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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32

330. 남매 Ep – 용도

부스스한 새벽. 넬라가 눈을 뜨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일어나기 무섭게 옆에 누운 남편을 꼬옥 끌어안았다.

갓 결혼한 부부의 달달함이기도 하지만, 추워서 그런 것이기도 했다. 북부에서 몰려올 혹한을 대비해 월동준비를 충실히 해두었음에도 추위를 완전히 막을 도리는 없었다.

이제야 가을이 끝나가는데 벌써 이러네.

넬라는 쩝, 사랑하는 남편의 배를 더듬다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부모님께서 주신 솜이불을 젖히니 새벽 공기가 역시 차가웠다.

어서 출근해야지.

침대에서 일어나 발을 디디자 바닥이 뽀스락했다. 카펫… 같은 걸 깔 형편은 안 되고, 지푸라기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에 신발이 얼지 않도록 지푸라기로 매트(mat, 깔개)를 만들어 둔 것이다. 넬라는 발로는 신발을 신고, 얼굴을 마른세수하며 일어나 불씨가 꺼져가는 벽난로에 땔감 한 줌을 집어넣었다.

“자기, 일어나요.”

─ 남편을 깨우고는 하나뿐이라 정말 소중한 주방 도구, 철 냄비에 우유를 부어 데웠다. 간단하게 상을 차려둔 그녀는 (본인은 먹지 않고)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다녀올게요.”

꼭두새벽에 나가는 아내. 남편은 분명 언짢겠지만, 넬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자작님을 봐 드릴 사람이 나밖에 없는걸. 새로 구한 시녀는 달아나버렸고.

넬라는 새벽 찬 바람을 뚫고 가 폐허나 다름없는 영주성에 입성했다. 경비병은 졸고 있었다.

그래도 시녀장이랍시고, 경비병에 한소리 해서 깨운 그녀는 곧바로 자작님의 방으로 갔다. 십중팔구 잠을 못 주무셨을 터인데…

‘어라?’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자작님께선 잠들어 계셨다.

이제야 간신히 잠드신 걸까?

침대 옆 탁자에 양초가 수두룩하고, 책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걸 봐서는 그런 것 같았다. 넬라는 그녀가 평소에 하던 대로 자작님 옆에 살포시 드러누웠다.

이게 그녀의 일이었다.

자작님께서는 곁에 여자가 없으면 잠들지 못하셨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 놀랐다. 잠자리 시녀를 구하는, 문란한 귀족에게 붙잡힌 줄 알곤 ‘나 어쩜 좋아.’ 울상을 지었었다.

달아날 것까지 생각했지만, 그럼 소작농인 우리 부모님은 어떡하지, 천근만근 무거운 마음으로 침실에 들어섰었다.

하지만 자작님께선(믿지 못했다 뿐이지 미리 말했다시피) 정말로 내게 손 한 번 대지 않으셨다. 옆에 누워 있으면 혼자 잠이 드셨다.

그렇게 자작님의 곁을 몇 년이나 지켜왔는데…

‘내가 시집을 갔지.’

넬라는 브레틴 자우어 자작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귀족이면 뭐하나.

과거에 얽매여서 잠도 못 자는데. 안쓰럽게도.

그때 자작이 끄응, 신음하며 몸을 뒤척이고, 넬라가 얼른 침대를 두드려 ‘인기척’을 내주려던 순간이었다. 브레틴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이런, 깨셨어요? 저 왔어요. 다시 주무셔요.”

“…”

브레틴은 넬라를 잠시 빤히 쳐다보았다. 안도한, 혹은 답답한 한숨을 크게 뱉고는 몸을 일으켰다.

“아침이냐?”

“네. 막 출근했어요. 어? 일어나시게요?”

“…어떻게 잠을 좀 잤구나. 아침을 차려다오.”

넬라가 ‘얼래?’ 놀라면서도 기쁜 얼굴로 달려가고, 브레틴은 두꺼운 방한용 커튼을 젖혔다. 그는 햇살이 쏟아지는 침대를 멍하니 바라보며 차갑게 굳은 피 냄새에 사로잡혔다.

침대에서 눈을 떼어낸 그는 자연스럽게 술병을 찾았다. 그때 이상한 물건을 발견했다.

