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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10

군(君)이 아니다 (1)

[어떻게!?]

봉양층 호수 바닥에 가라앉은 나.

치제층에 막 도착한 나.

그리고 기괴고로 변하여 흑린어령문 수사들의 체내에 들어가 있는 나.

그 모든 내가 너무 경악해서 동시에 발작하듯 소리쳤다.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냐! 서휼!”

“아, 그게 궁금하신 겁니까?”

‘서휼’은 친절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왜, 흑색귀골곡에는 전송진이 있지 않습니까. 태수 자격으로 정식으로 흑색귀골곡 전송진을 이용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인족에 있는 흑색귀골곡 섭명함을 이용해서, 삽풍역에 있는 섭명함으로 전송해 왔기 때문에 적절한 시간에 맞춰 올 수 있었지요.”

“네놈….”

나는 흑린어령문 제자의 입을 빌려 말했다.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잖나. 어떻게 결계를 500년 만에 나온 거냐…!”

내가 쳐 놓은 결계는 단순한 결계가 아니다.

천 년이 지나면 무조건 풀린다는 조건이 걸린 만큼, 천 년 이전에는 굉장히 풀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물론 합체기쯤 되면 그냥 뜯어 버리고도 나올 수 있겠지만, 지금 서휼은 합체기 수준일 리가 없었다.

천지심괴가 서로 힘을 곱해 줘서 두 단계 위의 경지를 넘보는 게 가능한 것.

그러나 서휼은 천, 지, 괴는 사용할 수 있을지언정 내 무형검은 겁천의 수준만큼 사용하는 게 절대 불가능했다.

“너… 어떻게 한 거냐?”

내 말에 서휼은 빙긋 웃었다.

“왜 그러십니까, 서 도우. 원래 인간족은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의기 있고 정 많은 종족으로 유명하잖습니까.”

“금시초문이군.”

“후후, 어찌 생각하시든… 그저 ‘부탁’했을 뿐입니다. 결계 안쪽에서 지금 수준의 힘으로 결계를 해체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잘하면 제 ‘목소리’ 하나 정도는 바깥으로 전달할 수 있더군요.”

“목소리…?”

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녀석을 노려보았다.

“분체로, 다른 태수들에게도 전부 말하고 다녔다. 천 년간 폐관을 할 테니 그 전에 안쪽에서 열어 달라고 한다면 심마에 빠졌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절대 응하지 말아 달라고 말이야. 그리고 서 장군을 만들어서 입구를 지키게 했는데…?”

“글쎄요… 어쩌면 진심을 다해 전달하니 통한 게 아닐까요? 후후….”

“….”

나는 잠시 녀석을 노려보다가, 녀석의 손에 들린 교염과 녹주의 목을 바라보았다.

“왜 이들을 죽인 거지?”

나는 교염에 대해서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족들에게 들어서, 교염이 요족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간 것에 대한 일들도 알고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벌을 받은 것이지만, 만약 그가 벌을 받는다 해도 그의 아내만큼은 살리고 벌을 받았으면 했었다.

하지만 결국 교염의 염원은 서휼에게 완전히 막혀 버린 것이었다.

서휼은 싱긋 웃었다.

“사소한 장난일 뿐이잖습니까, 서 도우. 이딴 벌레 몇 마리 살리든 죽이든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

나는 굳이 반박하지 않고 녀석을 노려보았다.

마음이 없는 존재와 언쟁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도리어 서휼을 비웃었다.

“그나저나 안타깝게 되었군.”

우우웅!

저 멀리, 동쪽에서부터 아침 해가 밝아 오고 있었다.

광한계의 크기를 생각하면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 건지는 몰랐다.

하지만 해와 달은 매일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윤회했고, 분명히 지금은 ‘아침’이 되고 있었다.

삭월의 어둠이 씻겨 내려가며, 어둠이 비치지 않자 점차 증룡진인의 저물도의 입구가 닫혀갔다.

“왜 굳이 여기까지 온 거냐. 와 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텐데.”

키이이잉!

나는 흑린어령문 제자들의 몸으로 서휼의 몸 주변을 둘러쌌다.

