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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29

327. 소꿉 ep – 꽃꽂이

레브는 만사를 제쳐놓고 떠났다. “왜? 무슨 일인데?” 묻는 레아에겐 “나도 몰라.”라고 답해주었다.

하지만 조금은 예상하였다.

나더러 동생의 병정놀이 ‘상대’가 되어달라는 건 레리아나의 재능이 만개했음을 뜻했다. 레브는 한숨을 내쉬었다.

‘또 잘못 키워놓은 건가.’

그랬을 가능성이 컸다.

거지남매 시나리오는 유독 까탈스러우니까. 특히 레리아나는 키우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레리아나가 말을 안 듣는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레안의 말이라면 껌벅 잘 따른다.

다만 그녀는 (레브가 생각하기론) 칼자루를 쥔 어린이와 같았다. 잘못 성장하면 그 여파를 감당할 수 없었고, 그래서 내게 부탁하는 것이라고 레브는 결론지었다.

오리아스를 잡는 것도 개고생이었는데. 이제는 레아랑 같이 고향으로 돌아가 편히 살고 싶은데…

하지만 별수가 있나.

그의 가슴에는 레리아나의 가슴에 꽂아 넣었던 검이 날카로운 상처가 되어 박혀 있었다. 동생이 해달라는 건 다 해줘야지.

레브와 레아가 모나크 남작령에 도착했을 때는 여름이었다. 전쟁이 발발한 벨리타 왕국, 아이셀 왕국과 국경을 맞댄 곳이었지만, 전선이 한참 북쪽에 형성되어 있어서 여기는 평화로웠다.

약간의 긴장감이 도는 게 전부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페테르 백작이 참전하기를 거부해서 이곳, 세 왕국의 접경지대는 전쟁의 화마에서 빗겨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라이넨 모나크라는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바릭 모나크의 누이이자 베르크 추기경의 연인이자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의 어머니인… 사연이 복잡한 여인이었다. 정정한 할머니가 된 그녀는 모든 고난을 뒤로하고 소박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레브는 베르크 추기경을 납치해간 것을 고백하며 사과했다. 그라이넨 모나크는 “당신이었어요?”라며 호호 웃어넘겼다.

별로 걱정하지 않았었나 보다.

레브와 레아는 그곳에서 레안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라이넨 할머니께 꽃꽂이를 배우면서.

“젊을 때도 좋아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지는 것 같아. 꽃은 관심을 먹고 살거든.”

노인네에게나 어울리는 소일거리라고 생각했다.

그까짓 거 꺾어다가 병에 담기만 하면 화병이고, 꽃꽂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세상만사가 대부분 그러하듯, 꽃꽂이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았다.

꽃꽂이의 시작은 ‘자르기’다.

꽃을 이루는 전체가 화훼(花卉)로 쓰이진 않았는데, 꽃을 더 아름답고 오래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해서 자른다. 줄기에 붙은 가시와 곁가지, 잎사귀들을. 그것들은 달려있어 봐야 꽃의 수명을 갉아먹고, 아프기만 한 것들이었다.

레브는 ‘스워브리아’ 한 떨기를 쥐었다. 가을에 피는 꽃이라 아직은 꽃 머리 없이 송이만 올라 있었다.

자르는 것도 막 자르는 게 아니라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다.

잎과 가시, 곁가지를 잘라낼 때는 수직으로, 줄기 끄트머리를 자를 때는 사선으로 잘라야 했다.

잘라내는 것 자체가 꽃줄기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므로 그 환부가 가능한 한 작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꽃의 수명이 늘어난다.

반면 꽃줄기 아랫부분은 사선으로 잘라 물을 흡수할 단면적을 넓게 해주는 게 좋았다.

“그러니까, 물을 보존해주는 게 관건이군요?”

레아가 말했다.

아까워도 잎사귀 대부분을 잘라내는 까닭이 그것이었다. 만개할 꽃이 먹을 수분이 이파리에서 낭비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지. 그리고 줄기에 잎사귀가 남아서 물에 잠기면 고인 물이 금방 썩어버리거든. 꽃이 썩은 물을 마시지 않게 해줘야지, 안 그럼 못 써.”

“그럼 다 잘라요?”

“아니지. 꽃송이 아래에 붙은 잎은 조금 남겨 둬. 예쁘니까. 혹시 잎에 상처가 있으면 어쩔 수 없고. 그럼 그건 잘라내야지.”

“이건요?”

레브가 본인이 쥔 스워브리아를 보여주었다. 꽃봉오리 주위에 마치 잡아달라는 듯이, 작은 고사리손이 뻗어나 있었다.

“잘라.”

그라이넨이 단호하게 말했다.

“물만 얻어먹고, 꽃이 피는 데에 방해야. 귀엽게 생겼어도 보낼 건 보내줘야 해.”

꽃이 피지 않은 지금은 앙상해 보여서 안쓰럽지만, 언제까지 매달려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레브가 고사리손을 잘랐다.

