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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26

324. 소꿉 ep – 소눈

꿍-!

레브가 눈치채기 무섭게 오리아스가 몸을 위아래로 흔들며 발을 굴렀다. 그 진동으로 천장에서 먼지가 쏟아졌다.

‘줄을 떨어내려 하는 걸까?’ 생각했지만, 몸 이곳저곳에 솟아난 17개의 뿔 때문에 어림도 없어 보였다.

“발악한다! 다들 꽉 붙잡아!”

다만 거센 반동으로 줄에 매달린 근위병들을 털어내려는 것 같기는 했다. 놈이 발악한다 생각한 사람들은 더욱 힘차게 매달려 줄을 잡아당겼는데…

– 쩌적.

“어?”

파국은 순식간이었다. 무슨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싶은 순간 오리아스를 중심으로 동심원(同心圓)이 생겼다. 수백 명이 일시에 “와악!” 고함을 내질렀다.

바닥이 무너지며 오리아스가 가라앉고, 녀석을 옭아매고 있던 수십 가닥의 줄이 출렁! 튕겨 올랐다.

그 직후 보인 장면은… 끔찍하지만 마치 꽃이 피어나는 장면과도 같았다. 줄에 매달려 떠오른 근위병들은 청색 제복에 금박이 덮인 꽃가루이고, 누런 꽃실 같은 새끼줄에 오리아스의 광선이 더해져 검은색 꽃잎을 이루었다.

거기에 새끼줄이 무섭도록 빠르게 쓸려가면서 미처 피하지 못한 기사들의 피가 색을 물들였는데… 그 순간적인 장관은 분수 같은 피가 터지며 마무리됐다.

홀 중앙에 뚫린 거대한 구멍.

뒤이어 그 주위 바닥에 그려진 동심원들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레브의 눈에 천장 잔해가 흐트러진 1층 홀이 들어왔다.

그리고 방금보다 한층 더 커진 오리아스도…

– 무우우~

눈이 마주친 녀석은 기분 좋게 울었다. 제가 빙글빙글 뛰었던 것이 네까짓 놈을 두려워해서가 아니었다는 듯이.

“제기랄!”

욕지거리하며, 레브는 놈에게 뛰어내리러 달려갔으나 오리아스가 한발 빨랐다. 녀석은 쿵! 1층 벽을 들이받아 왕궁에서 벗어났고, 2층에 선 사람들은 이를 멀뚱히 바라봐야 할 뿐이었다.

쿵 쿵 쿵!

지축을 울리며 정원을 가로질러 달아나는 오리아스. 녀석의 몸에 휘감긴 금줄이 붉게 물들어 살얼음이 깔린 땅바닥을 할퀴었다.

녀석은 왕성 성벽도 부숴버릴 기세로 달렸고, 창문에 매달린 레브는 갑갑한 한숨을 뱉었다.

실패다.

아신은 {추적술}에도 잡히지 않고, 뒤쫓아봤자 녀석을 상대하기란 불가능했다. 녀석은 루티나의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곤 더 강해져서 반격해 오리라.

이게 유일한 기회였는데…

상황은 보기보다 훨씬 심각했다. 이번 일을 경험 삼아서 다음에 잘 잡아내면 그만이라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22/24], 남은 회차가 없었다. 이번에 실패하면 23, 24회차밖에 남지 않는데 이건 민서가 이미 계획해둔 일이 있는 회차들이었다.

또, 레안의 계획으로도 다음 회차(23번째)에서는 자신이 왕자가 되어있어야 했다.

아스란 왕국에서 있었던 내전이 없어지는 둥, 약혼관계 시나리오가 변한 것처럼 오리아스가 소멸하면 거지남매 시나리오도 변화할 테니까. 그것까지 고려해서 계획을 세웠는데 일이 꼬여버린 셈이다.

물론, 레브는 이런 속사정들까진 알지 못했다. 그는 어쨌거나 ‘19번째 레오’이고, 그동안의 일들을 말로 대강 전달받았을 뿐 기억으로 받지 못했으니까. 심지어 지금이 본인의 회차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실패가 불러올 파장을 레브는 짐작하였다. 발을 사소하게 헛딛은 것만으로도 파국으로 치달았던 회차가 한두 번이 아닌데 하물며 실패라…

레브는 몸을 떨었다.

실패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강박감에 창문을 발로 걷어차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내가 죽더라도, 그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는 한이 있더라도 놈을 잡아야 한다.

그때였다.

“뭐해?”

