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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05

303. 남매 Ep – 밀수

베나르 타티안 후작은 한참을 침묵했다.

안 무나?

레안이 다 조바심이 날 즈음에서야 입을 열었는데, 어디 한 번 어울려주겠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는 웃고 있었다.

“마치 왕의 의중을 안다는 듯한 말씀이시군요.”

레안은 쭈뼛,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뒷짐을 지고 선 후작의 자기 컨트롤이 지독하리만치 철저하다. 레안도 씨익, 미소 지었다.

“추측이지요. 하지만 맞을 겁니다. 왕은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군요. 앉으시지요.”

타티안 후작이 자리를 권했다.

왕자를 대하기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태도였지만, 두 사람이 착석하는 소리는 크게 울렸다. 팽팽한 긴장감이 눈꽃처럼 내려앉았다.

레안은 제 호흡마저 조절하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안심이다, 라는 속내조차 들키지 않으려 함이다.

뒤이어 후작이 말했다.

“술이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술이라… 좋지.

분위기를 완화하는 데 술만 한 게 없다. 상대와 교류한다는 감정적인 고리를 형성하고, 상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러나 레안은 이게 자신이 아닌 후작의 의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예전에 후작은 취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와 어떤 감정의 끈이 생겼다고 느낀 건 나뿐이었고, 횡설수설했다고 생각한 후작의 말에는 의도가 숨어있었다.

그러니까 조심스럽게 추측하건대, 후작은 술이 엄청 쎈 것이다. 레안은 차가 간절해졌다.

“좋지요. 다만 조금 부드러운 것을 원합니다. 제가 아직 어려서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술 대신 차를 달라는 건, 물러서는 행위에 불과했다.

차라리 나이를 들먹여 당신이 당신에게 유리한 판을 깔았다는 것을 지적하는 편이 나았고, 이는 후작의 심기를 건드렸다.

‘어린놈이 아주 독하군.’

분위기를 단 한 발자국도 내주지 않는다. 여기가 나의 거처이고 안방임에도. 그는 지금 흐르는 긴장감이 정말이지 우습고, 동시에 대단하다 생각했다.

쥐뿔도 없는 게 이 몸을 긴장하게 한 것이다. 어린 나이에 왕국에서 쫓겨나 변변찮은 교육도 받지 못하였을 텐데.

후작은 호기심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느꼈다.

그는 관대한 기분으로 왕자님의 잔에 술을 따르고, 여름철의 귀한 얼음과 ‘토트르 나무 수액’을 넣어 희석해주었다.

이 기이한 왕자님과 오래 대화하고 싶어서였다. 본인은 얼음도 없는 증류주를 마셨다.

“왕자님께서는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후작은 먼저 사소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잠시 귀족의 대화를 할까 하였으나, 집어치웠다. 상대는 왕족인 것이다.

레안도 “한 일 년쯤 됐소이다.”라며 곧이곧대로 답했다. 그도 서두를 생각이 없어서 사소한 신변잡기가 오갔다.

“크세니아 양이 페테르 백작의 따님인 걸 알고 계셨습니까?”

“알고 있었지요.”

후작은 어떻게? 라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런 자질구레한 이야기는 결과를 낼 줄 아는 사람들에겐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 제가 그녀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도 알고 계시겠군요.”

“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레안은 제가 모르는 건 밝히지 않았는데,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다소 딴소리처럼 들리는 말을 던졌다.

“조금 전에 브리안 자우어가 나가더군요.”

후작이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으나 레안은 저게 시간을 버는 동작임을 알아차렸다. 긴가민가하며 찔러본 게 통한 것이라 추측에 불이 붙었다.

이자의 양자로 들어가려 했을 때, 후작은 내게 여러 귀족들을 두셋씩 불러 소개해줬다.

자신에게 새 아들이 생겼다는 선전이고, 레안이 귀족 사회에 발을 들일 수 있게 교두보 역할을 해주는 것이었는데, 그가 한자리에 부른 귀족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왕당파의 중요한 인사이거나,

왕가와 끈이 닿은 인물들이거나,

타티안 후작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 또는 친인척이었다. 어떤 기준에 맞춰 사람들이 묶인 것이다.

당연히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 또한 소개받았다. 그때 백작과 함께 불려온 사람이 브리안 자우어 자작이었다.

