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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3

33화 착한 오크(4)

4천 마리가 넘는 오크들을 도살한 결과물은 어마어마했다.

평균 D급인 말단 헌터들은 평소라면 일대일도 버거울 오크들을 손쉽게 수십 마리씩 사냥했고, 그들이 가진 물자들을 싹 수거했다.

“와… 구씨, 이것 봐. 이 캠프에만 도끼가 오백 자루가 넘어.”

채굴팀 팀장이나 하며 게이트 내 자원이나 채굴하던 김도한 팀장이나 초록색 게이트에서 짐꾼 노릇 하는 게 고작이던 구대성은 눈앞의 전리품에 넋을 잃었다.

“대단… 하네요.”

4천 마리가 넘는 오크들은 그만큼 어마어마한 물자를 보유했다.

무기부터 술, 고기, 오크 멧돼지 등 하지만 오크가 출몰하는 게이트가 으레 그렇듯 쓸만한 건 무기와 특정 아이템들 뿐이다.

“정령무기! 정령무기 찾아내야 해요!”

오크들의 무기에는 간혹 정령수들이 깃들어 있었다.

오크 주술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깃들 수 있는 무구로 최소 중급 전사는 되어야만 쓸 수 있는 무기.

대다수가 늑대의 정령 등 몸놀림을 가볍게 해주거나 바위의 정령 같은 몸을 단단하게 보호해주는 정령을 사용하므로 말단 헌터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드랍 아이템인 셈이다.

“그런데 정령 무기는 어떻게 구분하지? 난 오크 게이트는 들어가 본 적이 없어!”

채굴만 죽어라 한 김도한 팀장은 정령 무기를 구분할 수 없었다. 구대성이 말했다.

“오크들은 정령무기에 해당 정령의 이빨이나 조각을 장신구로 박아넣어요! 그런 걸 찾으면 됩니다.”

“잘 아는구먼, 구씨!”

50명의 헌터들이 죽어라 필드를 돌았다. 게이트가 워낙 커서 그런지 클로징 조건을 완수하고서도 소멸까진 시간이 넉넉히 남았다.

“흐하하하! 구씨, 이거 봐! 정령무기만 스무 자루야! 스무 자루!”

“오크 주술사의 지팡이가 일곱… 대전사의 심장이 다섯.”

대박이었다. 오크 주술사의 지팡이는 정령술사들이 애호하는 물건이었고, 대전사의 심장은 강력한 영구 강화제를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

D급 헌터가 대전사의 심장으로 만든 강화제를 섭취하면 바로 C급으로 올라갈 정도로 육체능력이 급상승한다.

워낙 강력한 효과라서 어지간한 고위 헌터들은 다들 하나씩은 섭취하는 게 기본 육성루트였다.

‘하나만… 빼돌릴까?’

그런 욕심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최소 4억은 하는 물건이었다. 만년 D급은 정 안 되면 대출받고 오크 대전사의 심장이라도 구해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오크 게이트는커녕 녹색 게이트에서 짐꾼 노릇이나 하는 자신이 언제 이런 물건을 얻어볼 수 있을까?

“끙…….”

하지만 구대성은 보관함에 대전사의 심장을 내려놓았다. 그는 강해지는 걸 원했으나 그만큼이나 양심도 굳건했다.

“크아아악…!”

그때였다.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울리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무, 무슨 짓이야, 이 망할 로봇이!”

그곳에는 야크트 스피너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한 헌터가 있었다.

* * * *

[고크록의 잘려나간 오른팔]

고크록의 잘려나간 오른팔. 레온이 휘황의 성검으로 베어낸 분신체의 잔해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문제는 이걸 어찌 하냐는 것인데.

-끼룩!

그때였다. 야피가 하리의 머리 위에서 소리를 내더니 주의를 환기시킨 것이다.

“할 말이 있는가, 스피너 경.”

-메시지. 전달. 철.

철과 대장장이의 신 헤토가 자신의 기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모양이었다.

