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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19

317. 소꿉 ep – 변주

팔라스와 하리에는 돌아갔다.

레브는 하리에의 어머니, 시에라 가이단이 깨어났으니 그분께 먼저 인사드리는 게 좋지 않겠느냐 제안했고, 실랑이 끝에 그들은 말머리를 돌렸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썩 깔끔하지만은 못했다.

타디안 로페로의 시신이 돌다리에 싸늘히 쓰러져 있었기에 팔라스를 호위하는 기사들을 설득, 위압할 수밖에 없었다.

팔라스의 용인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타디안을 죽인 바르트와 중간에 훼방을 놓은 소드마스터를 기억할 것이었다.

그래서 돌려보냈다.

괜한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저들이 시에라 가이단 후작 부인을 뵙고 콘라드 왕국으로 돌아왔을 즈음엔 모든 일이 끝나 있으리라.

타디안의 시신은 병사들이 로페로 백작가로 운구해 가고, 레브는 팔라스와 하리에가 오른 왕국으로 돌아간 관문 앞 마을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잘 풀렸다.

레브의 손에는 하리에에게서 건네받은 목걸이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오리아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도 목걸이를 내주고 싶지 않아 했는데, 곁에서 레아가 무어라 잘 말해주었다. 하리에는 끝내 이렇게 말했다.

– “이 목걸이는 제 어머니를 치료해준 값이라 생각하겠어요. 그리고 당신이 공작님의 신변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 주겠노라 레안 왕자님의 이름을 걸고 자신하셨으니 믿고 맡기겠어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만약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아주 곤란해지실 거예요. 제가, 그렇게 만들어드리죠.”

어이구, 살벌해라.

레브는 걱정하지 마시라, 답하였고 관문이 닫히는 걸 확인하고서야 뒤돌아섰다. 그러나 아직 위기가 남아 있었다.

하리에를 배웅 나온 레아의 눈이 뾰족하다. 그녀는 위대하신 소드마스터께 빈 주먹을 흔들어 위협했다.

“너 죽을래? 시간 맞춰 온다더니,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미안해. 그런데 진짜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 아! 아! 때리지 마. 미안하다니깐. 악!”

레브는 레아의 솜방망이 주먹에 된통 두들겨 맞았다. 그러나 잠시 후 레아는

“아휴. 이런 거였으면 진작 말을 하지. 귀여워라.”

새근새근 잠든 갓난아이 앞에서 레브를 용서하였다.

관문 앞 마을 숙소 침대에 불과 며칠 전에 순산한 아가씨가 누워 있었다. 그녀는 바르트의 첫째 아들의 아내였다.

임부(妊婦, 아이를 밴 여자)를 데려오는 여정이 녹록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을 맞추기엔 심히 느려터진 여정. 레브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는데, 예정보다 훨씬 일찍 산통이 왔을 땐 (물론 축복해야 할 일이지만) 눈앞이 캄캄했었다.

결국, 여기서 이틀을 머물렀다.

“정말 예뻐요. 이름은 지었나요?”

정말이지 큰일 날 뻔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레아는 산모의 허락을 받아 갓난이의 뽀얀 뺨을 톡톡, 매만지기에 정신이 팔렸다.

아이는 잠결에 입을 씰룩이고, 레브는 안심하였다. 그 곁에는 바르트가 앉아 저도 모르게 생긴 손녀딸을 착잡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레브를 불렀다.

“…잠시 이야기 좀 하시죠.”

레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 – 콘라드 왕국 간 무역로에 위치한 마을이기에 숙소는 상인들로 붐볐다.

저렴한 숙소여서 빨래마저 걸려 있는 복도를 바르트가 앞서가고 레브는 뒤따르는데, 그의 작아진 뒷모습을 본 레브는 딱 이로타시 강에서 멀어진 만큼 그를 용서하였다.

복수는 한 번만.

그러나 그 한 번을 반드시 해내고 말던 레브가, 바르트나 세사르나 그에겐 다를 것이 없음에도 분노를 가라앉힌 것이었다. 아이 때문이라고… 레브는 생각했다.

이내 마주 앉은 자리. 떨떠름함과 어색함이 감도는 가운데 바르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첫마디가 아내와 아들들을 데려와 줘서 고맙다는, 그런 감사의 인사는 아니었다.

“왕자님께선 어디 계십니까.”

“…”

지독하리만치 충성스러운 사람이다. 하지만 레브는 이게 단순한 충성심이 아닌 고집. 오기와 악으로 살아온 결과임을 알아차렸다. 그의 검술이 그러하듯이.

