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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20

318. 소꿉 ep – 그라니아 보육원

/ 그라니아 보육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 라는 글귀가 적힌 로비에 젊은 청년이 앉아 있었다.

아직 스물도 안 됐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청년은 이 보육원의 사감 선생답게 진중한 태도로 생활수칙을 읽어나갔다.

/ 제1장 총칙

제1조. 이 수칙은 원생이 질서 있는 공동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준수해야 할 사항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호실 배정 및 학급 배정은 무작위로 이루어지며, 배정된 호실 및 학급은 원생이 임의로 변경할 수 없다.

제3조. 원생의 생활 태도 및 수업 태도에 따라 해당 원생을 감독하는 사감(舍監)은 호실 및 학급 변경을 지시할 수 있다. /

이미 수도 없이 읽은 내용이지만 그는 꼼꼼하게, 반복해서 읽었다.

그라니아 보육원이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젊고, 체계가 잡히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정식’ 사제님들이 들러서 일을 봐주시곤 했으나 올해부터는 홀로서기에 돌입했다.

돈이 없어서였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몇 년 이내로 돈줄이 끊기기 때문이란다.

베르크 님께서는 이를 대비하고자 올해 초부터 보육원이 자급자족할 채비를 갖춰나갔다.

십자교회의 사제님을 불러 일을 맡기려면 명목상이나마 기부를 해야 하니 이를 아끼고자 원생들에게 보육원의 직책을 대거 이양하였고, 보육원이 세워진 지도 벌써 11년, 초창기에 입원해 성년이 된 고아들이 호미를 거머쥐었다.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나는 재작년에 보육원을 졸업해 베르크 님으로부터 신력을 나눠 받았다. 여기 있는 원생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나도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후배 아이들을 지도하는 감독관으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최근에 사감 직책을 부여받았다.

막중한 일이다.

또 존경하는 베르크 님께서 크게 기대하고 계시니 난 최선을 다해 보답할 것이다. 청년은 묵묵히, 베르크 님께서 손수 작성한 생활수칙을 읽었다.

/ 제2장 준수사항

제4조. 일과 시간. 원생은 각 학급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신실한 하루를 보내야 한다. 일과 시간은 레이시아의 태양력(太陽曆)을 기준, 햇살(prima lux)부터 황혼(crepusculum)까지이다.

제5조. 여가 시간. 원생은 각 호실 감독관의 지도에 따라 안전하고 규칙적인 하루를 보내야 한다. 여가 시간은 레이시아의 태양력을 기준, 일출(diluculum)부터 햇살까지, 그리고 황혼부터 일몰(vespera)까지이다.

제6조. 일몰. 일몰에는 취침할 것을 권장하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활동해야 할 경우 2인 이상의 원생이 함께하는 경우에 한해 입실점검을 면제받을 수 있다.

제7조. 입실점검. 원생은 사감의 지시에 따라 침구류와 소지품을 정돈하고… /

그런데 읽다 보면 이상한 규칙이 눈에 띈다. 제6조, 저녁 시간에 활동을 허가한다는 내용이나 제3장 외박과 외박 신청, 제4장 생활 파트에 수록된 연애와 혼인, 출산에 관한 규칙이 특히 그러하다.

단체 생활을 통제하는 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고결한 사제를 양성하는 데 방해가 될 규칙이었는데, 이는 베르크 추기경 특유의 철학이었다.

연애와 혼인은 자율적으로. 덕분에 그라니아 보육원은 차분한 동시에 전반적으로 밝고, 사람 내음이 풍기는 곳이 되었다.

물론 그로 인해 관리의 어려움은 커졌지만… 일말의 불만도 없이, 청년이 생활수칙을 거의 다 읽어내렸을 무렵이었다.

“실례합니다.”

웬 외부인이 들이닥쳤다. 하나도 아니고 일곱이나. 청년은 조금 당황하며 말했다.

“누구십니까?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죠?”

콘라드 왕국의 수도 루티나에서 그라니아 보육원은 유명하다. 도시 고아들을 잔뜩 데려가는 곳이니까.

하지만 막상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보육원이 수도 외곽의 어느 거대한 장원(莊園)을 차지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원내에 안내 표지판 같은 것도 없어서, 알고 찾아왔어도 여기로 오지 못하고 외부인을 수상쩍게 여긴 원생에게 잡혀 오기 십상이었다.

불청객은 방긋 웃으며 답했다.

“베르크 추기경님을 뵈러 왔어요. 순례를 나가셨다는 건 알고 있는데, 돌아오실 때까지 여기서 머무를 수 있을까 해서요.”

