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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16

314. 소꿉 ep – 복수의 기사

이로타시 강물에 낙엽이 드문드문 떠올라 있었다. 폭이 약 2,000피트(600m)에 달하는 거대한 강임에도 유속이 빨라 낙엽들은 마치 물고기처럼 돌다리를 스쳤다.

그리고 바짝 마른 침 한 방울이 퇫, 강물에 떨어졌다. 아이론 경은 돌다리 위에서 저 멀리 하류를 내려다보았다.

배를 가져올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여기는 배를 정박시켜둘 만한 곳이 없었다. 우리는 일을 마친 뒤, 저 아래 하류로 며칠을 내달려야 한다.

다시 퇫, 침을 가래에 섞어 멀리 뱉었다. 돌아보니 동료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긴장을 풀고 있었다. 연초를 태우며 잡담하는 사람도 있었고, 바르트처럼 돌다리에 우뚝 서서는 전방만을 주시하는 이도 있었다.

십여 년을 함께해 이젠 가족이나 다름없는 동료들. 그때 아이론은 한 사람이 없음을 알아차렸다.

갈렌이었다. 아이론이 저 멀리 돌다리 초입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갈렌-!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빨리 와!”

동료들이 뒤를 돌아보자, 갈렌이 곧 가겠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갈렌은 그들이 타고 온 일곱 필의 말을 돌보고 있었다. 그는 기마술도 뛰어나지만, 기본적으로 말을 참 좋아했다.

이내 갈렌이 돌다리에 올라서서 일행에 합류했다. 다가오는 그의 무릎이 진흙투성이다.

“뭘 했길래 또 그 꼴이야?”

“편자를 몇 개 갈아줬지. 아이론, …아니다.”

“왜, 뭐.”

“…네 말 상태가 가장 형편없었어. 누가 어부 아니랄까 봐… 앞으로는 신경 좀 써 줘.”

아이론 경은 피식 웃었다.

“어부는 내 아버지가 어부고, 네가 잘 돌봐주는데 뭐하러. 앞으로도 잘 부탁…”

“조용. 온다.”

바르트의 나지막한 한마디가 크게 들렸다. 웃으며 잡담하던 기사들은 대번에 얼굴을 굳혔다.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불타는 눈으로 전방을 응시하였다.

저주받은 붉은 방패.

테르탄 공작가의 상징이 주렁주렁 달린 마차가 돌다리 반대편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바르트는 당장 검을 뽑아 달려들고 싶었으나, 투구를 꾹 내리누르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빌어먹을 공작 놈. 라퍼트 테르탄 공작의 손자가 저기 있다. 녀석을 죽이면 놈이 수도에서 뛰쳐나오겠지.

사실 손자인 팔라스 테르탄에게 뭔 죄가 있겠느냐만, 광기에 휩싸인 바르트에겐 테르탄이란 성이 붙은 것만으로도 죽일 놈이었다.

그 저주받을 성이 붙지 않았어도 공작가와 관련이 있으면 남녀노소 구분 없이 죽여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마치 검문이라도 하려는 듯, 병사로 위장한 일곱 기사가 광기로 일렁이는 눈동자를 투구로 가리며 대형을 갖췄다. 줄줄이 이어진 마차가 다가올수록, 고대해온 복수의 순간도 다가서고 있었다. 이내 저쪽에서 전령을 달려 보냈다.

“어디서 온 놈들이냐? 검문 따위는 불필요하니 저리 비켜라. 팔라스 테르탄 공자의 행차시다.”

“…”

행여나 마차가 멈춰 설까 봐, 말을 타고 달려온 전령이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일곱 기사는 대답은커녕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전령은 당황하고, 너비가 넉넉하지 못한 돌다리를 일렬로 건너오던 행렬은 기어이 멈춰 서고 말았다. 팔라스 테르탄을 호위하는 기사 대장, 타디안 로페로가 불쾌해하며 앞서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무슨 일이지? 고개를 빼고 바라보는 마부들과 병사, 기사들. 바르트가

“저놈은 내가 잡겠다.”

속삭였을 때, 한 소녀가 세 번째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시녀의 복장을 한 그녀는 “잠깐! 잠시만요!” 외치며 달려오는 것이었다.

“바르트 경! 멈춰요!”

팔을 활짝 펼치며 무방비하게 기사들의 앞을 가로막은 레아. 레브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 * *

지금은 도착해 있으려나?

마차를 타고 덜컹, 돌다리에 올라선 레아는 초조하게 손톱을 씹었다.

마리사라는, 바르트 경의 아내를 데리러 가이단 후작가로 달려간 레브가 아직껏 나타나질 않았다.

극적인 연출을 위해 좀 늦게 등장하겠다 하긴 했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니, 못해도 어제 내게 와서 말해줬어야 했다. 도착했다고.

하지만 그는 행렬이 콘라드 왕국에 들어섰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곧 오겠지, 곧… 기다렸지만,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 결과가 이 모양이었다. 하리에 가이단 영애와 팔라트 테르탄 공자 일행은 문제의 강변에 도달해버렸다.

