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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27

325. 소꿉 ep – 차별

베르크 추기경은 ─ 납치당했다.

모나크 남작가에서 그라이넨 누이를 만나고, 순례를 핑계로 나왔으니 죄짓고 국경을 넘어온 비렁뱅이들을 회개시키며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누구십니까?”

“베르크 추기경님이시지요?”

세 명의 건장한 사내가 나타났다. 척 보기에도 기사인 그들은 처음엔 정중했었다.

저를 갈렌이라 소개한 기사는 본인이 레안 드 예리엘 왕자를 섬겼던 근위기사임을 밝혔다. 베르크는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레안 왕자가 살아 있다는 소문은 작년 가을에 들어 알고 있었다.

베르크는 이게 왕국을 뒤집으려는 제 계획에 흉(凶)이 될지 길(吉)한지를 근심했는데, 소문에는 놀라운 소식이 담겨 있었다.

어여쁜 손녀, 크세니아가 왕자와 약혼하려 했다는 것이다.

베르크는 곧장 연락을 취했다. 아들놈한테 연락해봤자 답신이 없을 게 뻔하니 며느리를 통해서…

며칠에 걸쳐 통신이 오갔다.

처음 몇 번은 에들린이 답장했다.

며느리는 최근에 벌어진 일들을 설명하며(남편에 대한 다소간의 험담과 함께) 일이 모두 잘 풀렸다고 말했다. 약혼은 깨졌지만, 두 사람은 조만간 결혼할 것이라고… 그러다가 답장하는 사람이 바뀌었다.

/ 할아버지!

저 좋은 사람을 만났어요. 축복해 주실 거죠? 이이는 잠시 여행을 다녀오겠대요. 돌아오면 저흰 영지로 내려가 결혼할 계획이에요. 할아버지께서 주례를 봐주셨으면 해요.

보고 싶어요. Ksenia /

솔직히 탐탁지 않았다.

왜 하필이면 레안 드 예리엘 왕자냐. 그는 틀림없이 제 자리를 되찾고자 할 터인데. 크세니아와 결혼하면 나는 그를 도와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베르크는 바로 답신하지 못하고 며칠을 근심하다가 교회의 성물을 움켜쥐었다. 통신하려고.

좋은 사람을 만났다니, 할애비는 기쁘구나. 분명…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네가 큰일에 휩싸이게 될 것을 염려한단다. 그는… 이러쿵저러쿵.

요약하면 (최대한 축하해주긴 했으나) 두 사람의 혼인을 반대한다는 뜻이었다. 베르크는 가슴 아프지만 그렇게 답신했는데, 돌아온 건 단호한 한마디였다.

/ 전 이이를 사랑해요. /

“……”

내게 걸린 굴레가 참으로 깊고, 무겁구나.

세상에 우연은 없다. 오직 신께서 인도한 갈림길만이 있을 뿐. 베르크는 왕자와 이야기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답장했는데, 아뿔싸.

/ 그이는 어제 여행을 떠났어요. 돌아왔을 때는 저와 결혼하러 내려가겠지요. /

근심에 휩싸여 며칠 미적거린 게 화근이었다. 허 참… 성물에 손을 댄 채 혀를 찼으나 오르빌 교회에서 오는 답장이 이어졌다.

/ 대신 사람을 보내놨다고 했어요. 레브라는 사람이 할아버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할 거래요. 그리고… /

/ cardinali

Delens recordum. /

이야기를 마친 베르크 추기경은 그간 통신을 맡아준 오르빌 교회의 사제에게 기록을 지워달라 말하곤 뒤돌아섰다.

아무래도 일이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가겠다고 생각하면서 기다리는데 레브란 사람은 언제 온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겨울을 맞이한 그는 순례에 나섰다.

이번에는 좀 오래 걸릴 듯했다. 기왕 가는 김에 왕자와 손녀딸까지 보고 올 생각이니까.

베르크는 왕의 용태를 살피고, 에릭 드 예리엘 왕자에겐 순례를 길게 다녀오게 될 듯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루티나 교회의 업무를 처리하고, 그라니아 보육원의 선생 중 싹수가 있어 보이는 아이에게 사감 직책을 맡겼다.

그리고 떠났다. 본인이 무슨 꼴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른 채.

저를 갈렌이라 소개한 근위기사는 베르크가 “레브라는 사람은 어디 있소? 난 그와 이야기하기 전에는 못 도와주겠소.” 고집을 피우자 냅다 자루를 덮어씌웠다.

“이런 발칙한… 읍읍!”

내가 늙긴 늙었구나.

기습을 당한 베르크는 하릴없이 납치당했다. 하루에 두 번, 식사할 때만 재갈이 풀리고 용변을 볼 기회가 주어졌다. 그때마다 화를 내기도, 말을 걸어보기도 했으나 그를 납치한 이들은 베르크조차 혀를 내두를 고집불통들이었다.

