 일으킬 셈이라기엔 왕가를 대하는 태도가 지극하고… 설마 이 몸을 치려는 건 아니겠지.

베나르는 피식, 실소하며 생각을 마무리했다. 드넓은 집무실을 왔다 갔다, 벽난로와 죽은 아내의 초상화가 걸린 건너편 벽까지 느릿하게 돌아다녔다. 그는 최근의 관심사가 된 어느 청년을 떠올리고 있었다.

왈가닥 영애, 크세니아와 사귀는 평민이었다.

처음에는 본인의 아들과의 결혼도 마다한 그녀가 평민과 교제하는 꼴이 기가 막혔다.

한데 가만 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크세니아보다 남자 쪽이 더 이상하다. 흥미가 붙어 그 청년에 관해 조사해보았다.

그는 길바닥을 전전하던 거지로, 최근 라우노 패밀리라는 어느 깡패 집단에 몸을 의탁하였고, 엄청나게 아름다운 여동생을 데리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렇게 신기할 것도 없었다.

어쩌다 잘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 크세니아와 눈이 맞았나보다 ─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시비를 걸어온 건달들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는 보고가 있었다.

비쩍 마른 거지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 그럼 왜 여태 거지로 살았을까? 또 그런 실력이 있으면 그냥 깡패가 되지, 뭐하러 하인으로 일할까?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게스타브의 허락을 받아냈을까…?

사실 마지막이 관건이었다.

제 능력을 감추고, 어떤 꿍꿍이를 부리는 건 좋다.

야망이 있는 젊은이라면 응당 그래야지.

하지만 게스타프 페테르 백작에게서 교제 허락을 받아낸 건 그가 생각하기에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아는 게스타브는 혈통에 심한 자격지심이 있었다.

한데 그걸 뚫어냈다. 그 청년은.

베나르는 무척 당황해서 기존에 세워둔 계획을 수정할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 레안이라는 청년이 크세니아와 교제를 허락받는 문제로 곤란해할 때, 슬쩍 다가가서 거래를 제안하려 했는데… 이러면 내가 나설 명분이 없지 않은가.

쯧.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베나르가 입맛을 다시며 창가를 내려다보았을 때였다. 그의 입가가 씰룩, 호선을 그렸다.

아주 살짝 앞다리를 저는 백마를 타고, 청금발의 청년이 저택에 들어서고 있었다. 베나르는

“역시 보통 이상한 놈이 아니로구나.”

중얼거리며 술잔을 정리해두었다. 이윽고 만난 청년은 본인의 약혼식 초대장을 본인이 직접 전해주었다.

믿기 힘든 자기소개와 함께.

* * *

“우디. 가만히 좀 있어.”

– 히잉!

새하얀 암말이 레안의 머리를 핥았다.

레이의 예상대로, 그에게 탈것 업적으로 주어진 말은 우디였다. 레안은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딱히 우디가 싫은 건 아니지만, 왜 나만 암말이냐.

투정을 자주 부리지만 정이 많은 갈색 마(馬), 반테는 레브에게 붙여주고, 레이한테는 근육질의 힘 좋은 수컷 흑마, 쿠스를 붙여주더니…

‘탈것’ 업적에 아주 지독한 편견이 붙어있었다. 너한테는 암컷이 어울린다는 해괴한 편견이다.

레안은 쯧, 혀를 차고 말았다.

– 히잉?

“…그만 핥으라고. 이제 집중해야 하니까.”

혓바닥에 쓸려 망가진 머리를 정리했다. 뒤에서 푸르릉, 또 핥으려는 걸 고삐를 틀어쥐어 막으면서 경비병을 불러세웠다.

“무슨 일이십니까?”

“페테르 백작가에서 왔습니다. 후작님께 직접 전해드려야 할 서신이 있습니다.”

페테르 백작의 증표를 보여, 레안은 정문을 쉽게 통과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타티안 후작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돌이킬 수 없다. 실은 크세니아를 만난 시점부터 이미 후작과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던 만큼, 레안은 선수를 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는 편이 그에게 더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거니와, 아스타로트의 달라진 행동 때문이기도 했다.

‘굴레에 얽매이지 않아서일까.’

마르하스를 잡으면서 아스란 왕국의 역사가 변했다.

하지만 발생할 {이벤트}는 반드시 발생한다는 점에서 아스타로트가 다른 왕국의 왕자를 부른 건 대단히 기이한 행동이었다.

이러면 약혼관계 시나리오의 가장 큰 이벤트였던 {전쟁}이 사라지는 셈인데, 아스타로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뒤바뀐 역사에 맞춰 자기한테 유리한 판단을 내렸다.

