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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34

333화.

기술의 발전은 게임제작비를 크게 올려놓았다.

인디게임이나 캐주얼게임이라면 모를까, 대작게임들은 엄청난 개발비가 들어간다. 그래도 보통 수백억에서 수천억 정도지, 1조가 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치카와 사장은 시작부터 11조를 불렀다. 예산이란 언제나 초과하기 마련이니,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금액이 필요할 수도 있다.

요즘 금액단위가 커져서 그렇지, 11조 원이면 대기업들을 몇 개씩 인수할 수 있는 돈이다. 국내에 내로라하는 게임회사를 통째로 인수하는 것도 가능할 테고.

아무리 이치카와 시게루라고 해도 다른 게 가서 이 금액을 불렀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난 그에게 물었다.

“개발비용이 충격적이네요. 일전에 인수비용으로 3천만 달러를 지원해 달라고 했던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나요?”

이치카와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악타론이라는 게임회사로, 촉각을 게임과 연동하는 기술과 관련해 여러 특허를 가지고 있습니다.”

택규가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가상현실게임은 이제까지 게임들과 인터페이스와 입출력 방식이 달라. 만약 개발을 진행하면, 그 회사 말고도 인수해야할 기업들이 한둘이 아닐 거야.”

이차카와 사장은 계속해서 말했다.

“페이스잇이 만든 VR섹스기기도 사용해봤고, 카로스가 만든 AD3도 타봤습니다. 그 제품들은 각각 포르노와 자동차 분야에서 큰 혁신을 이뤄냈습니다. 이제는 게임에서도 그러한 혁신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구상을 얘기했다.

머리에는 VR과 통신이 결합된 기기를 착용하고, 양손에는 마치 건틀릿 같은 조종기를 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캐릭터를 작동하며 필드를 누비는 것이다.

택규는 설명을 들으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패드가 진동하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거군요.”

“맞습니다. 패널티로 약간의 통증을 줄 수도 있겠죠.”

“그거 괜찮겠네요. 캐릭터가 맞으면 본인도 아프고, 때릴 때는 타격감이 오고.”

뭘 잘 모르는 우리는 조용히 듣기만 했다. 어쨌거나 재밌어 보이기는 한다.

잠시 후, 얘기가 끝나고 나자 상엽 선배가 물었다.

“지금 만드는 게임만 해도 충분히 대박인데, 왜 가상현실게임을 개발하려는 겁니까?”

“이번에 로스트 판타지를 만들며 느꼈습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게임은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누구도 만들지 못했던 게임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정신이 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그게 또 다른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이건 긴 시간과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입니다. 예전이었다면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겠죠. 이제까지 게임을 개발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투자자와 경영자들의 입김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개발 방향을 틀거나 시나리오를 고친 적도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래서 리닉스펜타곤도 나오게 됐죠.”

투자자의 이익추구와 창작자로서의 예술성은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불화로 감독이나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일도 있고.

그러나 우리는 투자한 이후 아무런 터치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게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택규는 그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찬성이었으니까.

그는 이미 가상현실게임을 만들기로 결정을 내렸다. 남은 건 내 선택인가?

개발비가 100억 달러라고 해도 그 돈을 우리가 다 낼 필요는 없다. 로스트 판타지M과 로스트 판타지 온라인으로 들어오는 수익으로도 일정 부분 충당이 될 테니까. 몇 년 동안 배당은 포기해야겠지만.

지금 기술발전 속도를 볼 때,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가상현실게임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지원해줄 기술과 자금을 가지고 있다.

카로스가 가진 인공지능, 머신러닝, 클라 컴퓨팅 기술. 페이스잇이 가진 VR기술과 빅데이터를 처리하는 알고리즘.

이건 그야말로 초대형 프로젝트다.

그리고 이치카와 시게루는 그 일을 진두지휘할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평생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어왔고, 앞으로 몇 년이 걸리든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어낼 테니까.

인터넷의 등장은 혁명이라 불릴 만큼 사람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그중 한 가지는 인간이 가진 지각의 영역을 확장했다는 것이다.

공간이란 물리적인 실체일 뿐 아니라, 의식상에도 존재한다. 그래서 인터넷은 공간이 되고, 사람들이 모인 게시판은 카페가 되고, 물건을 파는 사이트는 쇼핑몰이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온라인게임 속에서 서로 만난다.

때문에 좁은 방안에 있어도 인터넷만 되면,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다. 반대로 아무리 넓은 곳에 있어도 인터넷이 안 되면 답답함과 초조함을 느끼는 거고.

