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333

331. 남매 Ep – 이복사촌

“안녕하세요. 당숙(堂叔)1) 어른을 뵙기는 처음이네요. 저는 디알로 브리나라 합니다.”

왕자가 손님을 데려왔다.

브레틴 자우어는 ‘손님이 손님을 데려와?’ 귀찮게 생각하며 내려갔고, 응접실 앞 복도에서 굳어버렸다.

나이는 비슷하지만 브레틴에게는 당질(堂姪)2)이다.

불과 5촌 관계인, 무척 가까운 인척(姻戚)3)이라 그도 반갑게 마주 인사했어야 할 터인데, 브레틴은 인사는커녕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는 문가에 서서 차갑게 말했다.

“나가십시오. 왕자님, 전 이 손님은 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고는 자리를 뜨려 했다. 허나 디알로가 다급히 일어나 그를 불러세웠다.

“자, 잠시만요. 당숙께서 저희 대고모(大姑母)4)와의 관계가 썩 편치 않으셨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십오 년도 더 된 옛일이고, 당숙께서는 자작이 되셨으니 박대하실 것까진 없지 않겠습니까.”

“…하!”

브레틴은 기가 찬다는 듯이 숨을 뱉었다. 그는 으드득, 무어라 쏘아붙이려다 말고 휑하니 걸어가 버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집주인이 축객령을 내리고 가버렸으니 뒤에 남겨진 손님들은 갈피를 잃어버렸다.

“일단 자리를 옮길까요?”

이렇게 되리라고 조금은 예상했던 레안이 상황을 수습했다. 자우어 자작은 처음 봤을 때부터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었다.

영주성에서 나온 그들은 시내라 할 것도 없는 마을의 식당을 찾아갔다. 왕자가 발을 들이기엔 다소 허름했지만, 레안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레라가 레이에게 귓속말했다.

“생긴 거랑 달리 소탈한데? 야, 그보다 저 왕자님을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 안 알려줄 거야?”

“음- 내가 바르나울에 있을 땐데, 그때 만났어.”

“바르나울? 네가 수도에 다녀온 적이 있어? 언제?”

“무슨 소리야. 내가 거기서 태어났잖…… 이런. 이, 이따가 이야기하자. 주인장! 여기 뭘 팔아요?”

“???”

레이는 애써 말문을 돌렸다. 이내 네 사람이 네모난 탁자에 둘러앉았다.

“일이 곤란해졌군요. 레이 말로는 당신이 있으면 일이 수월하게 풀릴 거라 했는데…”

“소, 송구합니다.”

디알로 브리나는 무척 낙담한 표정이었다. 그는 자우어 자작가와 브리나 자작가 간의 무역이 성사되면 중간에서 돈을 벌어볼 요량이었던 것이다.

“당숙께서 그 옛일을 마음에 품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 옛일이라는 게 뭐길래 그렇습니까?”

“별것 아닙니다. 저도 전해 들은 얘깁니다만, 그냥 흔히 있는 자리다툼이었죠. 그 과정에서 당숙의 생모(生母)가 죽고, 왕이 간섭하는 등 별일이 다 있었다지만, 뭐… 세상에 그렇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에게나 자기가 겪은 일이 큰일이고, 억울한 일이죠.”

디알로는 마지막에 힘을 줘서 말했다. 억울하기로는 둘째로 태어난 자신도 만만찮게 억울하고, 자작위를 포기하기까지 온갖 사건과 마음고생이 있었다.

모든 건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다.

디알로는 어쨌거나 자작위에 오른 브레틴의 투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레안은 아쉬움에 같은 질문을 반복하였다.

“흐음… 보아하니 자작은 허구한 날 술만 퍼먹고 있던데, 그 연유까지는 모르시고요?”

“그러십니까? 저는 몰랐습니다. 정 답해야 한다면 저희 대고모가 말씀해주신 당시 이야기를 전해드릴 순 있습니다. 대고모는 여기서 쫓겨나서 저기, 브리나 자작령에 머물고 계시거든요.”

“그거라도 알려주시지요.”

간단하게 식사하며, 레안은 대고모란 사람의 젊을 적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자우어 자작가에 시집와서 애를 낳지 못하다가 남편이 첩을 들이고, 처와 첩이 각각 아이를 낳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노라고.

결판이 난 이후 고작 15년 정도밖에 안 된 얘기라 레안이 오르빌에서 알아본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레안은 ‘그럼 뭐가 문제인 거지?’ 생각하며 자리를 파했다.

