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314

312. 남매 Ep – 꽃말

/ “그래요, 오라버니. 제가 왕께 약을 먹였어요.”라고 말하자 당신은 저에게 고함치셨죠. 하지만 기회를 드렸잖아요. 레이시아는 오라버니를 사랑할 수 있었답니다.

모든 게, 잘 될 수 있었다구요. /

─ 바네카의 일지 중 발췌.

+ + +

부스스한 거지의 아침은 비현실감으로 시작한다. 추위에 웅크린 몸을 꿈지럭, 칼칼한 이물질이 섞인 침과 함께 삼키노라면 눈이 떠진다.

그러나 바로 움직이지 않는다.

습관처럼 한숨을 위한 숨을 크게 들이켜는데, 땅에 내려앉은 공기가 맑고, 서늘하다. 이때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무가치한 시간의 무게를 느낀다.

파르르 떨리는 눈가로 주위를 황망히 둘러보며, 본의 아니게 들이켠 숨은 콧김으로 뱉는다.

느리게.

뱉어낸 만큼 나름의 이유와 변명, 부조리한 세상을 빈 허파에 담는데, 그리하면 아려오던 명치가 한결 편해지는 것이었다. 꼬르륵- 허기까지 밀려들어 헛된 각성을 몰아내 준다.

그러면 준비가 된 것이다. 오늘 하루도 무의미하게 살아갈.

내 이름은 자바드.

자바드 호펜하임이다.

“야. 크흠. 야, 일어나.”

그는 자기는 일어나지 않으면서 남을 일으킬 만큼 뻔뻔해졌다. 옆 사람을 툭툭, 무릎으로 친 자바드는 도로 눈을 감았다.

* * *

아침 일찍 시장을 돈다. 엊저녁에, 또는 게을렀으면 막 버려진 식자재를 주워 담는 거지들. 자바드는 지시할 뿐이었다.

한쪽 팔이 비틀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호펜하임 남작가의 서자로 태어나 양질의 교육을 받은 그는 사람을 부릴 줄 알았다.

자바드는 가끔 킁킁,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못할 걸 식별해주며 아침 일과를 마쳤다.

그렇게 시장을 돌고 나면 슬슬 행인들이 몰려들 시간이었다. 거지들은 눈치껏 골목길을 택해 상인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상인들한테 밉보여서 좋을 게 없을뿐더러, 그들도 갈 곳이 있었다.

북문.

오르빌 북쪽에 있는 호수로 몸을 씻으러 갔다. 이 시간만큼은 거지들도 관문을 마음껏 왕래할 수 있었다.

이른 시간부터 아침나절까지, 수많은 물차가 호수에서 물을 퍼 거대한 도시에 공급하는데, 경비병이라고 이걸 일일이 조사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 틈에 다녀오는 거다.

경비병들이 이를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까닭은, 막으면 물차를 빌려 타서라도 드나드니, 여러모로 비위생적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거지들은 여유롭게 관문을 통과했다. 물론, 진짜로 호수까지 가는 건 아니고, 중간에 멈췄다. 호수는 생각보다 훨씬 멀리 있었다.

족히 한 시간은 걸어야 할 거리를 구태여 갈 필요가 있나. 북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터에서 거지들이 짐을 내려놓았다. 그러면 물차 몇 대가 다가와 차를 세웠다.

“오늘은 많이 파셨습니까요?”

“그냥저냥. 얼른 쓰게.”

호수로 물을 버리러 가던 물차들이었다.

떠간 물이 항상 다 팔리는 건 아니다. 이것도 나름의 경쟁이 있는 일이라 반이 넘게 남는 경우가 잦았다. 도심에서 물을 버리는 건 불법이라 도로 버리러 가던 차에 멈춘 거였다.

시간이 흘러 끈적해진 물.

저걸 호수에 내다 버리기도 중노동인데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줄이고, 서로에게 좋은 일이었다.

거지들은 물이 든 통을 물차에서 끌어 내려 맘껏 사용했다. 차주는 연초를 태우며 다른 차주와 잡담하고 있었다.

“아흐으. 슬슬 춥네.”

“그러게. 대장. 앞으론 닷새에 한 번만 옵시다. 날도 추워지는데.”

다른 거지들과 마찬가지로 몸을 씻던 자바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벌써들 이러면 겨울엔 어떡하려고?”

