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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36

335화.

난 인터폰으로 직원에게 지시했다.

“내가 말한 자료들 좀 정리해서 가져다줘.”

[예, 선배…… 아니, 대표님!]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유리가 한 무더기의 자료를 들고 올라왔다.

“여기 있습니다.”

“수고했어.”

난 택규와 함께 그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세계 게임시장은 현재 약 1800억 달러 규모. 매년 10퍼센트가 넘는 고속성장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VR 등 신기술과 결합하며 성장세가 더욱 커졌다.

한국 게임시장 규모는 약 15조 원. 수출액은 전년 대비 20퍼센트 넘게 증가해, 작년에만 8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주요 수출국으로는 중국이 절반을 차지한다.

그런데 수출액만큼이나 수입액도 크다. 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나 중국.

“중국게임 구린 것도 다 옛말이야. 그동안 엄청나게 투자해서 요즘 나오는 중국게임들을 보면 한국게임이나 일본게임이라 해도 믿을 정도지.”

중국 게임시장이 커진 만큼 중국 게임업체들 역시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중국 게임회사들은 거대한 내수시장, 정부의 지원, 기술 베끼기 등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히트치는 중국게임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이중 가장 유명한 회사가 바로 위챈트. 게임뿐 아니라, 메신저, SNS, 클라우드 등 인터넷산업 전반에 투자하는 종합 인터넷기업이다.

게임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해서, 직접 게임을 개발하고 배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최대의 e스포츠를 개최하며,미국, 일본, 한국 등의 유명게임사들을 통째로 인수하거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시총은 2조4천억 위안으로 한때는 중국기업 1위이자 아시아기업 1위였으나, 지금은 그 자리를 서성전자에게 내줬다.

설립초기만 해도 위챈트는 한국 게임사들을 돌아다니며, 자신들에게 퍼블리싱을 맡겨달라고 사정사정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한국게임 수출에서 중국시장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국내 게임사들은 다들 위챈트 앞에 줄을 서서 퍼블리싱을 해달라고 사정사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요즘 중국도 게임규제가 만만치 않지 않나?”

“그래봐야 여가부 규제에 비할 바는 아니지. 그리고 걔네는 내수시장이 어마어마하잖아.”

난 계속해서 자료를 살펴보았다.

여가부는 게임산업뿐 아니라, 방송, 영화 음악 등 문화산업 전반에 규제를 가하고 있다. 음반 사전심의제를 부활시키려 한다던지,청소년 유해매체물 기준을 강화한다던지.

최근에는 에이튜브 같은 1인 방송 쪽에도 손을 뻗쳐서 양성평등 위반사례를 적발하고, 가이드라인과 규제지침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사실 한국 문화산업 규제는 문화산업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군사정권과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며 오로지 경제성장만이 지상과제였다. 따라서 학업과 근로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척결대상이었다.

게임 이전에는 만화가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돼 온갖 검열과 수난을 겪었다.

그로 인해 한국 만화산업은 사실상 망했고, 일본 만화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만화시장은 이후 웹툰시장이 열릴 때까지 기나긴 침체기가 이어졌다.

“모든 만화가 죽은 것은 아니었어. 호환마마보다도 무섭다는 불량만화를 훌륭한 콘텐츠로 바꿔놓을 수 있는 마법의 단어가 하나 있었지.”

“그게 뭔데?”

“교육.”

“아…….”

만화는 해롭고 악한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교육’이 붙어서 ‘교육만화’가 되면, 이롭고 훌륭한 것이 된다. 일반 만화시장이 초토화되는 동안에도 교육만화 시장은 그야말로 무풍지대였다. 그러니 ‘마법천자문’이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교육만화가 탄생할 수 있었겠지.

“게임산업은 만화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규모가 커. 그리고 1인 제작이 가능한 만화와는 달리 전문인력과 거대자본이 투입되는 만큼 한번 산업이 붕괴되면, 다시 일으키기가 힘들어.”

당연하지만, 모든 산업에는 규제가 필요하다.

문제는 그 정도다. 적절한 규제는 산업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더욱 키워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되지만, 과도한 규제는 아예 싹을 잘라 버리게 된다.