야피는 곧장 헤토의 형상을 한 홀로그램 영상을 띄우더니 그의 말을 리얼타임으로 전했다.

[잘려나간 짐승의 팔에서 상당한 마력이 느껴지는구나, 라이온하트. 성배를 통해 흡수하면 우리들이 갈무리해 네게 도움이 될 힘을 주겠다.]

“그렇습니까.”

레온은 더 말하지 않고 수납해두었던 성배를 꺼냈다. 청주 게이트에서 지혜의 보옥을 파괴했었던 때처럼 성배에 고크록의 팔을 흡수했다.

“칫.”

고크록의 팔은 효과적으로 흡수됐지만 혀를 차는 레온. 그가 느끼기에도 이것은 성력과 비슷한 힘이었던 탓이다.

“짐승 놈들의 숭배가 꽤나 달가웠던 모양이구나.”

오크들의 주술신 고크록. 그 또한 신의 한 종류임을 인정해야 했지만, 레온은 그것을 신으로 인정할 생각이 없다.

마신과 녹색짐승들의 신. 그것들은 신이 아니라 악이다. 숭배할 가치가 없는, 소멸시켜야 할 절대 악.

따라서 레온은 그것들이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신이라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인정하는 신은 오직 피조물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신뿐.

그때, 레온의 귓가에 아리아나의 음성이 들렸다.

[라이온하트. 나의 기사여.]

“……여신이시여. 어찌 무리를 하십니까.”

의식을 치르지도 않았는데, 여신이 직접 목소리를 전했다. 레온은 과거처럼 성력이 충만하던 때가 아님을 상기시켰다.

[괜찮다, 나의 기사여. 그 삿된 짐승의 마력을 흡수한 덕에 이 정도는 수월해졌으니.]

“그러하십니까.”

[내 기사에게 이른 것은 그대의 선택이 필요한 탓이다.]

선택?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력은 농밀한 신력과 진배없다. 따라서 이 힘으로 네가 원하는 성물의 힘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 같구나.]

“그게 참말입니까?”

레온에게는 네 가지 성물이 존재한다.

첫째는 사자심장. 라이온하트의 국왕들에게 계승되는 성력으로 만들어진 가장 강대한 심장.

그 심장을 가진 자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수많은 병사들을 강화시키며 그 자신도 무한의 활력을 지니게 한다.

둘째는 성검. 성배기사들이 으레 소유한 성검들과 같은 불괴(不壞)를 기본으로 가진다. 결코 부서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휘황(輝煌), 결코 꺼지지 않는 빛. 무엇이든 베어내는 필참의 검. 지금의 레온으로선 오래 유지하기 힘든 기능이다.

성검의 마지막 힘은 너무나 강력한 힘. 그 힘을 되찾는다면…….

“성검은 보류해두지요.”

[그래, 아직은 그 힘을 되찾을 때가 아니다. 그것은 너무나 많은 성력을 소모하니 말이다.]

성검의 마지막 힘은 레온이 가진 힘 중 가장 강력한 힘. 그만큼 소모도 크다. 당장 신도들을 확보하지 못한 지금은 그림의 떡이다.

그렇게 남은 두 성물은 성창과 성배. 레온은 드물게 골똘히 고민하다 이내 선택했다.

“성배의 기능을 회복하겠습니다.”

[그래, 내 기사의 선택을 존중하마.]

아리아나는 레온의 뜻을 알고 성배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만신전의 신들이 치환한 고크록의 팔이 성배의 힘을 회복시켰다.

본래라면 의식용의 기능밖에 없던 성배가 찬연하게 빛난다. 본래의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다.

“아아….”

그 모습을 보며 레온은 감격을 숨길 수 없었다.

200년 전의 대전쟁 이후 자신 외의 모든 인간들이 죽었을 때, 성배 또한 그 빛을 잃었다.

이 무슨 불충일까. 그는 빛을 잃은 성배를 보며 그것이 안타까워 참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전투로 목마른 자신의 목을 축여주던 성배가 아닌가.

모든 기능이 회복된 건 아니겠지만, 레온은 성배로부터 성수를 생성했다.