제사 때나 쓰이는 기다란 삼각 촛대가 문가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게 왜 여기에 있지?’ 생각하며 촛대를 집어다가 밖으로 나갔다. 그 촛대는 복도 끝, 멀리도 가서야 제 위치를 되찾았는데, 거기엔 애타게 보고 싶지만 그만 잊어버리고 싶은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

그리고 잠시 후, 브레틴이 아침을 가져온 넬라에게 물었다.

“어제 온 손님들이 어디에 묵고 있다고 했지?”

“그… 어디더라. 아! 에리알 왕자님은 1층 객실을 쓰시고, 공주님은 저쪽 끝방을 사용하겠다 하셨어요. 시녀분들께는 제가 사용하던 방을 줬고, 시종이랑 기사님은 별채에서 묵고 계세요.”

“흐음.”

“…제가 방을 잘못 나눠줬나요? 사실 제가 나눈 게 아니라 그 시녀 언니들이 마음대로 나눈 거라서… 바꾸라고 할까요?”

“큰일 날 소리.”

브레틴이 깜짝 놀라 하며 말했다.

“네가 왕족을 처음 봤구나. 지금 온 손님들은 신분이 엄청나게 높은 사람들이란다. 나도 그 사람들의 방 배치를 함부로 바꾸지 못해. 그리고 에리알이 아니라 예리엘이야. 콘라드 왕국의 정통 후계자지.”

“여기가 자작님의 성인데도요?”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콘라드 왕국의 왕자가 여긴 무슨 일로 왔는지는 몰라도 결례를 끼쳐서 좋을 건 없으니까… 아무튼, 조심하렴.”

“네-! 저는 자작님께서 아침부터 술도 안 드시고, 제가 없는데도 잘 주무셔서 너무 좋네요.”

넬라는 경쾌하게 말했다.

왕족인지 뭔지, 평민인 그녀에겐 귀족과 별반 다를 것도 없었다.

사실 브레틴도 머나먼 왕국에서 온 왕자를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한동안 영주성이 복작거리겠거니…’라고만 생각했다.

공주님이 오밤중에 길을 헤맸는지 내 방에 들어왔던 것처럼 말이다.

나야 뭐, 왕자가 여기서 뭘 하건 신경 쓰지 않을 요량이었는데… 그 생각이 안일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디알로 브리나.

왕자가 정말이지 꼴도 보고 싶지 않은 브리나 자작가의 둘째 아들을 데려왔다. 브레틴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 * *

“저 사람은 뭐하러 데려온 거야?”

레안이 레이를 데려오는 길에 물었다. 레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저도 모른다는 듯이 답했다.

“나도 몰라.”

“네가 데려와 놓고는 모른다는 게 무슨 말이야?”

“저 사람이 왜 필요한 건지 나도 모른다고. 왠지 필요할 것 같아서 데려온 건데, 어떻게 된 거냐면…”

레이의 말을 간추리면 이랬다.

거울로 연락을 받은 직후, 레이는 깨어났다.

아스타로트가 강림해버린 20번째 회차까지의 기억을 가진 그는 모든 게 자신이 소망했던 대로 변했다는 것에 감격했다.

어머니가 살아계신다.

아스란 왕국은 분열된 적 없이 고대 마우닌-레티이 왕, 여왕의 의지를 잇고 있었으며, 에이브릴 성은 평화로웠다. 서재에 틀어박혀 책만 읽으시던 아버지도 현역 기사로 활동하고 계셨다.

감격에 휩싸인 레이는 며칠 평화를 만끽하며 무엇무엇이 달라졌는지 짚어나갔다. 없던 동생이 생겼는데, 이건 어머니가 살아계셔서 발생한 변화인 것 같고, 데호르만이 더는 대전사가 아니었다.

그 외에는 딱히… 앗!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에이브릴 성의 영주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에이브릴 성은 전과 달리 카자크 남작가의 소유였다.

바뀌기 전에도 카자크 남작가의 소유였었는데, 구일 전쟁 당시 아스터 왕국 편을 들었던지라 전쟁 직후 영지를 몰수당했다.

그리고 그 몰수된 영지에는 왕을 대신해 통치할 영주가 파견되었으니, 그게 바로 ‘디알로 브리나’다.

특기할만한 변화가 생겼으므로 레이는 영주를 만나러 갔다.

에이브릴 성은 카자크 남작가의 후계자인 ‘다니엘 카자크’가 맡아서 통치하고 있었다. 레이가 만나본바, 그는 서글서글한 인상에 조금은 고집스럽기도 한 영주였다.

평은 나쁘지 않았다.