차라리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다 같이 규제한다면 그나마 낫다. 그런데 한국만 유독 심한 규제를 가하면 손발을 묶은 채 싸우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해서 국내 게임회사들을 박멸했다 치자. 그럼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천만에. 게임산업 수출입 규모를 보면 알겠지만, 국내게임이 망한 자리는 당연히 외국게임들이 채우게 된다. 만약 여가부가 똑같은 규제를 외국회사들에게 들이댄다면, 당장 WTO에 제소될 것이다.

결국 과도한 규제는 국내 게임산업만 붕괴시킬 뿐,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 * *

OTK컴퍼니 본사 대회의실.

회사 내에서 가장 큰 회의실에는 약 50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정기홍 팀장의 버스터 콜(?)을 받은 게임회사 대표들이 비밀리에 모인 것이다.

LC소프트의 김진택 사장, NA게임즈의 주원홍 사장, 렛마블의 하유식 사장 등등.

대기업, 중소기업, 상장기업, 비상장기업 등. 국내 중요 게임사들은 다 모였다고 보면 된다.

상석에는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택규가 앉아있고, 나와 상엽 선배는 옆으로 빠졌다. 택규는 양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린 채 깍지를 낀 채 괜히 무게를 잡고 있었다.

대형게임사 사장 몇 명은 파티장 등에서 본적이 있는 눈치지만, 대부분은 누군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쟤 누구야?’

‘왜 강진후가 아니라, 알바생 같은 애가 저기에 앉아있어?’

‘회의실을 잘못 찾아온 거 아니야?’

‘아니면, 혹시 저분이……?’

‘설마……?’

대략 이런 눈빛들이 오고갔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택규를 소개시켜주었다.

“OTK컴퍼니의 오택규 부대표입니다.”

몇몇을 빼고는 다들 깜짝 놀랐다.

“오! OTK컴퍼니 부대표님!”

“OTK컴퍼니의 문화산업 투자를 진두지휘한다는!”

“서브컬처 발전을 위해 OTK상을 제정하신 바로 그분!”

게임업계에서 OTK컴퍼니 부대표의 존재는 매우 잘 알려져 있다. 이치카와 시게루에게 투자해 로스트 판타지M을 성공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택규는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게임업계의 어려움을 청취하기 위해 여러분들을 이 자리로 모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즐겨하던 게임을 개발하신 분들을 이렇게 한 자리에서 뵙게 되니 대단히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소개 시간이 있었다. 다들 마이크를 잡고 일어나서 이름을 말했다. 가만히 소개를 듣던 택규는 입을 열었다.

“훈게임과 파밍게임 사장님. 두 분은 나가셔도 좋습니다.”

그러자 그 둘은 깜짝 놀랐다.

“예?”

“어째서입니까?”

택규는 딱 잘라 말했다.

“저는 고스톱과 포커는 게임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그냥 도박이죠. 그러니 그쪽 일은 그쪽끼리 알아서 상의하세요.”

훈게임 장수환 사장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저희는 바둑이도 있습니다!”

“…….”

누가 들으면 바둑게임인 줄.

두 회사가 고스톱과 포커, 바둑이(?)로 성장하긴 했지만, 이미지세탁을 위해 모바일게임과 온라인게임에도 열심히 투자하고 있다.다 망해서 그렇지.

둘은 그 점을 열심히 얘기했고, 다른 게임회사 사장들도 나서서 편을 들어주었다. 택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둘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자기소개가 계속됐다. 이번에는 중년의 배나온 한 남성의 차례였다.

“저는 언더더씨소프트의 사장 주동수입니다.”

“뭐? 언더더씨?”

택규는 분노하며 소리쳤다.

“나가!!!”

“자, 잠깐만요, 부대표님!”

“잠깐은 무슨. 당장 끌어내!”

보안직원들이 주동수 사장을 밖으로 끌어냈다. 이번에는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당황하던 나는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전설의 씨스토리.”