스마트폰과 무선통신기술의 발달은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과 연결되는 환경을 만들어주었고, 이제는 IOT(사물인터넷)로 진화했다.

어떻게 보면 인터넷은 구석기시대를 지나 신석기시대쯤 와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대 IT기업들은 이제 청동기시대를 열고, 철기시대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게임은 거기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게임을 술,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으로 지정하고, 셧다운제나 사전심의제도 같은 온갖 규제를 가하는 나라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국가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게임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가상현실게임은 과연 어떤 미래를 만들어낼까? 어쩌면 자율주행전기차 이상으로 세상을 바꿔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성공하기만 한다면, 개발비가 얼마가 들어가든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패한다면, 돈뿐 아니라 시간까지 날리게 되겠지만.

난 이치카와 사장에게 물었다.

“게임 이름은 뭔가요?”

“현재 로스트 판타지 온라인의 확장판으로 생각하고 있고, 일단 대륙 이름을 따서 세르아나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 순간, 눈앞에 뭔가 떠올랐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자 사람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혼자 정신 놓고 있는 것처럼 보였겠지.

난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택규가 재빨리 따라 나왔다. 둘만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난 방금 본 것을 그대로 말했다. 얘기를 들은 택규는 경악했다.

“뭐? 1억 명?”

“조용히 말해.”

“아, 알았어.”

“그런데 동시접속자 1억 명이 가능한 수치야?”

택규는 팔짱을 낀 채 생각했다.

“예전이라면 불가능했지. 그런데 중국시장이 열린 이후에는 동시접속자 수백만 명은 심심치 않게 나와. 1천만 명 찍은 것도 있고.”

“한 게임에 1천만 명이 동시에 접속한다고?”

이 정도면 웬만한 나라의 인구나 다름없다.

“온라인게임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 몰리는 특징이 있지. 아무도 안 하는 온라인 게임을 누가 하겠어? 아이템거래 같은 것도 이용자가 많은 서버일수록 가격이 올라가고, 이용자가 줄면 가격도 떨어져. 루미나의 용살검도 접속자 줄자 바로 가격이 반토막 났잖아.”

난 기사에서 본 한 IT전문가의 말을 떠올렸다.

‘페이스노트에는 모두가 있다. 왜냐하면 모두가 페이스노트에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말장난 같지만, 이 말은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

SNS를 하는 목적은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함. 그런데 기존에 SNS를 하는 사람들은 다 페이스노트에 계정이 있다. 따라서 새로 SNS를 하려는 사람은 페이스노트에 계정을 만들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온라인게임은 이용자가 많을수록 플레이의 의미가 커진다. 혼자 하는 게임이라면, 아무리 열심히 캐릭터를 키우고, 좋은 아이템을 얻어도 그저 자기만족일 뿐이다. 그러나 온라인게임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실제 화폐로서 교환될 수 있다.

만약 가상현실게임이라는 플랫폼을 선점하기만 한다면, 향후 이용자를 계속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이거 이용금액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MMORPG는 과금제 아니면 정액제인데, 이런 건 정액제로 해야겠지. 보통 2만 원이나, 3만 원 정도 하는데. 가상현실게임이면 5만이나 10만 원도 가능하지 않겠어?”

사람은 먹고 살만 해지면 유희를 찾게 된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단어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온라인게임은 다른 취미에 비해 적은 돈으로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다. 중국뿐 아니라, 인도나 아세안 같은 신흥국 시장도 얼마든지 개척이 가능하다.

요금을 매달 50달러로 잡고, 유료이용자 1천만 명을 확보하면, 5억 달러. 1억 명을 확보하면 50억 달러다.

이 금액이 매달 꾸준하게 꽂히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개발비 100억 달러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 게임은 한 번 만들어 성공시키면 큰 비용이 들어갈 일이 없다. 운영비나 퍼블리싱 비용 등을 감안해도 이익률은 수십 퍼센트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우리가 사들인 기업들 중 시총규모로 보면 OTK게임즈는 카로스와 페이스잇 바로 다음이라 할 수 있다.

앞의 두 회사는 내가 예지로 골라낸 것이지만, OTK게임즈는 택규가 그냥 투자하기로 결정한 거니까.

당시 투자한 돈은 고작 10억 엔이었지만, 지금 OTK게임즈를 인수하려면 적어도 1조 엔 이상은 줘야 한다. 그리고 가상현실게임을 성공시키면 10조 엔이나 20조 엔을 줘도 살 수 없겠지.

