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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2

32화 어둠굴 (2)

32화 어둠굴 (2)

세르지오와 도박 대결을 벌이겠다고 결정한 뒤, 나의 발목을 잡은 가장 큰 문제는 판돈이었다.

도박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물론 쿠가 반지를 팔아서 가져다준 금화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판돈을 확보해야 할까, 고민하던 내게 우연히 세실이 해답을 줬다.

‘강철손 모건.’

그는 카인 일행을 세르지오를 통해 귀족에게 팔려고 했다.

그렇다면 내게도 세르지오가 원할 만한 자산이 있다.

“그래서, 얼마를 쳐줄 건데. 내 몸뚱이에.”

나의 당돌한 물음에 세르지오는 방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웃었다.

내 어깨에 손을 얹은 쿠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다는 듯 쿠에게 씩 웃어주었다.

“좋군. 아주 좋아. 이 정도의 대담함이라면 나잇살만 처먹은 속물들보다는 훨씬 재미있겠어.”

세르지오가 큭큭 웃었다.

그러고는 옆의 부하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잠시 후 내 앞에는 상당량의 칩이 올려졌다.

“금화 열다섯 개 분량의 칩이다. 부족하지 않은 액수라고 생각하는데, 네 생각은 어떻지?”

금화 열다섯 개면 충분히 큰 금액이다.

나의 예상을 조금 넘어설 만큼.

“좋아. 이 정도면.”

“그러면 바로 룰을 설명하지.”

세르지오의 주 종목은 ‘트라이다이스(Tri-dice)’.

세 개의 주사위가 든 나무 상자를 흔들어 테이블에 올린 후, 뚜껑을 열고 나온 주사위 눈의 합이 큰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합산 결과가 동률일 경우, 같은 눈을 많이 가진 쪽이 이긴다. 같은 눈의 수가 동률일 경우, 그 눈의 수가 높은 쪽이 이긴다. 같은 눈이 없는 경우는 가장 높은 눈을 가진 쪽이 이긴다.”

예를 들어 눈의 합산이 양측 다 12일 경우.

1, 5, 6보다는 3, 3, 6이.

3, 3, 6보다는 2, 5, 5가.

2, 5, 5보다는 4, 4, 4가 더 강하다는 뜻.

그리고 같은 눈이 없는 경우는 1, 5, 6이 3, 4, 5를 이긴다는 뜻이다.

즉, 이 게임에서는 6, 6, 6이 가장 강한 수다.

그러나 다른 수에는 모두 패배하지만, 오직 6, 6, 6만은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예외가 존재한다.

“이해했나? 꼬마.”

나는 그저 웃었다.

친절한 척 설명하고 있지만 어차피 사기도박.

세르지오는 자신이 원할 때 언제든지 6, 6, 6을 낼 수 있다.

***

세르지오가 6, 6, 6을 낼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저 주사위에는 쇠가 들어있고, 세르지오는 자신의 구두코 안에 부착된 자석으로 주사위를 조종한다.

그 속임수를 감추기 위해 바닥에 닿을 정도의 커다란 테이블보가 깔린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이겼군. 꼬마.”

우리는 비슷하게 승리와 패배를 나눴다.

세르지오는 초반부터 트릭을 쓰지는 않는다. 그가 트릭을 쓰는 것은 결정적인 상황일 때뿐이다.

세르지오는 게임의 흐름을 관망하며 조금씩 판돈을 올렸다. 그렇게 한동안 게임이 이어졌고, 어느 순간 내가 말했다.

“언제까지 소꿉장난할 셈이지?”

세르지오의 손이 멈췄다.

“쓸데없이 간 보지 말고 크게 가지, 세르지오.”

나는 내가 가진 칩 전부를 테이블 가운데로 밀었다.

세르지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재미있는 꼬마인 줄 알았더니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군. 잊은 거냐? 칩을 모두 잃으면 너는 네 몸뚱이의 소유권을 빼앗기는 거다.”

“뱀이 개구리 걱정을 하는 건가? 혓바닥 놀리지 말고 결정이나 해.”

세르지오의 가느다란 눈썹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그 아래의 누런 눈동자가 차분함 속에 치밀함을 숨기고서 나를 훑어봤다.

“승리할 거라는 확신이라도 있는 거냐? 꼬마.”

“확신? 그런 게 가능하다면 꼭 방법을 알고 싶은데.”

나는 여유 있게 웃으며 세르지오를 마주 봤다.