레브는 느지막이 답했다.

“벨리타 왕국에 계십니다.”

“…그렇군요.”

그것을 마지막으로 침묵이 흘렀다. 바르트는 뭐가 그리 어려운지 말을 못 하다가 “잘 계십니까?” 간신히 물어보았다. 그 무게감이 레브에게 전염되었다.

“잘 계십니다. 레리아나 공주님도요. 술이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됐습니다.”

“…”

“…”

다시 말문이 트인 건 레브와 바르트가 서로 다른 방향을 한참 응시한 다음이었다. 바르트는 코로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왕자님께서 시키신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네.”

“무엇입니까. 그 목걸이와 관련이 있는 일입니까, 아니면…”

그분이 돌아오실 토대를 닦는 일입니까. ─ 레브는 바르트가 생략한 뒷말을 짐작하며 보석이 달린 목걸이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둘 답니다.”

바르트가 흠칫하고, 레브가 말을 이었다.

“레안 왕자님께서는 이걸 에릭 드 예리엘 왕자 앞에서 파괴하라 하셨습니다. 오리아스의 파편이라 하였지만, 사실 저도 이게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분명한 건 이 보석과 에릭 왕자가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라는 겁니다. 왕자님께서는 당신을 데려가야 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레브는 말하면서 ‘이거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바르트가 레안의 말이라면 껌벅 따르리라 생각한 것인데, 돌아온 건

“…제가 뭐라고 찾으셨습니까.”

회한이 어린 말투였다.

“왕자님과 공주님을 지키지 못했고 살아계심에도 허송세월한 저를요.”

“그거야…”

“저는 그만두려 합니다. 아내와 아들들을 데리고 떠나렵니다. 왕자님껜 당신과 같은 사람이 있으니 제가 필요치 않을 겁니다.”

…뭐라고? 레브는 당황했다.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데려와서 팔라스를 습격하려던 걸 막은 것까진 좋으나, 그 불똥이 이런 식으로 튀어가는 모양이었다.

왜 이러는지 이해는 된다. 복수를 위해 평생을 바쳤는데 정작 왕자는 살아있고, 여태껏 해온 일이 모조리 뻘짓이었음을 알아챈 순간 제가 저버린 아내와 아들들이 나타났다.

하다못해 아내와 아들들을 데려온 주체가 레안이었으면 그나마 나았을 터였다. 그러나 찾아온 건 새파랗게 젊은 소드마스터. 그것도 왕자의 심부름꾼이란다.

레브는 바르트가 받았을 허탈함을 감히 추측할 수 없었다. 허나 그가 떠나게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 업적 : 마수 사냥 – ‘1’, 몸에 미약하게 마나가 깃듭니다.]

오리아스를 잡을 힘이 모자라다.

지난 회차에서 녀석의 목을 베는 데만 2개의 카운트를 소모하였고, 바르트는 오리아스를 견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인물이었다.

레안의 말로는 에릭 왕자가 왕위에 오르는 순간 소드마스터가 될 사람이라니… 절대 떠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레브는 상냥하게 구슬려보았다.

“사람 일이라는 게 마음처럼 되는 것만은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왕자님이 살아계신 걸 몰라서 그리된 것이지…”

레안을 팔아도 보았다.

“왕자님께서는 당신은 물론이고 갈렌, 아이론, 바린, 닐, 루디, 웬디, 조엔, 루도… 근위기사님들을 모두 기억하십니다. 그러니…”

하지만 바르트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레브는 이 지독한 고집쟁이를 한참 설득하였음에도 변화가 없자 비아냥거리기까지 하고 말았다.

그제야 반응이 있었지만,

“비겁하시군요.”

“…뭐라고요?”

“비겁하다 했습니다. 건방지기까지 하고요. 당신이 뭐라고 제 쓸모를 스스로 결정짓습니까? 주군의 검이자 도구로 사용돼야 할 자가 감히. 당신은 기사가 아닙니까?”

그조차도 옳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복수를 위해, 손에 무고한 피를 묻힌 바르트는 저를 기사라 생각하지 않았다. 바르트가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일어서자 레브는 아차, 다급하게 말했다.

“그, 그럼 동료들은요? 당신과 평생을 함께해온 동료를 버리고 혼자 떠나겠다는 겁니까! 그, 그래. 그 검! 당신의 검에 대해 들었소이다. 죽은 동료들의 검을 녹여 만든 것이라고요.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할 생각입니까!”