지금은 자작이 아니지만. 어쨌든.

한데 두 사람은 공통점이 없었다.

브리안 자우어 자작은 후작의 친우가 아니고,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은 왕당파가 아니다.

하다못해 둘이 친하다거나 성격이 비슷하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레안은 여기서 아주 자그마한 힌트를 발견했다.

그 힌트는 약혼관계에서 본 것과 이어져 있었다.

– “저희에게 밀수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 “밀수요?”

그는 약혼관계 시나리오 시작시 에이브릴 성에 등장하는 상단주가 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 “네. 관문을 통하지 않고요. 자작령은 제롬 신성왕국, 벨리타 왕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디우로 공자가 말하더군요. 곧 전쟁이 터질 거라, 아주 좋은 기회라고요. 그러면서 신성왕국의 오스카 백작가와도, 벨리타 왕국의 자우어 자작가와도 이야기가 끝났다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작령은 아스틴 왕국 브리나 자작가의 영지다.

버논이라는 이름의 그 상단주는 디에고 브리나 자작의 후원을 받아 상행을 나왔다.

하지만 상행은 자작령을 마지막으로 끝나게 된다.

상단주는 밀수를 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하고 달아나다가 기사의 추격을 받아 죽는다. 한 번은 (14번째 회차에서) 레이가 막아줬지만, 그 이후에도 반복됐을 터였다.

북부의 역사가 바뀐 지금은 어찌 돌아갈는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밀수’라는 키워드와 페테르 백작과 자우어 자작의 숨은 공통점이었다.

레안은 후작이 말을 고르기 전에 얼른 추측을 던져넣었다.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 그리고 확신을 얻기 위해서였다.

“비비안 드 이사도라가 오는 게… 물론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당신께 좋은 기회겠군요. ‘올리버 트루디 남작’도 동행한답니까?”

타티안 후작의 동공이 깨졌다.

술잔을 입에 댄 채, 그의 새파란 눈동자에 경악이 담겼다. 레안은 비로소 확신했다.

이 사람이 뭘 원하는지.

페테르 백작과 자우어 자작의 영지는 국경 지대에 있었다.

자우어 자작령은 제롬 신성 왕국과 아스란 왕국에 닿았고, 페테르 백작령은 콘라드 왕국과 아이셀 왕국에 붙은 접경지대다. 그리고 난 어릴 적 그곳을 통해 국경을 넘었다.

상단주의 말에 따르면 브리나 자작가는 인접한 다른 왕국, 오스카 백작가와 자우어 자작가와 밀수를 하려 했다. 이때 자우어 자작은 타티안 후작의 하수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그 세 접경지대에서의 밀수는…

후작의 계획이다.

또, 오르빌을 중심으로 그곳과는 정반대 방향에 있는 페테르 백작령은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의 기묘한 처지로 인해 하나로 묶여 있었다.

그는 벨리타 왕국의 백작인 동시에 콘라드 왕국의 모나크 남작이다.

모나크 남작령은 페테르 백작령과 붙어 있었다. 방금 후작이 반응한 올리버 트루디, 아이셀 왕국의 트루디 남작가와 마찬가지로.

‘후작이 왜 크세니아한테 집착하는지 알겠군.’

베나르 타티안 후작, 이 사람은 세 접경지대에서 무역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니, 노리는 접경지대가 이곳뿐만이 아니라 벨리타 왕국을 둘러싼 5개의 왕국, 그곳들과 닿은 모든 접경지대라면… 이자의 계획은 온 대륙을 움켜쥐는 무역로를 건설하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건 이미 진행 중이었다.

‘오른 왕국의 ‘구아닌 남작’… 그 사람이 투정했었지. 세금이 이상하게 걷히지 않는다고. 맞아. 생각해보면 모드레드 백작가도 경제적으로 몰락해 있었어.’

오른 왕국의 구아닌 남작가와 아스란 왕국의 모드레드 백작가. 둘 다 영지가 벨리타 왕국과 국경을 맞댄, 세 개 왕국의 접경지대에 있는 가문들이었다.

구아닌 남작은 가문의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19번째 회차, 곧 왕위에 오를 레브에게 ‘재무장관’ 자리를 청했었다.