기괴고의 술을 사용해서, 녀석을 역으로 침식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서휼은 보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 도우께서는, 증룡진인의 이계에 들어갈 때 뭔가 보지 않으셨습니까?”

“음?”

“강녕봉양사자증룡지도. 당신이 들어간 곳은 단순한 저물도가 아닙니다. 합체기부터는 자기 영역에 물건을 넣어 놓고 다니면 되는데, 증룡진인쯤 되는 이에게 왜 저물도 같은 게 필요하겠습니까.”

우우웅!

나는 서휼이 녹주와 교염의 사체에서 뭔가를 뽑아내는 걸 보며, 놈이 주절거리는 동안 기괴고의 술을 발동시켰다.

‘기괴고, 역 침식!’

치이이이―

그의 십방(十方)을 봉한 후 기괴고의 술법으로 그에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서휼은 태연하게 웃을 뿐이었다.

“당신이 들어간 곳은… 수십만 년 전 일어났던 대전쟁 당시, 유호덕과 증룡의 대결에 광한계의 생령들이 멸종할까 봐 증룡진인이 광한계의 생령들을 모조리 보호종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기 위해 사용한 이계입니다. 증룡진인은 당시 광한계 생령들에게 강녕(康寧)에 대한 개념을 알려 준 후, 그 개념을 아는 이들은 누구든지 이곳에 들어와 보호종이 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었더랬지요.”

쿠구구구구구!

서휼의 기운이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이건…!’

녀석은 교염과 녹주의 기운을 빨아들여, 일시적으로 사축기의 기세를 뿜기 시작했다.

그의 눈이 빛나며,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익숙한 문자가 떠올랐다.

강녕(康寧).

“강녕축(康寧軸), 해(解).”

번쩍!

강녕의 힘이 천지에 비췬다.

동시에 뭔가 거대한 소리가 사토역을 울렸다.

쿠웅, 철컥!

빗장이 열리는 소리, 혹은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소름이 돋는 것을 눈치챘다.

‘이, 이 자식….’

증룡진인의 저물도는 이미 닫혔지만, 서휼이 다시 문을 열었다.

놈이, 이곳으로 들어온다.

“쉽게는 못 지나간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기괴고로 녀석의 정신을 침식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기괴고들과 연결이 희미해지는 걸 느꼈다.

“후후, 이 법술은… 들어 본 적 있습니다. 혈음계 천마들의 침식에 대항하려 진마계의 지족들이 만들어 낸 법술이라 했었던가요?”

서휼이 빙긋 웃는 게 보였다.

“죄송하지만, 제 것은 천마들의 원시적인 저급 침식이나 기생 같은 게 아니라서… 힘드실 겁니다. 후후….”

콰득!

나는 동시에 시야가 암전되며 기괴고들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긴 것을 느꼈다.

서휼에게 들어간 기괴고들 중, 한 마리의 ‘시야’와 ‘소리’만을 제한 모든 기괴고들의 통제권이 사라졌다.

놈이 내 기괴고를 소화해서 제 것으로 만든 것이었다.

‘왜 한 마리의 시야만은 남겨 둔 거지?’

그리고 나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첨벙!

서휼이 천지로 뛰어든다.

동시에 그는 환상진법에 떨어져 능숙하게 별자리를 보고 길을 찾았다.

‘이 자식….’

내가 초조하라고 일부러 시야를 남겨 둔 것이었다.

나는 서휼의 의도에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걸 느끼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큰일은 아니야. 만약 서휼이 봉양층까지 와도, 나는 봉인되어 있다.’

짐작건대, 이 호숫물은 서휼이라 해도 어찌할 수 없을 터였다.

그만큼 호숫물이 물리력을 무화시키는 정도는 어마어마했고, 법력 역시 상당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놈은 절대로 이 물 안쪽으로는 못 들어온다.’

못 들어오는데, 제 놈이 뭘 어쩐단 말인가.

“아하, 청루(淸淚) 안쪽에 봉인되셨군요?”

‘뭐?’

나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서휼이 남겨 둔 기괴고의 시청각을 통해, 녀석이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꽤 귀찮긴 하겠군요. 하지만 청루를 무효시키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답니다. 봉양층 바닥에 구멍을 뚫으면 청루는 저절로 아래층으로 쏟아지고, 서 도우도 나오실 수 있을 테니까요.”

