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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13

311. 남매 Ep – 처형장

감격의 재회를 뒤로하고, “바쁘실 테니 간단하게 묻겠어요.”라고 입을 뗀 크세니아의 질문은 앞으로 어찌할 것이냐는 물음이었다.

당신의 존재가 공공연히 알려진 지금, 콘라드 왕국을 장악한 에릭 드 예리엘 왕자와 맞서 싸우겠느냐, 아니면 다른 길을 모색하겠느냐는 것이었는데, 레안은 딱 잘라 답했다.

“난 왕위에 관심이 없소.”

어떤 불순한 목적으로 당신에게 접근한 게 아님을 강조하는 말이었다. 레안은 정말이지 왕위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크세니아는 다소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요. 부모님께는 그렇게 전달하겠어요. 그럼… 레안, 이젠 슬슬 저희 집으로 들어오세요. 공주님이랑 같이. 이런 깡패 소굴에 머무를 이유가 없잖아요.”

레안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이대로가 좋겠어요. 에릭 드 예리엘 형님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요. 이렇게 말하긴 뭐하지만, 우리의 관계가 깨진 것으로 보이는 게 페테르 백작가 입장에서도 좋을 듯하네요.”

크세니아가 골똘히 생각하다 반박했다. 레안은 에릭 왕자를 자극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나요? 그는 왕이 되어도 끝끝내 당신을 노릴 거예요. 저희 가문을 위해 위험을 무릅써주는 건 고맙지만, 전 당신이 다치길 원하지 않아요. 그냥 함께 이겨내요. 그리고,”

그녀는 대단한 비밀을 밝히려는 것처럼 다가와 속삭였다.

“콘라드 왕국의 추기경이 사실 제 친할아버지세요. 설명하긴 좀 복잡한데… 어쨌든. 그분은 절 끔찍이 아끼셔요. 제가 위험하다는 걸 알면 가만있지 않으실 거예요.”

크세니아가 생각하기엔 이게 최선이었다. 만약 에릭 왕자가 콘라드 왕국을 거국적으로 움직여 레안을 해치려 들거든 추기경인 할아버지가 막아줄 테고, 그렇지 않고 암살을 시도하면 (물론 쉽지는 않겠으나) 페테르 백작가와 모나크 남작가의 힘으로 막으면 된다.

해서 손녀가 결혼할 사람이 레안 드 예리엘 왕자라는 걸 할아버지께 알리고, 여기는 여기대로, 우리가 파혼하지 않았다는 걸 공표해 콘라드 왕국에서 쫓겨난 왕자가 불러올 파장을 우려하는 귀족들을 안심시키는 게 좋을 듯했다.

그러나 레안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거예요. 제 말은, 당장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에요. 저도 준비한 게 있어요.”

“그게 뭔가요?”

“제가 보기보다 친구가 많답니다.”

레안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크세니아의 뺨에 입을 맞췄다.

레브와 레이.

나를 절대적으로 지지해줄 전우들이다. 거기에 더해 크세니아가 곁에 있어 준다면 앞으로의 삶이 어렵지만은 않을 터였다.

“뭔데 그래요?” ─ 재차 물어보는 그녀에게 레안은 짓궂게도 답해주지 않았다. 더듬더듬, 그녀의 사랑스러운 턱선을 탐하다가…

혼났다.

* * *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벨리타 왕국의 정계가 얼어붙었다.

비비안 드 이사도라 왕자 앞에서 길버트와 진한 키스를 나눠 전쟁을 일으킨 클로에 드 타탈리아 공주가 연달아 사건을 터뜨렸다.

이번 대상은 토턴 타티안. 베나르 타티안 후작의 아들이었다.

연회장에서 끈적하게 붙어있던 공주와 토턴이 어디론가 사라졌고, 다음 날 아침, 공주가 입궁했다. 왕은 그런 그녀를 벌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뚜렷한 메시지.

침묵하는 왕께서 공주를 움직여 소드마스터파의 수장인 포르테 백작과 왕당파의 수장인 타티안 후작을 건드린 것이다. 허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아이셀 왕국과의 대외적인 전쟁을 앞두고, 내부적으로도 전쟁을 벌일 참인가.

수습은 귀족들의 몫이었다. 포르테 백작은 아들을 수도교회로 보내겠다 공표했으니, 귀족들의 시선은 타티안 후작에게 쏠렸다.

그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두 파벌이 단합해 왕의 의도를 암묵적으로 흘려넘기거나… 또는 충돌할 수 있었다.

물론 대다수의 귀족들은 타티안 후작이 왕께 어떤 언질을 받았을 거로 추측했다. 왕당파는 불안해하고, 소드마스터파는 대답을 기다렸다.

그 와중에 정작 타티안 후작은

– 호록

제 집무실에서 술이나 들이켜고 있었다. 그가 떠올리는 건 귀족들도, 왕도, 사고 친 아들놈도 아니었다.

레안 드 예리엘 왕자.

그가 말한 대로 됐다.

