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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12

310. 남매 Ep – 은반지

“이게 뭔 난리야.”

오베르가 투덜거렸다. 그는 라우노 패밀리 저택 응접실에 들어찬 손님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는데, 본인도 어이가 없어서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레안이 왕자였단다. 레리아나, 고 꼬맹이는 공주고.

어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하는 행동이 남다르더라니, 좀 특별한 친구라는 걸 난 진작 알아봤다. 그럼.

하지만 그건 그거고, 솔직히 큰일이다. 걔가 무슨 귀족가의 영애를 꼬셔서 사귄다는 말을 들었을 땐 “어이구야, 대단하네요.” 나 몰라라 생각하고 말았지만…

왕자라니. 수많은 귀족이 인편을 보내왔다. 드물게 귀족 본인이 찾아오기도 해서 라우노 패밀리에서 그나마 직급이 높은 오베르가 안내를 맡았다.

물론 돌려보낼 방법은 없었다.

남작이든 자작이든, 평민에겐 하나같이 고고한 존재들이다. 왕자님을 뵈러 왔다니, 들여보내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그리고 이해가 안 되는 게, 인편이면 그냥 받아다가 전해주면 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편지를 가져온 심부름꾼들은 꼴에 귀족의 심부름이라며 배짱을 부렸다.

왕자님께 직접 전해드려야 한다나 뭐라나. 아오, 확 그냥. 오베르는 성질이 치미는 걸 애써 가라앉혔다.

어쨌거나 그로 인해 라우노 패밀리 사람들이 바빠졌다. 저택으로 몰려온 심부름꾼들은 한 곳에 대기시키고, 찾아온 귀족은 응접실로 안내해 다과를 대접했다. 조세프 라우노, 라우노 패밀리의 나이 든 보스까지 바쁘게 인사 다니는 형국이다.

그때, 오베르 옆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귀족이 말했다.

“이런 식으로 손님을 받으면 곤란한데. 기본이 안 되어 있군.”

잔주름이 이상하리만치 많은 사내였다. 귀족이지만 일종의 동종업계 사람이라 누군지 알고 있었다.

오베르는 다소 퉁명스럽게 말했다.

“곧 브리안 님, 당신 차롑니다. 투덜거리지 마시죠.”

오르빌의 수두룩한 창관을 소유한 브리안 자우어였다. 자우어 자작가의 서자로, 존댓말만 붙여주면 된다. 그래도 그는 말이 통하는 편이었다.

“충고하는데, 온 순서대로 손님을 들이는 게 아니라 귀족은 바로 왕자님께 안내하는 게 좋을 거야. 나야 댁들을 아니까 기다렸지… 자칫 눈 밖에 나는 수가 있어. 심부름꾼도 보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순서를 달리해주는 게 좋아.”

맞는 말 같지만 오베르는 따졌다.

“우리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합니까? 우리라고 좋아서 이런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니 불만이면 왕자님께 따지라죠.”

“이미 그러고 있을걸? 듣자 하니 라우노 패밀리는 왕자님이랑 별 관련이 없는가 본데, 그러면 더 주의해야지. 사실 왕자님도 처지가 썩 좋지만은 않을 거거든.”

“그래요?”

“그래.”

“왜요? 왕잔데.”

“그런 건 댁들이 직접 알아보게.”

“치사하긴. 아, 잘못 말한 겁니다.”

“…”

“나왔군요. 가시죠.”

브리안의 차례가 됐다. 오베르는 살짝 짜증이 난 듯한 그를 왕자에게 안내했다. 레안은 다소 피곤한 기색으로 응접실에 앉아있었다.

“브리안 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베르, 앞으론 손님을 들이기 전에 탁자를 정리해줬으면 좋겠어요.”

“절… 아십니까?”

“타티안 후작가에서 봤지요. 잠시 실례하겠소. 앉아계시죠.”

오베르가 나가고, 인사를 건넨 레안이 임시로 마련한 책상에 다가가 좀 전에 받은 편지를 메모와 함께 정리해두었다. 일이 터진 게 어젠데, 아침부터 사람이 몰려들었다.

딱히 대단한 용건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왕자니까.

쫓겨날지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끈이라도 만들어두자는 귀족들의 수작이었다.

방문해주시면 언제든 환영이라는 편지는 수없이 많았고, 연회에 초청하는 편지만 열 통이 넘었다. 물론 간을 보려는 속셈에 불과하다.

레안은 피로를 숨기며 브리안에게 되돌아왔다. 그는 선수를 쳤다.

“오래 기다리셨겠습니다. 손님을 맞을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폐를 끼쳤네요. 사업은 번창하십니까?”