오싹, 오싹!

나는 한 가지 최악의 상황에 이를 갈았다.

‘서휼, 이 자식, 지금….’

“아, 생각을 어떻게 읽으신 건지 그게 궁금하신 거군요.”

저벅, 저벅….

서휼은 순식간에 환상진을 돌파하여 어느덧 ‘강녕봉양사자증룡지도’라는 현판이 걸린 정문 앞까지 오는 데에 성공했다.

꾸득, 꾸드드득―

정문 앞에 도착한 서휼은, 얼굴을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놈의 얼굴이 비틀어지더니, 동시에 ‘청발의 서은현’의 모습에서 ‘완전한 서휼’의 얼굴로 변해 버렸다.

뿔이 없다는 것을 제하면, 녀석은 이제 완전한 서휼이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서 도우. 이제 곧 알게 되실 테니 말입니다. 후후후후….”

나는 마치 얼음굴에 빠진 듯한 한기를 느꼈다.

귀왕화를 한 후 이만큼이나 오싹하고 뒷골이 시렸던 적은 없었다.

‘정말 내 생각을 다 알고 있는 건가?’

찌릿, 찌릿….

나는 무언가 심상 안쪽에서 찌릿하는 느낌에 생각을 다잡았다.

‘아니, 서휼의 말을 다 믿으면 안 돼.’

“저는 언제나 진실을 말하기를 좋아한답니다.”

‘녀석의 교언영색에 흔들리지 말자.’

나는 심상 속에서 찌릿하는 느낌에, 서휼의 말을 무시하며, 일단 기괴고의 연결을 모조리 한 번 점검하고 할 수 있는 한 의식을 가사 상태로 만들었다.

그런 후 등봉조극으로 의식을 가속시키고, 기묘성심전으로 의식의 파동이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한 후 생각을 정리했다.

‘녀석은 가속한 내 사고를 따라오고 있나?’

‘아니, 못 따라오고 있다.’

‘내 생각을 완전히 읽는 게 아니야. 강하게 드러난 부분만 읽을 수 있다.’

‘기괴고든 원유의 혈체든… 모종의 이유를 통해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쳐도, 그 모종의 이유가 완벽한 상황은 아니야.’

그리고, 서휼이 수류층을 걸으며 내게 한마디를 다시 했다.

“재밌군요, 서 도우. 한번 해 보시지요. 전부 읽을 수 있답니다.”

분명 소름이 돋는 발언이다.

하지만 녀석이 내게 다가올수록, 가까워질수록.

경각심이라고 해야 할까.

가슴 안쪽에서, 심상에서 찌릿하는 느낌이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찌릿하는 느낌으로 인해, 나는 어째 서휼의 발언이 더더욱 의심되었다.

‘정말 읽을 수 있는 게 맞나? 만약 전부 읽을 수 있다면, 나를 이렇게 말로써 겁박하고 공포를 조장할 필요가 없나? 말없이 생각만 읽어도 될 텐데?’

거짓말쟁이 서휼이 내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할 때.

‘전부 읽을 수 있다’는 말이 진실인가?

‘아니야. 어쩐지….’

찌릿하는 느낌이 강해질수록, 서휼의 화법을 알 것만 같았다.

‘녀석이 전부 읽지는 못한다는 확신이 강해진다.’

저 자식이 하는 꼴로 봐서 분명 모종의 방법으로 내 생각을 읽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분명했다.

‘전부’ 읽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기묘성심전을 운용하며, 정신의 파동을 복잡하게 만들고, 수많은 잡생각들로 의식의 표상을 채웠다.

‘한번 다 읽어 봐라.’

찌이이잉―

밥먹고싶다서장군은머저리같이생겼다본체의얼굴은왜그렇게생긴걸까연이랑같이먹었던국밥맛있었는데왜내심미관을이해하지못하는걸까서휼거지발싸개같은놈강민희가좋아서휼의비밀은뭐지본체는정말먹힌건가서휼이랑괴군이랑같이탕수육시켜먹으면둘은싸울까안싸울까그러고보니중경계에는식문화가발달을잘안했단말이지….