레아는 현재 시녀였다.

레안 드 예리엘이라는 왕자님의 전언을 전해 들은 레아는 레브와 역할을 분담했다. 레브가 바르트 경을 설득할 사람을 데려오는 사이, 레아는 하리에 가이단 영애 일행에 붙어있기로 했다.

하리에 영애가 목걸이를 순순히 내놓지 않을 터라, 옆에서 어쩌고저쩌고, 설득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돈이 없어서였다.

{초기 자금}인가 뭐시긴가. 레브가 가진 돈으론 레브 혼자 여행을 떠나기도 벅찼다.

“어? 너 소드마스터라며. 누구한테 돈 좀 뜯어다가 가면 되지 않아?”

─ 라고 나중에 말해보았으나, 레브는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는 듯, 날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건 나쁜 짓이라나 뭐라나.

“야! 누가 나쁜 짓인 거 몰라서 이래? 사람 목숨이 달렸잖아.”

“…아닌 것 같은데.”

“뭐가 아니야?”

“너랑 내가 같이 떠나고 떠나지 못하고의 문제지, 꼭 그러지 않아도 시간은 맞출 순 있어. 그리고…”

“그리고?”

레브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지금은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어. 같이 여행을 가면… 그러니까 잠깐 떨어져 있을래.”

레아는 어이가 없어서, 하지만 저도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쏘아붙였다.

“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너 웃긴다. 내가 결혼하자고는 했지만 그게… 그, 그런 말은 아니잖아!”

“…”

“…뽀, 뽀뽀쯤은 괜찮은데.”

“……”

“왜, 왜 말이 없어? 야!! 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아무리 내가 너랑 두 번이나 결혼했어도 그건 그거고 지금은 지금이야!”

하지만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들. 꿈이라면 이미 모조리 꿨다.

사제가 되었으나 레브를 찾아서 온 대륙을 방랑하던 자신과, 이와는 반대로 내가 수도교회에서 쫓겨났지만 레브가 날 찾아왔던 꿈.

우리는 결혼했었다.

수도교회로 떠나지 않고 마을에서 결혼식을 치렀던 것까지 합쳐서 두 번을. 레안이라는 왕자의 말로는 그 이후 한 번 더 결혼했단다. 그리고… 우린 행복했었다.

물론 좋은 것만 있지는 않았다.

바르바토스라는 끔찍한 악신에게 삼켜지는 꿈도 꾸었다.

강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날 구해준 레브가 바르트라는 기사에게 살해당하는 것도 보았고, 네비스에서… 나는 목을 매달았었다.

레브는 무척 미안해했다.

그 모든 게 제 잘못인 양 눈물을 떨구길래, 치사하게 깨져버린 거울 앞에서 말해주었다.

고통보다 행복이 더하노라고. 너랑 처음 결혼했던 그 한 번만으로도.

레브는 펑펑 울었다.

그 이후로 우린 다시 손을 잡고 다녔다. 삶을 몇 번을 반복하더라도 함께했고, 함께할 인연. 더는 숨길 이유가 없었다. 다만, 진도를 빼긴 쑥스러웠다.

꿈은 결국 꿈이다.

몇 번을 반복했든, 반복하든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는 데엔 변함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따라서 아직은 레브를 막 사귀기 시작한 소꿉친구로 여기며, 관계를 다시 쌓아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얘는 그게 힘든가 보다. 해서 레아는 끝내

“그래. 가서 머리 좀 식히고 와!”

말하여 레브와 함께 여행 가보고픈 욕심을 내려놓았다. 처음 말했던 대로, 레아는 보스포를 향했다.

역순으로 3번째, 꿈에서 꿨던 그대로 보스포에 있는 영주성에서는 시녀를 모집하고 있었다. 하리에 가이단이라는 영애를 모실 시녀였다.

그곳에서 레아는 레브와 작별하고, (“늦가을, 네가 이로타시 강에 도착하기 전에 올게.”) 새파란 인상의 시녀장을 만나 일을 배웠다.

꿈 덕분일까, 일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과연 내가 사제가 될 수나 있을까, 미래를 불안해하며 마을에 갇혀 지내던 때보다 나았다.

신께서 우릴 지켜보고 계시다는 확신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레슬리 수도사님의 말마따나, 수도교회에 가고 못 가고, 사제가 되고 못 되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신께 마음을 바쳤으니까.

그러니 신이시여, 레브를 굽어살펴 주세요. 당신께서 우리에게 불길과 같은 시험을 내리셨으니 증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우리는 찬란한 정신으로 보답하겠나이다.

물걸레질 한 번을 허투루 하지 않는 그녀를 신께서는, 아니, 시녀장이 눈여겨보았다.

레아는 하리에 영애를 모시는 전속 시녀가 됐고, 금방 그녀와 말을 붙일 수 있었다. 하리에는 레아를 퍽 좋아했다. 어느 날, 레아에게서 분장을 받던 하리에가 말했다.

