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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05

304화.

그레이스는 홍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우리는 이번에 큰 손해를 봤어요. 선물도 그렇고, 로열 더치 쉘 주가도 크게 떨어졌으니까요. 우리뿐 아니라 유럽 금융사들 대부분이 손실을 봤다고 봐도 좋겠죠.”

로열 더치 쉘은 유럽 최대의 석유회사. 로스차일드가도 여러 투자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 일로 가동이 중단됐고, 주가 역시 폭락했다. 게다가 원유유출에 대해 배상도 준비해야 했다. 유럽은 환경과 관련한 규제가 센 만큼 그 액수도 만만치는 않다.

난 태연하게 대답했다.

“자연재해를 예측하는 건 전문가들 일이죠.”

비록 상당수가 틀리지만.

“이번뿐 아니라 빅원도 예측하지 않았나요?”

“그건 모한 교수가 한 일이죠.”

“그 교수의 말을 믿은 사람은 당신이 유일하죠.”

“로날드 대통령도 믿었잖아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로날드 대통령은 모한 교수의 말이 아닌 당신의 말을 믿었어요. 누구도 돈을 걸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으니까요.”

마치 확신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 말투다.

난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북해유전이 그렇게 될 줄 제가 무슨 수로 알았겠어요?”

“뛰어난 투자자는 이성을 뛰어넘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죠.”

“그게 뭔가요?”

“글쎄요. 예술적 감성? 동물적 감각? 정확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당신도 알고 있지 않나요?”

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만나본 투자자들은 이성의 영역을 넘어서는 다른 뭔가가 분명히 있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닷컴버블 때는 IT주를 사지 말아야 하고, 부동산버블 때는 부동산을 사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했다면 손실은 보지 않았겠지만, 반대로 큰돈을 벌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버블을 즐기다가 터지기 직전 위기를 감지하고 빠져나온 투자자들은 엄청난 돈을 벌었다.

그런데 버블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 대체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난 홍차를 마셨다. 역시 내 입맛에는 커피가 잘 맞는다.

“수학적 분석이나 통계보다 그런 게 더 중요하다는 건가요?”

“수학이니 통계니 하는 건 그저 나중에 끼워 맞추는 것뿐이죠. 똑똑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투자를 잘할 거라면, 경제학자들이 가장 큰 부자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는 금융위기를 예측한 경제학자들조차도 그 자신은 돈을 못 번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맞춘다는 것과 그걸로 돈을 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레이스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제가 정말 궁금한 건 이거예요. 만약 그걸 알았다면 어째서 말하지 않은 건가요?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피해도 막을 수 있었을 텐데요.”

그녀의 말은 핵심을 찔렀다. 원유유출 사고를 보고 나 역시 아차 싶었으니까.

나는 예지를 통해 북해유전이 파손될 줄 알았다. 만약 내가 미리 경고했다면, 누구도 허투루 듣지 않았을 것이다. 다가오는 허리케인의 진로를 바꿀 수는 없었겠지만, 충분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겠지.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비밀리에 원유선물을 사들였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며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쓸데없는 질문을 했네요. 그랬다면 돈을 벌지 못했을 테니까요.”

“…….”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의도가 뭘까?

아무리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녀는 잔을 내려놓으며 시계를 보았다.

“이제 가봐야겠네요.”

그러고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든지 연락해요.”

“저 애인 있는데요.”

내 말에 그녀는 웃음을 지었다.

“저도 알아요.”

* * *

우리가 탄 비행기는 북해 위를 비행했다.

단지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차가움과 쓸쓸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검은 기름띠는 그 바다를 뒤덮고 있었다.

북해유전이 파손될 건 알았지만, 원유유출 사고가 일어날 줄은 몰랐다.

난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것도 내가 막을 수 있는 일이었을까?”

“이건 너도 몰랐잖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해야 됐을 일을 안 한 것도 잘못일까?

난 주머니에 있던 명함을 손에 들었다. 코팅된 명함에는 로스차일드가문의 문장이 박혀 있었다.

택규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엘리가 말했잖아. 미녀한테 한눈팔지 말라고.”

난 괜히 뜨끔했다.

“여, 여기서 그 말이 왜 나와?”

“생각해봐. 그 여자가 미녀가 아니었어도 니가 이렇게 관심을 가졌을 것 같아?”

“…….”

이 자식이 날 뭐로 보고?

……라지만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모든 것이 돈이 되는 세상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미모 역시 그녀가 가진 자산이다. 얘 말마따나 미녀가 아니었다면, 흥미를 갖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할 말이 없어진 나는 반격했다.

