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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37

335. 소꿉 Ep – 갈림길

“장난치지 마.”

“흠. 어떻게 알았지?”

레안이 순순히 실토했다. 레브는 어이가 없는 동시에 소름이 돋았다.

이 녀석은 연락을 받아 깨어난 그 짧은 순간에 상황을 파악하고, 장난칠 생각을 한 것이다.

하긴, 왕궁에서 쫓겨나 길바닥을 전전했을 때도 똑똑했으니… 왕자로 자라난 지금은 오죽하겠는가.

레브가 확인차 물었다.

“너는 널 ‘22번째 레오’로 알고 있지? 레이가 마르하스를 잡은 것까지 기억할 테고.”

“……아~ 지난 회차에서 레이한테 연락했구나. 레이는 자길 20번째 레오로 기억했나 봐? 하하하. 아쉽네. 장난을 좀 쳐보려 했는데… 맞아. 내가 22번째야.”

녀석은 귀신같이 알아들었다.

지난 회차에서의 레이도 지금의 레안과 같은 상황이었다. 마르하스가 사라져 역사가 바뀌었고, 다른 삶을 살아온 상태였다.

하지만 기억은 중복해서 가지고 있었다. 제가 살아온 삶의 기억과 19번째 회차까지의 기억을.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레브는 실소하며, 레안이 이렇게 똑똑하니 이야기가 쉽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산열매가 담긴 주머니를 벗어 내려놓고는 근처 바위에 등을 기대며 쪼그려 앉았다.

레안을 비추는 거울 뒤쪽도 부산스러운 게, 녀석도 장소를 옮기는 듯했다. 이윽고 한쪽은 숲, 다른 한쪽은 찬란한 왕성을 배경으로 왕자와 평민이 대화를 나누었다.

“목걸이는 고쳤어? 음~ 잘 풀렸나 보네. 내 동생은 잘 살았고?”

“…응. 잘 살았지. 하고 싶은 거 다 해봤나 보더라. 이번엔 할머니가 된 사진이 나왔는데, 네 동생은 그 나이가 돼서도 예뻐.”

“하하. 그래? 엄청 장수했나 보네. 결혼은 아마 산티안이랑 했겠지?”

“응. 새끼, 그 녀석은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나 몰라. 맞다. 네가 조금 알아냈는데, 산티안 라우노가 바눈 라오노의 후손이더라. 우리랑 무슨 연관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완전히 파헤치지는 못했어.”

“왜?”

잠시 팔 부러진 거지 이야기가 오갔다. 레안은 “흐음. 바네카 라오노라…” 중얼거렸고, 레안은 어깨를 으쓱하며 주제를 돌렸다.

“대신 다른 건 확실하게 알아냈나 봐. 네가 아스타로트를 잡을 방법이 있다고 했어.”

“그래? 어떻게?”

“녀석을 제 꾀에 빠뜨릴 거래.”

“…”

“…”

“뭐야? 끝이야?”

레브가 머리를 머쓱하게 긁었다.

“응. 그게… 네가 뭘 생각해두긴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내가 정리해서 넘겨준 게 있을 거 아니야.”

“바로 그걸 못 알아먹겠다고.”

“이런. 민서는 뭐래?”

“민서는 아무 말도 안 했어. 걔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나 봐.”

민서의 평판이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레브는 적당히 거짓말했다. 진엔딩이 어떻게 났는지,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 아니겠는가.

레안은 못내 미안한지 앞머리를 산만하게 넘겼다.

“아이고… 내가 정보를 너무 안일하게 넘겨줬나 보네. 그럼 어쩔 수 없겠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다 들어보는 수밖에.”

“그게 무슨 일이 있었냐면…”

“잠깐. 그렇게 개요만 후루룩 말해서는 별 도움이 안 될 거야. 거울로는 오래 못 떠드니까… 미안하지만 루티나에 와줄 수 있을까?”

“내가?”

“응. 민서의 계획이 바뀌지 않았다면 넌 어차피 아이셀 왕국으로 가야 하잖아. 가는 길에 들러.”

“…”

“왜? 계획이 바뀌었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레브는 잠시 망설이다가 알겠노라 답했다. 하지만 일개 평민이 왕자를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닌지라, 레안이 약속했다.

“안내인을 한 명 보내둘게. 루티나 남문에다 대기시키면 될 것 같은데, 오는 데 얼마나 걸리려나?”

“음… 아니야. 어쩌면 안 갈 수도 있으니까, 다른 방법을 찾자.”

“…알았어. 그럼 네가 나를 부르는 거로 하자. 내가 에릭 형님이 썼던 방을 쓰거든? 그 아래, 정원에 종을 묻어둘게. 아침에 와서 창으로 던져. 비밀 통로는 기억하지?”