일을 원리원칙에만 따라서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으나, 아직 젊어서 그런 것이고, 에이브릴 성의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이나르 부족을 존중해주었다.

야만인 부족의 자치를 위해 들고 일어났던 마우닌과 레티이의 바람대로다.

하지만 이건 영주가 바뀌기 전에도 그랬다. 다니엘이라는 새 영주도 이전의 영주를 대체하는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므로 레이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디알로 브리나는 어디로 갔을까? 가만 생각해보니 그는 우리와 어떤 연관이 있었다.

마침 레안이 브리나 자작이 전에 하려 했었던 밀수를 성사시켜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레이는 영주가 바뀐 게 어떤 힌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에고 브리나 자작이나 첫째 아들인 디우로 브리나가 아닌, 둘째인 디알로 브리나가 레안이 부탁한 이 일을 진행하는 데 필요하리라는 막연한 추측이다.

레이는 곧장 디알로 브리나를 찾아 나섰다.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추적술}이 통하니 부모님께는 여차저차 핑계를 대고, 쿠스를 소환해 여행을 떠났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디알로 브리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만난 디알로는 레이가 알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

“그래서 데려왔다는 거구만.”

“아, 왜 다 와서 말을 끊어.”

레안은 어깨를 으쓱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레이가 모는 마차 뒤켠에는 아주 깡마른 사내가 앉아 있었다.

왕자를 신기하게 구경하는 레라도 있지만, 어쨌든, 저게 디알로 브리나다. 이전의 통통했던 살집은 온데간데없고, 사뭇 힘겨운 나날을 살아온 듯한 상인이 되어 있었다.

둘째 혹은 서자로 태어난 이들의 숙명이었다.

아버지의 가문은 첫째가 물려받는 게 일반적이고, 둘째나 셋째 등등의 이들은 평민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래도 스타트가 좋았으니, 양질의 교육을 받아서 삶을 잘 살아갈 여건은 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그런 사람은 보기 드물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머지않아 변하리란 걸 알면서도 대비하기란 쉽지 않았고, 난데없이 평민들의 세계로 내던져진 그들은 잘 적응하지 못했다.

디알로 브리나도 그런 모양이었다.

레이는 추측으로 이야기의 결론을 내렸다.

“어쨌든 그래서 왜 저 사람이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상인이기도 하고, 브리나 자작가의 사람이기도 하니까 자우어 자작가랑 브리나 자작가 사이의 밀수를 잘 중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용도’로 우리랑 엮인 것 같아.”

“흐음… 그럴싸하긴 한데… 아니다. 잘 데려왔어.”

레안이 제 윗입술, 인중 부위를 두드리며 말했다. 레이는 그 버릇을 바로 알아보았다.

고민할 때 검지로 뭘 두드리는 게 쟤 버릇이다.

“왜. 뭐가 잘 안 풀렸어?”

“…자우어 자작이 타티안 후작의 계획을 이미 알고 있더라고. 떠보려 했는데, 싫다고 먼저 선을 그었어.”

“저런.”

이번엔 레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두 사람의 행동은 어딘지 모르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뭐, 가보면 알겠지. 너도 도착한 지 얼마 안 됐다며.”

“어제. 난 네가 나보다 먼저 와있을 줄 알았어. 저 사람(디알로 브리나)이 멀리 있었나 봐?”

“꼭 그런 건 아니고, 레라랑 조금 놀면서 움직인 탓도 있지. 맞다. 나 올해 넘어가기 전에 돌아가야 해.”

“왜?”

“레라가 그 안에 안 돌아가면 가만 안 둘 거래. 좀 억지로 데려와서 그런가… 화가 많이 났네.”

“하하.”

레안은 안다는 듯이 웃었다. 레라의 성질머리보다는 레이의 처지를.

그는 레라의 부탁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이런 레이에게 파혼이라니… 문득, 레안이 물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너 이젠 우리한테 화를 내지 않는군. 레브를 만났을 땐 두들겨 패려 하더니. 어디까지 기억하는 거야?”

“…민서가 돌아온 것까지.”

“아하. 마르하스를 잡은 기억만 없구나. 그럼 이해가 가네.”

레이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디와 쿠스가 다그닥, 나란히 걷는 걸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주어가 빠졌지만 이게 민서에게 하는 말이라는 걸 레안은 바로 알아들었다. 그는 가타부타 답하지 않고 조용히 말을 몰았다.

민서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우디는 쿠스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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