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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17

315. 소꿉 ep – 마리사

“바르트! 당장 물러서시오! 레아, 괜찮아?”

“여보!”

“적이다! 전원 발검!!”

호위기사 대장인 타디안 로페로가 낙마한 가운데, 돌다리에서 소동이 일었다.

하리에 가이단 영애와 팔라스 테르탄 공자를 호위하던 병사, 기사들이 전투태세를 갖추는 한편, 습격을 가한 전(前) 근위기사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이 나타났다.

하지만 너무… 어린데? 들은 것과 달리 체구도 작고.

그래도 일단 번쩍이는 오러블레이드. 누군지는 몰라도 대륙 최강의 기사가 틀림없는 소년 앞에서 근위기사들은 행동을 삼갔다. 바르트의 지시를 기다리는데, 저런, 바르트는 그들보다도 더 당황해 있었다.

마리사. 바르트의 아내가 피칠갑한 남편 앞에서 눈물을 떨궜다.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는 그녀에게 바르트도 쉬이 말을 걸지 못했다.

“살아… 살아 있었네요. 정말로.”

“…마리사.”

“왜. 어째서 저희를 찾아오지 않은 거예요. 살아 있었으면서.”

마리사는 얼굴을 감싸며 울음을 터뜨렸다. 터져 나온 건, 기쁨이나 슬픔이라기보단 분노에 가까웠다.

십여 년 전, 평소와 같이 출근해 영영 돌아오지 않은 남편이었다.

혼란에 빠진 수도, 루티나.

마리사는 에릭 드 예리엘 왕자가 일으킨 난리통 속에서 첫째의 손을 부여잡고, 둘째는 업은 채 남편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그리고 왕성에 보란 듯이 남아있는 남편의 동료 근위기사들로부터 그이가 레안 드 예리엘 왕자님과 레리아나 공주님을 데리고 달아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숨이 턱 막힌 그녀는 원망을 담아

“당신들은요?”

묻고 말았다. 근위기사들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명예를 저버린 자들.

하지만 마리사는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에릭 왕자와 테르탄 공작이라는 두 거물이 일으킨 폭풍 속에서 근위기사들도 쓸려가는 부평초에 불과했다. 마리사는 그네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도 가정이 있으니까.

지켜야 할 가족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내 남편은… 되려 그이의 선택이 원망스러웠다. 그깟 명예와 충성심이 뭐라고 폭풍에 맞섰는가. 아이들마저 저버리고.

테르탄 공작과 에릭 왕자를 따르는 군대가 우글거리는 길거리에서 마리사는 우두망찰했다.

남편은 반역자.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근위기사들의 조언도 그것이었다. 여긴 위험하다고. 갈 곳이 없는 그녀에게 첫째가 물어보았다.

“아빠가 나쁜 짓 한 거야?”

“……아니. 네 아빠는… 명예를 드높였단다. 가자꾸나. 우리가 아빠를 찾아가야지.”

“와아! 역시!”

두 아들은 철없이 웃었다. 마리사는 죽었을지 살았을지 모를 남편을 찾아, 홀몸으로 두 아들을 데리고 머나먼 여정에 올랐다.

그리고 십 년이 흐른 지금, 분명 죽었으리라 생각한 남편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피칠갑한 채, 여전히 명예, 명예, 명예! 그깟 명예가 대체 뭐라고! 아직도 살아서 칼을 갈고 있었다.

마리사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원망스러운 남편을 쏘아보았다. 단 한 줌의 살도 없이 초췌해진 남편, 바르트는 고개와 검을 떨군 채 입을 열었다.

“미안하오.”

“당신은 정말 나쁜… 크흑.”

남편을 만나서 쏟아낼 말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어찌 저리 말랐을까. 튀어나온 광대뼈가 마리사의 원망을 녹였다. 늘어놓으려던 독설이 온데간데없이 사그라들었다.

휘청이는 그녀를 받쳐준 건 훌쩍 자란 두 아들이었다. 둘째가 아버지를 거세게 노려보는 반면, 첫째는 복잡한 눈길이었다.

“아버지. 오랜만이에요.”

“…많이 컸구나.”

바르트를 똑 닮은 첫째는 장성한 청년이었다. 결혼했고, 아버지를 원망해왔다. 아버지를 만나거들랑 그도 쏘아붙이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러나 무의미하다. 분노한 동생과 달리, 그는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아버지가 되었으니까. 첫째가 잔잔하게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되셨어요. 제 아내가… 아 참. 저 작년에 결혼했어요. 제 아내가 어여쁜 공주님을 낳았거든요.”

“…”

“보러 가셔야지요, 아버지. 이러고 계실 거예요?”

“……”

그때였다. 철컥, 그새 대형을 갖춘 병사들이 전진해왔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테르탄 공작가의 기사들이 걸음을 디디고, 긴장이 내려앉았다. 가장 선두에 선 기사가 외쳤다.