레아가 옆에 와 있었다. 그녀는 막 뛰어내리려던 레브의 옷깃을 붙잡곤 짐짓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그런 표정 짓지 말랬지. 그 죽어가는 표정. 복 달아나!”

레브는 다시 한숨이 치밀었다.

또 시험에 들겠구나. 기왕 실패한 거, 그냥 레아랑 같이 어디로 도망쳐서 살아보던지, 놈을 쫓아가든지 양자택일하라는 줄 알았다.

매번 그랬으니까. 하지만 고개를 돌린 레브는…

“…헤에?”

한숨을 묘하게 뱉으며 굳어버렸다.

레아가 어째… 눈이 부시다. 마치 성녀를 보았을 때처럼.

[ 소꿉친구 레나의 진명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신성}이 부여됩니다. ]

눈에 {신력 간파}가 달려있어서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주신의 신력을. 그녀는 마치 뽀얀 우유병 같았다.

메리엘 성녀를 보았을 때는 하얀 폭포라고 생각했다. 창공에서 어마어마한 신력이 그녀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레아는 달랐다.

옹달샘. 적지만 깨끗한 신력이 끊임없이 솟구쳤고, 그녀는 웬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레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 표정은 뭐야? 어쨌든, 이제 나도 널 도와줄 수 있어. 저게 달아나지 못하게 하면 되는 거지?”

“어? 어, 응.”

레아가 레브의 품을 제치고 들어와 창문으로 지팡이를 뻗었다.

“옷에 걸렸어, 잠깐만.” 보기보다 무거워서인지 잠시 파닥거리던 그녀는 성벽을 기어이 부숴버리곤 밖으로 나서려는 오리아스를 조준했다. 이내 지팡이에서 빛이 뿜어졌다.

– 무어억?

빛나는 건 지팡이뿐만이 아니었다. 오리아스의 몸에 칭칭 휘감긴 금줄도 같이 빛나면서… 떠올랐다. 아니, 떠올랐다기보다는 누군가가 뒤에서 금줄 더미를 움켜쥐고 당기는 모양새였다.

– 무어어어어어어어어!!!

한 걸음만 더.

한 걸음만 나갔으면 됐는데!

무너진 성벽을 통해 제물이 득실득실한 거리가 보였다. 오리아스의 발굽이 땅에 지이이익- 긁혔다.

“레브, 가! 오래는 못 잡아둬. O aqua-dives humilis-maloe ionen!”

“우와!”

레아는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꿈에서 본지라 가물가물한 신성 주문을 읊자 땅에서 빛이 터졌다.

아래에서 위로.

치유의 바람이 흐르고 기온이 상승했다. 끔찍한 광경에 전의를 상실했던 기사, 병사들이 용기백배해 소리쳤다.

“가자!! 대사제님이시다! 대사제님께서 뒤에 계신다!”

“가자!”

반대로 오리아스는 몸이 무거운지 무릎을 떨었다. 줄을 당기는 놈과 힘을 겨루다가 왕성에서 몰려나오는 인간들을 보곤 우수수수, 성이 나서 구더기를 떨궜다.

미천한 하등종족 따위가 감히.

오리아스는 고개를 높이 치켜들어 꿀꺽, 바위를 삼켜버렸다. 이런다고 해서 네놈들이 이 몸을 상대할 수 있을 줄 아느냐!

“으아아…”

레아가 지팡이를 사력을 다해 붙들었다. 오리아스가 달려오자 당기기만 할 수 없어서 이번엔 이쪽으로, 다음엔 저쪽으로, 창문가에 서서 낚시하듯 팔을 휘저었다.

얼기설기한 금줄은 마치 ‘실뜨기’하듯 풀리고 꼬이기를 반복했다.

한편 레아가 분투해준 덕분에 정원에서의 전투는 수월히 흘러가고 있었다.

파편을 삼켜서 어디 있는지 보이질 않으니, 레브와 바르트는 놈의 뱃가죽을 헤집었다. 기사들은 순서를 정해 녀석의 다리를 조금씩 베어내기 바빴다.

아까와는 상황이 너무 달라졌다.

비좁지 않은 정원에, 혹 상처가 생겨도 치유가 되니 오리아스는 일방적으로 도살당하고 있었다. 그는 점점 울음소리도 내지 않고 침묵에 휩싸여갔다.

불안하게 왜 이러지? 생각한 순간 녀석이 조용했던 이유가 밝혀졌다. 뒤에서 “꺄악!! 이, 이러지 마세요!” 레아의 비명이 들렸다.

“공작님? 테르탄 공작님이 왜…?”

