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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1

31화 어둠굴 (1)

31화 어둠굴 (1)

‘다 큰 어른이 위험에 처한 아이를 돕는 것에 이유가 필요하다는 거냐?’

장발 사내를 미행하며, 세실은 쿠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우리를 기만했던 걸까.

나는 또 믿었던 어른에게 배신당한 걸까.

‘나는 너희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치 않게 마석 광산에 끌려간 것도,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발버둥 친 것도.’

세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쿵쿵,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

코앞으로 근접한 칼날을 본 순간 세실의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휙! 장발 사내의 검이 세실의 어깨를 스쳤고, 세실은 곡예 하듯 바닥을 구른 뒤 방어 자세를 취했다.

“쥐새끼처럼 뒤를 쫓아 오다니. 누구냐? 넌.”

검 한 번 휘두른 것으로 세실은 상대의 실력을 가늠했다. 강하지 않다. 숲에서 죽였던 두 기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약자다. 그런 자에게 미행을 들켰다.

세실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감정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쳤다. 어떻게 해야 할까. 쓰러뜨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야.’

죽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세실은 아직 상대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의 배후가 쿠일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다행히 이곳은 인적 없는 골목. 달도 구름 위로 모습을 감췄다. 주위는 캄캄한 어둠뿐이고, 사내는 세실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스스스슷.

세실은 영력을 발산했다. 그 이질적인 어둠이 세실의 몸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두 기사를 죽였을 때 발현했던 블레오파드의 블러디드, ‘그림자 결속’.

강화된 세실의 육체가 사내를 습격했다. 세실이 제대로 힘을 드러내자 그는 변변한 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세실은 사내의 얼굴을 지면에 짓누르며 목에 단검을 들이댔다.

“힉!”

세실은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어투가 특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실은 무언(無言)으로 사내를 위협하며, 지그시 단검을 내리눌렀다.

“누, 누구의 사주를 받고 온 거냐. 내, 내가 누군지 알아? 검은 갈기 용병단의 ‘강철손 모건’이다. 나를 건드리면 오스카가 가만히 있지 않을걸?”

오스카?

“빌어먹을······! 그래. 세, 세르지오가 보냈구나. 그 영악한 사기도박꾼 새끼가 그새를 못 참고······!”

세실은 내리누르는 단검에 조금 더 힘을 줬다.

“오, 오스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자기가 키우려는 애새끼들을 갈취당하면 그 다혈질 녀석이 가만히 있을 것 같냐고! 특히 그 카인이라는 놈은······!”

사내의 목소리가 그쳤다. 세실이 단검 손잡이로 그의 머리를 후려쳤기 때문이다.

기절한 사내가 거품을 물며 늘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세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자의 배후는 쿠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생겼다.

***

눈을 뜨니 세실이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세실?”

주위는 어두웠다.

아직 일어나야 할 시간이 아니다.

그러나 세실의 표정을 확인한 나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무슨 일이야? 세실.”

“카인. 위험해.”

“카인이 위험하다고?”

“용병이. 카인. 세르지오가. 귀족.”

세실은 두서없이 말하고 있었다.

“차분히 얘기해 봐 세실. 심호흡하고.”

나는 세실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몇 차례 깊게 숨을 들이쉰 세실이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머지않아 나는 세실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강철손 모건?”

강철손 모건은 검은 갈기 용병단의 부단장이다. 그가 카인 일행을 귀족에게 팔려고 한다고? 세르지오를 통해서?

‘잠깐. 설마.’

그러고 보니 소설 속의 카인은 단장인 오스카를 죽이기 전에 부단장 모건을 먼저 죽였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오스카가 카인을 두들겨 팼고, 그날 밤 카인은 술에 취해 잠든 오스카를 죽였다.

‘그래. 그랬던 건가.’

소설에서 카인이 모건을 죽인 이유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모건을 벼르고 있던 카인이 결국 살해를 택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숨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깊이 생각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쿠의 고기 덕분인지 긴 시간을 자지 않았는데도 몸 상태는 좋았다.