“좋아. 잘했어요. 이제 자르기가 끝난 꽃들을 병에 담아요. 묶어서 담는 것도 좋은데, 장단점이 있어요. 묶으면 모양이 덜 흐트러지는 대신 줄기가 상할 염려가 있고, 묶지 않으면 자연스러운 맛은 있지만 스타일링이 쉽지 않지. 어떻게 할래요?”

“전 안 묶을래요.”

레아가 말했다. 레브는 ‘그래도 묶어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며 질문했다.

“줄기가 안 상하게 살살 묶어두면 되지 않나요?”

“그럼 안 묶느니만 못하죠. 하려면 아주 꽉 묶어야 해요. 정 걱정된다면 노끈같이 거친 것 말고, 천을 이용하세요.”

레브는 그리하였다. 그라이넨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꽃병에 차곡차곡, 높낮이를 조절해 담았다.

어떤 꽃은 꽃병 테두리에 낮게 붙고, 어떤 건 중앙에서 높이 올랐다.

레브가 만든 화초의 주인공은 스워브리아여서, 아직 만개하지 못한 스워브리아가 가장 높이 달렸다.

이제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레브는 꽃병의 물을 매일 갈아주고, 아래 줄기를 조금씩 잘라주는 등 (그렇지 않으면 기포가 생겨서 물을 잘 흡수하지 못한다) 세심히 보살펴주었다.

그리고 스워브리아 꽃망울이 열린 가을 무렵에 레안이 도착했다.

활짝 만개하기 직전의 레리아나를 데리고서. 그녀는 모나크 남작령을 둘러보곤 말했다.

“흐음… 이만하면 쓸만한 땅이네. 고마워, 오빠. 이거면 충분하겠어.”

레리아나는 레브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 * *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레리아나가 신이 나서 돌아다니는 동안, 레브가 레안을 앞에 앉혀놓고 물었다.

“오랜만이야.”

“인사는 됐으니까 어떻게 된 건지부터 알려줘. 망했어?”

“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일단 안 망했어. 그리고 고생 많았어. 오리아스를 잡았더라.”

“메시지가 떴어?”

“응. 아아, 너한테는 메시지가 안 뜨는구나? 그럼 그것도 못 봤겠네.”

“뭘?”

“레아랑 관련된 메시지. 그러고 보니 레아는 어디 있어?”

“방에.”

“왜 같이 안 오고. 싸웠어?”

“그럴 리가. 갑자기 속이 안 좋다대. 좀 쉬라고 했어.”

“그래? 이상하네. 신력을 품은 사제가 아프기도 하나?”

“그런가 보지. 그보다 말 돌리지 말고 이야기 좀 해 봐.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거야?”

레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좀 길어. 기왕이면 레아한테도 말해주고 싶으니까, 가자.”

이내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겼다.

모나크 남작가의 영주성. 레아가 묵는 방으로 갔는데, 배가 아프다며 저항하던 레아는 레브의 독촉에 끝내 문을 열고 말았다.

문을 염과 동시에 레아는 침대에 쏙! 들어가 이불로 숨어버렸다.

“레아, 왜 그래? 진짜 아파?”

“다, 당기지 마.”

“인사는 해야 할 것 아니야. 얘가 레안이야. 저번에 거울로 봤지?”

으아 으…

“아, 안녕하세요. 제가 지금 몸이 안 좋아서…”

“괜찮아요. 편하게 계셔요. 그럼… 어디서부터 얘기하는 게 좋을까.”

“어디부터긴. 처음부터지.”

레안은 어깨를 으쓱하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레브는 침대에 걸터앉고, 레아는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며 숨어서 들었다.

“너희한테 거울로 연락한 후에…”

‘레안 페테르’의 이야기가 좁다란 방을 메웠다.

+ + +

–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이 대지를 할퀴는 소리와 사각사각, 깃펜을 놀리는 소리가 어우러졌다.

제법 질 좋은 마차였다.

페테르 백작이 타고 다니는 마차에 비교할 바는 아니겠으나 실내가 적갈색 쿠션으로 덮이고, 탁자까지 들여 안락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안락한 마차라 할지라도 기나긴 여행길에 피로할 법도 한데 마차에 탄 세 사람은 글을 쓰고 읽기에 열심이었다.

“이게 소문자 L(l)…”

“티안, 아니야. 내가 보기엔 소문자 B(b)를 갈겨쓴 것 같아. 오빠, 내 말이 맞지?”

“…소문자 F(f)다, 바보들아.”

“으앙!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어!”

레리아나가 빼액! 소리쳤다.

레안은 동생과 산티안 라우노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있었다.

글자쯤이야 패밀리 보스의 손자인 산티안도 알고, 레리아나도 수업을 들어서 깨쳤지만 레안이 가르치는 건 귀족들이 쓰는 글자였다.

평민들이 사용하는 글자로는 읽을만한 책이 없었다.

그래서 레안은 자우어 자작령으로 가는 길에 글자를 가르쳐주기로 마음먹었다.

