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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1

미래를 보는 투자자 030

30화.

합격 발표(?)를 들은 상엽 선배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제 숨 좀 돌리겠네. 사실 꽤 긴장하고 있었거든.”

“그럼 이제 긴장 풀고 마음껏 마셔요.”

난 빈 잔을 채워주었다.

목마른 사람처럼 맥주를 들이켠 상엽 선배가 물었다.

“호칭은 어떻게 할까? CEO님? 대표님? 지금부터 존댓말 쓸까?”

난 피식 웃었다.

“그냥 부르던 대로 불러요. 나중에 정식 직함 생기고 직원 많아지면 그때 생각해볼게요.”

“지금 OTK컴퍼니에는 누가 있는 거야? 설마 둘만?”

난 고개를 저었다.

“한 명 더 있어요.”

“누군데?”

택규가 말했다.

“오현주라고 제 친누나에요.”

난 현재 골든게이트 아시아지사에서 일하고 있고, 덕분에 법인 설립을 비롯해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상엽 선배는 이제야 납득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런 엄청난 일을 벌일 수 있었구나.”

현주 누나가 합류를 한 건 일이 다 끝난 이후다. 그러나 자세한 사정은 차차 얘기하기로 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돼?”

“천천히 말씀드릴게요. 오늘은 술이나 마시죠.”

우리는 자리를 옮겨 근처 포차로 향했다. 그리고 마른안주와 소주를 시켰다.

난 소주를 따르며 물었다.

“학원 일은 어땠어요? 왠지 선배라면 잘했을 것 같은데.”

“이래봬도 인기 강사였어. 사칙연산밖에 못하는 애를 가르쳐서 7, 80점 맞게 해줬으니까. 그만둔다고 하니까 원장이 보너스 올려주겠다고 사정사정하며 붙잡더라. 그럴 거면 진작 올려주던지.”

이 사람은 뭐 하나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아마 계속 학원 강사를 했어도 크게 성공했을 거다.

요즘은 스타 강사 연봉도 수십억씩 하지 않나?

“계속해보지 그러셨어요?”

내 말에 상엽 선배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기에는 몸이 너무 근질거려서. 최근 몇 년 동안 세상은 크게 바뀌었어. 그리고 앞으로 몇 년 후에는 더욱 크게 바뀌겠지. 시장이 상승을 하던 하락을 하던 기회는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어. 하지만 진짜 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아.”

“큰 기회요?”

내 물음에 상엽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벌어지는 일들은 과거와는 전혀 달라. 단지 어떤 기업이 잘 나가고 못 나가고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이 완전히 재편되는 과정이라고 봐야겠지.”

택규가 질문했다.

“예를 들면요?”

상엽 선배는 스마트폰을 들어올렸다.

“대표적인 예는 이거야. 처음 엔플이 스마트폰을 출시했을 때만 해도 시장을 차지하고 있던 강자들은 무시하거나 폄하했지. 이미 기존에 있는 기기로 다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비싼 돈 들여 살 리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어때?”

불과 10년도 안 돼서 스마트폰은 피쳐폰을 밀어내며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문가용이 아닌 일반 디지털카메라, PDA, MP3플레이어, 계산기, 전자사전 등도 스마트폰으로 인해 시장에서 밀려났다.

천재들은 세상을 바꿔나가지만, 범재들은 세상이 완전히 바뀐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천재가 아니더라도 변화의 흐름을 읽고 올라타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세요?”

상엽 선배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새로운 산업이 생겨난다는 것은 기업가에게도 투자자에게도 엄청난 기회다. 

그동안 학원에서 애들만 가르친 줄 알았는데, 시장을 계속 주의 깊게 지켜본 모양이다.

난 잔을 들며 말했다.

“건배하죠. OTK컴퍼니를 위하여.”

“위하여!”

우리는 동이 틀 때까지 술을 마시며 밀린 얘기를 나누었다.

* * *

눈을 떠보니 몸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끄응.”

좋은 침대 놔두고 딱딱한 바닥에서 잤더니 허리가 쑤신다. 아마 셋 중 내가 제일 먼저 뻗었을 것이다.