“가자 세실. 카인에게.”

내 말에 세실이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

.

.

······나는 세실처럼 멋지게 착지하는 것에 실패했다.

엉덩이의 통증을 애써 견디며, 나는 여관 주인에게 들었던 장소를 향해 달렸다.

“데미안.”

“응.”

“위치. 알아?”

“응. 알아.”

세실이 고양이 같은 눈으로 나를 봤다.

“역시. 특별해.”

아니, 그냥 여관 주인에게 물어본 건데.

“데미안. 이거.”

세실이 동전 주머니를 내밀었다. 세실은 모건의 품을 뒤져 돈을 훔쳐 왔다. 강도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는데, 모건이 속아줄지는 잘 모르겠다.

“네가 가지고 있어, 세실.”

“응.”

세실이 조금 설레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를 품에 넣었다.

평의회 소속 용병, 워치맨(Watchman)들의 순찰이 종종 보였다. 하지만 미니맵이 있는 내게 큰 위협은 되지 않는다.

“다 왔어. 저곳이야.”

전사의 휴식처.

페르디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병단을 주 고객으로 운영하는 특화 여관이다.

“카인이 어디 있는지 살펴보고 와.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응.”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세실이 들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검은 갈기 용병단에서 가장 강한 전사인 오스카도 세실보다는 약하니까.

새처럼 몸을 띄운 세실이 몇 번의 도약 끝에 지붕 위에 올랐다.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경쾌한 몸놀림.

나는 골목의 어둠에 몸을 숨겼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세실이 돌아왔다. 다소 상기된 얼굴이었다.

“카인. 찾았어.”

카인은 또래 아이들과 2층의 어느 방에 있다고 한다. 어른 용병 둘이 함께 있었지만 조금 전에 바깥으로 나갔다. 즉, 기회는 지금이었다.

“같이 갈 거야?”

세실에게 물었다. 나는 되도록 카인과 세실이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빼앗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세실은 다행히도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여기에 있어. 이야기만 전하고 금방 올게.”

“······응.”

[대상과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나는 세실의 특성 중 하나인 ‘잠입’을 카피했다.

검은 갈기 용병단에는 나보다 강한 용병이 수두룩하다.

그들에게 기척을 들키지 않고 카인에게 접근하려면 이 특성을 카피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잠입을 발현합니다.]

‘오.’

나의 존재감이 옅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나 스스로가 나의 기척을 감지하기 어려워지다니.

‘좋아. 이거라면 들키지 않겠지.’

여관으로 근접하며 나는 생각했다. 동기화로 능력 두 개를 카피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 ‘그림자 걸음’을 카피해 아까의 세실처럼 경쾌하고 우아하게 지붕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세실의 몸놀림을 머릿속에 그리며 도약했다. 이어 내가 느끼기에도 꼴사나운 자세로 버둥거리던 나는 간신히 2층 난간에 올라 정강이를 부여잡았다. 어딘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보니 세실이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고 있었다.

‘젠장. 봤네.’

난간을 타고 살금살금 움직이던 나는 유리창 너머에서 원하는 얼굴을 찾았다. 카인, 마르셀, 그리고 낯익은 얼굴 둘. C조의 생존자들이었다.

톡톡, 창을 두드렸다. 나를 발견한 카인의 눈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부릅떠졌다. 신선한데. 저렇게 놀란 얼굴의 카인이라니.

“데미안. 살아 있었나.”

창을 연 카인은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슬쩍 카인의 어깨 너머로 마르셀을 봤다. 과연 똥 씹은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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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인 하센베르크 [14세], [Lv.29]

◎ 속성: [■■]

◎ 특성: [회귀/1■회차], [■■■], [발달된 감각], [통솔자], [승부욕], [불굴의 정신], [회복력], [검의 재능]

◎ 적성: [검술 Lv.3], [단검술 Lv.2], [창술 Lv.2], [궁술 Lv.1], [도끼술 Lv.1], [승마술 Lv.2], [하센베르크 격투술 Lv.2]

◎ 일반 스킬: [강격 Lv.3], [연타 Lv.2], [밀어내기 Lv.2]

◎ 전용 스킬: [비검 L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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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29레벨이 된 걸까.

