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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18

316. 소꿉 ep – 얼음물

바람이 이는 돌다리 위, 신파극이 흐르고, 문제의 보석은 쏟아지는 햇살에도 아랑곳없이 검붉은색으로 빛났다.

마리사 덕에 진정을 되찾아 한발 물러선 바르트는 보석을 뚫어지게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

“저것이 무엇입니까?”

글쎄? 레브는 민서의 표현을 인용해 답해주었다. 그는 간혹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사물을 파악했다.

“오리아스(Oriax)의 파편입니다.”

제가 말해놓고도 뜻 모를 소리.

하지만 바르트 쪽은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브는 하리에를 향해서 손을 벌리며 하던 말을 이어서 했다.

“주십시오. 그건 당신이 가져선 안 되는 물건입니다. 저는 그걸 얻기 위해 왔으며, 여기 있는 바르트 경 또한 사실은 그렇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전 조금도 모르겠네요.”

하리에가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품으로 당기는 폼을 보아하니 쉽사리 내주지 않을 듯하다. 예상했기에, 레브는 이번엔 하리에에게 들으라는 듯이 팔라스를 향해 말했다.

“저 목걸이는 팔라스 님께서 선물한 것이겠지요. 장담하건대, 팔라스 님께서는 저걸 라퍼트 테르탄 공작에게서 받으셨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팔라스는 놀란 표정이었다. 그러나 침착하게 반문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죠?”

“그냥 목걸이의 출처가 그렇다는 걸 밝혔을 뿐입니다. 그런데 공작님께서 저 목걸이를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시던가요? ‘목걸이를 가져다주되 혼약은 거절해라’라고요. 본인이 거절하면 그만인 걸 번거롭게 말입니다.”

“…!”

“그러니까 공자께서 저 목걸이를 ‘배달’하게 된 까닭이 있는 겁니다. 하리에 님과의 혼약을 없던 일로 하는 것까지 포함해서요. 하리에 님. 당신이 생각하시기에 이 혼약이 무산되면 본인은 어떻게 되실 것 같으십니까? 오른 왕국의 왕자들에게 시집가게 되지 않을까요?”

“…그럴 일은 없어요.”

하리에가 팔라스에게 바짝 붙으며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레브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은 그렇겠죠. 하리에 님께선 팔라스 님을 사랑하시니까요. 사실 그래서 일이 꼬였습니다. 원래라면 하리에 님께선 소득 없이 돌아가서 그 버러지 같은 두 왕자 중 하나를 택하셨어야 했겠지요. 그게 본디 그 목걸이가 가야 할 방향입니다.”

“…제 할아버지께서 저 목걸이를 오른 왕국의 왕자들에게 보내려고 절 이용하셨다는 말씀입니까?”

팔라스는 어이가 없다 못해 화가 난 표정이었다. 그래도 맥락을 잘 파악하였기에 레브는 음~ 간단하게 답했다.

“지금으로선 공작님의 의지가 아니었다고밖에 말씀드리지 못하겠군요. 자, 그러니 그 수상쩍은 목걸이 따위는 제게 넘겨주시지요. 공짜로 달라는 건 아니옵고, 제가 큰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싫어요.”

하리에가 말했다.

“이건 제 것이에요. 대가가 무엇이건 거래의 대상이 아니에요.”

“…당신들의 혼사가 성사되도록 도와드리죠. 이대로 공작에게 가 봤자 결혼을 허락받지 못할 겁니다. 애당초 그 목걸이를 들려 보낸 사람이 누군지를 생각하세요. 그리고… 정 못 주시겠다면 제가 힘으로 가져가겠습니다.”

오러를 돋우며 레브가 으스스하게 말했다. 그러나 기사를 겁내지 않는, 겁낼 이유조차 없는 영애, 하리에가 따졌다.

“이까짓 보석이 뭐라고 이러시는 거예요?”

“말씀드렸잖습니까. 오리아스의 파편이라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그 보석을 손에 넣으려고 이곳까지 왔습니다. 당신들과 싸우고 싶지도 않고요. 타디안 로페로가 죽은 건 유감입니다. 제가 조금 더 서둘렀어야 했는데…”

“오리아스가 뭐죠? 그리고 소드마스터께선 마치 이 모든 일이 벌어질 줄 알고 계셨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레브가 빙긋, 웃었다.

