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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37

336화.

허창민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양성평등을 내세웠고(이는 모든 후보가 마찬가지였다), 취임 후에 여성가족부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장관으로 새정치당 중진인 신전미 의원을 임명했고, 예산을 전년대비 40퍼센트 증액시켜 주었다.

여가부는 외교부, 통일부, 국토교통부 등과 비교해 규모가 작고, 행정적 권한이 별로 없다.

기획재정부에는 국세청과 관세청이, 행정안전부에는 경찰청과 소방청이, 법무부에는 검찰청이 있지만 여성가족부에는 소속기관이 없다.

게다가 소관업무는 대부분 다른 부처와 겹친다. 예를 들어 청소년보호는 교육부와, 문화산업 규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성범죄나 성매매는 경찰청이나 검찰청과.

그러나 신전미 의원이 장관이 된 후로는 정부와 여론의 지지를 업고 점점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이러다 보니 자연히 다른 부처와 업무가 부딪쳤다.

정부가 정책을 발표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 회의를 거쳐, 각 부처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그러데 유독 여가부만은 따로 놀기 일쑤였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포르노 합법화에 대한 문제.

대통령 지시사항이고 여당이 당론으로 찬성하는 상황에서 여가부만 자유국민당과 함께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자꾸만 손발이 안 맞는 모습이 연출되자, 여권 내부에서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몇몇 장관과 의원들은 불만을 가졌지만, 신전미 장관은 여성계와 시민단체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때문에 불만이 있더라도 다들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신전미 장관은 이정혜 의원의 법안을 지지하며, 모든 포르노사이트를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르노는 여성을 성상품화하고, 여성인권을 후퇴시키고, 양성평등을 저해하며,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칩니다. 인터넷상에는 몰카와 리벤지 포르노가 넘쳐나고, 지금도 수많은 피해자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음란물을 무분별하게 유통시키는 사이트를 차단하는 것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마땅히 취해야 할 조치입니다. 일부에서는 성인물 전체를 금지시킨다는 오해가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심의를 통과한 합법적인 성인물은 얼마든지 시청이 가능합니다.”

-이보시오. 그래서 여가부가 말하는 합법적 성인물이 대체 뭐요?

-정식으로 발매된 애로영화죠. 애마부인 같은 거.

-요즘 그걸 누가 봐?

-몰카와 리벤지 포르노 유포한 놈들은 사형시켜도 상관없으니, 제발 그냥 포르노는 좀 허용해달라고!

-소용없어요. 신전미 장관이 있는 한 답 없음.

-페이스잇 접속 막혔네. 이거 왜 이래?

-SNI 암호화하거나, VPN으로 우회하세요. 아무리 정부가 인터넷을 검열해도 방법은 있음.

-나도 알아. 다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게 짜증나서 그러지.

-진짜 성인이 성인물 못 보게 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대한민국밖에 없을 듯.

-그냥 이민 가고 싶다.

포르노를 허용해 달라는 여론이 빗발쳤지만, 신전미 장관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번 게임규제법안 역시 마찬가지다. 문체부는 셧다운제를 포함해 게임업계와 시민단체가 모여 폭넓은 논의를 해나가자는 입장이었지만, 여가부 혼자서 규제를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가부는 규제권한을 갖게 된 뒤, 그야말로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전가의 보도를 휘둘러댔다.

이중 주 타깃은 당연히 게임이었다.

음반이나 영화에 비슷한 규제를 가한다면, 잘나가는 한류에 왜 찬물을 끼얹느냐며 비난을 받게 되기 쉽다.

실제로 노래가사에 술과 담배만 들어가도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하고, 성평등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을 배포해 여성 아이돌가수들의 외모가 획일적이니 출연을 규제해야 한다고 했다가 엄청난 여론의 질타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게임은 그러한 문제에 대해 자유롭다. 음반이나 영화에 비해 사회적 인식이 뒤처져있는 데다가, 업계 역시 자기들 이익 챙기는 데 몰두해 자율규제나 사회적 인식 개선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발은 적은데 때리면 때릴수록 학부모들 표가 쏟아진다. 우리집 애가 공부 못하는 이유는 전부 게임 때문 아니겠나?

신전미 장관은 의원시절부터 게임규제에 앞장섰다. 여가부 장관자리에 오른 지금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포르노든 게임이든 정부가 유해매체를 철저하게 통제해 청소년과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게임 내의 선정성과 폭력성, 그리고 양성평등을 저해하거나 여성에 대한 차별적 요소가 없는지 면밀하게 검토해서 이에 어긋나는 게임들은 시정권고하고, 따르지 않을 경우 배급 금지 및 과징금을 매기는 방안도 고려하겠습니다.”