오늘은 먼 길 오느라 고생했으니 내일 자우어 자작을 다시 만나 보기로… 레이와 레라, 디알로는 따로 숙소를 구하고, 레안은 영주성으로 되돌아왔다.

자우어 자작은 방에 틀어박혀 밥도 먹으러 나오지 않았다.

* * *

“하암.”

레리아나가 길게 하품했다.

어김없이 악몽을 꾸고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하릴없이 천장을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책도 읽고, 오밤중에 운동도 하고, 별짓을 다 했다. 하지만 사위가 어두운 게, 이 지겨운 밤이 끝나려면 아직도 먼 모양이었다.

심심함을 견디다 못한 레리아나는 어젯밤을 떠올리며 밖으로 나왔다.

어제는 깜짝 놀라서인지 다시 잠들기가 어렵지 않았는데… 실례인 건 알지만, 오늘도 어제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제보다는 상태가 한결 나아진 복도. 레리아나와 레안을 뒤따라온 시녀들이 공주가 머무는 층을 열심히도 쓸고 닦았다.

하지만 십수 년간 켜켜이 쌓인 먼지를 하루 만에 없앨 순 없는 노릇이었다.

오히려 가구를 들추고 카펫을 뒤집는 둥 들쑤셔 놓아서 차갑게 가라앉아있던 먼지가 떠돌아다녔다.

난 슬리퍼를 신고 있으니 상관없다. 레리아나는 더러운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됐지. 그럼그럼.

이번에도 레리아나는 혼자 모험심을 잔뜩 발동하며 자작의 방문 앞에 다가섰다. 뭘 어쩌려는 건 아니고, 잠깐 귀만 기울여보고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한데 이번에는…

‘소름 끼치게 조용한데?’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불이 켜져 있음에도.

죽었나? 헉! 그럼 어떡해!

레리아나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문고리에 손을 얹었을 때였다.

“…뭐 하시는 겁니까?”

“꺅!!!”

레리아나가 깜짝 놀라서 뛰었다. 돌아보니 자작이 부엌엘 다녀왔는지 물컵과 접시를 들고 서 있었다.

“제게 무슨 용무가 있으십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그냥 아무 소리도 안 나길래…”

“소리가 안 나길래?”

“그, 그게… 어제는…”

레리아나가 말문을 잃고 주춤거렸다.

날 분명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야! 도, 도둑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 걱정하는데, 브레틴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들어가 주무십시오.”

그는 이 꼬마 공주님에게 관심이 없었다. 잠도 오지 않는데, 허기가 져서 먹을 걸 가지러 나왔을 뿐이다.

브레틴은 제가 간단하게 조리한 것을 가지고 공주를 스쳐 지나갔다. 문을 닫자 밖에서 도도도, 공주의 짤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후우.”

먹을 걸 책상에 내려놓고, 간단한 읽을거리를 가져다 읽으며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는 마음이 심란한 데다가 넬라 없이는 어차피 잠도 못 자니 그냥 밤낮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왕자도 꼴 보기 싫고.

자랑은 아니지만, 방에 틀어박혀 있는 건 그의 장기였다. 무슨 목적이 있어 찾아온 게 분명한 왕자는 제풀에 지쳐 돌아가리라.

식사를 마쳤다.

브레틴은 접시를 가져다 놓으러 부엌으로 갔다. 내버려 두면 넬라가 치우겠지만 안 그래도 바쁜 시녀다.

그는 이렇게 약간의 잡일 정도는 할 줄 아는 귀족이었는데…

“…이번엔 뭘 하시는 겁니까.”

“꺅!!”

공주가 부엌 찬장을 뒤지고 있었다. 손이 안 닿는지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아주 본격적이다.

공주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저, 저도 배가 고파서요.”

하지만 왜 손수? 브레틴이 물었다.

“시녀더러 가져오라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려고 했는데, 벨도 없고… 막상 깨우려니 미안해서요. 자작님이 가져간 게 여기 어디 있을 줄 알았어요.”

“…그렇군요.”

특이한 공주님이네.

브레틴은 접시를 놓아두곤 돌아가려 했으나 빈 접시를 부럽게 바라보는 공주가 눈에 밟혔다. 그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잠시 기다리시죠. 앉아서요.”

그가 할 줄 아는 요리는 요리라기보다는 조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공주가 쫄랑쫄랑 다가와 구경하려 하길래 돌려보내곤 잘 숙성된 햄을 꺼내다 데웠다. 펄펄 끓는 장에 담가서 한 번 익히고, 소스에 재워둔 것이어서 사실 그냥 먹어도 탈이 날 리는 없었다.