“네. 염려해주신 덕분에… 왕자님을 알현할 수 있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이미 아시는 듯하지만,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브리안 자우어라 합니다.”

“레안 드 예리엘입니다.”

간단하게 답한 레안이 다과를 가져온 소이린에게서 차를 받았다. 그 주황빛 아가씨는 후다닥 나가버리고, 브리안이 잡담을 늘어놓았다.

오르빌에는 언제 오셨느냐 묻는 것으로 시작해, 자기는 젊을 적에 와서 자리 잡고자 노력했노라고… 동질감을 자극해 친목을 다지려 들었다.

이 사람도 용건은 없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온 것이다. 배경이 없는 왕자. 못 돼도 본전이고, 잘 풀리면 노다지가 따로 없다.

뻔한 목적이지만 레안은 마침 잘 왔다고 생각하며 시간을 할애했다. 브리안과 브레틴 자우어, 자작위가 어째서 바뀌었는지가 궁금했었다.

그는 베나르 타티안 후작을 주제로 질문을 열었다.

“음, 그러면 타티안 후작께 도움을 많이 받으셨겠소이다. 훌륭한 분이죠, 타티안 후작님은.”

“…네. 대단한 분이시죠.”

“실은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눴습니다. 그가 자우어 자작령에 관심이 많길래…”

“호, 혹시…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타티안 후작님이 저에 대해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쓸만한 사업을 운영하는 분이라 소개했습니다. 큰 신임을 받고 계신 듯하더군요.”

브리안의 안색이 거무죽죽해졌다.

창관을 운영하느라 바쁜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왕자를 찾아온 이유가 있었다. 창관에 종종 들리던 길버트 포르테 공자, 그를 감시해서 보고하던 게 브리안에게 남은 마지막 일거리였다.

그러나 길버트는 이제 없다.

현재 근신 중이고, 소문에 따르면 조만간 수도교회로 보내진다는데, 브리안에겐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침울하게 답했다.

“그… 그렇군요. 제가 과한 칭찬을 받았나 봅니다.”

“네. 무척 아쉬워하기도 했고요. 어쨌든 후작이 자작령에 관심이 많길래 알아봤습니다만 궁금한 게… 어떻게 브레틴이란 분이 가문을 물려받은 겁니까? 그는 첩의 자식이니 브리안, 당신이 정당한 후계자여야 하잖습니까. 화가 나더군요.”

레안은 정말로 화난 것처럼 언성을 높였다. 브리안에게 그건 연기로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 왕자도 후궁의 자식에게 자리를 빼앗긴 사람이니까. 되려 본인이 동질감에 젖어 들었다.

“맞습니다! 이게 다 아리스타 드 클라우스, 그 야만인 왕국의 폭군 때문입니다.”

그의 성토가 주저리주저리 길게 이어졌다. 브리안의 주장은 이랬다.

그의 어머니는 아스란 왕국에 있는 브리나 자작가의 영애였단다.

그녀는 국가는 다르지만 브리나 자작령과 인접한 가문, 벨리타 왕국의 자우어 자작가로 시집가 본처의 자리를 꿰찼는데, 일찍 회임하지 못한 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후계를 이을 자식이 필요해서 그의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첩을 들였고, 그 여자는 비루먹은 평민답게 곧장 임신해 아들을 낳았다.

그게 브레틴 자우어다.

브리안은 그보다 늦게 태어났다. 물론 조금 늦게 태어났어도, 본처의 자식이니 마땅히 본인이 후계자가 되어야 했으나…

“사고가 났습니다. 아버님과 그 첩이 사고로 돌아가셨죠. 안타깝게도. 어쨌든, 어머니께선 저를 후계자로 세우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왕자였던 아리스타 드 클라우스가 간섭해오면서 물거품이 됐죠.”

“어떻게요? 제아무리 자우어 자작령이 아스란 왕국과 가깝다 한들, 엄연한 벨리타 왕국의 땅이지 않습니까.”

“그게 통탄할 노릇입니다. 아리스타 드 클라우스가 왕권을 강화하는 데 혈안이라는 소문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왕은 그 못된 심보를 어린 왕자일 적부터 품고 있었답니다.”

뒤이어진 이야기, 외가인 브리나 자작가가 아리스타 왕자에게 두들겨 맞았다.

그는 브리나 자작이 딸을 이용해 자우어 자작가를 합병하려 한 것이 아니냐며 압박해왔고, 부당하게도 그로 인해 자작위를 그 비루한 첩의 자식에게 빼앗겼다는 게 브리안의 주장이었다. 레안은 세상에, 맙소사! 그런 일이, 맞장구쳤다.