포르노와는 달리 여기에는 돈까지 걸려있다. 여가부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더 필요했고, 게임회사들은 돈을 걷기 가장 쉬운 대상이었다.

때문에 ‘인터넷 게임중독 예방 및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의 통과가 절실했다.

신전미 장관은 자유국민당 의원들과 손을 잡고 법안 통과에 힘쓰는 한편, 게임중독의 위험성을 알리는 여론몰이에 나섰다.

* * *

출근해서 게임만 하던 택규는 오랜만에 바쁘게 움직였다.

먼저 게임업계에서 자율규제안을 내놓기로 했고, 이를 위해 게임회사들이 모인 협회를 만들기로 했다.

규제라는 건 강제성이 있어야 하는 만큼 협회에 큰 권한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대형개발사들이 양보해야 한다.

자율규제안에 대한 초안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다만 대형게임사들의 거부로 그걸 합의하지 못했을 뿐. 왜냐하면 아예 규제가 없는 편이 돈 벌기 편했으니까.

국내게임들의 사행성 문제는 심각했다. 게임을 즐기게 만들 생각은 안 하고 과도한 현질만 유도하다가 망한 게임들도 한둘이 아니다.

이중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일명 랜덤박스라 불리는 확률형 아이템.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계속 뽑도록 유도하는 것도 문제고, 확률이 로또당첨만큼이나 극악한 것도 문제다. 일부 게임의 경우 운영진이 확률을 조작하다가 걸리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게임에 대한 인식이 점점 안 좋아졌고, 게이머들도 외국게임으로 등을 돌리며 ‘한국게임 망해라!’를 외치게 된 것이다.

택규는 LC소프트 NA게임즈, 렛마들 등 국내 5대 게임사를 따로 불러 모았다.

“법안의 내용과 여가부의 행보로 볼 때, 통과되면 게임업계 전체에 큰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예 끝장날 수도 있어요. 그전에 업계가 먼저 자율규제안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택규는 OTK컴퍼니 부대표라는 점을 내세워 찍어누르기보다 열심히 그들을 설득했다.

“자율주행전기차가 도로를 달리는 거 보셨죠? 일전에 잘나가던 자동차 기업들은 줄줄이 망하게 생겼고요. 제가 장담하는데 게임업계에도 앞으로 비슷한 지각변동이 일어날 겁니다. 랜덤박스로 당장 애들 코 묻은 돈 긁으며 좋아할 때가 아니에요. 앞으로 더 큰 시장이 열릴 걸 준비하셔야죠.”

반나절에 걸친 설득 끝에 결국 5대 게임사 사장들은 협회에 권한을 위임하고 자율규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사장들이 돌아간 뒤 택규가 말했다.

“이번에 국회에 발의한 법안이 상정되지 않더라도 여가부가 게임규제를 담당하는 한 비슷한 일은 언제든 반복될 거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딱 하나야.”

“그게 뭔데?”

내 물음에 택규는 안경을 올려 쓰며 말했다.

“여가부가 문화산업 규제에서 손을 떼고 문체부로 넘기는 거지. 애초에 여성가족부와 문화산업은 별 관계도 없잖아.”

성매매여성 지원하라고 책정한 예산 120억 원 가운데 100억 원을 운영비로 쓰든, 송년회비로 1천만 원을 쓰든, 청소년서체를 개발하는데 예산을 쏟아붓든…… 그건 우리가 알 바가 아니다.

다른 부처라고 해서 비슷한 예산낭비가 없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되는 건 문화산업에 대한 규제.

뭔가를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그 부처가 가진 권력을 보여준다. 한번 생긴 규제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여가부가 그 권력을 포기하겠어?”

“하게 만들어야지.”

사실 게임을 포함해 문화산업 정책업무를 문체부로 일원화하자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문체부는 여가부와는 달리 서브컬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국회 문광위 간사 중에서는 게임업계 출신도 있으니까.”

난 유리가 가져다준 자료에서 본 내용을 떠올렸다.

“그런데 문체부라고 해서 규제를 안 하는 건 아니잖아. 이번에 인디게임 규제했다가 난리나지 않았어?”

전 국민을 도박중독에(이걸 게임중독이라 우기는 이들도 있지만) 빠지게 한 씨스토리 사태 이후 모든 게임은 사전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법이 생겼다.

이 법은 상업성게임에 적용되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문체부에서 갑자기 판매하지 않는 비영리 목적의 게임도 사전심의를 받아야 한다며, 사전심의 없이 게임을 공유하면 형사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공문을 받은 사이트들은 게시판을 폐쇄했고, 플래시게임 등을 개발하던 꿈나무들은 자신들이 만든 게임을 선보일 기회를 잃게 되었다.