“너야말로 생각해봐. 로스차일드라잖아. 너 음모론 좋아하지 않아?”

내 말에 택규는 움찔했다.

“으음, 음모론에서 로스차일드를 빼놓을 수 없긴 하지.”

* * *

우리는 한국으로 귀국했다.

스포트라이트는 나보다는 김호민 교수에게 집중됐다. 평화상보다는 화학상이고, 공동수상보다는 단독수상이니.

언론에서는 한동안 노벨상에 대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것도 며칠뿐. 부산 쇼핑센터에서 큰 화재로 십여 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자, 이내 정부의 대응, 정치권의 공방, 겨울철 화재예방,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 등으로 이슈가 옮겨갔다.

대중의 관심이야 원래 쉽게 사그라들기 마련.

어찌됐든 우리는 과학계에 대한 지원을 계속 해나가기로 했다. 씨도 뿌리지 않고 싹이 트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앞으로 한국에서 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으려면 미리미리 투자를 해놔야겠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현주 누나는 육아휴직을 끝내고 회사로 복귀했다.

골든게이트 한국지사 직원들은 로비에 모여 지사장님의 복귀를 축하해주었다. 하지만 다들 이내 후회했다. 지사장님께서 그동안 일 못한 것에 맺힌 원한이라도 풀듯 폭풍업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비상이라도 걸린 것처럼 퇴근도 못하고 일에 매달렸다. 엘리 역시 예외가 아니라 밤 10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일이 허다했다.

지사장님 안 계실 때가 좋았지.

헨리는 출근하는 아내를 대신해 집에서 애를 봤고, 내년 초에나 골든게이트에 취직(?)할 예정이었다.

헨리는 현주 누나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자주 회사 앞으로 찾아왔다. 그가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모습을 본 여자직원들은 역시 서양남자가 가정적이라며 좋아했다.

원래 잘생기면 뭘 해도 멋있어 보이기 마련이다. 심지어는 베이비 캐리어를 차고 아이를 안고 다니는 것도 멋있더라.

그리고…….

“OTK상을 만들어야겠어.”

“응? 진짜 하게?”

“훗, 나 오택규. 한다면 하는 남자지.”

“…….”

아무리 생각해도 쓸데없는 일을 벌이는 것 같지만, 부대표가 하겠다는데 어쩌겠나?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상이 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여하는 상도 있고, 민간단체나 학교, 학원 등에서 대충 만든 상도 있다.

중요한 건 모두가 그 상을 인정하느냐 아니냐다.

예를 들어 노벨경제학상의 경우 엄밀히 말해 노벨상이 아니라 스웨덴 중앙은행상이지만, 경제학자들에게 있어서는 노벨상과 동일할 정도로 권위를 지니고 있다.

반면 중국에서는 반체제 인사(어디까지나 중국정부 기준에서) 류샤오보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 한 민간단체에서 공자평화상을 만들었다가 전 세계에 큰 웃음을 주었다. 주는 사람도 부끄럽고, 받는 사람도 부끄러운 상은 흔치 않은데.

“권위있는 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을 주는 주체, 만들어진 배경, 상을 주는 목적, 투명하고 공정한 수상자 선정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역시 상금 아니겠어?”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상금 액수와 상의 권위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소한 100만 달러는 줘야겠지? 소설, 만화, 애니, 게임, 영화(서브컬처 관련 영화만). 총 다섯 개 분야에 시상하고.”

말이 좋아 100만 달러지, 이 정도 상금을 주는 상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서브컬처 쪽에서는 말할 것도 없겠지.

“일단 위원회부터 구성해야겠군. 공정성 시비가 없도록 각계각층에서 엄선해서.”

간만에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다. 덕분에 부대표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정기홍 홍보팀장만 바빠졌다.

부대표님 안 계실 때가 좋았지.

아예 OTK컴퍼니 내에 애니와 게임 쪽을 담당하는 부서를 따로 설립하고, 투자도 병행하기로 했다. 물론 책임자는 오택규.

돈 벌어서 어디 쓰겠나? 덕질하는 데 쓰겠지.

공식발표가 나자 애니와 게임 사이트 등은 들썩들썩했다.

-이거 뭐야? OTK상을 만들겠다고?

-ㅋㅋㅋ누가 오타쿠컴퍼니 아니랄까봐.

-강진후가 아니라 부대표가 추진한다는데.

-상금 100만 달러! 다섯 개 분야 총 500만 달러! 이 정도면 사상최대 아니야?