그러면서 가슴 중앙을 두드리는 손짓. 청년은 눈앞의 여성이 외부인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아, 원장님의 손님이셨군요. 돌아오시려면 몇 달은 걸릴 텐데… 일단 앉으시겠어요?”

“네. 레브, 너도 이리 와.”

“글을 쓸 줄 아시지요? 그럼 이걸 작성해주세요. 다 적으실 필요는 없고 성함이랑 입원 목적, 예상 체류 기간만 적어주시면 됩니다. 우상단에는 졸업 원생 번호, 혹은 졸업하지 않으셨다면 생활 번호를 기재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어디…”

쓸 게 많지 않았기에 종이는 금방 되돌아왔다. 한데 청년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았다.

“레아 님이셨군요. 그런데 졸업 번호를 잊으셨나요?”

“아니요. 전 이곳에서 생활하지도, 입학하지도 않았거든요.”

“그럼… 외부인이신가요? 죄송하지만 저흰 외부인의 출입은…”

“여기서 일했던 적은 있죠. 아주 옛날 일이지만요.”

“사제님이셨어요?”

하지만 그럴 리가. 눈앞의 소녀는 너무 어렸다. 레아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데, 베르크 추기경님이랑 인연이 있어서 잠깐 들렀던 정도예요. E… 아니, B 동에서 일했었죠.”

“B동이요?”

“…뭐라 그러더라. 그… 트림프클레퍼(Malus asiatica)가 잔뜩 심어진 건물 있잖아요.”

“아! 사과나무 관 말씀이군요. 옛날엔 거길 B동이라 불렀나 보죠?”

아니, 사실은 미래에.

내가 (꿈에서) 본 보육원은 지금처럼 밭이 전부인 장원이 아니었다. 건물이 들어찬 대학교. 레안 드 예리엘 왕으로부터 교육에 대한 영감을 받은 베르크가 여길 전문적인 고등 교육시설로 발전시킨 것이었다.

레브를 찾아 방랑하던 나는 이곳에 머물렀었다.

친구의 묘지를 왕국 국립묘지에서 발견하고, 이것도 신의 뜻인가보다 생각하며 오른 왕국과의 전쟁으로 황폐해진 콘라드 왕국에서 방랑의 종지부를 찍었다.

거짓말한 건 미안하지만… 아니지,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잖아? 레아는 평이하게 답했다.

“네. 그땐 이름을 대강 지어뒀거든요. 음… 많이 변했네요. 아, 뒤에 계신 분들은 제 일행이에요.”

“알겠습니다. 손님방을 마련해드릴게요. 여기서 일하셨었다니, 규칙은 알고 계시죠?”

“네.”

보육원 시절의 규칙이 어땠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지금은 머물 곳이 필요하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레아가 레브의 등을 두드렸다. 그는 걸어가면서도 심각한 얼굴이었다.

“레브. 죽을상 좀 짓지 말고 표정 풀어. 달라졌으면 달라진 대로 잘 풀어가면 되잖아.”

하지만 레브는 표정을 고치지 못했다. 왕이 죽다니. 계획했던 일이 단번에 꼬여버렸다.

우선 암베그리스(발레이나의 타액)를 구해둘 요량이었다. 오리아스를 잡는 데 필요한 건데, 그걸 발라야 놈의 피에 몸이 녹아내리는 걸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기사들을 회유하는 것.

왕자 본인이 설득하는 것이 아니어서 레안이 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하고 회유할 수 있는 기사도 적겠지만, 제니아 재커리같은, 현 상황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기사를 상당수 알고 있었다.

레안이 살아있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졌으므로 그의 이름을 팔아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럴 시간조차 없어졌을뿐더러 당장 이보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으니…

‘베르크 추기경이 없어!’

지금은 베르크 추기경이 모나크 남작가로 순례를 나간 상태였다. 그는 매년 늦가을에 순례를 나가 다음 해 봄에나 돌아오곤 했다.

거지남매 회차에서는 그가 북쪽으로 순례를 나와주니 만나기가 수월했는데…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리아스는 베르크 추기경이 없으면 잡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보석 하나만 믿고 들이박기엔…

“힘내!”라고 위로해 주는 레아를 뒤로하고 레브와 다섯 근위기사는 남자들에게 배정된 방으로 들어와 짐을 풀었다.

잠시 궁리하던 레브가 말했다.

“갈렌.”

“네.”

“자네 기마술이 뛰어나다 들었네. 오늘은 쉬고, 내일 모나크 남작령에 가서 베르크 추기경을 납치해오게. 반항하거든 레안 드 예리엘 왕자님 이름을 대.”

“…그래도 됩니까?”

