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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35

334화.

확인을 해보니, 공문을 받은 건 OTK게임즈 코리아뿐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내용의 공문을 웬만한 게임사들은 다 받았다고 한다.

난 잘 이해가 안 되어서 물었다.

“그런데 이걸 왜 여성가족부가 보내? 게임은 문화산업이니, 문화체육관광부가 담당하지 않나?”

이런 쪽에 빠삭한 택규가 말해주었다.

“게임규제에 대한 문제는 사실상 여가부 담당이야.”

“어째서?”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여가부 산하에 있잖아. 그래서 셧다운제도, 청소년 인터넷 게임 건전이용제도,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 등을 다 여가부가 주도하지.”

난 공문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다. 일단 1항부터가 좀 황당하다.

“청소년들의 수면권 및 학습권 보장을 위해 접속시간을 4시간으로 제한하라고? 셧다운제는 이미 있다며?”

택규가 설명을 해주었다.

셧다운제는 만 16세 이하의 청소년은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 온라인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법안.

만약 그 전에 접속해있으면, 강제로 로그아웃 된다.

보스몬스터 잡으려고 같이 레이드를 뛰는데 힐러가 중학생이라면? 12시가 되는 순간 힐러는 바로 튕겨나가고, 다른 캐릭터들은 힐을 못 받아 전멸하게 된다.

실제로 온라인게임에서 이런 일은 심심치 않게 벌어졌고, 자정부근에 레이드나 집단전투 같은 협력플레이를 할 때는 나이부터 확인하는 일이 생겨났다.

“몇 년 전에는 e스포츠 대회도중 경기가 지연되며 12시가 넘자, 한국 게이머가 기권한 일도 있었지.”

“무슨 신데렐라야?”

“응. 그래서 이걸 신데렐라법이라고도 해.”

“…….”

이 사건은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 됐고, e스포츠 경기 도중 생긴 가장 어처구니없는 일로 기록됐다.

한국의 게임산업은 온라인게임이 주류다. 때문에 셧다운제는 게임업계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런데 셧다운제는 온라인게임에만 해당될 뿐, 콘솔게임이나 모바일게임은 빠져 있다.

일부 게임사들은 일부러 선정성과 폭력성을 높여서 19금으로 만들거나, 규제를 피해 해외로 옮겨가기도 했다.

이 문제에 대해 게임회사들은 계속해서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고, 여가부가 얼마 전 해결책을 내놓았다.

“어떻게?”

“앞으로는 콘솔게임과 모바일게임에도 셧다운제를 실행하겠대.”

“…….”

그야말로 천재적인 해결책이다.

“어쨌거나 이걸 4시간으로 제한하라고 하면, 아예 게임을 하지 말라는 것 아닌가?”

심지어는 그 밑에 쿨링오프제라고 해서 2시간 단위로 게임 접속을 차단하고, 10분 후 1회에 한해 재접속하게 하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적혀있었다.

난 몇 장을 더 넘겨보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13. 게임 내 획일적인 외모 기준을 제시하는 연출 및 표현 금지

13-1. 바람직한 외모 기준을 획일적으로 제시하지 않도록 합니다.

-게임 내에서 획일적 외모기준이 무분별하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캐릭터들이 전부 미남미녀로 나오면, 게임을 하는 청소년들에게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할 우려가 있습니다.

13-2. 비슷한 외모의 여성 캐릭터가 과도한 비율로 나오지 않도록 합니다.

-게임 내 여성 캐릭터들의 연령과 외모는 다양하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의 연령은 10~20대, 외모는 깨끗한 피부, 마른 몸매, 여성스런 헤어스타일, 몸매가 드러나는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연령별 외모별로 다양화시키기 바랍니다.

“이건 뭔 헛소리야?”

필요한 조항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을 보호하고, 게임중독을 방지하고, 사행성을 규제하자는데 누가 싫다고 하겠나?

그런데 대부분은 어이없고 황당한 조항들이다.

여기에 나온 규정들을 전부 맞추려면, 캐릭터 디자인부터 시작해 게임전체를 다 뜯어 고쳐야 한다.

다행히 이는 시정명령이 아닌 ‘자율규제 협조요청’이다. 강제력이 있는 게 아닌 만큼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그런데 관련부처에서 이런 공문을 받으면, 과연 어느 기업이 무시할 수 있겠는가?

택규는 분노하며 말했다.

“결국 이는 자체적인 검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창작의 자유를 알아서 제한하라는 정부의 탄압이라니까!”

“알았으니까, 좀 진정해.”

얘가 이렇게 화내는 일은 흔치 않다. 본인이 체포당해 수갑 차고 끌려갔을 때도 웃던 놈이 게임규제에 이렇게 분노할 줄이야.

* * *

우리는 OTK게임즈와 화상통화를 했다.