세르지오도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웃었다.

“좋아. 받아주지.”

그가 나와 동일한 양의 칩을 테이블 가운데로 밀었고, 게임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주사위를 굴릴 차례다.

데구르르르르······.

나는 적당히 흔든 상자를 테이블에 올렸고, 세르지오 측의 입회인이 뚜껑을 열었다.

나온 주사위 눈은 5, 3, 6.

“호오? 제법 높은 수가 나왔군. 하지만 안심하지는 말거라. 나는 중요한 게임에서는 늘 운이 좋은 편이니까.”

세르지오가 흔든 상자가 테이블에 내려졌다.

내 쪽의 입회인인 쿠는 상자를 열기 전 잠시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끄응, 한숨을 뱉으며 뚜껑을 열었다.

나온 주사위 눈은 6, 6, 6.

“크하하하하! 이거 정말 운이 좋군!”

세르지오가 테이블 중앙의 모든 칩을 쓸어 담았다. 이어 만족한 얼굴로 부하들에게 눈짓했다.

“어이. 멈춰.”

그들이 내게 접근하는 것을 쿠가 막았다.

“더 다가오면 죽는다.”

쿠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잔뜩 날이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원치 않는 일이 터지기 전에 내가 말했다.

“한 게임 더.”

“뭐라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세르지오에게 다시 말했다.

“한 게임 더. 이번이 마지막이다.”

나는 품에서 동전 주머니를 꺼냈다. 쿠가 쾨르다시에 기사단의 반지를 처분하고 건넸던 주머니.

그 안에서 금화 다섯 개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칩 같은 건 필요 없어. 이번에는 실물로 걸지.”

“고작 금화 다섯 개로?”

세르지오가 킬킬대며 웃었다. 이제 그의 얼굴에서 친절의 가면 따위는 사라졌다.

“당연히 아니지. 이 금화는 그저 덤일 뿐이야.”

“덤이라고?”

나는 피식,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세르지오의 눈이 지금까지 없었던 강렬한 욕망으로 뒤흔들렸다.

내 옆에는 세실이 서 있었다. 세실의 손에는 모자가 들려 있었고, 줄곧 모자에 가려 있던 세실의 아름다운 얼굴이 세르지오를 똑바로 바라봤다.

“금화 100개. 인정해 준다면 이 금화 다섯 개는 요구를 받아들여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제공하지.”

“금발 꼬마!”

쿠가 소리쳤다.

나는 쿠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실과 달리 쿠에게는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다.

“여기서 끝내도록 해라. 잃은 돈은 어떻게든 내가 마련해 주마.”

역시나 쿠는 내가 기대했던 말을 해주었다.

세르지오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조, 좋아! 그 아이의 가치를 금화 100개로 인정하지! 거기에 더해 금화 다섯 개의 덤도 받지 않겠다!”

예상대로의 반응이었다.

세실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설령 금화 100개의 가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세르지오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유는 간단했다. 세르지오는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없으니까.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때려 부술 것 같은 쿠의 손을 세실이 붙잡았다. 쿠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화가 상당히 많이 난 모습이었다.

“쿠. 내가 이겼을 때 저들이 발뺌하지 못하도록 도와줘요.”

“금발 꼬마. 너······!”

나는 바로 세르지오에게 말했다.

“칩은 이제 치워. 아까도 말했듯이 실물로만 판돈을 받겠어.”

“꼬마야. 100개나 되는 금화를 당장 준비할 수는 없다.”

알고 있다. 이 역시도 세실이 알아 온 정보 중 하나니까.

“닥쳐 세르지오. 나는 이 한 게임에 우리들의 인생을 걸었어. 당장 금화를 준비할 수 없으면 현물이라도 가져와.”

“현물?”

“남쪽의 상점 거리에 네 이름을 가진 잡화점이 있더군. 그 안의 상품들도 제법 값어치가 있을 테고.”

세르지오가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봤다.

그러나 결국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다. 부족한 금화는 잡화점의 소유권으로 채우기로 하지.”

***

세실은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데미안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

믿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데미안의 말대로 됐어.’

그럼에도 세실은 마음 한구석에서 두려움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귀족에게 팔려 갈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세실은 데미안, 테오, 족제비, 덩치, 그리고 쿠와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려웠다.

“······.”

세실은 세르지오가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을 봤다. 이어 쿠를 포함한 두 입회인이 계약 내용을 확인하고, 공증했다. 데미안이 이기면 덩치의 잡화점을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진다면?