이전과 다를 게 없는 성수 생성기능이지만, 성배의 수호자인 그는 알았다.

이 성수가 이전과는 다른 힘을 가졌음을.

“되었다. 이만하면 큰 수확이군.”

레온은 하리와 야피에게 전리품을 챙겨 귀환할 준비를 하라 이르려 했다. 하지만 하리의 머리 위에 있던 야피가 보이지 않는다.

“스피너 경은 어디로 갔지?”

“어, 그러게요? 언제 사라졌지?”

그때였다. 전리품을 쌓아두는 곳에서 웬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무, 무슨 짓이야, 이 망할 로봇이!”

그곳에는 와이어를 늘어뜨린 야피와 한 헌터가 대치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큭… 이, 이 망할 로봇이 저를 공격했….”

“성배기사를 모욕하다니, 혓바닥에 잘려나가고 싶은 게 아니라면 언행에 주의해라.”

헌터들은 얼척이 없었지만, 레온으로선 당연한 일이었다.

어찌 비천한 평민 나부랭이가 기사… 그것도 신의 선택을 받은 성배기사를 함부로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스피너 경은 본왕의 바로 아랫서열인 성배기사. 너희들은 스피너 경을 본왕을 대하듯 대해야 할 것이다.”

“무, 무슨 로봇을…….”

“그 입 닥쳐라. 천한 것이 감히 기사를 함부로 부르느냐.”

레온은 팔목을 베여 피를 흘리는 헌터를 무시하고 야피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지, 스피너 경.”

-전리품. 도둑.

야피의 기계음에 헌터가 새파래진 안색으로 부정했다.

“아, 아닙니다! 이 멍청… 아니, 오해입니다!”

“오해인지 아닌지는 뒤져보면 알 터. 한하리!”

레온이 하리에게 지시했다.

“이자의 품을 뒤져라.”

“아, 옛!”

“뭐, 뭐하는 거요! 진짜 로봇의 말 따윌 믿… 자, 잠깐만!”

-툭!

저항하는 남자의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가 떨어졌다. 벌건 피로 물든 조악한 헝겊 주머니였다.

하리는 그 주머니 안에서 큼직한 심장을 발견했다.

“이, 이건…….”

오크 대전사의 심장. 남자가 훔친 것은 오크 게이트에서 가장 가치 있는 전리품이었다.

“이게… 오해입니다. 저, 저는 결코…….”

그 순간이었다. 레온의 검이 번뜩이자 남자의 손목이 허공으로 튀었다.

“어?”

남자는 한동안 사라진 제 손목 위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상황을 파악하자 밀려오는 격통.

“으아아아아아아악! 내, 내 팔이…!”

헌터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야피를 제외한 모두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그런 그들을 향해 레온은 담담히 선언했다.

“너희들의 법과 상식이 본왕과는 다름을 안다. 허나, 너희들은 이 사자심왕의 군문에 들어왔다. 그렇다는 건 너희가 따라야 할 건 너희의 법과 질서가 아닌 사자심왕의 군법이란 소리다.”

도둑은 손목을 자른다. 그것이 라이온하트 왕국의 지엄한 국법이며 기사에 대한 복종이 목숨보다 중요한 군법이다.

“이것이 본왕의 법도이며 군법이다! 따르지 못할 자는 지금 이 자리에서 거수해라!”

레온의 선언에 헌터들은 망설였다.

이 강대한 이세계 생존자는 자신들과 괴리된 존재다.

그의 법과 규율은 현대 지구인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 엄청난 버프들…….

-D급인 내가 C급 헌터… 아니, 그 이상으로 강해진 것 같았어.

-애초에 도둑질 한 게 잘못 아닌가? 그것도 오크 대전사의 심장인데?

-젠장, 난 모르겠다.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헌터들은 망설이긴 했지만, 결국 레온의 사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격변 이후로 이 세계는 최상위 헌터들의 세상이나 마찬가지였으며 게이트에서 도둑질은 알게 모르게 죽음으로 갚아야할 때가 많았다.