아스란 왕국과 전쟁을 벌이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판단한 거다. 그도 제가 신력을 수급해야 할 벨리타 왕국이 적당히 혼란스러워지길 바랄지언정 쫄딱 망해버리길 바라진 않을 터였다.

그 말인즉슨 아스타로트는 앞으로도 이렇게 행동하리라는 것이었다. 레안의 목적은 달라진 상황이 어찌 돌아갈는지, 멀리서나마 지켜보는 데에 있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업적도 하나 확보하고 싶고…

응접실에서 잠시 대기해야 할 줄 알았는데, 집사는 레안을 곧장 집무실로 안내했다.

가는 도중에 브리안 자우어가 어두운 안색으로 두 사람을 스쳐 갔다. 레안은 그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사람은 왜 또 여기에 있지? 이젠 자작도 아닌데.’

후작이 저런 사람을 뭣 하러 매번 곁에 두는지 의아해하며, 집무실에 발을 들였다. 레안은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은 것을 느꼈다.

새파랗게 얼어붙은 눈동자.

거대한 책상과 수두룩한 서류철, 가지런히 정돈된 술병, 그리고 구름 낀 하늘이 비치는 창문은 후작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베나르 타티안 후작은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에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했지만 레안의 태도는 예전 같지 않았다.

“…”

“…”

그는, 먼저 인사하지 않았다.

어정쩡하게 집무실 한가운데에 서 있을 뿐이었는데, 후작은 그 이유를 짐작하였다. 짐작하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더러 일어나서 인사하라는 거다. 후작이 짐짓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전해야 할 서신이 있으면 두고 가시게.”

축객령이다.

무례한 손님에게 주인이 대응하기 좋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레안도 할 말이 있었다.

“이것은 청첩장이지요. 크세니아 양과 제 약혼 소식을 제가 직접 가져왔습니다.”

난 일개 배달부가 아니다.

─ 라는 뜻이었으나, 후작이 반박했다.

“축하드리고, 수고하셨네. 하지만 내가 왜 일어나야 하지?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도 날 일어나게 하지는 못한다네.”

난 귀족 중의 귀족, 왕족의 피가 섞여 다소 이질적인 공작을 빼면 윗사람이 없는 ‘후작’인 것이다.

더군다나 벨리타 왕국에는 공작가가 없으니, 그보다 높은 귀족은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여기까지가 레안이 의도한 흐름이었다. 그는 단호한 자세로 말하였다.

“그대가 먼저 자격을 논하였으니 부끄러워 마시오. 오랜 예법을 깨고 내 먼저 소개하리다. 나는 레안 드 예리엘. 예리엘 왕가의 후계요. 자, 이제 내게 그대를 소개해주시겠소?”

멈칫, 후작의 몸이 굳었다. 레안 드 예리엘? 그는 죽었잖아. 그것도 아주 옛날에.

그러나 정보가 맞물리며 타티안 후작은 깨닫고 말았다.

거지로 길바닥을 전전하던 과거와 아리따운 여동생. 게스타브 그 친구가 허락한 이유와 저 청색이 섞인 금발과 금색 눈동자…

내가 그걸 생각하지 못했구나.

베나르 타티안 후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고개 숙였다. 그는 사뭇 정중하게 말했다.

“베나르 타티안입니다. 예리엘 왕가의 적통을 몰라뵀습니다. 한데…”

넌 신분을 제외하면 내세울 것이 없지 않으냐. 배곯은 왕족에게 벨리타 왕국 서부의 지배자가 물었다.

“폐왕자께서 몸소 청첩장을 가져다주신 건 황공합니다만, 초대하는 것 외에 저를 찾아오신 연유가 있으시겠지요?”

이젠 언행에 극히 주의해야 했다.

자칫하면 정중한 감금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레안 드 예리엘은 흥,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대가 내게 바라는 것이 있음에도 찾아오지 않기에 걸음 하였소, 타티안 후작. 우리를 감시하기에 찾아왔더니 왜 왔느냐 물으면 무어라 답해야 하겠습니까?”

“…”

“먼저 청첩장부터 받으시지요. 삼 주일 뒤에 나와 크세니아의 약혼이 있습니다.”

“삼 주일 뒤? 비비안 드 이사도라 왕자가 다음 주에 도착할 것인데, 날짜를 잘못 잡으셨군요.”

레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왕자는 다다음 주쯤이면 돌아갈 겁니다. 당신의 왕이 그를 초청한 이유기도 하고…”

“…?”

물어라. 넌 반드시 문다.

신분을 제외하면 내세울 것 하나 없다고? 말꼬리를 흐린 레안은 똑똑한 거인의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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