“…”

바르트는 답하지 않았다.

검끝을 제외하면 이리저리 뭉개져 성한 데가 없는 검을 으스러지게 움켜쥐었다가… 그냥 걸어가 버렸다. 레브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 * *

그래도- 레아가 있어 다행이었다.

그녀는 레브가 끙끙, 수심에 잠겨 있을 때 그의 말동무이자 상담사가 되어주었다. 비록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주진 못하였지만,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마지막에 레아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나도 일단 가서 이야기해보긴 할 건데, 바르트 아저씨를 네가 설득하지 못한 데엔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인상 쓰지 말고 웃어.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면 되는 거야.”

덕분에 레브는 일손과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퍼뜩 정신 차려 여섯 근위기사 중 다섯을 설득하였고(한 명은 가족을 찾아 떠났다), 앞으로의 계획을 수립했다. 레브는 수도 루티나를 향해 떠났다.

베르크 추기경이 남몰래 운영하는 그라니아 보육원에 가기 위함이었는데, 순례를 나간 베르크 추기경이 돌아오길 기다릴 겸, 레아를 사제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 소꿉친구 레나의 진명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신성}이 부여됩니다. ]

그런데 여기서 하소연을 조금 해야겠다. 이 게임이… 아니, 주신이 얼마나 치사한지.

아니, 이보세요. 신이시여. 민서도 없고 제가 레안한테 전해 듣기만 한 거라 잘은 모르옵니다만, 레아한테 {신성}이란 걸 주셨다면서요.

근데 왜 변한 게 없습니까?

기왕 주실 거, 짜잔! 레아가 바로 신력을 부릴 수 있게 해주셨으면 제가 절이라도 올리지 않았겠습니까. 꼭 누구한테 신력을 나눠 받아야만 신력을 부릴 수 있게 하셨어야겠냐 말입니다.

물론 레아의 꿈이 사제가 되는 것이니 어딜 다녀오긴 다녀와야 했겠지만요. 기왕이면 좀 편하게… “악!”

– 꽁!

하소연하던 레브가 레아에게 꿀밤을 얻어맞았다. 루티나로 가는 길에 장만한 마차 안에서였다.

레아는 검지를 똑 부러지게 치켜세우며 말했다.

“건방진 소리 하지 마. 주신께 뭘 바라지도 말고.”

“아, 아니… 그래도.”

“어허. 그분은 일개 피조물을 위해 존재하지 않으셔. 굳이 따지자면 우리가 신을 위해 존재하는 거야.”

“…왜?”

“그분이 만든 세상에 변주를 넣기 위해서.”

레아의 눈이 반짝, 빛났다. 꿈의 영향인지 그녀는 여전히 맑은 소녀인 동시에 산전수전 다 겪은 사제의 깨달음을 품고 있었다.

레브는 조금 심술이 났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내심 그녀가 제 말에 동조해 주신을 욕해줬으면 했던 것이다.

언제나 신이 우선인 레아. 레브는 한숨을 내쉬며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래… 네 말이 맞겠지.”

“음?”

레아가 갸웃하며 고개를 레브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그녀는 제 소꿉친구가 삐져도 단단히 삐졌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다.

빙긋 미소 지으며 레아는 레브의 입에 갑작스럽게 입을 맞췄다. 깜짝 놀란 레브와, 끝내고선 막상 얼굴을 붉히는 레아. 그녀가 말했다.

“이게 변주(變奏)고, 자유 의지지. 거대한 선택지만이 전부가 아니야. 어때. 이래도 신이 원망스러워?”

“…아니. 전혀. 그런데…… 레아.”

“왜?”

“너가 먼저 시작한 거다.”

“엥? 그게 무슨 말이… 꺄.. 시, 싫어. 난 아직… 흐읍.”

행여나 마차를 호위하며 따라오는 근위기사들에게 들릴라, 레아가 신음을 억누르는 가운데 마차는 삐걱, 한겨울 폭설을 헤치며 루티나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그러나 레아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레브가 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으니…

해가 넘어가기 직전의 겨울. 갓 루티나에 도착해 {추적술}을 돌려본 레브는 추위가 아닌 공포로 몸이 얼어붙었다.

카데릭 드 예리엘.

내년 겨울 즈음에나 죽었어야 할 왕의 위치가 잡히지 않았다. 베르크 추기경이 순례를 떠난 사이에, 에릭 왕자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거의 일 년이나 빠르게.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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