OTK게임즈 코리아로부터 보고를 받은 이치카와 시게루는 기가 차다는 반응이었다.

“비슷한 외모의 여자 캐릭터들이 나오지 않게 하라는 게 뭔 소리입니까? 제가 20년 넘게 이 바닥에서 일했지만, 정부가 게임 캐릭터가 미소녀인 점을 지적하며 고치라고 했다는 얘기는 처음 듣습니다.

난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은 저도 처음 들었습니다.”

“대체 거기는 뭐하는 조직이기에 이런 공문을 보내는 겁니까?”

“…….”

이걸 외국인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돼?

이치카와 시게루는 로스트 판타지 시리즈의 아버지. 그리고 이번 로스트 판타지 온라인은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낸 역작이다.

게임이라는 것은 제작자 입장에서는 자식이나 다름없다. 이를 정부의 입맛에 맞게 고치라는 제안은 그 자체로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사행성, 선정성, 폭력성에 대한 문제는 저도 인식하고 있고, 개발단계부터 반영해서 제작했습니다. 한국에 서비스를 중단하면 중단했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정 요구 따위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렇게 해서 게임이 엉망진창이 되느니 차라리 출시 안 하는 게 낫죠.”

그 말에 이치카와 사장은 살짝 감동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긴, 어느 투자자가 이렇게 말해주겠는가?

“이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시고 하시던 일에 전념해주세요.”

“알겠습니다.”

* * *

난 여성가족부가 이런 공문을 보내게 된 배경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바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온라인게임 등에 본격적인 규제가 가해진 것은 박시형 정부 때부터.

정부는 게임을 술, 마약, 도박과 함께 4대 중독으로 지정했고, 청소년들의 게임중독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셧다운제를 실행했다.

“게임, 술, 마약, 도박이 4대 중독이라는 건 알겠는데, 담배는 왜 빠져있어?”

“몰라. 각하께서 온라인게임 한 판 해보고 ‘저 게임은 해로운 게임이다’라고 했나 보지.”

“…….”

아무튼 게임회사들과 청소년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책은 여론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에 힘입어 당시 여당이었던 한국가당(현 자유국민당)은 ‘인터넷 게임중독 예방 및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름은 그럴싸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온갖 게임규제로 점철되어 있다.

다행히 이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임기만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그런데 이정혜 의원과 연나경 의원 등 자유국민당 의원들이 최근 다시 법안발의에 나섰다!

새정치당의 여러 의원들도 공동발의에 이름을 올리거나 법안을 지지했다.

정권이 바뀌며 규제가 완화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게임회사들 입장에서는 날벼락을 맞은 꼴이다. 게다가 여성가족부 신전미 장관(새정치당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는 만큼, 어느 때보다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여가부는 이렇게 게임규제에 열심인 걸까?

여기에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다.

첫째는 가장 쉽게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규제하면 학부모들이 좋아한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의 모든 부모들은 자녀들이 게임하는 것을 안 좋아한다. 그리고 부모들은 전부 투표권을 가진 소중한 유권자인 반면, 미성년자는 투표권이 없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인데, 예전에 우리 엄마가 너랑 논다고 걱정 많이 하셨어.”

택규는 깜짝 놀랐다.

“뭐? 어째서?”

“너 만나고 나서 공부 안 하고 게임만 한다고.”

내가 게임에 빠지게 된 계기는 오택규 때문. 뭐, 얘 아니었으면 MMORPG 루트니아를 할 일도 없었을 테고, 그럼 캐릭터를 팔아 반트코인을 바꿀 일도 없었겠지만.

따지고 보면, 지금 OTK컴퍼니를 있게 한 것이 바로 온라인게임이다!

택규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결국 한국대 갔잖아!”

“생각해보니, 그건 너랑 다른 고등학교로 가서 그런 것 같아.”

“…….”

둘째는 돈이다. 어느 부처든 돈이 있어야 힘을 쓸 수 있다. 그래서 예산을 다루는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부총리를 겸하고, 모든 장관들 중 서열 1위다. 그리고 다른 부서들은 각자 예산을 따오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한다.

이 법안의 핵심 중의 핵심이 바로 돈이다. 법안에 따르면 인터넷게임중독 치유센터 설립을 위해 재원을 마련하는데, 재원마련 방안을 여가부 장관이 담당한다.

여가부 장관은 이를 위해 인터넷게임 관련 사업자에게 연간 매출액 중 1퍼센트 이하의 범위에서 기금을 징수할 수 있다.

순이익의 1퍼센트가 아니라, 매출의 1퍼센트다!

게임업체가 매출 대비 순이익이 크긴 하지만, 매출의 1퍼센트면 엄청난 금액이다. 이론적으로는 적자를 보는 기업에도 기금징수가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위반사항이 발견되면, 매출액의 5퍼센트까지 추가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세상에 게임 중독자가 많겠나, 스마트폰 중독자가 많겠나?