후작은 머리가 복잡했다. 어떻게 이걸 미연에 알아챌 수 있지? 그가 공주를 움직였나? 비비안 드 이사도라가 받은 그 요상한 거울이 공주의 손에 들어갔다면…? 아니야, 비약이 심해. 더군다나 이런 일을 벌여서 그가 이득 볼 게 없어.

잠깐. 아니지, 내가 이렇게 생각할 것까지 계산했을 수도… 있겠지만, 역시 아니야. 너무 번잡해. 그리고 내 아들놈도 뭔가 이상하고. 아무리 그래도 여자한테 빠져버릴 녀석이 아닌데… 혹시 레안 왕자와 작당한 걸까? 하지만 둘은 만난 적도 없어.

끄응. 베나르가 이마를 손가락으로 받쳤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차라리 헤르만 포르테 백작이 아들과 손잡고 날 끌어내리려 모의한 거라면 믿겠다. 타탈리아 공주까지 끌어들여서.

이미 그렇게도 생각해봤다.

만약 백작이 그녀를 끌어들였으면 길버트와 공주가 키스한 것도 그의 의도일 것이다. 그 말인즉슨 헤르만 포르테 백작은 저에게 유리한 정치적 기반을 전쟁을 벌여 다지려는 동시에 내 아들을 이용해 이 타티안 후작가를 집어삼키려 함이다. 성공하면 왕국이 그의 손에 들어가겠군.

가당찮지만 이게 가장 말이 된다. 허나 걸리는 게 있었다.

포르테 백작이 구태여 아이셀 왕국과 전쟁을 벌일 리 없는 것이다. 비록 이혼했지만, 아이셀 왕국은 그에게 처가댁이나 다름없으니까.

따라서 포르테 백작은 이번 일과 관련이 없으리라고 봄이 옳았다.

그렇다면 역시,

– “말씀하시는 걸 보니 당신은 아직도 왕이 클로에 공주를 움직인 까닭을 짐작하지 못했군요.”

비비안 왕자를 초청해온 것부터 시작해서, 카로만 드 타탈리아 왕이 이 모든 일을 벌인 것이다.

그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긴 한데…

후작이 레안의 말을 곱씹었다.

– “곧 당신의 아들, 토턴 타티안도 길버트 포르테 공자와 같은 꼴이 날 겁니다. 그는 사랑에 빠지겠죠. 왕은 공주에게 푹 빠져버린 토턴을 이용해 당신과 헤르만 포르테 백작이 맞부딪치게 할 것이고요.”

그는 사랑에 빠지겠죠, 라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그때만 해도 믿지 않았던 데다가, 아들과 이렌느의 관계를 알아서 무심코 넘겨버렸다. 하지만 인제 와서 돌이켜보니 왕자의 말은 추측보다는 예언에 가까웠다. 또, 어떤 확신이 있었다.

토턴이 타탈리아 공주에게 사랑에 빠질 게 분명하다는. 마치 왕에게는 그렇게 만들 방법이 있다는 투였다.

마법? 글쎄…

그렇다기엔 타탈리아 왕가와 계약한 마법사의 움직임이 없었는걸. ‘카미츠 마탑’도 마찬가지고.

왕의 일거수일투족은 내 감시하에 있다. 포르테 백작은 물론이거니와 왕궁을 포함한 오르빌 전체가.

…그렇다면.

– 끼익

‘뭔가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난 후작이 확신했다.

이 베나르 타티안이 모르는 게 있노라고. 그렇지 않으면 현재 발생한 일들을 끼워 맞출 방법이 없었다.

그는 한쪽 벽에 걸린 아내의 초상화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당신이 갑자기 죽어버린 것만큼이나 이상하구려.”

고요한 집무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후작도, 기대하지 않았다.

* * *

클로에 드 타탈리아 공주가 사고 쳐준 덕분에, 혹은 페테르 백작이 딸과 왕자가 파혼하지 않았다고 암암리에 알려서인지 레안을 찾아오던 행렬이 잦아들었다.

레안은 그제야 시간이 생겨 바깥출입을 할 수 있었다.

그새 쌀쌀해진 날씨. 가을이 깊어졌다. 허름한 망토로 눈속임한 그는 패밀리 저택을 나섰다.

동생은 잘 지내고 있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라고 단단히 훈계한 게 즉효였는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문제가 없었다. 공주란 게 알려지면서 친구들과 예전 같이 어울리진 못하는 듯하지만, 이 역시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감당할만한 일렁임.

이만하면 라우노 패밀리에 머무른 이유를 다 했다. 레리아나는 윗사람을 공경할 줄 알고, 또래들과도 어울릴 줄 알았다. 귀한 공주님으로 태어나 안하무인이 되기 십상인데, 그만하면 훌륭하지 않은가.

궁에서 쫓겨나 격동을 겪었지만 잘 자라나 준 동생은 앞으로도 크게 일그러지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이쪽이었지.

