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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10

309화.

로스트판타지는 30년 동안 시리즈를 이어왔다. 각 게임마다 OST가 있고, 이제까지 백여 장의 음반이 발매됐다.

그중에서 두 시간의 공연 동안 연주할 곡을 추려내는 것도 일이었다. 선곡은 택규가 콘도 하야시 음악감독과 상의해 직접 결정했다.

곡이 정해지자 그걸 오케스트라에 맞게 편곡했고, 박혜진 대표는 합창단과 피아니스트 섭외에 들어갔다.

놀랍게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다카하시 에이지를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 섭외를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연락이 왔다고 한다.

이유는 그도 오타쿠…… 아니, 로스트판타지 팬이기 때문이다.

[OTK컴퍼니, 한국음악전당 개보수비용 전액 지원!]

[한국교향악단, 로스트판타지 오케스트라 공연]

[OTK게임즈와 한국교향악단의 협업]

[로스트판타지 30주년 기념 음악회]

[게임음악, 웅장한 오케스트라로. 게이머들의 반응은?]

[클래식과 게임의 만남.]

기사가 나간 후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ㅋㅋ누가 오타쿠컴퍼니 아니랄까봐.

-ㅈㄴ 대박이다. 27억짜리 콘서트네.

-그런데 이게 돈이 되나?

-걍 홍보용이지. 로스트판타지 30주년에 온라인 출시 앞두고 있잖아.

-그런데 저거 선곡 누가한 거? 명곡이란 명곡은 다 들어있네.

-태어나서 연주회 한 번 가본 적 없지만, 저건 간다. 무조건 가야 한다.

-보러 가즈아!

-아, 돈 없는데. 엄마한테 클래식 보러간다고 용돈 달라고 해볼까?

-어쩔 수 없이 용살검 팔아야 하나?

-어느 서버시죠? 제가 사겠습니다.

-살포시 줄서봅니다.

세 달 후로 공연 일정이 잡혔고, 티켓 예약판매가 시작됐다. 놀랍게도 티켓은 예매를 시작한 지 3분도 되지 않아 매진됐고, 세 배가 넘는 금액에 암표가 거래됐다.

공연 홈페이지에는 항의가 빗발쳤다.

-이 좋은 공연을 어째서 1회만 하는 거냐?

-공연 횟수를 늘려라!

-우리도 문화생활 좀 하자!

-교양을 쌓겠다는데, 왜 못 쌓게 하니?

-표 양도합니다. 연락 주세요.

-대체 가지도 않을 놈이 왜 샀냐?

-되팔렘 ㅅㄲ들 극혐ㅜㅜ

-암표상들 사형시켜주세요.

한국교향악단 측은 부랴부랴 서울 공연을 2회 더 편성하고, 대전, 광주, 부산에서도 한 차례씩 공연하기로 했다. 역시나 전부 매진됐다.

연주회가 이렇게 급속도로 마감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는 누구도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음, 정말로 이게 되는 거였구나.

“이 정도면 몇 회 더 늘려도 되는 거 아니야?”

내 말에 택규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건 아니야. 우리가 집중화력은 강해도 절대적인 숫자가 그렇게 많진 않아. 더 늘리면 그땐 표가 남아돌걸.”

“…….”

열광적이긴 하나, 대중적이진 않다는 건가?

수요예측 예리한 거 보소. 확실히 이쪽 감각은 보통이 아니다.

외국에서도 관심이 쏟아졌다.

-어째서 한국에서만 공연을 하는 거지?

-로스트판타지는 일본게임이다. 일본에서도 공연해라!

-미국에서 매출이 얼마나 나왔는데, 미국 공연은?

-여러분! 서양 오타쿠들의 힘을 보여줍시다!