당연히 스마트폰 중독자가 많다. 그러나 스마트폰 제조사에게 매출의 얼마씩 기금을 걷지는 않는다. 동영상 중독이 생긴다고 해서 에이튜브에게, SNS 중독이 생긴다고 해서 페이스노트에게 돈을 걷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유독 게임에만 이러한 규제를 가하는 이유는 가장 만만하기 때문.

만약 규정을 최대한으로 적용한다면, 웬만한 게임회사들은 다 망하게 될 것이다.

물론 정부가 작정하고 게임산업을 고사시킬 생각이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겠지만…….

택규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니가 지금 여가부 장관을 몰라서 하는 말이야. 이 공문을 보고도 느끼는 게 없어?”

“…….”

느끼는 게 있다.

법안이 통과되기만 하면 여가부 장관은 마음대로 게임회사들을 주무를 수 있는 권력을 갖게 된다. 그러면 게임회사들은 앞으로는 여가부 눈치를 보며 게임을 만들 수밖에 없다.

“듣고 보니 확실히 문제가 심각하긴 하네.”

그 외에도 법안에는 셧다운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현재는 만 16세 미만, 그리고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 여섯 시간 동안이지만, 새로운 법안에 따르면 이를 만 19세 미만으로 높이고, 시간 역시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 아홉 시간으로 늘린다고 한다.

이쯤 되면 미성년자는 그냥 게임을 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또한 모든 게임은 출시 전에 인터넷 중독유발지수를 측정 받아야 한다. 중독유발지수가 높을 경우 배금을 금지시킬 수도 있다. 더 황당한 것은 패치나 업데이트를 할 경우 중독유발지수를 재측정 받아야 한다.

“이게 뭔…….”

게임중독이 심각한 문제고, 해결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게임과 마약은 다르다.

마약은 그 자체로 불법이고 해악인 만큼 중독을 치료하는 한편, 철저하게 규제해서 산업 자체를 말살해야 하지만, 게임은 국민들의 여가시간을 채워주는 취미이자 오락거리라는 순기능이 있다. 그런데 최근 나오는 법안들은 게임을 그야말로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임중독자가 생겨난다고 해서 모든 게임을 해로운 것으로 취급하고 규제를 가할 경우 자칫 잘못하면 산업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

어느 나라든 규제는 있지만, 한국은 유독 심한 편이다.

한국기업은 정부의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국기업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우리 입장에서도 피해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로스트 판타지 온라인은 한국에 서버가 없다. 다만 한국에 법인을 세워 정식 서비스를 하고 있을 뿐.

애초에 한국에 동시출시된 것은 택규가 OTK게임즈에 투자하며 한국에 동시출시해줄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이지, 한국시장에 그렇게 목을 맬 만한 상황은 아니다.

이치카와 시게루는 제작단계부터 전 세계 흥행을 목표로 했다. 실제로 로스트 판타지M은 아시아뿐 아니라 북미와 유럽시장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로스트 판타지 온라인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진 상황.

따라서 한국법인을 철수하고 서비스를 중단하면 그만이다. 게임을 하고 싶은 사람은 외국서버에 접속해 계정을 만들어 가입하라고 하면 된다.

마케팅이나 각종 이벤트 등에서 제약이 있겠지만, 그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여가부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러나 택규의 생각은 달랐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규제들로 게임산업을 고사시키려하다니.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가만히 있지 않으면?”

택규는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부당한 규제에 끝까지 맞서 싸워야지!”

난 황당해서 말했다.

“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투쟁의욕이 넘쳤어?”

“지금 이 순간부터! 디스 이즈 더 모먼트(This is the moment)!”

“…….”

뮤지컬 넘버라도 부를 기세다.

택규는 노래를 부르는 대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정기홍 팀장을 불렀다.

난 인사를 건넸다.

“새신랑이 되니 신수가 훤하시네요. 신혼여행은 잘 다녀오셨나요?”

“예. 대표님과 부대표님 덕분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살면서 전용기를 타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칸쿤의 바다는 어찌나 아름다운지,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현정이와 함께 대표님과 부대표님의 배려에 감사드리며 하루를 시작…….”

택규는 그 말을 끊으며 말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즉시 국내 주요게임사들에게 버스터 콜하세요.”

당연히 못 알아들었다.

“버스터 콜이 뭔가요?”

“모이라고 전화 돌리세요. 지금부터 집단행동에 들어갑니다.”

“예? 갑자기 게임사들을 모으라구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그렇게 해주세요.”

택규는 혼자 불타오르고 있었다. 얘가 이 정도로 의욕적인 모습은 간만에 본다. 이제 웬만해서는 오택규를 막을 수 없다!

“그래.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사람이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지.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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