“아- 솔직히 대장이 좀 유난인 건 맞잖소. 다른 팀은 한 달에 한 번꼴인데. 이렇게 매일 올 필요는 없…”

자바드는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질했다.

“우리가 입은 옷, 신발, 거주지에 있는 이불. 모두 다 오베르 씨한테 얻어쓰는 것이잖는가. 그럼 약속을 지켜야지. 씻어서 나쁠 것도 없는 데다가, 슬슬 들를 때가 됐어.”

쳇. 그건 그렇지.

몇몇 거지들이 투덜거렸지만, 자바드는 잘 달래어 기존 방식을 고수해냈다. 오베르와의 약속을 지키는 건 그에게도 나름 중요한 일이었다.

라우노 패밀리.

거기에 무언가가 있다. 내 해묵은 원한을 씻어낼 길이 있을지도.

부러져 못 쓰게 된 팔이 저리는 걸 느끼며, 자바드는 거지들과 함께 처형장으로 되돌아왔다. 늘 그렇지만 자바드 호펜하임은 풍기지 않는 피 내음을 맡았다.

부모님과 아내, 친인척들의. 그의 팔이 부르르 떨리다 잦아들었다.

“어서 식사 준비나 하자구.”

빌어먹는 거지들에게 솥과 땔감이 있을 리 없다. 주워온 것을 한 대 모으고, 나눠 먹는 게 고작. 그래도 곧 죽으려는지 거동하지 못하는 거지에게 괜찮게 먹을만한 식자재를 먼저 골라 가져다준다.

나쁘게 말하면 보험이다.

언제고 자기도 병에 걸려 쓰러질 텐데, 굶주림에 고통받다가 떠나지 않도록.

사실 꼭 그런 목적이 있어서는 아니고, 거지가 남에게 각박할 이유가 없어서였다.

어차피 주워온 것인데다, 그렇게 각박하게 살 거라면 도둑질을 했다. 거지들에겐 비참하지만, 그로 인해 불거져 나오는 인정이 있었다.

그렇게 꺼루룩, 생식(生食)을 한 거지들은 하나둘씩 몸을 눕혔다.

힘이 있는 어린 고아들, 청년들은 각기 딴 일을 보러 가고, 나머지는 더부룩한 속을 두드리며 낮잠에 빠져들 즈음이었다.

자바드는 오늘따라 잠이 오질 않았다. 과거에 처형대가 있던 공터를 어슬렁거리며 낮잠을 자는 거지들을 귀찮게 굴기 잠시, 어느 민간인이 거지 소굴에 발을 들였다.

허름한 망토와 두건을 덮어썼음에도 자바드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저자가 거지가 아님을. 그리고,

[ 퀘스트 : 반역자 10/10 – {왕의 피} 능력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

“요즘 한창 유명한 분이시로군요.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복수의 때가 다가왔음을. 느리지만 넓은 보폭으로 다가온 청년이 그의 과거를 헤집었다.

“자바드 호펜하임. 타탈리아 왕가 시종장의 꼴이 말이 아니구려.”

* * *

“후후후.”

닭고기 집 주인은 바쁘게 손을 놀리면서도 밝게 미소지었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손님들. 그날 구입한 식자재가 두 시간이 못 돼서 동나는 하루하루를 그는 만끽하고 있었다.

시장에 있던 가게를 팔았다.

땅값이 저렴한 이곳, 남문 부근의 도떼기시장에다 새 가게를 차렸는데 돈을 벌기보다는 요리 공부를 하는 게 목적이었다.

가게를 옮겨서 나온 차액은 생활비로 쓰고, 초심으로 돌아가 요리 공부를 시작했다. 기왕이면 닭고기뿐만이 아닌 모든 식자재를 다룰 수 있는 레스토랑을 차렸는데…

한동안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왜지?’ ─ 처음에는 당황했었다.

아무리 닭고기가 아닌 다른 재료는 좀 익숙하지 않다고 한들, 이래 봬도 요리사다. 전처럼 오르빌의 중앙부도 아니고, 사는 게 고만고만한 변두리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러나 식당은 입이 아닌 발로 투표하는 법이라고, 정말 맛있었다며 칭찬을 늘어놓은 손님마저 옆집의 쭈구렁 할망구네 가게를 찾아가는 걸 보면 무언가 내가 알지 못하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게 대체 뭐지? 옆집을 찾아가서 먹어봐도 내 음식이 낫던데.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아가씨의 입을 통해 문제점을 듣게 되었다.