집에는 어떻게 들어왔더라?

택규에게 업힌 게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하고.

핸드폰을 보니, 여러 통의 전화가 와있었다. 

날짜는 어느새 12월 31일이었다. 하루만 지나면 내년이라니. 시간 참 빨리도 간다.

난 부재중 통화 목록을 확인하고 먼저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저예요, 어머니. 택규랑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조만간 집에 한 번 들를게요. 내일 오신다구요? 예. 알았어요.”

다시 사들인 동탄 주택은 현재 대대적인 보수 및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간 상태. 

웃돈 얹어줘서 일정을 앞당겼는데도 다 끝나려면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때까지는 지금의 빌라에서 그대로 지내고 계셨다.

어머니는 새해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한다며, 밑반찬을 해서 내일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난 먼저 커피를 뽑았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읽다만 자료가 가득 쌓여 있었다.

슬슬 뭐라도 떠오를 만한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다. 설마 계속 헛다리짚고 있는 건 아니겠지?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면 될지 아예 포트폴리오까지 짜서 홀로그램으로 눈앞에 띄워주면 편할 것 같은데······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나?

또다시 자료를 집어 들고 읽는데, 2층에서 택규가 내려왔다.

“으윽! 간만에 마셨더니 죽겠네.”

녀석은 손으로 쓰린 속을 문지르며,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너 전화 오는 것 같은데.”

우우웅!

책상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에는 유리의 이름이 떠있었다. 오전에도 전화가 몇 통 왔는데, 자느라 못 받았다.

택규는 내 핸드폰을 보더니 진지하게 물었다.

“유리면 일본인이야?”

“······일본인이겠냐?”

이건 뭔 말 같지도 않은 질문이야?

그냥 안 받으려고 하는데, 택규가 손을 뻗어 통화를 누른 다음 나에게 건네주었다.

“안 받고 뭐해? 어서 받아.”

굳이 이런 친절을?

난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여보세요.”

그러자 바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 경영학과 후배 신유리예요. 혹시 제 번호 저장 안 하셨어요?]

“아니, 그렇진 않은데······.”

[그럼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으세요?]

“······.”

넌 안 받는 사람에게 왜 자꾸 전화하는 거니?

라고 묻고 싶다.

“어. 아까 자고 있었어.”

[며칠 전에도 안 받았잖아요.]

“그랬나? 미안.”

전화나 톡이 몇 번 왔었는데, 신경 쓸 게 많다보니 그냥 넘겼다. 먼 훗날 언젠가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시련이 끝나면, 전화하려고 했다.

유리는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식사는 하셨어요?]

“이제 먹으려고 하는데.”

[지금 어디신데요?]

“여기 삼성동.”

[그럼 같이 식사하실래요? 2시에 어때요?]

“으음······.”

생각해 보면 L6 단종을 알게 된 것은 얘 덕분이다. 

뭐, 다른 곳에서 똑같은 예지를 했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

언제 밥 한 번 사주려고 했는데······.

시계를 보니 2시까지는 한 시간 정도 남았다. 

“어디서 볼까?”

내 말에 유리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청담 갤러리백화점 앞에서 괜찮아요?]

“알았어.”

[예, 선배님. 그럼 이따 봐요~]

통화가 끝나자 택규가 물었다.

“누군데?”

“학교 후배.”

“흐음, 사적으로 연락하는 후배라.”

녀석의 시선이 싸늘하게 변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OTK컴퍼니 CEO라는 놈이 연애질이라니!”

난 당황하며 소리쳤다.

“뭔 연애질이야? 그냥 후배라니까!”

택규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본분을 잊지 말게, 친우여.”

“······.”

내 본분이 뭔데?

“나 나갈 테니까, 갔다 와서 얘기하자.”

난 대충 세수를 하고 옷을 걸쳐 입었다. 신발을 신으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갑을 점검해보았다.

지갑 안에는 겨우 1만 원짜리 세 장뿐이었다. 집 사고 남은 돈이 있긴 한데, 따로 카드를 만들지는 않았다.

청담동은 밥값이 비싸겠지?

“야, 돈 좀 빌려줘.”

택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돈 많잖아.”

“······.”