이제 어쩌면 내가 더 레벨이 높을 수도 있다고 기대했는데, 카인은 나보다 6레벨이나 높았다.

통찰을 감지한 카인이 입을 열기 전에 선수를 쳤다.

“카인. 전할 말이 있어서 왔어.”

“전할 말이라고?”

“강철손 모건이 너희들을 귀족에게 팔려고 해. 오스카가 연관된 일인지는 아직 몰라.”

“뭐라고?”

“나 이제 간다.”

데미안! 낮게 외치는 카인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나는 난간을 되돌아 걸었다. 이번에는 멋들어지게 착지에 성공한 나는 세실과 합류한 후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

며칠 동안 비슷한 하루가 흘렀다.

우리는 해가 뜨면 쿠와 들판을 달리고, 해가 지면 쿠가 요리해 준 고기를 먹고 잠이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2레벨이 올라 25레벨이 됐다. 테오 일행도 많은 성장을 했다. 세실은 여전히 밤마다 세르지오의 뒤를 캐고 다녔다.

.

.

.

“가자. 세실.”

구름 너머로 푸르스름한 달이 떠오른 밤, 나와 세실은 쿠와 함께 여관을 나섰다.

우리는 얼굴이 반쯤 가려질 정도로 깊숙이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불필요하게 행인의 눈에 띄고 싶지도 않았고, 다른 이유도 있었다.

테오 일행은 여관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세르지오가 덩치를 알아볼 가능성에 더해, 다섯 소년이 우르르 도박장에 몰려가는 것은 쓸데없는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으니까.

어두운 골목을 걸으며, 나는 모자 아래로 드러난 세실의 오뚝한 코를 바라봤다. 그동안 세실은 잘해주었다. 어둠굴의 존재를 비롯해, 세르지오의 비리를 상당수 알아냈다.

“다 왔다. 꼬마들아.”

어둠굴 입장을 위한 조치는 쿠가 알아서 해주었다. 우리는 뒷문을 지키는 두 용병 사이를 지나 앞으로 나아갔다.

문을 통과하자마자 느껴진 것은 차향과 뒤섞인 담배 냄새였다. 어두운 조명과 담배 연기 탓에 사람들의 얼굴은 또렷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눈이 새까만 카드와 주사위, 동전을 주의 깊게 응시하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곳곳에 용병들도 보였다. 그들의 눈빛은 냉정했고, 마치 무언가를 측정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들 중 한 명에게 쿠가 속삭였다. 잠시 후 구석진 곳에 감춰져 있던 문이 열렸고, 우리는 안으로 안내됐다.

“기다리고 있었소.”

방 안의 조명은 바깥보다 밝아서 우리를 환영하는 남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의 미소는 친절했지만 무언가를 숨기는 자의 이중성이 묻어 있었다.

“상대가 어린아이라고 듣기는 했는데, 정말이었을 줄이야.”

테이블 앞에 마주 앉는 나를 보며 세르지오가 말했다.

“그런데 꼬마야. 판돈은 충분히 가져온 거냐? 나는 웬만큼 돈을 가진 자가 아니면 상대를 해주지 않는단다.”

“판돈은 충분해.”

“한번 볼까?”

“보고 있잖아. 지금.”

나는 머리에 눌러쓴 모자를 벗었다.

스르륵, 잘 정돈된 나의 금발이 흘러내리며 광채를 드러냈고, 그것을 본 세르지오의 눈에 탐욕의 빛이 서렸다.

나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얼마를 쳐줄 건데. 내 몸뚱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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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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