라퍼트 테르탄 공작이 창가에 선 사제님을 밀어버리려 하고 있었다. 오리아스의 입장에선 거의 마지막 남은 패였다.

에릭이 신력을 듬뿍 쏟아 부어둔 덕에 오리아스는 공작을 조종할 수 있었는데, 그는 악신의 정체를 알고 있어서 사도로 쓰기엔 부적합했다.

마법사처럼 정신을 쉽게 깨부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쏟아 부어둔 신력이 떨어지면 즉시 정상으로 돌아갈 인간이라 다른 사용처를 생각해봤다.

에릭에게 그랬던 것처럼 파편으로 만들 수 있긴 했다.

신도가 없고, 사방에서 공격당하는 지금 녀석을 파편으로 만들어 목숨줄을 연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그걸 안전한 곳으로 옮길 방도가 없었다.

바다가 가까웠으면 공작을 물에 빠뜨렸을 텐데.

그랬으면 이 지긋지긋한 소드마스터들로부터 파편을 숨기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게 된 이상, 전투에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사제 년만 죽여버리면 쉬워진다. 기왕이면 검을 들고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결혼식에 참석한 몸이어서 공작에겐 검이 없었다.

말을 잘 듣지도 않고.

“그만! 할아버지! 이러지 마세요. 저 떨어져요. 떨어…”

“미, 미안해요. 미안…”

레아는 창문에서 거의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고작 2층이지만, 높이가 상당하다. 기사가 아닌 일반인이 뛰어내릴 만한 높이가 아닐뿐더러 자세도 좋지 못했다. 화들짝 놀란 레브가 마구 달려갔는데, 윽!

기어이 떨어지고 말았다. 다만…

“하, 할아버지! 다행이다!”

떨어진 사람은 테르탄 공작이었다. 최후의 순간 그는 떨어지려는 레아를 당기며 몸을 교환하였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괜찮으세요?”

테르탄 공작도 무사했다. 몸싸움이 길어진 덕에 레브가 도착해 있었다. 레브는 하리에의 경고를 상기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당신이 공작님의 신변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 주겠노라 레안 왕자님의 이름을 걸고 자신하셨으니 믿고 맡기겠어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만약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아주 곤란해지실 거예요. 제가, 그렇게 만들어드리죠.”

솔직히 그녀의 어머니도 치료해주었겠다, 하리에는 팔라스와 결혼하게 되었으니 걱정할 건 아닌듯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레브는 이때만 해도 저의 운명이 바뀌었음을 모르고 다시금 전의를 불태웠다. 그러나…

– Rhuav tshem daim ntaub thaiv!!

“…이건 좀 너무한데.”

에릭 왕자가 궁지에 몰려서 그랬던 것처럼 오리아스도 창공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썩은 피가 출렁이는 거대한 눈.

제 본체까지 싸움에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레브는 그래 봤자 본체는 장막에 막혀 있을뿐더러, 신력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소용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오리아스는 최후의 발악을 시도했다. 녀석은 자신의 눈을…

– 촤악!

터뜨려버렸다.

비도 아니고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썩은 피와 무수하게 일어서는 소머리 괴물들. 레브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고 말았다.

레아가 내린 축복 덕분인지 이마에 낙인이 찍히지는 않았으나 저기 무너진 성벽으로 몰려드는 시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고름을 뚝뚝 흘리며 뛰어오는 사람들. 그래. 거지남매 시나리오에서 ‘소눈’이 나오면 패하기 마련이었다.

“가자! 이게 진짜 마지막이다!”

– 무어어어어어어어억!!

레브와 바르트 경, 기사들과 근위병들은 최후의 결전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리아스는 본체의 뿔까지 공양해가며 파편을 사수했다.

싸움은 치열하고, 길었다.

레브의 오러블레이드는 꺼졌고, 바르트 경은 숨이 차서 허덕거렸다. 근위병은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을 세는 게 빠르며, 레아의 신력이 바닥을 드러내자마자 그나마 버티던 기사단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리아스는 공양을 통해 신력을 수급할 수 있어서 어렵사리 승기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마무리. 오리아스는 얼른 이 상처뿐인 싸움을 정리하고 달아날 생각이었는데…

“사특한 것이 정말로 있었구나!”

무슨 짓을 당했는지 온통 산발이 된 베르크 추기경이 노을 진 성벽을 넘어오고 있었다. 그를 데리러 갔던 갈렌 경과 함께.

시쳇더미에 불과한 오리아스의 뺨이 핼쑥해졌다고 느낀 건 레브만이 아닐 것이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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