“레안 드 예리엘 왕자님께선 뭐든 알고 계시죠. 전 그분의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마리사 아주머니를 모셔온 것도, 당신의 어머니를 치료한 것 모두가 그분의 뜻입니다. 왕자님의 소식을 들으셨을 테지요?”

레브는 레안의 권위에 기대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본인의 이름은 아무 가치도 없으니까.

그 덕에 하리에는 경악했다. 전대미문의 소드마스터를 심부름꾼으로 둔 왕자라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르트와 그의 동료들은 몸을 떨었다. 레브는 그들이 놀란 만큼의 여유를 얻었다.

“레안 드 예리엘 왕자님께선 벨리타 왕국에서 미래를 설계하고 계십니다. 하리에 양, 당신과 팔라스 공자님이 맺어지길 바라시죠. 테르탄 공작가와의 악연은 잊으시겠답니다.”

“…”

“…말씀은 고마우나 얼버무리지 마세요. 오리아스가 뭔지 아직 설명해주지 않으셨어요.”

그러나 하리에는 치밀했다.

레브가 설명하기 곤란해서 은근슬쩍 넘기려던 걸 꼬집었고, 레브는 입술을 씹었다.

오리아스와 그의 사도인 에릭 드 예리엘 왕자, 그리고 왕자가 매혹한 라퍼트 테르탄 공작.

이 관계를 어떻게 증명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었다.

목걸이를 강제로 뺏어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게 레브의 결론이었다.

팔라스와 하리에가 무사히 이어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애톤 드 로그넘과 앨제어 드 로그넘, 그 오른 왕국의 쓰레기 왕자들이 멀든 빠르든 콘라드 왕국을 침략해올 터였다.

가이단 후작가와 테르탄 공작가가 맺어져 우리의 편이 되어주어야만 그들의 야욕을 막을 수 있는데, 즉, 레브가 하리에와 팔라스의 만남에 개입한 건 오리아스를 소멸시킬 방안을 획득하는 동시에 콘라드 왕국의 안정을 도모하는 일이었다.

그럼 이를 어찌해야 할까.

어차피 조만간 알게 될 것, 당장은 힘으로 찍어누르고 나중에 사과하면 괜찮지 않을까? 고민하는데, 레브의 눈에 우물쭈물 조용한 팔라스가 들어왔다. 레브는 그의 태도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쟨 왜 조용하지?

테르탄 공작가 입장에서는 저들이 쫓아낸 왕자, 레안 드 예리엘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껄끄러울 터였다. 라퍼트 테르탄 공작이야 매혹당해서 그랬다 쳐도, 테르탄 공작가의 사람들에게도 입장이란 게 있으니까.

당시 레안이 너무 어려서 국정을 운영할 능력이 부족했다는, 그래서 에릭 왕자를 지지했다는 거다.

그러니 팔라스도 반발하는 게 맞는데,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아니, 뭘 알고 있는 듯하다.

레브는 하리에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가만히, 팔라스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따라 하리에의 시선마저 따라오자 팔라스 테르탄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의 답변은 놀라운 것이었다.

“…오리아스가 뭔지 알아요. 저희 선조께서 아즈라 성인과 함께 봉인했다는 고대의 악신이에요.”

‘알고 있었어?’

놀라움에 뒤이어 깨달음이 연달아 닥쳐왔다. 하나는 오리아스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라퍼트 테르탄 공작! 그럼 그도 오리아스에 대해 알고 있었겠구나!’

테르탄 공작의 비참한 처지였다.

* * *

– 달그락.

한 근사한 서재.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몸을 묻은 노인이 얼음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주름이 자글자글, 차디찬 물을 머금기엔 연로한 나이였음에도.

그는 속에서 천불이 치민다는 듯 얼음을 삼키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노인의 뒤로 어느 젊은이가 다가와 말했다.

“할아버지께선 얼음물을 참 즐겨 드시는군요.”

금발 머리.

그러나 노인과 같은 갈색이 섞인 머리칼을 가진 청년이었다. 라퍼트 테르탄 공작은 답하지 않았다.

이젠 그러려니, 에릭 왕자는 제 외할아버지의 서재가 저의 것이라는 양 편안하게 돌아다녔다.

그는 아무 책이나 꺼내어 후루룩 훑어보기도, 탁자에 앉아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는데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은 왕궁보다 마음 편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에릭 드 예리엘이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했다.