수천억을 벌었으면 뭐하나? 전부 해외 법인계좌에 묶여 있는데.

당장 수중에 3만 원밖에 없다.

“그러지 말고 10만 원만 빌려줘. 나중에 갚을게.”

택규는 선심 쓰듯 지갑에서 5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내밀었다.

“아껴 써. 사치하지 말고.”

“······.”

내가 이 자식에게 이런 수모를 겪게 될 줄이야. 억울해서 카페 알바라도 뛰든지 해야지.

그러나 당장은 한 푼이 아쉬운 입장이라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아들었다.

“다녀오겠습니다.”

* * *

갤러리백화점은 청담동 명품거리 초입에 위치해 있다.

백화점 1층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해외 명품브랜드들이 화려한 인테리어를 뽐내며 입점해 있고, 주차요원의 안내에 따라 고급차들이 쉴 새 없이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거리에는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아직 치우지 않은 크리스마스 장식이 곳곳에 남아있었고, 오가는 사람들도 들뜬 표정이었다.

같은 강남인데도 부촌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난다.

마침 근처에서 모델 같은 여자가 길거리를 배경으로 촬영을 하고 있었다. 아마 쇼핑몰에서 촬영을 나온 듯했다.

코트를 입은 사진을 몇 장 찍더니, 여자는 근처에 세워놓은 벤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놀랍게도 이번에는 얇은 반팔티였다. 그녀는 마치 뜨거운 여름 햇살을 즐기는 듯한 발랄한 포즈를 취해보였다.

이런 얼어 죽을 것 같은 날씨에 반팔티라니! 

영하 10도에 저게 뭐하는 짓이래?

돈 벌기가 저렇게 어렵다.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 구경하는데, 맞은편에서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달라붙는 청바지와 흰색 니트를 입고, 그 위에는 반코트를 걸쳤다. 신발은 검은색 로퍼.

저번과는 달리 금발을 하나로 올려 묶은 모습이다. 걸을 때마다 포니테일이 살랑거렸고, 새하얀 목덜미가 완전히 드러나 보였다.

밝은 머리색 때문인지 외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눈에 띄는 모습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 번씩 그녀를 쳐다보았고, 애인과 손잡고 걸어가는 놈마저 눈알을 돌렸다.

예쁘긴 예쁜 모양이다. 

내 앞으로 온 유리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래 기다리셨어요?”

“나도 방금 왔어. 뭐 먹을래?”

설마 고급 레스토랑을 가자고 하지는 않겠지?

그러면 얄짤 없이 더치페이다.

“추우니까 따뜻하게 우동 어때요? 근처에 유명한 가게 하나 있는데.”

“우동?”

“싫어해요?”

“아니, 좋아해.”

의외로 싼 메뉴를 고르다니. 기특하다.

우동가게는 백화점 근처 이면도로에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가게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개중에는 일본인도 여럿 보였다.

난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일본인들이 왜 한국 우동가게에 줄을 서 있는 거야?”

비유를 하자면 한국인이 도쿄에 가서 김치찌개 파는 집에 줄 서 있는 셈이다. 여행 도중 갑자기 고향 음식이 그리워졌나?

“여기가 케이엘이 운영하는 가게예요. 그래서 일본팬들이 많이 찾아와요. 여행책자에도 실려 있데요.”

“케이엘이 누구야?”

“BCB 멤버요. 몰라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알아.”

BCB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이돌 그룹이다.

유리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헤에, 선배는 여자 아이돌에만 관심 있나 봐요?”

“아아, 그건 아니고.”

원래는 여자 아이돌에도 별 관심 없었다. 군대 선임들이 주구장창 여자 아이돌 나오는 프로만 틀어대는 바람에 이제는 웬만큼 알게 되었지만.

줄은 금세 줄어들었다. 메뉴가 메뉴인만큼 회전율이 빠른 모양이다.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마침 양쪽 테이블이 다 일본인 관광객들이었다. 곳곳에서 일본어가 들려오니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택규가 좋아할 것 같은 분위기다. 다음에 한 번 데리고 올까?

주문한 우동은 금방 나왔다.

“잘 먹겠습니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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