일본, 미국, 유럽 등의 공연기획사에서 요청이 줄을 이었고, 한국교향악단은 아예 해외순회공연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동안 이슈가 계속되며, 스마트폰 게임스토어 순위에서 로스트판타지M은 다시 1위로 치솟았고, 이후 출시될 로스트판타지 온라인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 * *

AD3와 AD4는 말일부터 인도를 시작할 예정이다. 러스트벨트에 있는 공장들은 쉴 새 없이 돌아가며 차를 조립했다.

임진용 회장은 직접 한국과 베트남 등지의 공장과 생산시설을 점검하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한찬영 회장은 은성차 협력업체들에게 전기차 부품 주문을 발주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다음으로 한국이 미래차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는 수출이 아무리 잘 돼도 국내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고용인원이 적은 데다가 생산설비를 전부 미국과 일본 등에서 사오기 때문이다. 반면 전장사업과 자동차사업은 배후효과가 매우 크다.

대기업들은 내년 상반기 채용을 늘리겠다고 밝혔고, 중소기업들도 조금씩 활기를 되찾았다.

계속 내리막길을 걷던 고용에 숨통이 트였다. 당장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경제심리가 개선되는 분위기였고, 정부는 재정을 투입해 경기를 살리겠다고 나섰다.

일을 처리하는 사이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크리스마스 시즌 치고는 조용하네.”

마치 내수경기 침체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래도 중심지에는 거대한 트리가 들어섰고, 불우이웃을 위한 구세군 모금도 한창이었다.

우리도 건물 앞에 대형트리를 세웠고, 직원들 선물도 준비했다. 선물은 연말 상여금. 세상에 돈만큼 좋은 선물은 없는 법이지.

크리스마스에는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파티를 열 예정이다. 이번에는 현주 누나의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난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회사에서 반가운 손님을 맞이했다.

“오랜만이에요, 선배.”

“진짜 오랜만이네.”

맞은편에는 한 여학생이 앉아있었다.

아니, 이제는 졸업했으니 학생은 아닌가?

그 사이 더 예뻐진 것 같은 모습이다.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밝은 금발 역시 그대로였다.

“더 예뻐졌네.”

내 말에 유리는 웃음을 지었다.

“정말요? 고마워요.”

이제는 어려보이는 느낌보다 성숙한 여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엘리 언니도 잘 지내시죠?”

“그럼.”

“안부 전해주세요.”

난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졸업 후에는 뭐했어?”

“공부하며 취업 준비했어요. 3개월 정도 인턴생활도 해보고.”

“RCK브로스에서?”

“아니요. 화안증권에서요.”

화안증권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화안그룹에서 운영하는 증권사로 규모는 작은 편이다.

뭐, 대형 증권사라고 해도 국내 금융사들 중 RCK브로스보다 규모가 큰 곳은 없지.

“그쪽에서는 몰랐고?”

“그럼요.”

RCK브로스 부회장 딸이 인턴이라. 이게 무슨 ‘우리 회사 인턴사원이 알고 보니, 재벌집 외동딸’도 아니고.

“아! 선아 선배가 가끔 선배 안부 묻던데. 따로 연락오지는 않았어요?”

“응. 아마 내 연락처도 모를걸.”

그러고 보니 선아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었다. 연락 와봐야 서로 할 얘기도 없다. 결혼해서 잘 살고 있으면 된 거지.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밀린 얘기를 나눴다.

“노벨상까지 받고, 이제는 완전 슈퍼스타네요.”

“슈퍼스타는 무슨,”

유리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진짜 신기해요. 우리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냥 평범한 복학생 아니었어요?”

“그러게 말이야.”

생각해보면, 그 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구멍가게 같던 기업들은 초거대기업으로 성장했고, 자산은 끝도 없이 불어났다.

내 동기들은 다들 졸업하고, 저마다 금융권이나 대기업에 취직했다. 유리 말에 따르면, 이혜미도 리테그룹에 무난하게 합격했다고 한다.

걔도 취직한 걸 보니, 요즘 대기업들이 한국대 경영학과 졸업생들을 모셔간다는 게 사실인 모양이다.

“앞으로는 뭐할 거야?”