“할아버지. 왕위 승계를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동생이 살아있더군요.”

“…”

그건 정말이지 혼잣말이나 다름없었다. 테르탄 공작은 그의 하수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이런, 질문이었는데 또 말씀이 없으시네요. 이리… 절 보시지요.”

다만, 손이 많이 가는 하수인이라 해야겠다. 에릭 왕자의 눈이 붉게 타오르고, 그제야 공작이 답했다.

“제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십니까. 왕자님, 바라옵건대 그릇된 신앙을 버리소서. 그건 위험하나이다.”

외손자에 대한 걱정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테르탄 공작은 제 선조가 아즈라 성인에게서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알고 있었다.

아즈라가 바다에 빠뜨린 보석.

그 보석을 찾는 임무가 주어졌고, 아즈라 성인과 헤어진 선조는 남부 바닷가에 남아 망망대해, 온 바닥을 헤집었다.

그 불가능한 임무는 아들에게, 또 그의 아들에게 대물림되어 작금의 테르탄 공작가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무려 수천 년이다.

까마득한 세월 속에서 그들은 저들이 무엇을 찾아 헤매는지 잊어버렸다. 보석은 보석인데, 뭐가 아즈라 성인이 말한 것인지 알 수 없어서 특이하게 생긴 바윗돌마저 보관해두기에 이르렀다.

해서 콘라드 왕국 남쪽 바닷가에 위치한 테르탄 공작령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다. 그만큼 보안이 취약하였는데, 공작가 사람들은 이젠 아즈라 성인이 부여한 임무를 전설로 치부하였다.

진주와 산호, 용연향, 불가사리나 조개 따위를 바다에서 캐어다 파는 공작가의 사업에 그럴싸한 스토리를 입혔다는 거다. 라퍼트 테르탄 공작, 본인도 그리 생각했었다.

공작령으로 휴양차 내려간 딸이 행방불명되고, 외손자인 에릭 왕자가 붉게 타오르는 눈으로 찾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에릭 드 예리엘이 실소했다. 그에게 조언 따윈 들리지도 않았다.

“아버지를 죽여주십시오. 동생이 살아 있으니 더는 기다릴 수 없겠습니다. 베르크 추기경이 마침 순례를 가고 없는 데다가, 저와 엘리카 드 이사도라와의 혼약이 결정되었으니 시기도 적절하다 생각됩니다.”

“저더러 왕을 죽여달라는 말씀입니까? 그럴 수는 없…”

“매번 번거롭군요.”

에릭 왕자가 고개를 숙여 제 할애비를 빤히 바라보았다.

매혹이라는 능력의 한계였다.

사람을 조종하는 게 아니라 호감을 끌어내는 능력이어서 무리하거나 비상식적인 요구엔 불응하는 경우가 잦았다. 더군다나 공작은 제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고 있어서 신력 소모가 극심했다.

매혹을 걸어도 엄청난 속도로 벗어나 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기에, 에릭 드 예리엘의 원망스럽도록 검기만 한 눈동자가 불타올랐다. 신력을 들이부은 다음에야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아버지는 그렇게 처리하기로 하고… 레안과 레리아나 그것들이 문제인데…”

흐음.

고민하던 에릭 드 예리엘은 일을 크게 벌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최근 본인의 정통성을 확보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엘리카 드 이사도라.

아이셀 왕국 공주와의 혼약이 성사됐다. 벨리타 왕국과 한판 벌이려는 아이셀 왕국은 에릭의 요구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

자칫하면 서쪽과 남쪽, 양방향에서 공격받게 된다. 아이셀 왕국 내부적으로 어떤 논의를 거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건 좋은 결과여서 에릭은 만족하였다.

그는 당면한 문제, 명줄 질기게도 살아남은 동생들을 어찌 처리할지 궁리하면서 일개 하수인으로 전락한 외할아버지의 서재를 나섰다. 인사 따위는 당연히 하지 않았다.

서재에 홀로 남겨진 테르탄 공작.

한때 인덕으로 뭇 사람의 존경을 받던 거목은 자신의 잃어버린 딸을 떠올리며 눈물지었다.

그리고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미치도록 소중한 외손자, 에릭을 걱정하였다. 그의 몸속에는 피 대신 오리아스의 신력이 흐르고 있었다.

차라리 누가 날 죽여줬으면.

공작이 벌컥, 얼음을 삼키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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