모드레드 백작가도 비슷한 처지였다.

자코브 모드레드 백작. 백작가의 후계자가 근위기사로 입단했을 정도니 거긴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타티안 후작가가 온 대륙의 돈을 빨아먹고 있던 것이다. 그것도 밀수를 통해 세금조차 내지 않고.

초록색의 기울어진 천칭.

레안은 후작의 가슴께에 달린 저 문양이… 어째서 타티안 후작가의 상징인지를 알아차렸다.

‘죽일까?’

한편 베나르 타티안은 이 왕자를 죽일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도를 넘었다.

능력이 뛰어나도 과하게 뛰어나다.

손에 쥔 게 그 무엇도 없을진대 이 정도면… 소름이 돋는다.

만약 이 왕자가 내 계획을 어디서 알아낸 뒤에 온 것이었으면 진작에 죽였다.

다만 지금 망설이는 까닭은 이놈이 스스로 한 마디씩 꺼내어 깨달아가는 과정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레안도 이때만큼은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이놈은 죽여야 한다. 살려뒀다간 위험하다.

하지만…… 아깝다.

타티안 후작은 아주 느리게, 술을 게걸스럽게 넘기며 왕자를 노려보았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회상했다.

‘내 아버지도 이러셨을까.’

역사의 대가문, 타티안 후작가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사랑받았다.

위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두 형이 있었고, 후계자 자리를 놓고 십 년도 전부터 경쟁 중인 그들에게 막내는 그저 귀여운 동생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날 알아보았다.

이 어린 셋째가 가문을 집어삼킬 괴물임을 알아채곤 갈등하였으나, 끝내 내치지 못했다. 그로 인하여 아버지는 두 형과 함께 비참한 끝을 맞았다.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분명 나를 알아보았는데. 형들을 넘어 본인까지 집어삼킬 아들임을 눈치채고도 어째서 살려두었을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조금은 답답한 아들을 두고, 나이를 먹어 알게 되었다.

뛰어난 사람이 얼마나 드문지를. 설령 언제고 날 집어삼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 재능이 만개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내 아버지는 “당했구나!” 웃으면서 돌아가셨을 거다.

후작이 잔을 내려놓았다. 여전히 침묵하는 그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과연 나는 웃을 수 있을 것인가.

그 대답은… 아니다, 였다.

이자는 내 아들도 아닐뿐더러, 난 그런 인간이 못 된다. 죽여야겠다. 마음먹는 순간이었다.

“동행하는군요. 그렇다면 그쪽은 됐고, 다른 곳에 관심이 많으시겠소이다. 아스란 왕국 방면은… 내가 따로 도움을 줄 수 있지요.”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죽일 때 죽이더라도 아주 조금만 더 들어볼까.

여긴 그의 저택, 안방이다. 절대로 살아나가지 못하리란 게 후작에게는 여유를, 레안에게는 기회를 주었다.

어디 저 세 치 혀로 애써보라지.

그러나 레안은 혀가 아닌 ‘거울’을 꺼냈다. 조금은 다급하게.

“…?”

“레이, 나다.”

뭘 하는 거지? ─ 생각하였는데, 왕자가 꺼내든 거울이 하얗게 빛을 뿜었다. 놀랍게도 거울에는

“어떻게 됐어? 이거 잘 된 거지?”

소리치는 청년이 있었다. 레안은 바짝 말라버린 숨을 삼키며 거울을 후작을 향해 들이밀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만, 먼저 인사해. 누군지 알지?”

“……”

“……이거 실화냐?”

“아스란 왕국에 있는 내 친굽니다. 에이브릴 성이라고, 브리나 자작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지요. 아마 그쪽은 뭐가 꼬이셨을 텐데… 도움이 될 겁니다.”

레안은 그간 레아가 짝짝 손뼉 쳐 불러준 행운을 써버렸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기에.

타티안 후작과 레이는 서로 멍한 표정을 교환하였다. 다행히 레이가 그렇게 멍청하진 않았다. 또, 예상치 못한 행운이 하나 남아있었다.

“레이입니다, 타티안 후작.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제 소개를 하자면… 이렇습니다.”

하얗게 불타오르는 오러블레이드. 시간이 되돌려진 덕에 그는 아직

소드마스터였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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