어차피 게이트에서 뒤져나간 놈을 어떻게 지구에서 알아차리겠는가? 배신과 도둑질이 빈번한 게이트에선 무슨 짓을 벌여도 들킬 염려가 없었다.

오히려 레온처럼 적확한 군법과 규율을 세우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납득마저 되었다.

“저… 폐, 폐하.”

그때, 조심스럽게 나선 이가 있었다.

“이름을 밝혀라, 병사.”

레온은 그가 누구인지 앎에도 이름을 요구했다. 모두의 앞에 나서 주장하라는 요지였다.

“구, 구대성이라고 합니다.”

“어찌하여 나섰느냐, 구대성.”

“도둑질한 자의… 팔은 챙겨서 가져가도록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도로 붙이려 하느냐?”

“……예.”

현대 의학은 대격변 이후로 크게 발전했다. 특히 외상에 의한 손상은 조금만 서두른다면 금방 붙일 수 있을 정도로.

“허나, 그래서야 벌하는 의미가 없다. 너의 간언은 사자심왕의 처벌을 무색게 한다.”

“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대성은 손목이 잘려나간 헌터를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만년 D급 헌터였다. 그가 왜 오크 대전사의 심장을 훔쳤는지는 누구보다도 이해가 됐다. 무엇보다… 저이에게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

“폐하… 저희는 폐하와는, 다른 상식을 가지고 살아온 이들입니다. 폐하의 규율은 저희가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그 규율을 알리셨으니… 한번은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요컨대 알지도 못하는 군법을 지킬 수는 없지 않으냐, 도둑질의 대가로는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이치에는 맞는 말이로구나.”

“죄, 죄송합니다.”

“본디 병사의 신분은 기사에게 말대답 할 수 없음이야. 허나, 이 지구에도 마땅한 규율과 법도가 있겠지.”

레온은 성수를 생성했다. 그리곤 잘린 팔을 부여잡으며 눈물을 흘리는 도둑에게 말했다.

“네 전우 중에 이치를 말하는 자가 있음을 감사하라.”

성수를 붓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도둑의 잘린 단면에서 팔이 솟구치며 재생한 것이다!

“회, 회복됐다?”

“저게 무슨…!”

놀라운 일이었다. 이미 잘렸던 팔이 도로 자라나다니?

물론 회복을 담당하는 힐러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들도 잘린 팔을 도로 붙이는 것에 불과했다.

국내 최고의 힐러라는 S급 헌터도 급속회복은 가능해도 아예 무에서부터 세포가 자라나는 급속재생은 불가했다.

‘미친… 저런 무력에 S급 힐러를 능가하는 회복력이라고?’

‘도대체 저 사람은 뭐지? 저게 한 사람의 힘이란 말인가?’

헌터들은 물론 팔이 잘렸던 헌터조차 이 기적 앞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오히려 기적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헌터는 무릎을 꿇으며 용서를 빌었다.

“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흥. 썩 꺼져라. 너희 세계의 법도를 존중해 내 이번은 용서하나 너는 짐의 군문에 들 자격을 잃었다.”

“아아…….”

자신은 대체 무슨 짓을. 한때의 욕심에 도적질을 선택한 제 선택이 후회됐다.

레온은 그를 뒤로하고 병사들에게 선언했다.

“짐의 군문에 입대할 병사는 남아라. 그렇지 않을 자는 전리품을 나눠받고 나가라.”

누구도 나간다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전투 내내 보여줬던 그의 압도적인 힘과 기적을 목도한 자들이 어찌 나갈 수 있겠는가.

레온은 그들의 시선에 느껴지는 동경과 기대를 감지하고 만족스러워 했다.

50명 중 한 명을 방출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좋다. 그럼 곧바로 훈련에 진입하겠다. 이 훈련조차 견뎌내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진 않으리라 믿겠다.

이것은 기회다. 무조건 한다. 무조건.

헌터들은 곧 자신들의 선택에 눈물과 함께 후회하기까지 사흘도 걸리지 않았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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