에릭 드 예리엘이 썼던 방.

루티나 왕성 3층에 창문이 테라스처럼 돌출된 방이다. 정원 우물로 통하는 통로도 당연히 기억이 났다.

“일단 레이는 내가 깨워둘게. 네가 그쪽으로 가다가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고마워.”

더 이상 나눌 이야기가 없어서, 레브와 레안은 서로의 안부를 걱정해주곤 연락을 끊었다.

“그쪽으로 가다가라…”

레브는 산산이 깨진 거울을 품에 갈무리하고, 산기슭을 돌아 내려왔다. 뙤약볕이 나뭇잎 틈새로 파고들길래 손을 들어 가렸다.

부끄럽다.

레안은 내가 무슨 생각인지 알아챈 듯했다. 민서의 계획대로라면 나는 아이셀 왕국을 향해 달려야 할 터인데, 정반대 방향, 제롬 신성왕국으로 가려는 걸 눈치챈 거다.

[ 업적 : 왕 4/6 ]

사실 민서의 계획을 따르는 게 옳았다. 23/24. 남은 회차는 다음이 마지막이고, 아직 만나지 못한 왕은 두 명이나 있었다.

저 업적을 완료하면 무엇이 주어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민서는 저게 아스타로트를 잡는 데 필수적인 것이리라 확신했고, 각 시나리오에 주어지는 시간과 장소, 남은 회차를 고려해 일감을 배분했다.

지난번, 마지막 거지남매 시나리오가 ‘예쁜 목걸이’를 고치기 위해서 진행된 것이라면, 나는, 이 소꿉친구 회차는 순전히 저 [왕]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된 셈이다.

마지막 시나리오에 모든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민서는 약혼관계 시나리오를 최후의 회차로 선택했다.

쩝.

물론 약혼관계 시나리오의 레오, 레나가 다른 레오들/레나들 중에서 가장 강하니 납득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단지 나에게는 이번 회차가 마지막이라는 게 목에 걸린 가시와도 같았다.

이번 회차에서 하는 내 행동이, 영원히 고정되는 것이다. 복수는 단 한 번만. 지난번에 세사르를 회를 쳐놓고 끝내려 했던 이유처럼.

‘레아랑 하루라도 더 함께하고 싶은데…’

여섯 사람의 시간과 장소를 고려한 민서의 계획에는 당연히 레아의 거취1)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루테티아에 가서 성녀를 만나고, 황동 술잔을 받아와야 했다.

그건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물건인 동시에 ‘왕’ 업적을 깨러 가야 하는 레브와는 정 반대 방향에 있는 물건이었다.

결국 소꿉친구 시나리오의 레나와 레오, 두 사람은 따로 움직여야 할 운명이었나 보다. 그래서 레아에게만 ‘{사제} 이벤트’라는, 레오 없이 혼자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주어져 있었는지도…

레브는 후-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우거지상은 풀고,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었다.

밤새 고민했지만, 정해진 갈림길.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 * *

마을로 도망쳐온 레아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머리에 끈질기게 붙어있는 코코렌을 떼어내길 포기하곤 마을 어귀에 주저앉았다.

레브가 내게 고백했다.

사실 그럴 기미가 없었던 건 아니다. 피차 말은 안 했지만, 호감이 있고, 만약 내가 누군가와 결혼한다면 레브 이외의 사람을 상상할 수 없었다. 다만 갑자기 왜? ─ 놀랐을 따름이다.

‘하긴. 레브도 곧 성년이지.’

어엿한 어른으로 취급받기까지 고작 반년이 남았다.

슬슬 결혼 압박이 들어올 시기고, 이미 가정을 꾸리는 게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다. 나도 언제까지 애처럼 굴 수만은 없었다.

사제라…

레아는 그제야 어깨에 걸린 가죽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한참 더 많이 따왔어야 했는데, 일손을 다잡을 기분이 아니었다. 교회에 가서 공부할 마음도 들지 않고.

턱을 괴고, 인생이라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한 소녀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자신이 당치않은 꿈을 꾸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마음속에 오래도록 품어왔던 꿈이 나비 떼처럼 일시에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 끽. 끼익.

“내려오려면 내려오든가, 있으려면 가만히라도 있든가!”

그렇다고 나비 떼가 가슴에 가만히 앉아 있게 내버려 두자니 주변이 눈에 밟혔다.

부모님은 외동딸이 얼른 시집가길 바라실 테고, 시집갈만한 상대도 있다. 레슬리 수도사님께서 여러모로 응원해주시지만, 현실성은 없었다.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 레브, 수도사님과 사제님 모두의 오냐오냐하는 누그러짐 속에서 결정을 미뤄왔을 뿐… 레아는 본인이 오늘 날씨처럼 미적지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할까.’