동생의 재능이 이미 싹을 틔웠으니, 그동안은 ‘동생아. 제발 가만히 좀 있어 줘.’라며 빌었다면 이번엔 아예 키워보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당연히) 페테르 백작의 지원을 받아서 좋은 마차를 빌렸고, 마부는 페테르 백작가의 기사였다.

자우어 자작령으로 가는 길인데, 타티안 후작에게 약속해둔 것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제롬 신성 왕국과 벨리타, 아스란 왕국 간의 무역로를 마련하는 걸 도와주겠노라, 레이의 이름을 팔아서 호언장담했었다.

레이가 알아서 해주겠거니… 싶긴 하지만, 이름이 너무 알려져서 오르빌에서 잠시 떠나 있고 싶었다.

에릭 형님이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겠고… 이건 레브가 해결해주기를 기다려야 하니, 그때까진 몸을 사리자.

약혼이 깨진 척하느라 크세니아를 데려오지 못한 건 아쉽지만, 대신 동생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세 사람을 태운 마차는 종일 달리다가 저녁을 맞아 정차했다. 레안이 시골 마을을 휙, 둘러보았다.

‘여긴…’

“작은 마을이네.”

“그러게. 이번엔 볼 게 없겠다.”

마차에서 내려 끄으응~ 몸을 풀던 레리아나와 산티안이 도착한 장소를 품평했다.

확실히 작고, 평범한 마을이다. 소꿉친구 시나리오의 데모스 마을처럼 100가구가 될까 말까 한.

그러나 레안은 어떤 감상에 젖어 있었다. 조용히 하룻밤 묵어갈 계획이었으나, 생각을 고쳐먹곤 촌장을 불렀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요, 나으리.”

귀족을 보면 겁부터 먹는 게 평민이다. 민서였으면 ‘쪼렙 지역이네.’라고 평했을 터인데, 레안은 예의를 갖춰 말했다.

“하루 묵어가려 하는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구려.”

“재, 재미있는 시간이시라면…?”

설마 이 귀족 놈이?

촌장의 얼굴이 거무죽죽해졌다. 이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귀족이 마을의 어느 아가씨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의심은 이내 확신이 됐다. 귀족 놈이 돈 꾸러미를 내밀었다.

“아, 안 됩니다. 귀족 나리. 제발 자비를…”

“음? 무슨 말이오.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소? 돈을 줄 테니 소를 잡으시오. 술도 내오고, 불도 피워주면 고맙겠구려.”

“네?”

“잔치를 열어달라 이 말이오. 우리 애들이 좀 뛰놀다 갈 수 있게.”

“나 애 아니야!”

“어?”

촌장은 얼떨떨하게 돈을 받았다. 인제 보니 귀족 일행에 소녀와 꼬마가 끼어 있었다.

촌장은 ‘휴, 이상한 짓을 하려는 게 아니었구나.’ 안도하며 기쁘게 미소 지었다.

역시 귀족 나으리는 통도 크지.

이내 마을 사람들이 바빠졌다.

뜬금없지만 기쁘게 잔치를 준비하였고, 미흡하지만 귀족 나리께선 개의치 않아 하셨다.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사람들을 바라보고 계셨다.

누구도 모르겠지만, 여긴 레안이 신세를 진 적이 있는 마을이었다.

아주 옛날, 베나르 타티안 후작에게 쫓겨 달아날 때, 여기에 들렀었다. 그땐 가진 게 잘난 얼굴뿐이라 저기 있는 아가씨를 꼬셔서 몸을 숨겼다.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좁혀오는 포위망.

여기서 달아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추격이 다시 따라붙었으니, 날 숨겨줬던 저 아가씨와 이 마을이 어떤 꼴이 났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젠 없었던 일이지만… 참으로 고맙고 미안했소. ─ 레안은 과거에 신세를 졌던 마을들을 차례로 들려 (페테르 백작의) 돈을 풀었다.

이 또한 없어질 일이지만, 술과 고기를 베풀었다. 북쪽으로 가는 길, 마을들은 난데없는 가을 축제 바람에 휩싸였다.

그때, 레브가 끼어들었다.

“알겠으니깐 그런 사소한 건 빼고 결론만 얘기해주면 안 돼?”

+ + +

“처음부터 말해달라니깐 진짜로 처음부터 다 말하고 앉았네.”

“아 왜, 난 재미있는데. 앗…”

레아였다.

이야기를 듣길 좋아하는 레아는 얼굴을 쏙 내밀곤 경청하다가 뺨을 붉혔다. 왕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민망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모조리 다 기억한단다.

레브, 레이, 레안, 세 사람이 각자에게 있었던 일을 죄다.

레아는 도로 “꺅!” 하면서 숨어버리고, 레안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흐름 끊지 마. 어디까지 했더라? 그래. 그렇게 레리아나랑 산티안을 데리고 자우어 자작령에 도착했지. 그런데 글쎄 자작령이…”

“…그래. 네 맘대로 해라.”

레브는 침대에 몸을 눕혔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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