레안 왕자가 죽은 줄 알고서도 십 년이 넘게 투쟁한 놈들이 아니냐. 벽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아서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레안! 어디 두고 보자!’ 이를 갈면서.

그렇게… 루티나에 도착했다. 아니, 자루가 벗겨지고 보니 루티나였다.

당연히! 정말 당연하게도 이 무엄한 납치범들은 검문을 당했고, 붙잡혔다. ‘물고기’라도 잡아 온 것처럼 바둥거리는 자루를 말 등에 짊어지고 수도에 들어섰는데 잡히지 않을 턱이 없었다. 자루를 벗겨준 병사가 깜짝 놀라 외쳤다.

“추, 추기경님이시라고요? 그럼 이 미친놈들이…”

“베르크 추기경! 당장 왕성으로 가야 하오!”

“녀석들을 잘 가둬주게. 아이고, 허리야… 음? 오늘이 무슨 날인가? 거리가 무척 화려하군.”

“모르셨습니까? 오늘이 바로 에릭 드 예리엘 전하의 결혼…”

“추기경!!”

“…뭔가? 여태껏 한 마디 없다가 이제 와서 하고픈 말이 생겼는가?”

“나도 잘 몰라서 말씀을 못 드렸소이다. 다만 레브, 그분이 에릭 드 예리엘 왕자를 쳐야 한다 하였고, 원생들 말로는 이미 쳐들어갔다고 하더이다. 당신도 빨리…”

“원생들? 설마… 내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베르크가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푸들거리며 소리쳤다. 당장 보육원으로 달려갈 요량으로 걸음을 재촉하는데 그 순간, 뒤통수로 끔찍한 것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노을 진 하늘, 왕성에 시커먼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을 내려다보는…

“Domini, Defendat!”

베르크는 배우기만 배웠지 단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주문을 외쳤다.

사특한 존재.

그런 게 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실존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보호 주문 바깥의 시민들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왕성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고, 베르크도 그리하였다.

* * *

“사특한 것이 정말로 있었구나!”

“추기경님이시다!!”

베르크 추기경이 도착함과 동시에 전황이 뒤집혔다. 그는 {신성} 능력을 부여받아 대사제급에 오른 레아와는 차원이 달랐다.

십자교회는 기본적으로 계급제를 따랐다. 물론, 성직자는 평등하므로 신분이 아닌 직함에 따른 계급이다.

직함은 대륙에 널리고 널린 일반 신도로부터 시작해서 교회의 능동적 구성원인 평신자, 성직자 교육은 받았으나 신력을 받지 못한 수도사와 (둘 다 받은) 사제에 이르렀다.

이를 교계제도(敎階制度)라 하는데, 성직자로 구분되는 수도사와 사제들의 직함은 더 빽빽하게 나뉘어 총 7개의 직함이 있었다.

일반적인 성직자, 사제와 수도사가 첫 번째고, 그 위에 한 교회를 다스리는 수도원장(Abbot), 일반 교구(敎區)의 관리를 책임지는 교구장과 교구장의 비서격인 부제(Deacon)가 있었다.

이 교구장 이상의 직함을 가진 사제는 대사제로 분류됐다.

소위 말하는 고위 성직자들이다. 여기서부터는 이 이상으로 진급한 수도사가 없다시피하고, 사제가 거의 전체를 차지했다.

대사제는 크게 각 지방을 다스리는 주교품(品)과 대도시 교회에 상주하는 주임품(品)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대사제라 하면 주임품-격을 받은 주임사제(Parish priest)를 의미하는데, 번번이 레아를 수도교회로 데려가던 오필리아가 교구장으로 있다가 승격되어 주임사제로서 수도교회에 상주했었다.

반면 주교품-격 대사제는 주교구(인접한 여러 교구의 묶음)를 관리하는 주교(bishop) 직함을 받았다.

그럼 추기경은 언제쯤 나오느냐?

추기경(Cardinal)은 사제들의 정점에 오른 주임사제와 주교 중에서도 수도교회의 대사제 회의를 통해서 선출된 아주 특별한 이들이었다.

추기경은 총 9명이다.1)

십자교회의 본단인 수도교회에 (주임사제처럼) 상주하는 추기경이 셋, 나머지 여섯 명은 각 왕국에 흩어져 해당 왕국의 모든 교구를 통솔하는 대주교(Archbishop)로서 일했다.2)

추기경이 얼마나 높은 직책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를 본 기사들이 어째서 환호하는지도.

하지만 기사들이 환호한 건 단순히 그에게 추기경이라는 직함이 달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베르크 추기경에게는 허울뿐인 직함을 단 일반적인 대사제들(추기경 포함)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저에게 주어진 사명을 깨닫고 행동하는 대사제.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신력으로 강림굿을 올렸다. 첨탑에 비견될 만치 거대한 검과 방패를 든 전사가 베르크 추기경 위로 노을을 받으며 떠올랐다.