레아는 순간 아찔해졌다. 주저앉은 마을 어귀, 눈앞은 탁 트여 있는데 낭떠러지가 날 잡아 삼키려는 것만 같았다.

사제가 되길 포기하면 저기로 굴러떨어지는 것만큼 빠르고 편하겠지. 레브랑 결혼하고, 이 마을에서 쭈욱- 행복하게 사는 거야. 레슬리 수도사님 보기만 좀 민망하겠네.

레아는 이번엔 화가 났다.

이 마을과 산열매가 지긋지긋하고, 대뜸 고백해온 레브가 원망스럽다. 그것들이 내 삶의 전부라는 걸 끝내 부정하고 싶었다.

아-! 누가 나 좀 안 데려가 주나. 저 멀리 루테티아로! 세상에서 가장 큰 교회와 성녀님을 향해 여행하고 싶어라!

– 끽?

하지만… 그러려면 거대한 행운이 따라야 할 터였다. 레아는 짝짝, 제 머리에 앉은 코코렌에게 의례적인 기원을 올렸다. 에휴, 한숨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중얼거렸다.

“언제까지 붙어있을 참이야. 그만 내려와. 나도… 마음을 정했어.”

내가 사제는 무슨. 그냥 남들처럼 사는 게 당연한 것을.

레아는 현실을 인정하고 힘없이 걸음을 돌렸다. 그녀는 오늘 아플 예정이라, 곧장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은 남의 집 밭을 열심히 매어주고 계실 건데, 딸이란 것이 먼저 드러누워 있으려니 가슴이 켕겼다. 그녀는 드러눕진 못하고 (‘얘는 언제까지 붙어있으려는 거야?’) 집 안 소일거리를 찾았다.

비좁은 집이지만, 하려고 하면 일감은 얼마든지 있었다.

나무 바닥을 쓸고, 문틀을 닦았다. 부엌도 정리해 놓고, 빨랫감이 있는지 확인하러 나갔다. 그때, 레브가 집으로 돌아오는 게 보였다. 레브네 집은 바로 옆집이었다.

마음은 정했지만, 각오는 못 했다.

레아는 싸리나무 담장 뒤에 숨어 레브가 집으로 들어가길 기다렸다가 허리를 폈다.

아고, 슬슬 열이 나려 하네.

기분이 너무 나쁘면, 몸이 아프다.

이럴 때면 보통 긍정적인 생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몰아내지만, 이번에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끙끙, 앓아눕고 싶은 기분이다. 일어났을 땐… 각오가 되어 있겠지. 앞으로의 인생을 이 마을에서 심심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각오가.

– 끽끽~

“이제야 가네. 어? 잠깐! 왜 하필 그리로…”

막 돌아서려는 찰나에 코코렌이 뛰어내렸다. 그것까진 좋은데, 신이 나서 달려가는 방향이 문제였다.

왜 하필 사람 사는 집으로 들어가. 무슨 사고를 치려고.

코코렌은 머리랑 꼬리, 몸통까지도 쥐를 닮았다. 하지만 엄연히 팔다리가 있고, 손바닥이라 할만한 것이 달린 놈이라 세간살이를 어지럽힐 능력이 충분했다.

레아는 녀석이 레브네를 쑥대밭으로 만들기 전에 잡아다가 던져버릴 요량으로 뒤쫓아갔다. 다행히 녀석은 레브네 집 마당을 뛰어다닐 뿐,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요 녀석! 말썽 피우지 마!”

– 끽끽끽~

코코렌이 빨라 봤자 코코렌이지!

나무도 잘 타지 못하고, 달리기도 못 하는 동물이다. 어떻게 천적한테 안 잡아먹히고 사는지 원. 코코렌은 별 힘을 들이지 않고도 레아의 손에 잡힐 위기였는데…

“어?”

코코렌이 담장에 기대어 있던 웬 나무토막에 달라붙어 숨었다. 그래 봤자 머리만 숨겼다 뿐이지 몸통은 훤히 보였는데, 레아가 놀란 까닭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레브가 고백하는 바람에 깜박 잊고 있었다. 저건 아까 내 손에 뿅! 하고 나타났던 나무 지팡이였다.

깜짝 놀라서 바로 던져버렸는데 이게 왜 여기에? 레아가 (코코렌과 함께) 지팡이를 틀어쥐었다. 그러자 몸이 으슬으슬 아파 오던 게 단번에 날아갔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뽀글뽀글 차오르는 신력. 레아는 어리둥절해하고, 코코렌은 그 틈을 타 호다닥 달아나 버렸다.

녀석이 먼 길을 돌아 본디 제가 있었던 자리로 돌아왔을 땐, 해가 저물고 있었다.

1) 사람이 어디로 가거나 다니거나 하는 움직임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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