연보라색 치마를 입은, 매력적인 아가씨였다. 아직 이름도 모르는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서 신발 가게를 하고 있었다.

“맛은 있는데, 쓸데없이 비싸요.”

“…네? 하지만 여기 들어간 재료비만 해도… 제가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인데, 말씀이 지나치네요.”

“솔직히 말해달라면서요. 그리고 음식이 별로라는 게 아니에요. 너무 비싸서 부담스럽다는 거지. 옆집 할머니네 있죠? 이 값이면 거기선 세 끼를 때울 수 있어요.”

때우다니! 요리사에겐 모욕적인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같은 오르빌 성내라도 여긴 상대적으로 가난한 동네인 것이다.

“…알았어요. 레시피를 다시 짜 볼게요. 실례가 안 된다면 내일 다시 와주시겠어요? 아 참, 근처에서 일하시던데, 통성명이나 하죠. 저는…”

주인장이 이름을 밝혔다. 상대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카시아라 불러주세요.”

“카시아 씨였군요. 조언 고마워요. 그럼 내일… 기대하세요.”

“…그래요.”

그녀는 어쩐지 어두워진 안색으로 가게를 나섰고, 그 이후로 주인장은 승승장구했다.

음식에 지나친 기교를 부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겉멋만 바짝 들어 번지르르, 플레이팅에 온 신경을 기울이지 않고 투박하게, 향신료 범벅이 아닌 주재료의 맛을 살리는 데에 집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음식엔 감칠맛이 더하고, 값은 내려갔다. 스쳐 갔던 손님들이 되돌아왔다.

“이게 다 카시아 씨 덕분이에요.”

“…뭘요. 그보다 언제까지 카시아 ‘씨’라고 부를 거예요? 그냥 이름을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어두운 머리 색.

그녀는 태연히 말했지만, 주인장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제가 눈치 없는 멍청이임을 깨달았다.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 나이에 짝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삼십 대 초반. 중년에 들어섰다.

어릴 적에는 엄한 스승 밑에서 요리를 배우느라, 젊어서는 가게 차릴 돈을 버느라, 그 이후에는 가게를 근근이 유지하느라 결혼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카시아 씨도 그랬을까? 들어보니 고아라던데… 살아온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나 보다.

주인장은 꽃을 준비해두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듯한) 보라색, 봉선화 꽃이다. 전에 가게를 하던 곳, 중심상가에 있는 꽃집 아가씨가 무슨 용도로 사 가는 거냐 물어보았으나 노총각은 제 나이가 부끄러워 비밀이라고 답해주었다.

소이린은

‘딸이 있으셨나? 하긴, 저 나이에 고백하려는 건 아닐 테지.’

가볍게 생각하고 말았다. 누구한테 고백하면서 주기엔 최악의 꽃이다. 하지만 꽃잎으로 손톱에 물을 들일 수 있으니 실용적이고 재미있는 꽃이라 하겠다.

그렇게 두근두근, 꽃을 숨겨놓고는 오늘도 바쁜 점심시간을 보냈는데, 어정쩡한 시간에 웬 거지가 입장했다. 근처 거지 소굴에서 동냥하러 왔나 보다. 쫓아내야지, 다가갔다.

“어?!”

“어라? 하하! 어디론가 사라졌다 했소만, 여기 계셨구려. 일단… 이분은 제 동행이오.”

“그, 그러시군요.”

두어 달 전에 만난 귀족 나리다.

이 양반은 왜 항상 거지를 데려오는 걸까. 그래도 전에 그 소녀만큼 더럽지는 않다만… 주인장은 자리를 안내한 뒤, 메뉴판을 건넸다.

비록 값은 싸지만, 자신감이 붙은 메뉴들. 숙달된 솜씨로 요리는 빠르게 나갔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애매한 시간에 들른 두 손님은 한동안 이야기하며 식사하더니 이내 밖으로 나가 헤어졌다.

이제 곧 카시아가 오겠지.

별 의미는 없지만, 머리칼을 싹싹 빗어 넘기곤 요리사의 위생 모자를 똑바로 눌러 썼다.

요리사의 옷에 음식물이 튄 거야 일상다반사지만, 새것으로 갈아입은 뒤 초조하게 기다렸다. 언제나 혼자 식사하는 그녀가 올 때까지.

봉선화 꽃잎이 똑, 떨어졌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