라차르 신이다. 오리아스가 주춤, 뒷걸음질 치며 하소연했다.

– 시, 신이시여.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러는 겁니까. 저는 절 섬기는 종족의 번영을 위해 싸웠고, 그들이 사라진 이후로는 그저 존재하기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죄가 된단 말입니까.

= 그렇다. 그게 너의 죄이니라.

오리아스는 분노했다.

– 어째서입니까? 당신이… 신께서 인간을 편애하기 때문입니까? 신이 어찌하여 차별을 행합니까!

오리아스의 항변에도 일리가 없진 않았다. 인간이 이종족을 몰아낼 수 있었던 뒷배경에는 ‘마나’와 ‘신력’이 있었다.

토들러 아키우넨 이래, 청련달에 실려서 대륙 방방곡곡에 뿌려진 마나와 인간에게만 허락되어 성녀를 통해 전파된 주신의 신력.

마나는 나약한 인간을 평균적으로 강해지게 하였고, 성녀를 중심으로 세워진 십자교회는 아카이아 제국과 손잡고 온 대륙을 쓸어버렸다.

다양한 종족들이 번성하던 시대가 인간만의 시대로 물갈이된 것이다.

그러나 라차르는 코웃음 쳤다.

= 너와는 관계가 없는 일을 마치 당했다는 듯이 토하는구나. 네놈이 네 종족의 번영을 위해 싸웠느냐? 미노타우르스들은 저들의 욕심으로 너를 강림시키고 망하지 않았더냐. 그것도 인간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던 시기에.

– ……

= 미노타우르스들을 파멸로 몰아넣은 건 너다. 그러고도 뻔뻔히 존재하다니. 낯짝도 두껍구나.

– …그게 뭐 어떻습니까.

오리아스가 항변했다.

– 피조물 따위… 제 신도를 제가 어찌하건, 그건 저의 몫입니다.

= 그렇다. 나도 그리 생각하노라.

라차르는 빙긋 웃었다.

= 네놈도 피조물에 불과하지 않으냐. 잘 가거라. 장막에 구멍을 뚫은 대가는 치러야겠지?

라차르의 검이 쩌엉! 휘둘렸다.

비록 뿔에 가로막혔지만 오리아스를 찍어누르더니 방패를 치켜들어 피가 쏟아지는 구멍을 메웠다.

오리아스는 최후의 순간까지 달아나려 했다. 제 피로 불러낸 신도들, 미노타우르스들을 앞세우면서.

부질없는 짓이었다.

레아의 금줄에 묶여 바둥거리던 녀석은 레브와 기사들, 바르트에게 난도질당해서 힘을 다했다. 금줄이 쫘악! 거세게 조이더니 시쳇더미를 산산이 조각내 버렸다.

얼핏 금줄을 쥔 손아귀가 보인 것 같다. 넓은 소매가 달린.

“잡았다! 끝났어!”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아직 오리아스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물고기가 잔뜩 잡힌 그물마냥, 허공에 떠오른 금줄에 큼직한 바위가 걸려 있었다.

오리아스의 목숨줄이다.

레브는 바르트 경에게 눈짓하였다. 바르트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검을 들었다가, 잠시 원위치했다. 먼저 간 동료들의 무구로 만든 검을 한 바퀴 돌려보고는… “합!”

온 힘을 다해 찔렀다. 끄트머리만 날카로운 검이 바위를 꿰뚫고, 쩌적, 어디선가 소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하지만,

“그 퀘스트란 거 깨졌어?”

“어… 그게…”

[ 퀘스트 : 수호자(守護者), 1/4 – Barbatos ]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당황한 레브는 레아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어물거리다가 “아!” 깨달았다.

“레안한테 연락해야 해. 바르바토스를 잡았을 때도 그랬어. 나한테는 메시지가 안 떠.”

“엥? 왜?”

“내가 이번 회차의 주인공이 아니니까? 레안한테는 떴을 거야. 우선 뒷정리부터 하고, 연락해 보자.”

“음… 그건 좀 너무하네. 고생했어 레브.”

“뭐? 하하하하!”

힘든 하루였지만 레브는 단번에 유쾌해졌다. 레아가 주신을 향해 한 마디 불평해준 게 저와 레오들이 그동안 욕해온 걸 합친 것보다 훨씬 속 시원했다.

우리를 이해해 준 것 같아서.

그리고 앞으로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아 있어서. 레브가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레아도 뿌리치지 않았다.

1) 아스란 왕국이 분열되지 않아서 한 명이 줄어들었다.

2) 십자교회의 본단인 수도교회에는 제롬 신성 왕국의 대주교인 미하에르 추기경을 포함해 4명이 상주한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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