표층 의식으로는 별 쓸모없는 무수한 잡생각을 띄운 후, 나는 ‘진짜’ 비밀을 숨겼다.

* * *

‘소름 돋는 녀석이다, 서휼….’

나는 치제층에서 숨을 들이쉬며 생각했다.

치제층은 어두웠다.

하지만 점차 치제층의 어둠이 내 꿈의 육신에 흡수되는 듯하며 시야권이 점차 넓어지고 있었고, 나는 시야를 되찾을 때까지 대기 중이었다.

‘서립의 머리로 서휼의 생각 읽기를 막고 있는 동안 치제층에서 뭔가 성과를 얻어야 해.’

얼마 후.

서휼이 수류층의 끝자락에 도착했고, 도거층으로 오를 준비가 되었다.

동시에 나는 완전히 시야가 확보되었단 걸 깨달았다.

‘이곳이 치제층…!’

오오오오오―

어쩐지 음산한 음풍이 귀곡성을 내고 있었다.

나는 눈앞에 있는 ‘거대한 것’들을 보며 입을 벌렸다.

치제층은, ‘작은 세계’에 가까웠던 다른 층들보다는 ‘창고’에 가까운 인상을 주었다.

작은 언덕만 한 식죄(識罪)의 동상, 그리고 곳곳에 걸린 탱화도와 족자들.

커다란 상자들과… 마찬가지로 들판처럼 넓은 [옥간].

‘잠깐, 내가 서 있는 곳은….’

나는 내가 서 있는 땅이, 바닥 같은 것이 아닌 ‘책상’ 위쪽이라는 걸 인지했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책상’ 위쪽에 올라온 것이었다.

‘앞에 있는 식죄의 동상은… 동상이 아니군.’

일종의 식죄 형태의 ‘도장’이었다.

‘증룡진인의 몸체 크기에 알맞은….’

잘 보아하니, 창고는 아니었다.

그래, 이건 차라리….

‘집무실이군.’

누군가가 정무를 보는 ‘집무실’의 형상에 가까웠다.

그리고 나는 이곳이 증룡진인이 쓰던 곳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증룡진인은 지족 영토의 손에 꼽힐 정도의 대지에 자리하고 있다.’

진룡맹 전체가 증룡진인의 육신이나 다름없었다.

이 집무실도 크긴 컸으나, 증룡진인의 진체가 전부 들어간다기에는 한참 좁았다.

나는 볼 것도 없이, 일단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책상 위쪽에 있는 거대한 옥간으로 날아갔다.

다행히 치제층에선 비둔술을 쓸 수 있었기에 금세 갈 수 있었다.

옥간의 위쪽에서 기묘성심전을 운용하며 의식으로 옥간을 덮고, 옥간을 읽었다.

‘이 옥간은….’

나는 눈을 빛냈다.

부덕제사서를 내 것으로 만들 때 사용했던, 비율에게 배웠던 명계의 언어.

망자들의 언어로 기술된 옥간이었다.

나는 옥간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이건….’

옥간은 다름 아닌 유언장이었다.

―강녕좌주(康寧座主) 차석판관장(次席判官將) 고력진군(古力眞君) 해녕(解寧)이, 좌하(座下) 대라선 증룡에게 전한다.

찌이이잉―

“끄아아아아악!!!”

[이름]!

그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압력이 정신을 압박하는 게 느껴졌다.

‘버, 버텨야 한다…!’

당장에라도 ‘잡아먹힐’ 것 같다!

“끄, 끄웨에에엑!”

동시에, 나는 의식을 다잡으며 서립의 몸에 있는 부(富)의 축을 내게 강력하게 연동시켰다.

축의 인력이, 내 정신이 날아가는 휘발되는 것을 막았다.

“허, 허억… 헉….”

정신을 차려 보자, 어느새 서휼이 도거층의 절반을 횡단한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주변에는 내가 ‘꿈의 육신’의 손가락을 뽑아 휘갈긴 피의 문자들이 즐비했다.

그것은 수많은 지식과 구결들이었고, 그 구결들을 보자마자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그렇군.’

인간족의 보호 구역에 살고 있던 사축기 수사.