“뭐하긴요? 취직해야죠. 안 그래도 자소서 들고 왔는데. 한 번 보실래요?”

난 헛웃음을 흘렸다.

“진짜 여기 들어오게? RCK브로스는?”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무슨 후계자 교육 받을 것도 아니고, 아빠 회사 들어가서 뭐하겠어요? 그리고 아빠가 그러는데, 선배가 앞으로 세계 금융시장을 움직이게 될 거래요. 기왕 일하려면 그런 곳에서 일해야 하지 않겠어요?”

난 피식 웃었다.

“내가?”

“벌써부터 그러고 있잖아요. 국부펀드고 투자회사고 다들 OTK컴퍼니 자금흐름에 주목하고 있고.”

“현금 동원력만 놓고 보면 우리보다 RCK브로스가 더 나을 텐데.”

“비교가 되나요? 지분담보로 대출 받거나 회사채 발행하면 수천억 달러는 우스울 텐데.”

우리에게 돈 대고 싶어 하는 곳이 많긴 하지.

유리는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혹시 내년에 신입사원 안 뽑는 건 아니죠?”

“흐음.”

사실 인원이 더 필요하긴 하다. 운용자산이 늘어난 데다가 헨리가 나가며 생긴 업무공백도 크다.

유리라면 똑 부러지게 일을 잘할 것 같긴 한데…… 그런데 이렇게 인맥으로 채용해도 되는 건가?

어떻게 하지? 거절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데, 눈앞에 뭔가가 떠올랐다.

“…….”

얘가 나중에 팀장까지 승진한다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유리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선배는 여전하네요.”

“응? 뭐가?”

“가끔 멍해지는 버릇 말이에요.”

“아! 잠깐 생각할게 좀 있어서.”

예지는 진짜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른다. 어쨌거나 이건 유리가 OTK컴퍼니에 필요한 존재라는 뜻이겠지?

난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채용할게. 내일부터 출근해서 일 배워.”

내 말에 유리는 깜짝 놀랐다.

“뭐예요? 이렇게 쉽게 채용해도 되는 거예요?”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도 돼.”

따지고 보면, 지금 회사 인원들도 다 인맥으로 모은 거다.

직원들 사이에 특혜니 낙하산이니 하는 얘기기 나올 수도 있지만, 능력이 된다면 그런 말은 금방 가라앉을 것이다. 능력이 안 되다면, 본인이 먼저 못 버텨서 나갈 테고.

금융권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니.

유리는 기뻐하며 말했다.

“아빠한테 자랑해야겠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나도 잘 부탁해.”

* * *

집 안에 있는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방으로 돌아온 엘리는 비라도 맞은 것처럼 흠뻑 젖어있었다.

복장은 어깨와 배가 드러나는 탱크톱에 검은색 레깅스. 머리는 걸리적거리지 않게 포니테일로 묶었다.

엘리는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며, 물을 마셨다.

“오늘 낮에 유리가 찾아왔었어요.”

“정말요? 그동안 뭐하고 지냈대요?”

“공부도 하고, 인턴도 했대요. OTK컴퍼니에 입사하고 싶다기에 내일부터 나오라고 했어요.”

난 변명하듯 한마디 덧붙였다.

“직원이 더 필요하기도 해서요.”

엘리는 웃음을 지었다.

“알아요. 앞으로는 회사 가면 유리도 볼 수 있겠네요.”

다행히 전혀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안부 전해달라고 하던데요.”

“정말요? 유리는 참 예쁘고 귀여운 것 같아요. 어리기도 하고.”

난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엘리도 어리잖아요.”

엘리는 심통 부리듯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어리긴요. 진후보다 세 살이나 많은데.”

표정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런 거 신경 쓰고 있었어요?”

하긴 외모는 서양인이어도, 어렸을 때는 홍콩에서 자랐지?

“뭐, 신경 쓰는 것까진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제가 오빠인 줄 알 테니 걱정 말아요.”