“정말 통탄할 일이로군요. 모름지기 왕이란 백성에게 ‘봉사하는’ 귀족을 감싸주어야 할진데… 아리스타 드 클라우스, 다시 보았습니다.”

좋은 쪽으로. 레안이 본 브리나 자작가는 제 배만 불리려는 경향이 있었다.

브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해서 저는 제 자리를 되찾고자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만… 쉽지가 않았죠. 그래서 저는 타티안 후작님을 찾아갔습니다.”

그 이후로는 들을 가치도 없는 하소연이었다. 돼지같이 돈을 벌고자 창관을 세우고, 타티안 후작과 야합했다. 레안은 불쾌하지만, 성의있게 들어주다가 뒷사람을 핑계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브리안 자우어는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응접실을 나섰다. 왕자와 이어지는 어떤 끈을 마련했다 생각해 만족해하는 것이겠지만, 레안은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다.

돼지처럼 뚱뚱하고 욕심이 많던 디에고 브리나 자작. 레안은 저 깡마르고 주름이 많은 브리안에게서 비슷한 악취를 맡았다.

하긴, 외가이니 피가 섞여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 자초지종을 대강 이해한 레안은

“후-”

피로에 젖은 숨을 뱉었다. 저런 놈도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다.

피드백이 전달됐는지 소이린 양이 들어와 어질러진 탁자를 정리하고 뭉개진 소파를 털었다. 레안은 그 사이 책상에 앉아 수두룩한 편지를 읽고, 일일이 답신을 달았다.

현실적인 힘이 없는 왕자가 살아날 길은 이것뿐이기에. 더군다나 동생의 바람이 오빠와 함께 오래오래 사는 것이어서 문제가 될 소지를 남겨둬선 안 됐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만으론 부족한데…

‘안 되겠다. 레이를 데려와야겠어.’

어지간해선 약혼관계 시나리오는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지난 회차, 두 번에 걸쳐 고생이 많았으니까.

레이랑 레라 둘이 행복하게 살게 냅두고 싶지만… 내 코가 석 자다. 거지남매 시나리오의 난이도가 지옥 같아서, 기억을 되찾은 레안일지라도 혼자선 벅찬 것이었다.

레브는 맡은 일이 있고.

‘자우어 자작가라… 타티안 후작한테 그쪽 일을 도와주겠다 한 것도 있으니 내가 그리로 가야겠다.’

거기서 레이를, 소드마스터를 데려와야지. 레라 아이나르가 문제긴 한데, 어떻게든 되겠지.

왕자는 그렇게 떠날 곳을 찾았다.

그때 똑똑, 노크가 울려 또 다른 방문객이 왔음을 알렸다. 레안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크세니아한테도 빨리 가봐야 하는데…… 약혼이 깨진 지 벌써 하루가 지났다.

그녀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 장담하며 끈질기게 붙들어놨지만, 속이 끓었다.

만약 되돌리지 못하면 난 어쩌지. 그저 동생만 바라보며 살아야 하나.

레리아나의 꿈은 ‘평생’을 오빠와 함께 근사한 집에서 사는 것.

동생의 ‘진엔딩’은 엔딩이 뜨는 그 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평생 행복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지난 거지남매 회차는 공주가 된 동생이 왕궁에 입성하며 그곳을 제 집이라 여기고, 오빠와 함께하리라 생각해 엔딩이 떴음에도 클리어를 맞았다. 엔딩이 난 이후에 멀리 시집가게 된 탓이다. 이번에는 그래선 안 됐다.

동화같이 순진한 꿈인 만큼, 비현실적이고 살인적인 난이도였다.

레안은 평생을 들여 헤쳐나가야 할 이 과업을 도저히 혼자서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이건 카트리나가 제 자식을 위해 선택한 것처럼… 오직 어머니들밖에 할 수 없는 각오였다.

크세니아를 보고 싶다.

내겐 그녀가 필요하다. ─ 라고 레안이 생각했을 때였다.

끼익-

그녀가 문을 열며 입장했다.

“……어?”

“…오해하지 말아요. 전 왕자님이 좋아서 온 게 아니에요.”

“크세니아!!”

레안이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하하하하하하하!! 웃으며 허리를 감싸 들자, 크세니아는 물결치는 검은 머리를 내려뜨리며 말했다.

“레안 당신을 사랑해서 온 거예요. 저 아직 화났다구요, 왕자님.”

그녀의 손에는 은색 약혼반지가 그대로 끼워져 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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