-이야! 500만 달러를 덕질에 쓰는 클래스!

-몇 년이나 하겠냐? 한 1, 2년 하다가 금방 사라지는 거 아니야?

-OTK컴퍼니 예산이면, 앞으로 천 년은 할 것 같은데.

-돈이 남아도나? 아주 별짓을 다 하네.

-그럴 돈 있으면 나한테나 좀 주지ㅜㅜ

-오늘부터 인터넷에 라노베 연재 시작한다. 말리지 마라. 제목은 나 혼자 경험치 따따블 SSS급 마법사.

-……누가 나서서 쟤 좀 말려라.

* * *

12월은 금융계에서 여러 이벤트가 겹치는 달이다. 31일을 기점으로 1년의 수익과 손실이 확정되기 때문에 금융회사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각국 정부 역시 언제든 개입할 태세를 갖춘 채 외환시장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우리에게도 12월은 중요한 달이다. 왜냐하면 드디어 카로스의 전기차가 출시되기 때문이다.

난 매일같이 실시간으로 진행상황을 보고 받았다.

양산형으로 공개된 차는 일전에 북미국제모터쇼에 공개했던 콘셉트카에서 크게 바뀐 것이 없었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사이드미러 대신 카메라를 장착한 것 역시 그대로였다.

내부에는 손동작, 음성, 터치로 제어가 가능한 대형 디스플레이가 설치됐고, 안면인식센서를 통해 운전자의 신원과 행동을 인식했다. 이는 서성전자의 스마트폰에서 쓰이던 기술들을 차량에 이식한 것이다. 그리고 무인주행이 가능한 레벨5수준의 자율주행기술과 한 번 충전으로 1천 킬로 주행이 가능한 150kWh와 175kWh OTK배터리가 탑재됐다.

다른 전기차가 내부공간과 무게의 문제로 80kWh 이하의 배터리를 탑재하는 것에 비해 배터리 용량이 무려 두 배다.

딱 하나 문제는 역시나 가격.

전기차인 AD3와 AD4는 이전에 출시한 차에 비해 2만 달러가 더 비쌌다. 그나마 양산체제를 갖춰서 이 정도다. 자율주행 모듈은 물론이고, 고용량 배터리까지 탑재됐으니 당연한 결과다.

카로스는 공개 이후 홈페이지를 통한 예약에 들어갔다. 허수 예약을 방지하기 위해 신용카드로 예약금 3천 달러를 선결제해야 한다.

결제 순서대로 출고가 되고, 취소시에는 환불해준다. 이는 니콜라가 했던 방식과 똑같았다.

카로스 본사가 있는 디트로이트 시간을 기준으로 자정에 예약이 시작됐고, 우리는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이거 망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자동차 전문가들마다 판매 예상치는 조금씩 차이가 났다. 대체로 흥행할 거라 하는 반면, 높은 가격으로 인해 생각보다 수요가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전기차의 경우 친환경차 보급을 위해 각국에서 보조금을 지급하긴 하지만, 총액이 한정되어 있다. 그 이상의 수요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만약 AD3와 AD4가 예상만큼 팔리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다.

“그럼 우리도 긴축해야지.”

일단 OTK상부터 폐지시켜야 하지 않을까?

초조하기는 임진용 회장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합작사 TS컴퍼니에서 만든 배터리는 물론, AP와 램, 센서를 비롯한 서성전자 부품이 대거 탑재됐다.

서성그룹 입장에서도 총력을 쏟아 부은 셈이다.

우리는 관리자로 접속해 실시간 예약을 지켜보았다.

결과는……?

* * *

[카로스 전기차, 하루도 안 돼 50만 대 돌파!]

[사흘 만에 예약 100만 대 돌파!]

[예약금만으로 300억 달러 수익]

[이제 관건은 생산능력과 품질]

[서성전자, 전장사업으로 제 2의 도약.]

[무인전기차가 가져올 변화의 시작……]

미국의 여러 주들은 고속도로를 포함한 일부 도로에서 무인주행을 허용했다. 운전자가 반드시 탑승해 있는 것과 자율주행 기술오류로 인한 사고발생시 중단시킬 수도 있다는 조건이 붙어있었지만, 이는 무인차를 향한 큰 변화였다.

로날드 대통령은 디트로이트로 날아와 후보시절 유세를 펼쳤던 풋볼 경기장에 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선언하듯 말했다.

“이제 미국은 다시 세계 자동차의 중심이 됐습니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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