이는 결코 내가 삭았기 때문이 아니라, 엘리가 어려보이기 때문. 아무리 바빠도 지금처럼 운동을 거르지 않고.

“사실 진후한테 상의할 게 하나 있는데.”

“뭔데요?”

엘리는 욕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내일 말해줄게요.”

* * *

난 택규와 함께 주문한 스시 도시락을 들고, 골든게이트 건물로 건너갔다.

우리는 지사장실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현주 누나는 스시를 집어먹으며 말했다.

“베스터라고 알아?”

들어본 적 있다.

“스포츠 의류회사 아니에요?”

“맞아. 이 회사가 지금 상장 준비 중인데…….”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여가와 스포츠에 대한 수요도 증가한다.

한국에서 여가와 스포츠의 대명사는 다름 아닌 등산. 도심에서 산이 가깝고,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등산용 패딩이 유행하며, 학생들까지도 교복처럼 입고 다녔고,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렸다.

유행이 지나고 나자, 요가, 필라테스 같은 실내운동과 서핑, 웨이크보드 등 해양스포츠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그 시장에서 베스터라는 한국기업이 두각을 나타냈다.

아웃도어 시장에는 이미 강자들이 버티고 있었던 만큼, 베스터는 비주류였던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가와 건강한 몸매에 대한 열풍이 불며 그 시장이 급속도로 커졌다.

행운도 뒤따랐다. 외국 유명배우들이 휴가지에서 베스터를 입으며, 소비자들이 유럽 브랜드라고 착각한 것이다.

덕분에 프리미엄 이미지를 얻었고, 휴가철을 맞아 주문이 폭주했다. 국내에서 점유율 70퍼센트까지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고, 기세를 이어 중국과 일본시장에서도 대박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제는 상장을 앞두고 있다.

상장 후 예상 시총은 약 1조 원. 공모하는 주식량은 40퍼센트로, 공모를 통해 끌어 모은 돈은 아세안 시장 개척에 쓸 예정이다.

택규는 놀라며 물었다.

“뭔 의류기업이 1조씩이나 해?”

현주 누나가 물었다.

“신기할 것 없어. 전 세계 섬유패션시장 규모가 얼마나 될 것 같아?”

놀랍게도 대략 2조 달러로, IT시장과 맞먹는 규모다.

한 벌에 몇 십 달러짜리 옷 팔아서 얼마나 남겠나 싶겠지만, 세계 1위 패션기업인 KARA의 경우 연매출 300억 달러에, 순이익만 3조 달러가 넘는다.

괜히 KARA(스페인), M&H(스웨덴), 유닉클로(일본)의 창업주가 세계 10대 부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게 아니다.

“어쨌거나 이 정도면 한국 IPO시장에서는 대어야. 상장주관사를 선정하는 중인데, 잠정적으로 KYB증권과 골든게이트로 좁혀졌어. 문제는 그쪽에서 우리한테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어.”

“뭔데요?”

“엘리를 광고모델로 쓰고 싶대.”

그 말에 우리는 깜짝 놀랐다.

“엘리를요?”

현주 누나는 골치 아프다는 듯 말했다.

“상장주관 문제를 놓고 몇 차례 만났는데, 미팅하는 과정에서 그쪽 사장이 엘리에게 꽂힌 모양이야.”

엘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한테도 계속 만나서 얘기하자고 연락와요.”

난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그쪽 사장이 따로 연락한다구요?”

이게 대체 뭔 경우야? 설마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겠지?

내 표정을 본 현주 누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쪽 사장 여자야.”

“아, 그렇군요.”

난 자연스럽게 다시 젓가락을 집어 들었고, 현주 누나와 엘리는 피식 웃었다.

택규가 물었다.

“조건은 어떤데?”

“파격적이야. 톱스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신인모델에게는 말도 안 되는 좋은 조건이지.”

사실 조건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엘리가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건…….

“엘리 생각은 어때요?”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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