“아니. 사실 안 되지만, 그렇게라도 해 봐야지. 말을 모두 끌고 가시게. 그 양반, 성전사 출신이라 혼자선 힘들 테니 두 명을 더 데려가.”

시간을 당겨 봐야겠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도 알아보고.

다음 날, 갈렌은 일곱 필의 말을 끌고 북쪽으로 떠났다. 밖으로 나가 이리저리 귀동냥한 레브는 대략적인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왕이 죽었다는 걸 시민들이 모른다. 또 정말 의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아이셀 왕국의 공주, 엘리카 드 이사도라가 에릭 드 예리엘 왕자에게 시집온다는 것이었다.

‘아하… 레안이 살아있다는 게 알려져서 에릭 왕자가 급해졌구나.’

그러니까 이건 내가 뭘 잘못해서 달라진 게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거지남매 시나리오의 여파였다.

난 또, 보석을 탈취한 게 에릭을 자극한 줄 알았네.

그렇다면 아직 기회는 있지.

레브가 공포에 질렸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본인이 오리아스의 눈에 포착된 줄 알고, 이미 불지옥과 같은 미래가 예약된 거로 착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고, 수소문해보니 공주가 도착하려면 아직 먼 듯했다.

대강 2개월.

그거면 베르크 추기경이 오기를 기다릴 만하고, 나도 기사들을 회유할 시간이 됐다.

에릭 왕자는 공주와 결혼한 뒤에 왕이 서거했음을 공표하며 왕위에 오를 생각인가 본데, 바로 그 대관식의 날이 거사를 일으킬 절호의 순간이었다.

레브는 한껏 밝아진 얼굴로 되돌아왔다. 이 낭보를 레아에게 알려줘야겠다, 생각하는 그는 들떴음에도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추적술}.

레브는 콘라드 왕국에 있는 모든 위험인물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를테면 에릭 왕자가 부릴 법한 기사나 병사들이다.

비록 추적술이 대상과의 거리는 알려주지 않지만, 이렇게 걸어가는 중에 방향이 변한다면 자신과 근접해있다는 뜻이고, 미행이 붙었다는 거로 해석할 수 있었다. 물론, 그의 눈도 사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브가 예상하지 못한 존재가 있었으니… 멀리 왕성 첨탑에 올라선 사내가 중얼거렸다.

“쯧, 오자마자 맡겨진 일이 고작 이런 거라니… 괜히 왔군.”

소아렐 데메트리 오거튼 백작이었다. 고색창연한 떡갈나무 지팡이를 휘둘러 ‘구름 눈’ 마법을 지워낸 백작이 왕자를 만나러 갔다.

찾아서 감시해달라던 일곱 명 중 셋은 북쪽으로 달려가고, 나머지 네 명은 보육원에 남아 있다는 걸 보고하려고. 보고받은 에릭 드 예리엘 왕자가 씨익, 미소 지었다.

“찾아줘서 고맙소. 전에 있던 마법사보다 당신이 훨씬 낫구려. 앞으로도 수고해주시오.”

“과찬이십니다.”

“그래. 그 보석… 아니, 목걸이는 녀석의 손에 있겠지요?”

“네. 붉은색 보석을 가진 일곱 사람이라는 조건으로 찾아냈습니다. 한데 왜 감시해야 하는 겁니까? 범법자라면 찾아드렸으니 잡으면 되지 않습니까.”

왕자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게 말이오. 그 보육원만 아니었으면… 아, 이건 비밀이오. 우리 왕국의 추기경이 운영하는 곳이라 손을 쓰기엔 부담스럽구려.”

“그럼 녀석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알려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소이다. 그러지 않아도 놈들은 나와 만나게 될 테니까… 하하하! 조만간 다시 여쭙겠소이다. 그전에는 녀석들이 궁에 침입했을 때만 알려주시지요.”

에릭 왕자는 대답을 듣지 않고 몸을 돌렸다. 한편 떡갈나무 지팡이를 쥔 오거튼 백작은 기이한 환상을 보고 말았다.

왕자의 머리에 열댓 개의 뿔이 돋아난 듯하다.

소아렐 데메트리 오거튼 백작이 고개를 휘저었다. 환상이 사라지고, 백작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볼리뉴 마탑이 자랑하는 최신 마법, 축지법(縮地法)을 무리하게 쓴 모양이라고. 마나를 중첩시켜 거리를 짧게 한 것까진 좋은데, 탑승자가 너무 많았나 보다.

까닭 모를 현기증을 느낀 백작은 아내와 아들이 있는 저택으로 얼른 퇴근해 버렸다.

기존에 있던 ‘리스타드 제건 도로프’라는 마법사는 예리엘 왕가와의 계약을 깨고 사라진 지 오래였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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