돌연 공포감이 현실로 다가왔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세실은 자리에 주저앉지 않기 위해 다리에 억지로 힘을 줘야 했다.

그때 누군가가 세실의 손을 잡았다.

“걱정하지 마. 나는 지지 않아.”

데미안이었다. 그의 푸른 눈은 아름다웠다. 카인의 대담하면서도 차가운 눈과는 다른, 따스하고 상냥한 눈동자.

세실은 데미안을 보며 미소 지었다.

몸의 떨림이 사라졌다.

***

“이번에는 내가 먼저 굴릴 차례로구나. 꼬마야.”

세르지오는 여유 가득한 얼굴로 눈앞의 금발 소년을 봤다.

‘무슨 배짱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

세르지오는 상자를 조금 오랫동안 흔든 뒤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마지막 게임이니 느긋하게 주사위 돌아가는 소리를 즐기고 싶었을 뿐.

결과는 6, 6, 6.

“크하하하하하! 이렇게 좋은 수가 연달아 나오다니! 오늘은 정말로 운이 좋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세르지오는 방심하지 않았다. 고작 1/216의 확률에 불과하지만, 이 게임에는 오직 6, 6, 6만을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예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자신은 상대의 주사위에 간섭할 수 있으니까. 그것을 위해 상자 안의 주사위는 구(球)의 형태에 가까운 육면체로 만들어져 있다.

“시작하지 않을 거냐?”

세르지오의 말에 금발 소년이 상자를 가져갔다. 그러고는 한 차례 크게 허공에서 흔든 뒤 테이블에 내려놨다. 세르지오는 구두코를 움직였다. 한두 개의 주사위만 6으로 바꾸면 된다. 워낙 숙련되어 있기에 실수할 가능성은 없었다.

조작을 마친 세르지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런 큰 게임의 마지막 순간은 높은 곳에서 봐야겠지. 패배에 일그러진 상대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쾌락에 젖는 일은 그의 오랜 습관이기도 했다.

‘······응?’

그런데 금발 소년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다. 소년은 상자를 향해 한쪽 팔을 뻗고 있었다. 뭐, 승리를 향한 부질없는 염원 같은 것일 테지.

입회인이 상자에 손을 가져갔다. 세르지오는 결과를 보기도 전에 웃음을 터뜨렸다. 금발 소년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금화 20개짜리. 게다가 저 인형 같은 얼굴의 흑발은 금화 70개, 아니 어쩌면 정말로 금화 100개에 팔릴지도 모르는 최상품이다.

“세르지오.”

입회인의 목소리가 세르지오의 즐거운 상상을 깨웠다. 세르지오는 이렇듯 자신을 환희의 세계에서 끌어내는 상황을 극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싫은 내색을 할 수는 없다. 저자는 페르디나 평의회 의장의 오른팔인 ‘황금의 검 벨레트’니까.

“네가 졌다. 세르지오.”

세르지오의 귀에 벨레트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세르지오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상자 안을 노려봤다.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1, 1, 1.

자신의 수를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예외가 그곳에 있었다.

***

비명을 지르며 난동을 부리던 세르지오는 벨레트에게 제압됐다.

황금의 검 벨레트.

소설에서 그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그를 내가 알아본 이유는, 그가 지닌 특유의 쉰 목소리 때문이었다.

‘하지만 벨레트라니.’

평의회 의장인 ‘용장 루카스’의 오른팔이자, 페르디나 최강의 용병단 ‘황금의 검’의 단장인 벨레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나는 상당히 의외였다.

하지만 기회는 왔을 때 붙잡아야 하는 법.

나는 세르지오의 사기도박을 벨레트에게 고발했다. 증거는 충분했다. 세르지오의 구두와 주사위를 대면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거기에 더해 세실이 알아 온 세르지오의 모든 비리도 공개했다. 그 결과로 세르지오는 밧줄에 포박되어 벨레트에게 연행됐다.

“사, 살려주십시오 벨레트 단장! 제발!”

어둠굴을 떠나기 전, 벨레트가 내게 말했다. 재미있는 경기였다고. 그리고 내가 받아야 할 현물과 금화는 자신이 책임지고 받아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황소머리 여관으로 돌아왔다. 물론 오는 내내 쿠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여관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테오 일행은 나와 세실의 웃는 얼굴을 보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덩치가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고,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덩치는 조금 울었던 것 같다.

이튿날, 쿠는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어서 일어나라! 꼬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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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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