“반역도당들이다! 당장 처단하라! 그리고 거기 계신 분은 벨리타 왕국의 포르테 백작님이 아닙니까? 여긴 무슨 일로 오셨는지 모르겠사오나 피아를 식별해주실 걸 부탁드립니다. 그놈들은 저희 왕국에 수배령이 내려진 놈들입니다.”

사실 아직껏 달려들지 못한 이유가 난데없이 등장한 소드마스터 때문이었다. 레아의 상태를 살피며

“안 다쳤어? 늦어서 미안해.”

사과하던 레브가 고개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레아는 목에 멍이 든 걸 제외하면 다친 곳이 없었다. 레브는 먼저 바르트를 향해 말했다.

“바르트. 검을 버리시오. 그리하면 내 이 상황을 수습해주리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포르테 백작은 아닌 듯한데…”

“난 레브 비자인이오. 그리고 댁과 당신의 동료들에게 명령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지. 아이론 경, 당신도 물러서시오.”

“…건방지구려. 우리에게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없소. 만약 있다면 카데릭 드 예리엘 전하뿐이니 말을 삼가시오, 젊은 소드마스터.”

바르트는 조금도 겁먹은 태도가 아니었다. 검을 들진 않으나 여전히 움켜쥐고 있길래 레브는 다소 화가 치밀었다.

여기가 이로타시 강이기 때문일 것이다. 레아와 자신이 이자의 손에 살해당했던 때가 떠올라 말이 곱게 나가질 않았다.

하지만 민서의 기억을 통하여 본 거지남매 시나리오.

바르트의 사정을 이해했고, 그에게 어떤 역할이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또, 레아가 어깨를 잡아줘서 레브는 차분하게 말할 수 있었다.

“레안 드 예리엘 왕자의 전언이오. 바르트, 당신은 앞으로 나를 도와 해야 할 일이 있소.”

바르트의 눈이 불타올랐다. 아내의 속이 타들어 가는 게 훤히 보였지만, 이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마치 왕자님이 살아계신 것처럼 말하는데… 그대의 검술 솜씨도 그 거짓말만큼이나 훌륭할지 궁금하구려.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왕자님을 들먹였다간 죽여버리겠소.”

…뭐? 이런 씨X놈이.

“레브.”

“…후. 알았어. 바르트, 당신은 내 말을 못 믿겠는가 보오. 좋소, 그럼 어디 두고 봅시다.”

레안이 휙, 등을 돌렸다. 테르탄 공작가의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팔라스 공자와 하리에 영애께선 나오시오! 내 그대들에게 할 말이 있고, 당신들의 오해를 풀어주겠소.”

“뭐야? 포르테 백작이 아니잖아? 당신은 누구십니까? 정체와 신분을 밝혀 주십시오.”

레브는 답답함을 느꼈다. (레브의 입장에서) 바로 전 회차였던 18번째 거지남매 시나리오에서는 레안이 제 이름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만사가 형통이었는데, 본인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턱턱 막혀왔다.

이게 신분이다. 레브로서는 무슨 짓을 해도 넘어설 수 없는 권위가 레안에겐 있었다. 그나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눈에 보이는 오러블레이드 덕분이라, 레브는 갑갑해 하며 말해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름을 다시 밝혔다.

“…난 레브 비자인이라 하오.”

돌다리가 썰렁해졌다.

그게 누군데? 넌 알아? 비자인이라는 귀족가가 있었어? ─ 기사들이 속닥거렸다. 레브는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짜증이 몰려들었고, 결국, 레아가 나섰다.

“잠시만요. 저 지나갈게요. 저예요. 하리에 가이단 님의 시녀. 몸수색을 왜 해욧! 방금 죽을 뻔했는데.”

여차저차, 레아가 삼엄한 경비를 뚫고 들어갔다. 그녀는 하리에의 마차를 향해 공손히 읍했다.

“하리에 님. 저예요.”

“무슨 일이죠? 이야기는 들었어요. 웬 놈들이 습격해왔고, 정체불명의 소드마스터께서 나타났다고. 혹시… 아는 사람인가요?”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레아는 조금은 씁쓸해하며 말했다.

“…네. 하리에 님. 전에 약속했던 부탁을 드릴 때가 된 것 같아요.”

“…”

문이 열렸다. 내부가 휘황찬란한 마차와 영애, 그 아래에 선 초라한 시녀가 대조적이다. 레아는 몸가짐을 바로 하였다.

“레브… 아니, 소드마스터께서 이 사태를 중재하고파 하셔요. 하리에 님과 팔라스 테르탄 님과 대화하길 원하시니… 절 믿으시나요? 잠시만 시간을 내어주세요.”

“하리에 님. 위험합니다.”

옆에서 초를 치는 기사가 있었다.

하리에를 호위하는 기사인데, 그는 갑작스러운 습격에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고작 맞선일 뿐인데, 팔라스 공자가 어째서 기사를 열다섯이나 데려왔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한 정체불명의 소드마스터.