생각도 정리할 겸 걸어온 도떼기시장. 남문 대로를 한참 지나쳐온 레안은 카시아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녀를 향한 감정은 다행히 해묵어 옛날처럼 강렬하지 않았다.

원한도, 슬픔도 없다.

기쁨도, 분노도 없다.

잊혀진 옛 친구를 찾아가는 듯한 적막함만이 감돌았다.

그리고 이내 눈에 들어온 보라색 아가씨. 시끌벅적한 시장통에서 신발을 만들어 파는 그녀는 약속한 대로 행복한 모습이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카시아는 거지 꼬맹이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아우 참! 고쳐준 게 언젠데 또 망가뜨려 왔어?”

“죄송해요. 히히.”

“한참 걸리겠네. 야! 이건 놔두고 가. 거기 바닥에 있는 거 보이지? 한동안은 저걸 신고 다녀. 너희도.”

“고맙습니다!”

새 신발을 신고 우르르 달려가는 코찔찔이 아이들. 오베르의 영향일까, 레안이 지저분한 신발이 어지럽혀진 가게에 발을 들였다.

카시아는 뭐야 또, 고개를 들었다가 손님인 걸 알아차렸다.

“어서 오세요.”

“…신발 사러 왔어요.”

“네~ 둘러보세요.”

[ 업적 : 카시아가 목숨 바쳐 지킨 남자 – 카시아에게 큰 호감을 얻음. ]

그것이 레안을 향한 카시아의 관심의 전부였다. 카시아는 바닥에 흐트러진 신발들을 주워 담았다. 레안도 그녀를 오래 쳐다보지 않았다.

“제 것은 이걸로 됐고, 여행용 신발이 필요해요. 여자애가 쓸 걸로.”

“그쪽에 있을 텐데요? 사이즈가 맞는 게 없나요?”

레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좀 값비싼 것을 원해요. 질기면서도 속이 부드럽고 가능하면 보기에도 좋았으면 하네요.”

호갱이었네.

카시아의 눈이 빛났다.

“값비싼 거라… 얼마까지 생각하시는데요?”

레안은 금화를 내밀었다.

“헉…! 미친. 진심이에요?”

“네.”

“…”

창관에서 일할 때도 금화는 못 받아봤는데. 카시아는 “오랜만에 일할 맛 나겠네.” 중얼거리며 금화를 받아들었다.

“사이즈는요?”

“이만해요.”

레안은 한 뼘에서 엄지를 꺾었다. 카시아가 눈을 흘겼다.

“정확해요?”

“정확해요.”

“좋아요. 나중에 뭐라 하지는 마시고… 스타일은요? 여행용이니 플랫(flat)일 테지만, 굽이 얼마나 높기를 바라세요? 발목은요? 물빠짐은 필요한가요? 속을 부드럽게 해달라 하셨는데, 털신을 원하는 거예요?”

카시아는 무수한 질문을 던졌다.

고작 신발 하나 만드는 데 이렇게 신경 써야 할 게 많은가. 레안이 좀 당황해서 애매모호하게 답하자 카시아는 제 머리칼을 빙글빙글 꼬면서 눈살을 찌푸리다가

“그럼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무래도 견본을 보내드려야 할 것 같으니까…”

말하곤 쓱쓱, 메모를 남겼다. 삐뚤빼뚤 엉망인, 그러나 꾹꾹 눌러쓴 글씨였다.

“견본은 어디로 보내드려요?”

“오베… 아니, 라우노 패밀리로 보내주세요.”

“어? 라우노 패밀리 사람이었군요. 그럼 오베르 아저씨를 알죠? 그 사람한테 들려 보낼게요. 이름은요?”

“레리아나로 해 주세요.”

“오케이. 그럼 견본을 보내드릴 테니까, 고치고 싶은 곳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견본까진 필요 없는데.

하지만 동생도 원하는 스타일이 있을 터라, 레안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카시아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밖으로 나왔다.

카시아는 /작업중/ 팻말을 앞에 달더니 문을 닫아버렸다.

…뭘 기대한 거냐.

그녀가 어떻게 사는지 보러 왔을 뿐이다. 동생이 신을 신발도 살 겸, 그 팔 부러진 거지가 이쪽에 있어서 왔을 뿐인데, 뭐, 카시아가 “전 행복하게 잘 지내요.” 말해주길 바랐나.

카시아한테 해 준 것도 없으면서.

레안은 다소 미련이 남은 걸음을 책망하며 오르빌의 거지들이 몰려 사는 곳을 향했다.

빠르게 허름해지는 골목길. 과거 처형장으로 쓰여 이렇다 할 만한 건물이 없던 공터에 삐죽빼죽, 아무렇게나 지어진 목조 가구가 펼쳐졌다. 스물다섯 채쯤 돼 보이는 그것들은 모두 사람 키보다 낮았다.

그리고 이내 대장 노릇을 하는 거지가 보였다. 그는 비틀어진 팔로도 남들이 알아보지 못할, 깨나 고아한 예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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