사전심의를 받으면 될 거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수십만 원의 비용과 긴시간이 필요하다.

문체부는 법이 있으니 적용한다는 입장이지만, 집에서 싸온 도시락 나눠먹는데 식약청 단속이 들이닥친 꼴이다.

하도 어이가 없는 데다가, 잘못하면 게임개발 생태계가 뿌리부터 뽑힐 상황이 거센 반발이 일었고, 문체부는 비영리게임에 대해서는 단속을 유예하고 법을 검토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래도 여가부보다는 문체부가 나아. 여론이 반발한다고 물러선다는 건 그래도 말이 통하는 상대라는 거니까. 애초에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을 ‘문화’로 보고 규제하지만,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보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매를 맞아야 한다면, 말이 통하는 쪽이 낫겠지.

* * *

여야합의로 국회가 열렸다.

그동안 처리하지 못한 법안들을 우선 처리하기로 했고, 여기에는 ‘인터넷 게임중독 예방 및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도 포함되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었다.

5대 게임사 사장들은 문화체육관광부 김국천 장관과 문광위 간사들을 차례대로 만나 업계에서 만든 자율규제안을 내밀었다.

OTK컴퍼니가 대표로 나서서 입장을 발표했다.

“OTK게임즈는 여성가족부가 보낸 자율규제 협조요청에 대해 전면거부하고, 부당한 게임규제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합니다.국내 50여 개 게임사들과 함께 협회를 만들고 자율적인 규제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한 만큼, 각종 규제법안에 대해서도 공동대응해 나가겠습니다.”

발표가 나가기 무섭게 언론들은 기사를 쏟아냈다.

[(속보) OTK컴퍼니, 여가부 게임규제에 대해 반발]

[셧다운제 확산, 제동 걸리나?]

[게임업계 OTK컴퍼니 발표지지!]

[국내 게임사들 자율규제 방안 만들기로 합의]

[게임규제에 대해 여론은 찬반의견 엇갈려]

[전문가들 게임중독은 심각한 질병……]

[학부모단체, 종교단체. 게임규제 강화해야……]

[OTK컴퍼니, 여가부를 상대로 전면전 선포!]

룰루웹 등의 게임사이트들은 난리가 났다.

-왜 게임만 가지고 그래? 학교, 야자, 학원으로 하루에 12시간씩 공부시키는 건 공부중독 아니냐? 그럼 공부도 규제해야지!

-ㅎㅎ밤에 잠 안 자고 게임하는 건 안 되지만, 공부하거나 나가서 노는 건 됨.

-아예 게임 불법으로 규정해서 만드는 놈이나 하는 놈이나 싹 다 구속시켜라.

-ㅋㅋㅋ법안 통과되면 게임폐인들은 정신병원에 끌고 가듯 강제로 중독치유센터에 집어넣을 듯.

-여기 끌려갈 놈들 줄서있음.

-한국 게임사들 문제는 문제. 랜덤박스가 파친코랑 다를 게 뭐야?

-맞아. 요즘 게임들 그냥 운빨좆망겜.

-우리나라 게임사들은 다 망해봐야 정신 차림.

-사행성과 중독성 규제해야 하는 건 맞지만, 이런 식은 아님.

* * *

청와대와 여당은 깜짝 놀랐다.

그동안 강진후가 정치권을 상대로 벌인 악행(?)을 나열하자면, 책 몇 권으로도 부족할 정도다. 때문에 교양과 상식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웬만해서는 강진후와 얽히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여가부가 보낸 공문 때문에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

사태가 커질 조짐을 보이자, 정부에서는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결론을 내린 이후 입장을 정리해서 발표하기로 했다.

그런데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신전미 장관이 먼저 언론 앞에 나섰다. 그녀는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게임중독은 심각한 질병이고, 이에 따른 규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점점 더 중독성과 사행성이 강한 게임이 나오고 있고, 이로 인해 청소년의 20퍼센트가 과몰입에 시달린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게임에 과몰입하면 학업이 지장이 생겨 성적이 떨어지고,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게임중독은 뇌구조까지 바꿔 더욱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하는 만큼, 세계보건기구 WTO는 게임을 심각한 질병으로 규정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세계적 기업이라고 하는 OTK컴퍼니가 청소년 보호라는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고,양성평등을 저해하고, 여성혐오적인 행태를 지속하는 것에 대해 분노와 우려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어떠한 경우에도 게임규제와 게임중독 치료를 위해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 법안통과를 지지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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