때는 바야흐로 2004년. PC방의 등장으로 아케이드게임계가 어려움을 겪던 시절, 씨스토리라는 아케이드게임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런데 이게 말이 좋아 아케이드지, 사실은 파친코에 가까웠다.

어찌나 중독성과 사행성이 강한지 씨스토리 열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너도 나도 씨스토리 게임기를 들여놓기 바빴고, 이를 베낀 유사한 게임들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로 인해 재산을 날리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자,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졌다. 결국 사장은 구속됐고, 게임기는 전부 몰수해 폐기됐고, 게임회사는 문을 닫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게임에 대한 인식이 극도로 악화됐고, 게임물등급위원회가 탄생했다. 문제는 사행성 게임뿐 아니라, 일반 게임들까지 싸잡아서 규제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언더더씨소프트는 예전에 씨스토리를 만들었던 관련자들이 다시 차린 회사. 저놈들 때문에 게임업계가 피해본 거 생각하면 쫓겨나도 할 말 없다.

정기홍 팀장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런 회사인지 모르고 불렀습니다.”

게임에 대해 잘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

자기소개와 자리정리가 끝나고 나자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됐다.

현재 한국 게임업계의 가장 큰 관심사는 국회에 발의된 ‘인터넷 게임중독 예방 및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이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되면, 게임업계는 그야말로 여가부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모든 게임사들은 공포에 떨며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이런 상황에서 OTK컴퍼니에서 연락이 오자, 바로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김진택 사장이 먼저 어려움을 호소했다.

“인력고용하지, 수출해서 외화 벌어오지, 국민들 여가시간 채워주지. 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습니까?”

“여가부에서는 게임규제하면서, 정작 정부에서는 게임수출 많이 하라고 합니다. 이게 한국은 탈원전하면서, 외국에 원전 수출을 장려하겠다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불법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쁜 일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규제와 검열에 지쳐서 회사를 그만두고 떠나는 개발자들도 많습니다.”

“가끔은 무슨 유해물 만드는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릴 정도입니다.”

“저는 모두가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식에게 게임 만든다고 말하기가 부끄럽습니다.”

“학교에서 어떤 아이는 아빠가 콘덴싱 만든다고 자랑했다는데, 제 아이는 그 앞에서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게임 만드는 게 죄입니까?”

돈도 돈이지만, 직업적 자부심이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게임을 마치 불법산업처럼 취급하니, 개발자들의 의욕이 생길 리가 없다.

몇 시간에 걸쳐 얘기가 이어졌다.

각자의 토로가 끝나고 나자 택규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네요. 이러다가 정말로 대한민국 게임산업이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택규는 회의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게임회사들이 돈 버는 데 혈안이 돼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도 인정하셔야 할 겁니다. 업계에서 사행성과 중독성에 대한 규제방안을 마련했다면, 게임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로 엉망이 되지도 않았을 테고, 이렇게 강력한 규제법안이 나오지도 않았겠죠.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형게임사들이 먼저 책임의식을 갖고,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규제방안을 만들어야 할 겁니다.”

몇몇은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지만 반박하지는 못했다.

택규의 말대로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온 것에는 대형게임사들의 잘못도 크다. 오죽하면 뽑기와 과금에 화딱지 나서 여가부 편을 드는 게이머들도 있겠는가?

택규는 안경을 치켜 올리며 괜히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저를 믿는다는 건 어떤 상황이 오든 두려워하지 않고 반드시 최고의 결과를 보리라 기대하시는 겁니다.”

그 말에 게임회사 사장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저, 정말입니까?”

이 말은 게임규제에 대해 OTK컴퍼니가 총대를 메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OTK컴퍼니가 정재계에 가진 영향력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LC소프트 김진택 사장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부대표님을 전적으로 믿겠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다른 사장들도 하나씩 일어났다.

“저도 그렇습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최고의 결과를 보리라 기대하겠습니다!”

“믿습니다!”

“믿고 따르겠습니다!”

“…….”

이게 무슨 신앙 간증하는 것도 아니고.

택규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게임규제에 대한 문제는 전적으로 저한테 맡기시고, 여러분들은 그저 좋은 게임을 만드는 데만 신경 써주십시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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