난 택규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어.”

택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껌뻑였다.

“응? 내가 뭘?”

* * *

지주회사라고 해서 종속회사들의 기술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협력을 요청할 수는 있다.

카로스와 페이스잇에서는 흥미를 보이며,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조건을 협상해야 한다.서상원 팀장은 미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며 서로의 조건을 조율했다.

그러는 사이 OTK게임즈는 도쿄 빅사이트에서 공개발표회를 열었다. OTK컴퍼니에 대한 반감이 높은 상태에서도 관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표를 구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건물 앞에서는 몇몇 일본 보수단체와 혐한단체가 시위를 벌이는 소동이 있긴 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아니었다.

전 세계 게이머들과 언론이 주목하는 가운데, 로스트 판타지 온라인 오픈베타서비스 시작과 함께 정식 출시일을 밝혔다.

오픈베타서비스는 모든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만큼 사실상 게임이 공개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발표가 끝날 때쯤 이치카와 시게루는 직접 나서서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로스트 판타지는 그동안 게임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스트 판타지 온라인을 그 역사의 끝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로스트 판타지 온라인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OTK게임즈는 로스트 판타지 세계관을 확장한 가상현실게임을 만들겠습니다. 이를 위해 본사를 도쿄에서 디트로이트로 옮기고 여러 회사들과 협력할 예정입니다.”

이 발표에 행사장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기자들은 질문을 쏟아냈다.

“개발기간은 어느 정도로 생각합니까?”

“현재의 기술력으로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일전에 실패에 대한 보완책은 있습니까?”

그는 짧게 대답했다.

“3년 안에 개발을 완료할 예정입니다. 얼마 전, 강진후 대표님을 만났고 모든 지원을 약속받았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중단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가상현실게임 개발…… 일명 세르아나 프로젝트는 전 세계 게이머들을 열광시켰다.

-가상현실 온라인게임을 만들겠다고?

-역시 오타쿠컴퍼니!

-겜판에서나 볼 법한 가상현실게임이 진짜로 등장하는 건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 뇌와 전기신호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그냥 VR을 활용해 시각정보만 주고받는 거니까.

-일단 시작은 그렇게 하는 거지. 나중에 기술에 더 개발되면 진짜 캡슐 같은 게 만들어질 수도 있을 테고.

-이게 과연 성공할까?

-강진후가 투자했으니, 충분히 가능성 있지 않겠어?

-개발비는 어디서 나서?

-일본공적연기금 털어먹은 돈으로 지원하겠지.

-ㅋㅋㅋ이렇게 일본이 또 세계 게임발전에 기여를 하네.

* *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오픈베타서비스가 시작됐다.

이후 정식으로 출시되어 유료화 되더라도 오픈베타서비스에서 키운 캐릭터는 그대로 연동된다. 한국에서만 동시접속자30만 명이 몰렸다.

이중 얼마나 유료로 전환할지는 모르지만, 시작부터 대박이라 할 수 있다. 직접 게임을 플레이 해본 사람들은 세계관과 그래픽, 그리고 간편한 조작성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가입자 숫자가 100만 명을 넘기며 순항하는 가운데, OTK게임즈 코리아 쪽으로 공문이 날아왔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보았다.

[로스트 판타지 온라인에 대한 자율규제 협조요청]

(전략) 아래 사항에 대한 협조를 요청합니다.

1. 청소년들의 수면권 및 학습권 보장을 위해 접속시간을 일 4시간으로 제한.

2. 청소년 결제시에는 반드시 부모 동의를 받고, 청소년의 게임아이템 거래를 차단할 수 있는 장치 마련.

3. 정식배급 전 게임중독유발지수를 측정.(지수가 높을 경우 게임내용에 대해 수정을 요청할 수 있고, 따르지 않을시 배급금지를 비롯한 제한조치 실행)

4. 게임과몰입에 대한 대책 및 기금 마련.

5.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확률고지 및 과도한 사행성 금지.

6. 게임 내 폭력성 및 선정성에 대한 자체적인 검열과 규제방안 마련.

7. 게임 내 양성평등 실현을 위한…….

그 뒤로도 요구사항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택규는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이게 대체 뭐야? 어디서 이런 걸 보낸 거야?”

여러 정부부처 중에서 이런 걸 보낼 곳은 딱 한 곳밖에 없다.

난 공문에 적힌 발신부처를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성가족부에서 보냈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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