그래도 따뜻한 게 맛있으니까.

“와아. 대단해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고기반찬에 레리아나가 감탄했다.

어떻게 이만한 요리가 이렇게 빨리 나오지? 요리 솜씨가 대단하다며 칭찬을 늘어놓곤 암냠냠냠, 접시에 코를 박았다.

브레틴은 공주를 두고 가기 뭣해서 잠시 옆을 지켜주었다.

“그런데 왜 안 주무시고 이 시간에 돌아다니시는 겁니까?”

“잠이 안 와서요. 아니, 잠이 안 온다기보다는 자꾸 악몽을 꿔요.”

“…그러시군요.”

“자작님은요?”

“…”

무례하지만 브레틴은 대답하지 않았다. 공주가 채신머리없게 접시를 긁으려는 걸 빼앗아서 제가 가져다 둔 접시 위에 얹어두었다.

“가서 주무십시오.”

그러곤 저도 하지 못하는 일을 권하여 들여보냈다.

* * *

하룻밤의 우연한 사건으로 끝날 줄 알았던 만남은 계속되었다.

브레틴은 넬라가 출근하면 그제야 그녀의 도움을 받아 오전에 자고, 깨어나도 방에 종일 틀어박혀 있었다. 그리고 밤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와 먹을 걸 찾아갔는데, 그러면 공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낮에는 왕자가, 밤에는 공주가.

양쪽 다 목적이 있었다.

왕자는 베나르 타티안 후작의 사주를 받은 것이 분명하고, 공주는…

“맛있어요!”

먹을 게 목적이었다. 아니, 처음에는 그런 줄 알고 조리법을 알려주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제가 뭐 못 먹고 자란 줄 알아요? 이, 이런 것쯤 안 먹어도 그만이라구요!”

…못 먹고 자란 것 같다고 폄하한 적도 없을뿐더러 그런 것치곤 너무 잘 먹는데?

공주의 목적은 얼마 못 가서 밝혀졌다. “그럼 전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접시는 저기에 두시면 됩니다.”라고 말하자 공주는 누가 봐도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이 꼬마 공주님은 말동무가 필요해서 자꾸 찾아오는 듯했다.

브레틴은 이렇게 생각했다.

‘어린애네. 제 나이보다 훨씬.’

철이 덜 들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꼭 틀린 말도 아니었다.

고독을 견디는 건 어른의 일이다.

주관이 뚜렷하지 못한 어린이들은 보통 혼자 있는 걸 견디지 못하고 칭얼거리기 일쑤였는데… 브레틴은 문득 자신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옆에 있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나, 악몽이 무섭다며 주위를 뽈뽈 돌아다니는 거나, 매한가지 아닌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오늘도 시종이랑 재미있게 놀았다는 이야기를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공주를 뒤로하고, 브레틴은 침실로 돌아와 잠을 청해보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축축함에 사로잡혔다.

“으… 끄으으…”

어리석은 놈아.

침대가 온통 젖어 드는 데도 잠만 잘 잤구나. 비명은 들었느냐?

신음하며 몸을 뒤척이거든 축축하던 침대는 그새 끈적이는 점액질이 되어 그를 옭아매었다.

바짝 마른 철 냄새.

피비린내가 올라오고, 그 끈적임을 견디다 못해 고개를 돌려 “엄마…” 부르거든 허전함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피바다. 날 재워준 어머니는 없고, 침대는 피에 잠겨 있었다.

나는, 거기서 자고 있었다.

“허억!”

“앗! 죄, 죄송해요.”

브레틴이 소리치며 잠에서 깨어났을 때였다. 공주가 막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지나가는데 또 신음 소리가 나길래… 어디 아프세요?”

“…괜찮습니다.”

“물이라도 가져다드릴까요? 땀이 흥건해요.”

둘러보니 아직도 밤이었다. 그는 힘없이 말했다.

“아니요. 그냥 잠깐… 후우… 이야기나 들어주세요. 저도 뭐든 간에 말을 하고 싶군요.”

브레틴은 침대에 몸을 일으켜 앉았다. 조카뻘 되는 공주를 의자에 앉히고 제가 어릴 적에 있던 일을 털어놓았다.

어머니가 살해당한 일. 그리고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복동생5)과 그의 ‘이복사촌(異腹四寸)’의 이야기를.

1) 아버지의 사촌 형제, 종숙

2) 사촌 형제의 아들, 종질

3) 혼인에 의하여 맺어진 친척

4) 할아버지의 여자 형제

5)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가 다른 동생. 배다른 형제.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