“사제가 되러 제롬 신성 왕국으로 가신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거짓말했었지. 미안해요.

“네. 제가 영주민이라… 떠나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네요.”

“음~ 그렇죠. 죄송하지만… 허락해드리지 못할 것 같아요.”

“네?”

하리에가 방긋 웃었다. 그녀는 최근 기분이 너무너무 좋았다.

“죄송해요. 농담이었어요. 이렇게 참한 아가씨가 사제가 되러 가신다는데, 허락해드려야죠. 다만… 저를 조금만 더 도와주실 수 있나요?”

“어떻게요?”

“실은 제가 콘라드 왕국으로 가게 되었어요. 팔라스, 그이가 다녀오자 해서요.”

“어머나, 축하드려요. 맞선이 잘 풀리셨나 봐요. 어쩐지 요즘 웃음이 많아지셨다 했어요.”

“네. 제가 분에 넘치게 사랑스러운 사람을 만난 것 같아요. 레아 씨가 잘 꾸며준 덕분이기도 하고요. 한데 아시다시피 제가 데려온 시녀가 많지 않네요. 레아 씨가 따라와 주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어때요?”

하리에는 몇 달이면 돌아올 거라 말하며 십자교회에 추천장을 써주겠노라 확언했다. 임금도 올려주겠다는 말에, 레아는 하리에가 못 보던 목걸이를 차고 있는 걸 눈여겨보곤 말했다.

“좋아요. 다만 두 가지 부탁이 있어요.”

“뭔가요?”

“제가 여태껏 받은 임금이랑, 받을 임금을 데모스 마을에 있는 저희 부모님께 보내주세요. 그리고… 남은 한 가지 부탁은 나중에 드리는 거로. 괜찮을까요?”

“첫 번째는 어렵지 않은데, 나중에 무슨 부탁을 하시려고요?”

“음… 아마 제 말을 한 번만 믿어달라는 부탁이 될 거예요.”

하리에가 돌아보며 웃었다.

“번번이 뜻 모를 말씀을 하시네요. 좋아요. 저는 이미 레아 씨의 말을 많이 믿으니까요. 단지… 옷차림을 너무 수수하게만 차려주시는 건 불만이에요. 전 성직자가 아니랍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그러다 팔라스 님이 죽겠어요. 매번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시던걸요.”

하하! 웃음이 스치고, 그로부터 몇 주일이 흐른 지금, 레아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온다던 레브는 오지 않고, 마차는 도착해버렸다. 레아는 어쩔 도리가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마차가 덜컹, 멈추고, 무슨 일이냐 묻는 하리에에게 레아는 알아보겠다며 나왔다. 폴짝, 귀족의 높다란 마차에서 뛰어내린 그녀는 알아보기는커녕 고래고래 소리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잠시! 잠시만요!”

저 시녀가 갑자기 왜 저러나.

병사들의 의아한 시선을 뒤로한 그녀는 일곱 기사를 향해 다가가는 타디안 로페로를 지나쳐 돌다리 가운데서 멈췄다. 꼴깍, 침을 삼키곤 얼굴이 투구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외쳤다.

“바르트 경! 멈춰요! 당신은 오해하고 있어요!”

“바르트?”

타디안이 다가오며 공기가 싸하게 얼어붙었다. 바르트는 제 앞을 난데없이 가로막은 소녀를 바라보다가 투구를 거칠게 벗어 던졌다.

– 카앙!

“오.랜.만.이로군. 타디안.”

추레한 몰골과 광기에 사로잡힌 눈동자. 레아는 그가 저에게 조금의 관심도 없음을 알아차렸다.

“바르트! 네놈이 올 줄 알고 있었다!”

앞에선 일곱 기사가 동시에 검을 뽑아 들고, 뒤에선 타디안 로페로가 맞서 소리쳤다. 가운데서 크게 벌린 양팔이 무관심 속에 덜덜 떨려왔다. 레아는 악을 질렀다.

“바르트 경!! 당신의 아내가 오고 있어요! 마리사! 마리사예요!”

그제야 흠칫, 반응이 있었는데…

바르트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레아의 멱살을 턱, 한 손으로 붙잡아 타디안을 향해 던졌다.

“꺄악!”

“어엇!”

타디안이 탄 말이 휘청, 레아가 그의 품에 떨어지고, 타디안과 부닥친 레아는 제 겨드랑이 옆으로 피가 터지는 걸 보았다. 그새 바짝 다가와 피를 뒤집어쓴 바르트가 레아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네년이 내 아내를 어떻게 알지?”

그러나 희망이 보였다.

레아는 목줄이 움켜잡힌 채 컥컥거리며 말했다. 굳이 왕자를 들먹일 것 없이 저 멀리를 손가락질하면서.

“저기… 계시니까요.”

“레아!!”

찬란하게 타오르는 오러블레이드.

미친 듯이 달려오는 레브의 뒤로 마리사와 장성한 두 아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바르트는 무엇에 먼저 놀라야 할지, 갈피를 잃어버렸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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