라퍼트 테트탄 공작에게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당장 돌아가야 한다는 게 그의 견해였다. 물론, 결정권은 하리에에게 있었다.

“흐음…”

하리에는 레아를 빤히 쳐다보았다.

상황이 뭔가 미심쩍지만, 완벽하게 무해한 소녀. 그녀의 눈동자가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맑다. 하리에는 마차 밖으로 발을 내딛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팔라스 공자를 먼저 뵈어야겠어요. 팔라스! 잠깐 실례할게요.”

“어, 어? 하리에. 혼인하지 않은 숙녀께서 외간남자의 마차에 오르는 건 예법에 어긋…”

“제겐 외간남자가 아니거든요?”

최근 연인으로 발전했지만, 나이가 세 살이나 차이 나는 소년의 마차에 하리에가 당차게 올라섰다.

그들이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차 밖에 선 레아는 레브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저런 애가 아닌데… 꿈으로 본 그 사건 때문인지 레브의 태도가 날카로웠다. 조금 낯설 정도로. 보이는 행동도 옛날 같지 않았다.

내가 꿈으로 기억하는 것보다 레브는 훨씬 생생하게 과거를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어찌나 고생이 많았을지… 안타깝다.

‘앞으론 내가 많이 도와줘야지.’

레아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걱정스럽게 이쪽을 바라보는 레브를 향해 손을 크게 흔들어주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말고 웃어!’ ─ 손가락으로 보조개를 그리자 레브가 멋쩍게 미소 지었다. 그래. 잘했어. 레아가 제 머리를 쓰담쓰담, 그의 머리 대신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뭐 하세요?”

“앗!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리에와 팔라스를 모시고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데려온 거로 끝난 게 아니라, 이제야 시작이었다.

타디안 로페로가 죽었다.

화를 내야 할 쪽은 이쪽인데 막상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는 건 바르트와 근위기사들이고, 테르탄 공작가 측은 어이가 없었다.

팔라스는 비록 어리지만, 테르탄 공작가의 후계자로서 정당한 대가를 받아내야 할 책임이 있었다. 더군다나 타디안 로페로는 테르탄 공작가의 방계(傍系)인 로페로 백작가의 인물이었다.

또, 이쪽이 전력상 우위다.

하리에를 호위하는 기사 둘을 포함해 이쪽은 기사만 열여섯, 병사는 서른에 달했다. 반면 저쪽은 고작 일곱 명이다. 중재고 자시고… 그냥 잡아 족치면 되는걸 소드마스터가 끼어 일을 복잡하게 만든 셈이었다.

물론, 근위기사들의 생각은 완전히 반대였다. 소드마스터가 아니었으면 지금쯤은 죄다 죽여버렸을 터였다.

뼛속까지 박힌 원한. 여기에 뭔 오해가 있어서 중재하겠다는 건지… 바르트가 팔짱을 꼈다.

레브는 (쓸데없는) 제 이름을 재차 소개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저는 레브 비자인이라 합니다. 썩 유쾌하지 못한 만남입니다만, 이건 분명히 짚고 가겠습니다. 저는 당신들이 싸우지 않길 원하며, 당신들이 싸울 이유도 없다는 걸요.”

“…”

“…”

바르트는 침묵하고, 팔라스는 일단 경청했다. 그러나 이내 바르트가 언성을 높일 일이 생겼다.

“우선 레안 드 예리엘 왕자님은…”

“내 앞에서 왕자님을 언급했다간 가만 안 두겠다고 말했소이다!”

“살아계십니다.”

바르트가 폭발했다. 대번에 검을 뽑으려 하였는데…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팔라스와 하리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설마? 바르트의 표정이 멍해진 가운데, 레브가 이어 말했다.

“그러니 댁들이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테르탄 공작가 측은… 여긴 좀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먼저 하리에 양.”

“절 부르신 건가요?”

“어머니가 깨어나셨다는 소식을 듣지 않았습니까?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내가 치료해드렸소이다. 그건 여기, 마리사 아주머니께서 증언해 주실 거요. 아, 고마워할 필요는 없고… 대신 당신이 찬 목걸이를 제게 주시지요.”

“이거요? 왜요?”

하리에가 제 가슴골에 파묻힌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은과 구리가 섞여 은은한 핑크빛을 띠는 그 금목걸이 끝에는 검붉은 보석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르트는 온몸이 섬찟해졌다. 귀로 괴이한 울림이…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 들려왔다.

– 부숴라.

바르트는 터벅터벅, 뭐에 홀린 것처럼 접근하였고, 기사들이 “멈춰라!” 소리쳤다.

허나 멈추지 않는 바르트. 레브가 막아서자 검까지 뽑으려 드는 그를 뒤돌려 세운 건,

“여보! 제발요. 제가 빌게요.”

그가 사랑하는 아내, 마리사였다. 바르트의 눈빛이 되돌아왔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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