그 사축기 수사는 자신이 본 ‘선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던 중 ‘어떤 존재’가 체내에서 부활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는 뱃속에서 한 움큼 이상한 괴석을 쏟아내기도 했고, 그 괴석을 봉인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괴석이 녹아 ‘청린갑’을 제어하는 구결이 담긴 ‘물’을 남겼다.

나는 [해녕]이라는 위대한 존재의 이름을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존재가 그 사축기 수사의 체내에서 부활한다는 존재였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깊은 안도감과 공포감을 느꼈다.

해녕은 부활할 수 없다.

완전히, 절대로 부활할 수 없게 영멸했다.

‘지식’을 받아들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오직 수많은 진선들을 직시하며 살아남은 나였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이를 통해 청문령의 상태 역시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증상이 내 증상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그가 소금 기둥화된 것 역시 나처럼 ‘죽은 진선’의 정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리라.

소금산의 주라는 존재는 청문령을 통해 부활하지 않을 터였다.

그 역시 해녕이라는 존재처럼 영멸한 존재일 테니까.

물론 보자마자 전신이 소금 기둥화되었던 소금산의 주와 반응이 이 정도로 차이 나는 것은 나와 청문령의 경지 차이도 있었으나, 소금산의 주인이라는 존재가 해녕보다도 높은 위격의 존재이기 때문일 터였다.

‘그렇다면… 수계에는 차석판관장이라는 존재보다 높은 존재가 죽어 나자빠져 있고, 청문령은 그 존재의 흔적을 엿보았단 거겠지….’

청문령에 대해서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수계에 대해서는 한층 두려워질 수밖에 없는 정보였다.

나는 내가 흩뿌린 정체 모를 구결을 쳐다보았다.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저 구결을 뜯어먹고 싶다는 욕망을 간신히 억누르며, 일단 [옥간]을 마저 읽어서 정보를 얻기로 했다.

―저승의 신께서 판관단을 뽑아 광한천군의 전투를 보좌하라 명을 내리셨다.

판관단의 인물들은 증룡 그대도 아는 면면들이다.

수석판관장(首席判官將) 명마진군(冥魔眞君) 유호덕.

환생판관장(還生判官將) 명귀진군(冥鬼眞君) 유수련.

차석판관장 고력진군 해녕.

본좌들이 판관단의 일원이었고, 자금천군 역시 저승의 신의 명을 받아 빛의 주인의 뒤통수를 치고 빠져나와 우리에게 합류했다.

“끄아아아아아악!!!!!”

[이름]!

[이름]들이!

아득한 존재의 [이름]들이 뇌리를 파고든다.

나는 머리를 쥐어뜯는 고통을 견뎌 내며, 침을 질질 흘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고환을 뽑았던 것보다, 6만 배 고통 독약을 먹었던 때보다 고통스럽고 공포스럽다.

‘나’라는 존재가 통째로 [이름]들에 잡아먹힐 것 같은 공포감이 나를 엄습한다.

하지만, 수많은 진선들을 만나며 내성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사축기에 이르러 조금 저항력이 생긴 것일까.

나는 가까스로 소멸하지 않고 버텨 내는 데에 성공했다.

‘미친….’

사축기인 나의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다.

[이름]을 본 고통과 압박이 그만큼 무시무시하다는 증명이었다.

‘서휼이 접근하고 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옥간을 읽어 내려갔다.

―천존 전원과 빛의 주인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고, 빛의 주인을 궤멸 직전까지 몰아넣은 광한천군 덕에, 빛의 주인이 지배하는 천왕천역의 감시에 틈이 생겼다. 그 덕에 오복을 관장하는 우리가 전원이 모였다.

―수석판관장은 상제로의 승급을 앞두고 있는 중요한 시기이기에 저승의 신께서 좌하 대라선을 대신 보내라고 했으나, 과연 고결한 품성을 지닌 수석판관장은 역사적인 순간을 자신의 눈으로 보겠노라고, 그리고 광한의 성품에 반했노라고 말하며 출사표를 던지고는 명도천을 건너 일월천역에 강림하셨다.

―본좌 역시 선수왕의 자리를 마다하고 출사표를 던졌을 만큼 그와 같은 마음이다. 본래라면 내 대신 나의 좌하 대라선인 증룡, 네가 이 자리에 있었겠지만 나는 너를 데려가지 않을 것이다.

―만약 네가 이 유언장을 볼 때쯤이면 나는 아마 영멸했을 터이다. 부디 한 명이라도 승리하여 돌아와, 네가 이 유언장을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구나.

―하지만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내 뜻을 네게 전하려 한다. 그 존재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존재라면, 어쩌면 내 좌를 네게 승계하는 게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그리된다면 명부는 수, 부, 강녕, 유호덕… 네 개의 좌를 한꺼번에 잃는 것이다.

―명부에 어마어마한 전력의 공백이 생길 터. 나는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막고자, 네가 내 후계자가 되어 강녕의 좌를 얻었으면 하기에 유언장을 남긴다.

―증룡이여, 너는 나의 가장 충실한 수하였다. 명계의 법전을 너에게 맡기며, 나의 집무실, 나의 제관, 나의 판관필, 나의 좌(座), 나의 의지를 네게 맡기마.

―우리가 패배한다면 이 유언장은 자연스럽게 네게 전해질 터이니, 일월천역으로 와라. 유언장에 좌와 연결된 인력을 연결해 놓았기에, 아무리 그라도 내 후계자에게 좌를 계승하는 건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증룡, 나의 자식 같은 수하여. 내가 멸하면 네가 저승의 천존을 보좌해 다오.

그것이 옥간의 끝이었다.

“끄헉, 꺼허헉….”

나는 칠공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땅에 떨어져 있었다.

어마어마한 존재들이 너무 많이 나온 탓에, 나는 죽기 직전이었다.

그나마 진선들을 많이 보아서 내성이 생긴 덕에, 그나마 사축기에 올라서 생명력과 의식이 강해진 덕에 소멸하지 않은 것이었다.

‘어마어마한… 이름들을 들은 것 외에… 수확은 없나….’

나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득히 멀고 거대한 벽에는 산맥보다 거대한 탱화도와 족자가 걸려 있었다.

그중 한 탱화도에는 증룡진인으로 보이는 용과, 어둠으로 덮인 시뻘건 눈을 가진 존재가 있었다.

혈음대전(血陰大戰)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탱화도를 보며,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꿈의 육신은 이제 곧 소멸할 터였다.

‘젠장할… 서휼이… 봉양층에 올라오기 직전이건…만….’

그때였다.

‘…잠깐.’

나는 이라는 탱화도에 그려진 증룡진인을 보았다.

증룡진인은 무언가 ‘투명한’ 장막 같은 것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찌이이잉―

동시에, 나는 [해녕]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얻었던 ‘지식’이 뇌리에서 소화되는 걸 느꼈다.

“끄으으으윽…!”

‘지식’이다!

진선을 보고 죽지 않으면, ‘지식’을 얻는다!

나는 ‘지식’의 내용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거라면….”

이길 수 있다.

서휼 놈을!

* * *

저벅, 저벅….

봉양층 위쪽.

서휼이 빙긋 웃으며 그곳에 있는 호숫가로 걸어갔다.

“하하, 그럼 서 도우. 도우의 ‘진짜 본체’를 가져가겠습니다.”

그가 손을 뻗어 인력을 집중시킬 때였다.

촤르르르르르!

호숫가의 물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그리고, 물이 폭포처럼 서휼을 덮쳐 갔다.

“크윽…!”

서휼은 위기감을 느낀 듯 폭포의 궤적에서 벗어나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청루에서 벗어난 겁니까, 서 도우?”

그는 파충류 같은 눈을 흘기며, 아래쪽에 나타난 귀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귀왕이 18개의 입을 벌리며 웃었다.

“네가 이걸 청루(淸淚)라 했던가…?”

“예. 선수 해태의 눈물이 그 호숫물의 정체니까요.”

“그렇군… 고력진군이 수하를 위해 남긴 유산 중 하나였나….”

귀왕이 눈에서 귀화를 불태우며 웃었다.

“이건, 청루가 아니라 청린갑(淸鱗甲)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모양이다.”

쏴아아아아―

“자, 그럼, 제대로 싸워 보자. 서휼.”

촤아아아아―

호숫물이 허공으로 뭉치며 서휼을 감쌌다.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이, 서휼은 그렇게 봉인되었다.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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